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36화 (336/1,329)

제4화 자! 지금부터 달리자. 여긴 구미다 (2)

대기하고 있던 간호사들과 화이트 가운이 최대한 빠르게 수술 준비를 했다. 수술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드르륵! 드르륵!

스트레치 카의 진동을 따라 환자의 고개가 힘없이 흔들렸다. 환자 상태가 더욱 나빠져 있었다. 기관 내 삽관을 한 환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호흡은 불규칙했고, 배 속에 피가 가득 찼는지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환자가 수술실에 옮겨지자마자 이용철 과장이 바로 마취를 걸며 소리쳤다. 단 일분일초도 허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김지훈, 수술 준비해.”

이미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김지훈과 서도진이 환자의 복부를 소독했다. 드랩까지 끝냈다.

그런데 송동화 과장과 홍재순은 이제 막 장을 자르고 이어 주기 직전이었다.

“송 과장, 마취 끝났어. 바이탈이 너무 안 좋아.”

이용철 과장의 말에 송동화 과장이 눈가를 찌푸렸다.

가장 중요한 과정 중에 집도의와 퍼스트가 함부로 손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는 자칫 실수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할 수술의 기본 원칙이었다.

‘일단 배를 열게 하고 최대한 빨리 건너가자. 제길! 과장을 한 명 더 뽑든지, 아니면 전공의라도 늘려 주든지. 이게 뭐야?’

불평은 나중 일이었다. 배를 열고 손상 부위를 확인할 때쯤이면 장을 다 이어 줄 수 있다고 여겼다. 게다가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김지훈이 있었다.

“김지훈, 곧 건너갈 테니까 시작하고 있어.”

이미 수술 가운으로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비장 절제술까지 해 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승과 함께였다. 혼자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송동화 과장은 언제 건너올지 모르는 데다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는 환자였다.

전에 없이 강한 긴장이 몰려왔다.

삐삐삐삐삐!

환자 상태가 점점 급박해지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들리는 심장박동 소리와 인공호흡기가 공기를 불어넣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길게 숨을 내쉬며 몇 번이고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이 환자는 무조건 출혈 부위부터 잡는 것이 원칙이다. 다발성 손상이니까 다른 어떤 때보다 과감해야 한다. 내 자신과 도진이를 믿고 시작하자.’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메스!”

메스를 따라 복벽이 길게 절개됐다.

김지훈이 전공의가 된 후 처음으로 스태프들 없이 집도를 시작했다. 참관하는 교수마저 없다는 사실은 엄청난 부담이었다. 하지만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손은 거침이 없었다. 이런 환자를 앞에 두고 머뭇거리거나 두려워한다면 외과 의사로서의 자격은 없었다.

복막이 열렸다. 온통 피만 보였다.

가뜩이나 낮았던 환자의 혈압이 더 떨어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김지훈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출혈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석션, 탭, 물.”

완전히 피로 물든 탭이 쌓여 갔다. 석션 통이 시뻘건 핏물로 가득 찼다. 물을 부어 배 속을 씻고, 또 씻어 내도 좀처럼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그만큼 출혈이 심각하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의 이마가 땀으로 젖어들었다. 송동화 과장은 건너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악물던 김지훈이 비상수단을 강구해 냈다.

‘비장이 깨진 것은 확실한데 나머지 하나는 어디일까? 피가 나오는 양상으로 보면 소장이나 대장에 연결된 혈관이 손상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비장은 상대적으로 딱딱한 장기다. 완전히 부서졌다고 해도 부드러운 조직인 소장이나 대장보다는 압박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김지훈이 마른 탭을 무려 10장 가까이 비장 쪽으로 우겨 넣었다.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기를 바랐다.

압박이 효과가 있었다. 출혈량이 적어지며 시야가 확보됐다.

복부 CT에서는 멀쩡해 보였지만 간부터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깊숙한 곳까지 손으로 만져 보며 육안으로 확인했다. 다행히 간 손상은 없었다.

