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수술은 치료의 시작에 불과하다 (1)
이용철 과장과 송동화 과장이 서로를 보며 눈만 껌벅거렸다. 말은 안 했지만 김지훈에 대한 놀라움이 두 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수술에 참가했던 의료진들이 힐끔힐끔 김지훈을 보았다. 아마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겼다. 기다리고 있던 보호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회사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 속에 있던 환자의 아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한 살배기 아이를 등에 업은 채였다.
송동화 과장이 수술 결과를 설명했다. 환자의 아내는 울먹이며 발만 동동 굴렀고, 회사 동료들도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한숨만 쉬었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은 사람이 꼼꼼하게 환자 상태를 묻고 있었다.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먼저 중환자실에 들어간 김지훈이 묘한 표정으로 환자를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수술의 전 과정을 스스로 결정하고 집도를 했다. 소장을 이어 줄 때 송동화 과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때 역시 수술 결정은 오직 자신의 몫이었다.
그것은 곧 처음부터 끝까지 환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전공의가 책임져야 하는 범위는 명확했지만, 만일 환자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평생의 멍에가 될 것이다.
뿌듯한 마음보다는 일종의 두려움이 몰려왔다.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100퍼센트 내 책임이다. 나 혼자 수술을 결정하고 잘해 내면 정말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도리어 두렵다니, 이런 것이 집도의가 이겨 내야 할 부담일까?’
삐! 삐! 삐! 삐! 삐! 삐!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
후우욱! 후우욱!
거칠지만 스스로 숨을 내뱉은 환자의 호흡 소리.
똑! 똑! 똑! 똑!
한 방울 한 방울 쉬지 않고 떨어지는 소변.
환자가 살아 있다는 힘찬 표현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긴장과 한밤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수술했다. 그 결과 생사의 경계에 섰던 환자가 돌아왔다. 환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이자 보람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러나 김지훈에게는 이제 시작이었다. 마음을 놓기에는 너무 일렀다.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워낙 다급하게 수술을 한 탓에 어떤 손상이 동반했는지도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김지훈이 꼼꼼하게 환자의 몸 구석구석을 살핀 후, 응급실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걸었다. 추가 손상이 너무 많아 절로 한숨이 나왔다. 특히 느린 동공반사와 흐릿한 의식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브레인(brain:뇌) CT상 뇌진탕, 혹은 뇌 좌상이 의심됐다. 흉부 사진에서는 다발성 늑골 골절이 보였다. 요추의 횡돌기 골절과 좌측 하지의 비골(하지의 외측 뼈) 골절까지 있었다. 자잘한 손상까지 하면 전신에 성한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후우! 손상 부위가 너무 많아. 환자가 잘 버텨 주어야 하는데 걱정이네.’
단일 손상과 다발성 손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예후가 달랐다. 부담이 가중됐다. 하나하나 치료를 하는 동시에 전체적인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었다.
“도진아, 신경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에 모두 컨설트 내고, 지금 바로 흉부 사진 다시 찍자고 해. 경추염좌가 심해 보이니까 목부터 고정시키자.”
먼저 목을 고정시키고, 좌측 하지에 반 부목을 댔다.
곧 흉부 사진이 나왔다. 김지훈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까맣게 보여야 할 폐에 하얀 음영이 옅게 깔려 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흉강이나 폐에 액체가 찼다는 말이었다.
“도진아, 이거 뭐처럼 보여?”
“벌써 폐렴이 발생했을 리는 없고, 혹시 다발성 늑골 골절로 인한 혈흉 아닌가요?”
“그 가능성이 높겠지? 과도한 수혈과 수액 공급으로 인한 폐부종일 수도 있겠고. 아침에 다시 찍어 보자.”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다행히 호흡 장애는 없었고, 동맥혈 가스 분석상 산소 포화도도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지켜볼 여유가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흉부외과 과장인 변상훈 과장의 소견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끄러미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힐끗 서도진을 보았다.
“도진아, 차트 정리는?”
서도진이 머리만 긁적였다.
“빨리 차트 정리하고 내려와라.”
