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39화 (339/1,329)

제6화 왠지 답답하다 (1)

터닝 포인트였다. 최동빈의 의식이 돌아오면서 폐렴까지 급격하게 호전되기 시작했다. 저녁에 시행한 흉부 사진이 거의 정상에 가까운 소견을 보였다. 가슴속에 박힌 흉부 도관도 정확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보호자분, 월요일에 검사 결과를 보고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으면 튜브를 뺄 겁니다. 환자분,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리세요.”

최동빈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은 오성미가 활짝 웃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현주 아빠, 조금만 더 힘내요.”

김지훈이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환자가 좋아진다고 방심했다가는 순식간에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었다.

의식이 돌아온 탓에 강제로 가래를 뺄 때마다 최동빈은 더욱 힘들어했다.

찌이익! 찌이익!

압박 골절이 걱정될 정도로 최동빈이 온몸을 비틀었다. 시뻘게진 뺨을 따라 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인투베이션 튜브를 뺄 때까지 중단할 수는 없었다.

좋은 일도 연달아 벌어지는 걸까? 홍재순이 두 번째 빤뻬리를 받았다.

송동화 과장이 퍼스트를 서고, 김지훈이 써드가 아니라 세컨 자리에 섰다.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홍재순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수술을 할 때마다 김지훈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홍재순이 길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을 함께하는 동료들을 굳게 믿었다. 설혹 실수를 한다고 해도 커버해 줄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믿음은 곧 자신감이었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손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째깍! 째깍! 째깍!

모니터 소리 사이로 초침 소리가 들렸다.

파열된 소장을 봉합했다. 배 속을 깨끗이 씻어 내고 드레인을 박았다. 송동화 과장이 마지막 피부 봉합까지 함께했다.

“컷!”

그 말을 끝으로 모든 수술이 끝났다. 홍재순은 단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았고, 수술 부위에서 시선을 떼지도 않았다.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했다. 얼마나 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젠 스스로 자신을 갖고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홍재순이 길게 숨을 내쉬며 김지훈을 보았다. 분명히 웃고 있었다.

송동화 과장은 물론 이용철 과장도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홍재순이 이제야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한 시간 오십 분.’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결코 느리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느린 손을 자책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떨었던 홍재순이 마침내 한 단계 도약한 것이다.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휘휘 돌리며 말했다.

“홍재순 선생, 수고했어요. 환자 있으면 집으로 연락해요.”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전 중환자실 환자 때문에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다들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을 건네고 인사를 했다.

얼마나 원했던 일이었는지 몰랐다.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동기들과 똑같이 대해 주기를 바랐었다. 이제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홍재순 자신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지훈아, 정말 고맙다. 과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홍재순이 자신도 모르게 병동으로 향했다. 그동안 자신이 수술한 환자들의 차트를 모았다. 일주일 전에 수술을 한 환자의 상황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 빤뻬리 환자가 막 수술 방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수술 부위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수술을 잘 견뎌 주고, 마취에서 잘 깨어난 것이 정말 고마웠다.

홍재순이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김지훈과 처음 술자리를 하며 나눴던 말들이 마치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후우! 내 손이 원래부터 느리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었지? 이젠 답을 할 수 있어. 그래. 원래부터 느렸고, 지금도 느려. 그건 변하지 않아. 하지만 이젠 빨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 네 말대로 자신감을 갖고 동료들을 믿으면 될 것 같다.’

원치 않은 구미행이었다. 금경태 과장과는 차마 남들에게 말하기 힘들 정도로 안 좋은 일이 있어 목소리조차 듣기 싫었다. 그러나 전문의만 되면 된다는 생각에 순순히 금경태 과장의 말대로 근무 지역까지 바꿨다. 단지 그것만이 목적이었기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렇게 무거웠던 마음과 발걸음이 이렇게 변할 줄은 몰랐다. 구미는 홍재순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고 있었다.

***

월요일 아침.

병동 회진을 마치고 모두 중환자실로 내려왔다.

김지훈이 서도진과 함께 아침에 시행한 각종 검사 결과지와 흉부 사진을 챙겼다. 송동화 과장과 홍재순이 신중하게 환자를 살폈다. 무언의 눈빛이 오고 갔다.