십이지장에서 공장으로 이어지는 부분부터 소장을 끄집어냈다. 5미터에 달하는 소장을 빠르게 꺼내며 손상 부위를 찾았다. 휙휙 손을 움직이던 김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소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포함된 조직인 장간막의 일부에서 심각한 손상이 보였다. 장간막이 온통 시뻘겋게 피로 물들어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서 심장박동을 따라 펑펑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장간막을 헤치고 끊어진 동맥을 확인했다. 상당히 굵은 동맥이 끊어져 있었다.

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비장 손상까지 동반됐으니 지금까지 환자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켈리.”

따가각!

첫 번째 출혈 부위를 잡았다.

“타이.”

서도진이 침착하게 동맥에 타이를 했다.

동반된 소장의 손상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지금은 무조건 출혈 부위부터 잡아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남은 소장과 대장을 살폈다.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비장 부분을 압박하고 있던 탭을 제거했다. 마른 탭들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마지막 탭을 제거하는 순간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서도진도 놀라 눈만 크게 떴다. 비장이 완전히 깨져 산산조각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장과 연결된 조직에서 줄줄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조각난 비장이 핏속에 잠길 정도로 심한 출혈이었다. 비장 동맥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켈리, 켈리, 켈리.”

김지훈이 쉴 새 없이 켈리를 외쳤다.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동맥이 포함된 주변 조직을 과감하게 잡았다. 그 속에 동맥이 있는지, 없는지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고, 지금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출혈부터 막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톱니바퀴 물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김지훈의 손은 거칠다고 느껴질 정도로 과감하기만 했다. 마침내 비장과 연결된 조직을 모두 켈리로 잡았다.

김지훈이 장기 손상과 출혈 부위가 더 있는지 확인했다. 손상된 조직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피를 제외한다면 더 이상 심각한 출혈은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온 김지훈이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이용철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손상이 심할수록 수술은 더 까다로워진다. 정상적인 해부학적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불과 30분 만에 배를 열고 끊어진 소장 동맥과 비장 동맥을 모두 잡은 것이다.

무조건 출혈부터 잡아야 하는 수술이라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빨랐다.

김지훈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수술에 집중했다. 너무도 과감하게 수술을 진행해 서도진이 미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선생님, 바이탈은 어떻습니까?”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용철 과장이 급히 바이탈을 확인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출혈 부위가 모두 잡힌 것인지, 환자가 생사의 고비를 넘긴 것인지는 모두 바이탈에 달려 있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구십 정도에서 잡히고, 소변도 나온다. 좋았어. 빨리 진행하자.”

이용철 과장의 말에 서도진까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송동화 과장이 수술 가운도 갈아입지 않은 채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제야 소장 연결이 다 끝났다. 아직 배를 닫는 과정이 남았지만, 그 정도는 서도진이 자리를 옮겨 보조를 해도 충분했다. 무척이나 다급한지 목소리까지 떨렸다.

“김지훈, 출혈 부위가 어디야?”

“예. 비장이 깨지고, 소장 동맥 중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뭐? 소장 동맥까지 끊어졌어? 잡았어?”

“예. 소장 동맥은 일단 타이만 했고, 비장은 손상이 심해 동맥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주변 조직을 모두 잡았습니다. 아무래도 소장 일부까지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송동화 과장이 눈만 껌벅거렸다.

‘이 자식 뭐야?’

소장을 연결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젠 제법 손이 빨라진 홍재순이었다. 바이탈까지 잡히고 있다는 이용철 과장의 말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너무 빨리 수술이 진행됐다. 실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김지훈은 2년차였다. 실수를 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도진아, 넌 홍재순 선생하고 배 닫아.”

급히 손을 씻고 들어온 송동화 과장이 수술 가운을 갈아입자 김지훈이 재빨리 퍼스트 자리로 이동했다.