중환자실과는 무슨 인연이 그리도 깊은지 환자만 생기면 김지훈이 킵을 해야 했다. 인력이 부족한 대학 병원들의 구조적인 문제긴 했지만,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김지훈의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더욱이 김지훈에게는 아주 특별한 환자였다. 자신의 책임 아래 수술을 시작한 환자였기에 더욱 큰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킵을 하지 말라고 해도 먼저 나서서 해야 할 상황이었다.
잠시 후, 송동화 과장이 홍재순과 함께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환자 상태를 살핀 송동화 과장이 꼼꼼하게 수술 후에 낸 검사 결과들을 살피고는 김지훈 옆에 앉았다.
“지훈아, 검사 결과는 생각보다 좋던데 환자 상태는 어때?”
“아직까지는 큰 문제 없습니다만, 동반 손상이 너무 많습니다. 의식도 혼미한 상태고요. 해당 과 과장님들께 컨설트 내고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에 긴장이 가득했다. 송동화 과장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보기 드물 정도로 심하게 다친 환자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그런 환자를 집도했으니 김지훈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은근한 후회가 될 정도였다.
‘어차피 한 번은 거쳐 가야 할 일이야.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김지훈 너라면 잘 이겨 낼 거다.’
“드레인은 어때?”
혈복강 환자를 수술한 후 주의 깊게 확인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드레인(배 속과 연결된 심지)이었다. 만일 출혈 부위가 더 있거나, 혹은 출혈이 다시 발생한다면 드레인을 통해 시뻘건 피가 배어 나올 것이다. 어떤 검사보다 빠르고 간단하게 출혈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아직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긴 하지만 배 속에 고였던 피로 보입니다.”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환자실을 나갔다.
이제부터는 모든 전공의들의 땀과 노력이 필요했다.
홍재순이 신중하게 환자를 보며 김지훈에게 유의할 사항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바로 치프가 할 일이었다. 확인하고, 또 점검해야 하는 것이 바로 치료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김지훈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후우! 홍재순 선생님이 바짝 신경을 써 주니까 생각보다 훨씬 마음이 놓이네.’
한동안 같이 킵을 하던 홍재순이 김지훈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수고하라는 말을 하고는 중환자실을 나서는 홍재순이 든든하기만 했다. 치프가 어떤 존재인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잠깐 지난 일을 생각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환자를 보았다.
‘환자가 몇 살이었지? 후우! 이제 서른 살이네.’
젊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차트를 뒤적이던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쉬었다.
건설 현장에서 야간작업을 하다 떨어진 환자였다. 주간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빤히 알았을 텐데 안전 장비조차 착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문득 삼풍백화점의 참상이 다시 생각났다. 개인의 잘못과 회사의 잘못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는 모르지만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고쳐지지 않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답답한 현실이었다.
일이 많이 밀렸는지 서도진이 아침까지 내려오지 못했다. 그 탓에 면회를 하러 온 보호자를 혼자 볼 수밖에 없었다.
무척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눈물범벅이 된 환자의 부인 옆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한 살배기 아이도 여전히 등에 업혀 있었다. 불안하고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보던 아이가 아빠의 모습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다.
김지훈이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선생님, 아이 아빠는 괜찮은 거죠? 그런데 손발은 왜 다 묶어 놓은 거죠? 혹시 다친 데가 더 있나요?”
환자 아내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만,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과장님께 설명을 들으셨겠지만 몇 가지 추가 검사를 더 해야 합니다. 손발을 묶어 놓은 건 기관에 삽관된 호스를 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런데 다른 보호자는 없으신가요?”
겁에 질린 보호자는 환자 상태를 아무리 자세하게 설명해도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환자의 젊은 나이를 감안해도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타지에 계셔서 이따 점심때나 오실 것 같아요.”
“다른 보호자분들 오시면 꼭 우리에게 말씀해 주세요.”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고 말았다.
의사는 항상 환자가 안 좋아질 때를 대비해야 했다. 만일 확실하게 설명을 하지 않으면 자칫 보호자들과의 실랑이를 넘어 법적인 문제까지 거론될 수도 있었다. 두려움에 휩싸여 말도 제대로 못하는 환자의 아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착잡하기만 했다.
‘제길!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잖아.’