잠시 후, 변상훈 과장과 신경외과 과장이 들어왔다.

환자 옆에 선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김지훈의 생각으로는 분명 좋아졌지만 과장들의 눈에는 다른 문제가 보일 수도 있었다. 단일 손상이 아닌 다발성 손상이기에 더욱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다.

답답할 정도로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과장들과 조용히 환자 상태를 논의하던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 인투베이션 튜브 제거해.”

길게 숨을 들이마신 김지훈이 석션 줄을 잡았다.

“환자분, 마지막으로 가래를 빼고 튜브를 뺄 겁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찌이익! 찌이익!

환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런 고통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더 이상 가래가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김지훈이 환자의 입가에 손을 가져갔다.

쿨럭! 쿨럭!

드디어 최동빈의 숨구멍에 박혀 있던 튜브가 제거됐다. 손발을 묶었던 줄이 풀렸다. 이제 최동빈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허리를 고정하는 기구와 부목뿐이었다.

김지훈이 크게 소리 질렀다.

“환자분, 숨 크게 쉬시고 일부러라도 기침을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허리에 골절이 있으니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불편한 게 있으면 반드시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세요.”

허억! 허억!

성대를 짓눌렀던 튜브 탓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최동빈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변상훈 과장이 신중하게 청진을 한 후 김지훈을 툭 쳤다.

“환자 상태가 생각보다 좋네. 수고했다. 이젠 우리 과 문제도 없을 것 같다. 흉부 도관을 제거해도 되겠어. 어떻게 하는지 잘 알 테니까, 진행하고 나한테는 사후 노티해.”

최동빈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했던 짐들이 하나둘 제거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성미에게 특별 면회가 허락됐다. 오성미가 남편의 손을 잡으며 또 울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지훈이 최현주를 번쩍 안아 들었다.

“현주야,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최동빈이 어린 딸의 볼을 어루만졌다. 마침내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어린 딸이 서로의 사랑과 온기를 나누었다. 한 살배기 아이의 칭얼거림이 마치 웃음소리처럼 들렸다.

다음 날, 하룻밤을 무사히 보낸 최동빈이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정형외과 과장이 휠체어를 타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했다. 누워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것이 환자의 회복에 더욱 좋을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분, 아직은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니까 휠체어를 탈 때는 꼭 우리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럼 움직여 볼까요?”

김지훈과 오성미가 조심스럽게 최동빈을 휠체어에 앉혔다.

최동빈에게는 그것마저 고통이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미는 아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바싹 마른 남편의 얼굴에도 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어린 현주가 자기가 밀겠다고 떼를 쓰며 재잘거렸다.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한 가족이 웃음과 희망을 되찾았다. 김지훈에게는 뿌듯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먹먹한 가슴으로 미소를 짓던 김지훈이 의국으로 들어갔다. 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이구! 안녕하셨습니까? 현주 아빠가 많이 좋아졌네요.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최동빈이 다니는 회사의 김 부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였다. 평범한 얼굴의 김 부장과는 달리 상당히 거만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하는 행동과 눈치를 보니 회사의 사장쯤 되는 것 같았다.

이제 40살 정도 돼 보였는데 사장이라니, 인상과는 달리 꽤 능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눈매 끝에 뭔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걸려 있었다.

“김지훈 선생님, 인사하시죠. 우리 회사 사장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김지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마동식입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김 부장이 재빨리 의자 하나를 뺐다. 마동식이 그 자리에 천천히 앉으며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무릎까지 꼬았다.

‘이 사람 뭐야?’

첫인상만큼이나 행동도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살짝 눈가를 찌푸린 김지훈이 김 부장을 보았다.

“어쩐 일이시죠? 환자에 대한 문제는 가급적 친보호자 분이 계실 때 같이 들으셨으면 좋겠다고 전에 말씀드렸었는데요.”

원래 친보호자 이외에는 환자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산재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동안 김 부장을 몇 번 보았었다.

“어이구!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과장님께서 진료 중이시네요. 그래서 한 가지만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뭐가 궁금하시죠?”

