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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341화 (341/1,329)

제7화 부당함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 (1)

상당히 흥분했는지 오성미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김 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산재 처리를 못한다니요?”

“현주 엄마, 말했잖아요. 본인 과실이 너무 커. 그래도 사장님은 최대한 노력을 해 보라고 하지만, 사실 다른 문제도 많아요. 먹고살려면 원청 업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공사 중에 일어난 사고를 산재 처리하게 되면 원청 업체까지 벌점을 먹게 돼요.”

“우리가 그런 것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요?”

김 부장이 잠시 말을 끊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일거리를 주겠어요? 하청 업체라지만 딸린 식구가 한둘이 아니라는 걸 현주 엄마도 잘 알잖아요. 그러니 어떻게 억지로 산재 처리를 할 수가 있겠어.”

“그러면 현주 아빠 치료는요?”

“우리하고 원청 업체에서 부담은 할 겁니다. 대신 산재 처리는 기대하지 말아요. 현주 아빠, 이 동네 어떻게 돌아가는지 빤히 알잖아.”

환자도 곁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럼 모든 치료비를 다 대 준다는 말이죠? 현주 아빠가 회복되고 나면 다시 일은 할 수 있는 건가요?”

김 부장이 답답한 듯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부담도 어느 정도의 선이 있는 거지. 한도를 넘어가면 우리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병원부터 옮기라니까. 그리고 상황을 보니까 퇴원을 해도 몇 개월 내에는 정상적으로 일을 하기 어려울 것 같던데, 그때 현주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건 나도 확답을 못하고, 대신 사장님께 잘 말씀드리면 위로금은 조금 나올 겁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다친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위로금이라고요?”

오성미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떨렸다. 이제 둘째를 낳고 어렵지만 꿈을 키워 가던 가족이었다. 공사 중에 다친 것도 서러운데, 위로금 몇 푼을 받고 직장까지 잃을 판이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엄마는 강해야만 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오성미의 목소리가 도리어 나직해졌다. 가빠지는 숨을 애써 진정시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위로금이 얼마나 되죠?”

“대개는 한 삼 개월 치 정도 줍니다. 사실 현주 아빠의 과실이 너무 커요. 안전 수칙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단 말이에요. 현주 아빠, 안 그래?”

본인의 과실이 상당히 크다는 말이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최동빈이 이제야 입을 열었다.

“부장님, 헬멧 이외에는 준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리고 그때 분명히 야간작업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기를 맞춰야 한다며 공사를 강행한 것은 사장님과 부장님이 아닙니까?”

최동빈의 목소리가 힘에 겨웠다.

“어허! 현주 아빠,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어? 다들 야간 수당 받으려고 일을 한 거 아냐? 있지도 않은 소리는 하지도 말고, 내 말이나 잘 생각해 봐. 공연히 산재 찾고 그러면 위로금도 못 받을 수 있어. 사장님 같은 분도 없으니까, 이 정도 선에서 끝내자구.”

잠시 침묵이 흐르다 다시 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장님, 되든 안 되든 일단 정식으로 산재 신청을 해 주십시오. 말씀대로 제가 언제 일을 할지 모릅니다. 그동안 고작 몇백만 원으로 우리 가족은 어떻게 먹고삽니까?”

“정식으로 산재 처리를 해 달라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자네 하나 편해지자고 한솥밥 먹던 사람들 다 굶겨 죽일 셈이야? 뭐든 억지로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구.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니까, 공연히 노동부다 어디다 찾아갈 생각도 하지 마. 이런 일은 다 순리대로 처리하는 게 가장 좋아.”

“회사를 위해 뼈 빠지게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겁니까?”

최동빈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그게 순리라구요? 부장님이 이런 경우를 당해도 지금처럼 말씀하실 수 있어요?”

오성미가 다시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김 부장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퇴원할 때 치료비하고 삼 개월 치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싶어? 현주 아빠, 내가 솔직하게 하나만 말해 주지.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사고가 몇 건이나 되는지 알아? 노동부 발표는 십분의 일, 아니 백분의 일도 안 돼. 그게 뭘 의미하겠어? 무슨 수를 써도 본인 과실이 크면 산재가 안 되는 데다 정부도 원치 않는 일이야. 그런 상황인데 뭘 어쩌겠어?”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아니면 현실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안전에 관한 것도 회사의 잘못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어. 다 자네가 부주의했고, 회사의 안전 수칙을 하나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쓸데없는 짓 하면 위로금은커녕 치료비도 못 받을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 설사 핑계대지 말고 병원이나 빨리 옮겨.”

옥외 계단으로 통하는 문이 벌컥 열렸다. 김 부장이 맞았다.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는 욕도 못할 사람처럼 순하고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매몰차게 말을 하다니 사람 속은 정말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이 묵묵히 김 부장을 보았다. 김 부장이 표정을 싹 바꾸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구! 선생님, 환자 보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사장님은 물론 회사 직원들 모두 현주 아빠가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치료비는 둘째 치고, 애들이 둘이나 되는데 걱정이 크네요.”

설마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몇 번이나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부장을 보던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겉과 속이 정말 다른 사람이네. 환자를 조금이라도 위한다면 그런 소리를 해서는 안 되잖아. 그런데 왜 산재 처리를 못해 주는 게 아니라, 안 해 주고 싶은 것처럼 들리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문밖에서 들리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서러움이었다. 부당한 일에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한다는 억울함일 것이다. 어쩌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상의 변화는 없었다.

이제 구미 생활도 얼마 남지 않았다.