“보호자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후 면회 때 다시 뵙겠습니다. 입에 물린 호스는 환자분이 안정되면 뺄 겁니다.”
김지훈이 차근차근 환자 상태에 대해 설명했다. 이미 들었을 텐데도 몹시 겁이 나는지 보호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때 잠깐 잠에 빠졌던 환자가 눈을 떴다.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침대에 묶인 손을 흔들었다. 답답한 것인지, 아내를 찾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환자의 아내가 남편의 손을 잡았다.
“여보, 나예요. 우리 현주도 왔어요. 우리가 보이는 거죠?”
남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르자 아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 딸의 여린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김지훈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아이의 손을 더욱 꼭 잡아 주었다.
차마 이 순간만큼은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환자의 반응은 본능이었다.
명료한 의식 상태가 아니라 혼미한(stuporous)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의식이 흐려지면 반 혼수상태(Semi Coma)가 되기 직전이라는 말이었다.
면회가 끝난 후 곧 아침 회진이 시작됐다. 컨설트를 빠르게 보기 위해서는 정규 수술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리 양해를 구한 김지훈이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더 나빴다.
뇌진탕이 아니라 뇌 좌상이었다. 흔히 뇌진탕이 더 심한 줄 알지만, 이는 말 그대로 단순히 뇌가 흔들렸다는 의미였다. 반면 뇌 좌상은 뇌가 두개골과 충돌하며 타박이 발생했다는 말이었고, 증상도 훨씬 심할 수밖에 없었다. 혼미한 의식 상태도 뇌 좌상 때문이었다.
“뇌부종이 꽤 심하네. 만니톨(mannitol:뇌부종을 억제하기 위한 특수 수액)하고 스테로이드 좀 쓰자.”
“경추는 괜찮습니까?”
“다행히 골절이 의심되는 부위는 없네. 골절이 있었으면 대구로 보내야 하는데, 그게 너한테는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경추 골절은 상당히 위험한 손상이다. 이송서부터 수술까지 위험하지 않은 과정이 없다. 수술 후 사망한 예까지도 꽤 보고가 될 정도였다.
게다가 수술 뒤 한 달 후까지도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가 있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구미 병원 정도의 규모에서는 치료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외상이었다.
사실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공의들에게는 가장 힘든 환자임에 틀림없기에 나온 말이었다. 어느 병원 전공의라도 이런 환자는 피하고 싶을 것이다.
흉부 사진에서 관찰됐던 하얀 음영은 혈흉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기흉까지 뒤늦게 발생했다. 부러진 늑골이 결국 폐 어딘가를 찌른 것이다.
흉부 도관을 삽입하자 검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흉강 내 출혈은 심하지 않아 수술은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탓에 환자의 바이탈이 다시 불안해지고 있었다.
“일단 좀 지켜보자. 동반 손상이 너무 많다.”
변상훈 과장의 안색이 상당히 어두웠다.
정형외과 문제도 산 너머 산이었다. 비골(하지의 외측 뼈) 골절이야 반 부목을 댄 이상 추가 치료는 필요 없었다. 사실 없어도 걷는 데는 하등의 문제가 없는 뼈였다. 하지만 요추는 횡돌기 골절만이 아니라 압박 골절까지 동반돼 상당 기간 절대 안정이 필요했다.
“환자 상태만 좋았다면 수술이 더 유리할 수도 있는 환자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무엇을 하든 조심해. 여기서 척추 더 주저앉으면 수술해야 된다.”
컨설트를 모두 보고 필요한 처치를 마친 김지훈이 차팅을 하다 말고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1) 비장 및 동맥 손상을 동반한 소장 파열로 인한 혈복강과 복막염
(2) 뇌 자상과 경추 염좌
(3) 다발성 늑골 골절로 인한 혈흉과 기흉
(4) 요추의 압박 골절과 횡돌기 골절 및 비골 골절
(5) 다발성 타박상과 열상
인간은 부서진 부품을 교환하면 새것처럼 변하는 기계가 아니다. 각각의 손상을 따로 놓고 보면 충분히 살릴 수 있고,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손상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인체가 받는 영향이 얼마나 클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진단명을 써 내려가던 김지훈의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불현듯 환자를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