“혹시 다른 병원으로 이송이 가능할까요?”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제 막 중환자실을 벗어났고, 아직 물도 시작하지 못했다. 남은 치료 역시 만만하지 않았다. 다만 구미 병원의 규모가 작아 급한 불을 끄면 대구의 큰 병원으로 가는 일은 종종 있었다.

“대구의 대학 병원으로 가시게요?”

김 부장이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우리 회사 지정 병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치료비서부터 산재 처리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아서요.”

지정 병원의 규모는 빤했다. 크다고 해도 의사 몇 명이 있는 준종합 병원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학 병원이라고 해도 최동빈 같은 환자를 중간에 받게 되면 치료에 애로가 많았다. 환자에 대한 정보는 말과 글만으로는 100퍼센트 전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준종합 병원으로 이송은 절대 안 됩니다. 설비나 의료진 규모상 치료를 할 수가 없습니다.”

마동식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김 부장이 잽싸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쯤 가능하겠습니까?”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 통상적인 경우를 생각해 대략적으로 계산해도 최소한 한 달은 더 걸릴 것이다. 중간에 문제라도 생기면 그마저도 기약할 수 없었다.

“경과를 봐야 합니다. 워낙 다친 곳이 많아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아무리 짧게 잡아도 준종합 병원으로 가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리지 않을까요?”

김 부장은 물론 잠자코 듣기만 하던 마동식의 안색이 변했다. 눈가를 찌푸린 채 잔뜩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 지정 병원도 설비나 의료진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번 사고는 최동빈의 과실이 최소한 70퍼센트 이상이라, 그런 면도 고려해야 합니다. 이 병원이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명색이 대학 병원 아닙니까? 환자 부담이 꽤 클 겁니다.”

말투도 뭔가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묘하게 들렸다. 처음 경험한 것도 아니고, 그런 면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산재로 처리하시는 게 아니었나요?”

마동식의 눈이 번쩍였다. 마치 김지훈이 산재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입술을 쭈욱 내밀며 소리 없이 웃었다.

산재 처리는 순수하게 행정적인 문제였다. 더구나 병원은 장애 등급이나 낼 뿐 산재 처리에는 관여할 수가 없다. 지정 병원 의사들도 산재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데 일개 전공의가 알 리 만무했다.

“그게 최동빈의 경우에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본인 과실이 너무 크거든요. 하여튼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환자를 생각하신다면 최대한 빨리 이송하는 게 좋을 겁니다.”

‘에휴! 환자 과실이 70퍼센트가 넘는다고 했나? 골치 아프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안전 의식이 이 모양인 것은 어느 회사나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구미는 공단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그런데 의외로 산재 환자들을 많이 본 기억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산재 환자가 적은 일반 외과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 전공의들도 산재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관심이 없거나, 혹은 환자가 정말 적은 탓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라도 최대한 노력해야죠.”

마동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김 부장, 가지.”

김 부장이 재빨리 일어나 먼저 문을 열며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선생님, 신경 좀 써 주세요. 병원비 때문에 퇴원을 하고 나서도 고생을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나마 지정 병원이 가족들에게 부담이 덜 될 겁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마동식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김 부장, 내가 이런 일로 과장도 아닌 전공의까지 만나야 해? 내 체면이 있지. 창피하게 말이야.”

“사장님, 그동안은 잘 처리해 왔습니다만, 이번 건은 좀 큽니다. 만에 하나라도 분란이 나서 회장님 귀에 들어가면 좋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대한 매끄럽고 조용히 처리하셔야 합니다.”

“에이! 언제까지 노인네 눈치를 봐야 하는 거야? 최동빈인지 뭔지 그놈한테 돈이나 몇 푼 쥐여 주고 빨리 끝내. 산재는 무슨. 누구 발목 잡을 일 있어? 하여튼 김 부장이 잘 처리해.”

살짝 열린 문틈으로 마동식의 신경질적인 모습을 본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의 돈이 뭔지 세상은 참 험난하기만 했다.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김 부장에게 대놓고 반말이라니, 웃기는 일이었다. 더구나 초면인 자신의 앞에서 말이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굽실대는 김 부장의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아픈 사람도 돈에 묶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사회주의 국가를 빼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하는 전 국민 의료보험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돈에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환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몸은 극적으로 회복됐지만 최동빈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