회진과 쉼 없이 이어지는 수술, 그리고 이론 공부까지 하루하루가 바쁘기만 했다. 하지만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현주 아빠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중간에 마동식 사장이 한 번 더 다녀간 뒤로 환자와 아내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병원을 옮기는 문제와 산재 처리 때문에 고성이 오고 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은 돈 문제일 것이다. 아니다. 생존의 문제였다.

최동빈의 육체는 회복되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의 짐과 걱정이 눈에 보였다.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환자의 치료는 결코 육체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들은 대화 내용을 솔직하게 말하고, 그간의 사정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한숨만 쉬던 최동빈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환자들 치료하시는 것도 힘드실 텐데, 그런 소리를 들으시고 걱정까지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일은 잘 해결되셨나요?”

“열심히 살아야죠. 우리 같은 사람이 믿을 곳이 별로 없네요. 아이 엄마가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내 과실이 너무 커서 산재 처리가 쉽지 않다고 하네요. 보상도 받기 힘들고요.”

콧등을 찡그리던 김지훈이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인 과실이 커 산재 처리가 안 된다면 몇 명이나 산재에 의거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수 있을까?

안전은 개개인만이 아니라 회사와 정부, 나아가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더구나 사업주만이 아니라 근로자도 보험료를 낸다고 알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저도 산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게 확실한가요? 혹시 변호사에게 알아보시긴 하셨나요?”

“변호사 비용이 만만하지가 않네요. 우리 형편에 그런 돈을 쉽게 낼 수도 없고 해서 주변 사람한테 조언을 구했는데 다들 그렇다고 하네요. 노동부에 문의를 하니까 담당 직원도 회사와 잘 합의하는 게 유리하다고 하고요.”

“그래요?”

최동빈의 말투를 들어 보면 경상도 사람이 아니었다. 타지에 와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30살 남자의 인맥은 빤했다. 주변 사람들이라고 해야 건설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다일 것이다. 그들 중에 법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노동부 직원까지 같은 말을 했다면 맞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찜찜했다. 그렇게 따지면 산재 보험 자체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동안 이해하지 못할 일에 머리만 긁적이던 김지훈이 고민 끝에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다.

정훈철이면 혹시 산재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지도 몰랐다. 의사보다는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이 훨씬 다방면에 걸친 지식이 풍부할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로 조언을 구할 사람도 달리 없었다. 인맥이 좁기는 김지훈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지훈이에요. 잘 지내셨죠? 다름이 아니라…….”

느닷없이 연락해 산재에 대해 물었는데 정훈철이 이상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다. 환자의 상황을 들은 후 정말 뜻밖의 말을 했다.

산재는 본인 과실 여부에 상관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회사들이 산재 처리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고, 추가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한다고 했다. 특히 사고가 큰 경우에는 더욱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렸다.

두 귀로 똑똑히 듣고도 선뜻 믿기 힘들었다.

“형님, 노동부 직원도 같은 말을 했다는데 그게 확실해요? 정말 본인 과실하고 산재 처리는 상관이 없는 거죠?”

(그럼, 확실하지. 요새 산재 문제가 하도 많아서 마침 우리도 자료를 모으며 보도 준비를 하는 중이었거든. 그런데 공무원이 그런 말을 했다고? 이거 봐라. 지역사회라고 뭐가 있는 것 같네. 흐음! 지훈아, 너 언제 시간 나냐?)

보도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면 정훈철의 말은 확실할 것이다. 김지훈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이득 때문에 한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부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정훈철이 언제 오프인지 다시 물었다.

“이번 주말에 오픈대요.”

(그래? 잘됐다. 주말에 와이프하고 제수씨 데리고 같이 내려갈게. 겸사겸사 얼굴 한번 보자. 그쪽에 잘 아는 기자가 있으니까, 미리 알아보라고 하면 상황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을 거야. 어째 좀 구린 냄새가 난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였다.

“형님, 그런 인간들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인간도 아니잖아요. 자기들 배만 부르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그게 정말 인간인가요?”

김지훈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있었다.

입을 열려던 정훈철이 순간 떠오른 생각에 잠시 고민에 잠겼다. 김지훈은 모르지만 가끔 이혁민 교수와 만나며 항상 신경을 써 왔다. 이미 장례식장 문제로 김지훈이 고생을 했다는 말도 들었다.

비록 환자의 산재 처리에 관한 문제였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어디에 있든 힘과 돈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알게 모르게 연관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문제가 되는 회사의 사장이 병원이나 재단의 고위 인사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도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관련이 있다면 김지훈이 관여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의료 외적인 문제로 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의외로 고지식한 면이 있는 김지훈이었다.

정훈철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지훈아, 너 금경태 과장 때문에 고생 좀 했지?)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다 알고 있어, 인마. 지훈아, 내 말 잘 들어. 공무원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지역에서 상당히 입김이 센 사람이야. 그런 사람 인맥을 무시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넌 형만 믿고 가만히 있어. 문제가 있으면 내가 나서서 확실하게 해결해 줄게.)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훈철은 혹시나 자신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금경태 과장과의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훈철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하지만…….”

(허어! 조심해서 나쁠 것 없어. 넌 모르는 일이어야 돼. 그리고 형제끼리는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넌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나하고 한 얘기는 환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단 한마디도 해서는 안 돼. 그럼 주말에 보자.)

전화를 끊은 김지훈이 밤하늘을 보다 말고 미소를 지었다. 정작 자신은 별달리 한 일도 없는데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해 주고 있었다. 최동빈의 일까지 잘 해결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겹치자 새삼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다.

정훈철은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형제라는 말이 가슴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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