송동화 과장이 차근차근 배 속을 살폈다.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거칠게 출혈 부위가 잡혀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원칙이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다발성 출혈은 깔끔한 처리가 아니라 출혈부터 막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따라서 신속하고도 과감한 손이 필요했다. 김지훈은 그 점을 잊지 않았고, 정확하고도 확실하게 출혈 부위를 잡았다. 지적할 거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손이 빠른 것만이 아니라 과감하기까지 하단 말이지. 자신감이야, 아니면 배짱이야? 2년차가 이 정도로 수술을 할 줄 알면 자만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지훈이 눈빛을 굳힌 채 수술 부위를 확인하는 송동화 과장의 손을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지 불안해하는 기색과, 한편으로는 강한 자신감이 보였다. 결코 자만은 아니었다.

남은 과정은 비장을 절제한 부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동맥이 끊어져 죽을 수밖에 없는 소장을 잘라 내는 것이었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송동화 과장이 힐끗 환자의 바이탈을 확인하고는 집도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일단 바이탈은 잡혔지만 이제 와 내가 집도를 하면 처음부터 손상 부위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데, 공연히 시간만 걸릴 수가 있다. 여기까지 했으면 남은 과정도 김지훈이 하는 게 맞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하고도 남아.’

“김지훈, 이 정도까지 만졌으면 니가 책임져야지.”

김지훈이 살짝 놀라면서도 약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수술을 재개했다. 이미 머릿속으로 남은 과정을 그린 지 오래였다.

먼저 비장을 절제한 부분부터 깔끔하게 정리하고, 부서진 비장을 들어냈다. 연결 조직 속에 숨은 비장 동맥을 찾아 확실하게 묶었다.

다음으로 소장 동맥이 손상된 부분을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제법 굵은 동맥이 끊어져 소장이 무려 1미터 가까이 시커멓게 변색돼 있었다. 도저히 살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이라면 그 정도 범위를 잘라도 소장의 기능에 큰 이상은 없다는 점이었다.

잘린 동맥을 시작점으로 해, 부챗살 모양으로 소장과 연결된 장간막을 잘랐다. 10센티미터를 자르든, 1미터를 자르든 시간만 더 걸릴 뿐 기본적인 과정은 동일했다.

비장 절제와 소장 절제는 이미 해 본 수술이었다. 이번 환자의 경우, 두 부위의 손상이 동시에 발생하며 바이탈이 크게 흔들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근본적인 차이는 없었다.

김지훈의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장간막을 다 자르고 소장을 연결하기 시작했을 때 홍재순이 들어왔다.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용철 과장과 몇 마디를 나눈 홍재순이 깜짝 놀랐다.

김지훈을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홍재순이 발판 위에 올라서서 고개를 쭉 내밀며 수술을 지켜보았다. 소장을 연결할 때는 혈관과 인접한 부분을 특히 조심해야 했다. 소장에 인접한 동맥은 워낙 가늘기 때문에 자칫 바늘에 찔린 것만으로도 손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재수가 없으면 소장의 혈류를 막아 추가 절제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많은 전공의들이 수술 중에 저지르는 실수이기도 했다. 홍재순 역시 이 부분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어렵지 않게 그 과정을 해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수술 중 사망을 경고해야 할 정도로 바이탈이 흔들렸던 환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런 손이 2년차인 김지훈의 손이라는 것이었다.

홍재순이 눈가를 찡그렸다.

‘저 자식은 어려운 부분이 없나? 2년차에게 이게 가능한 일이야?’

은근히 샘이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김지훈이 자신에게 말했던 모습을 또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옆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수술 부위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양손에 든 수술 기구를 마치 자신의 손이기라도 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과감하게 움직이는 손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속에 어시스트를 서는 송동화 과장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다.

어느새 소장이 모두 연결됐다. 1미터에 가까운 소장을 제거하고 다시 길을 만들었다.

홍재순이 40분이 넘도록 진행한 과정을 불과 30분 만에 끝냈다. 자르고 이어야 할 범위가 훨씬 넓은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재순에게는 정말 강렬한 자극이었다.

환자의 바이탈이 확실하게 돌아오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자 눈을 뜨며 몸까지 비틀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기관 내 삽관을 유지하지 않았다면 신음 소리까지 크게 낼 것 같았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밤의 치열했던 사투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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