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30화 (330/1,329)

제2화 이것이 바로 의국이다 (1)

동맥을 놓쳤다. 잘린 동맥이 배 속으로 쑥 끌려 들어갔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아무리 가늘어도 동맥이었다. 심장박동을 따라 선홍색 피가 주르륵주르륵 솟구쳤다. 성기고 약한 조직 사이로 피가 퍼졌다. 순식간에 주변 조직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서도진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사색이 된 홍재순이 당황한 표정으로 허둥대고만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힐끗 홍재순을 본 김지훈이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롱 포셉. 라이트 앵글(Right Angle).”

재빨리 기구를 받아 든 김지훈이 롱 포셉으로 배 속으로 끌려 들어간 조직을 끌어당겼다. 시뻘겋게 물든 조직을 라이트 앵글로 과감하게 잡았다.

따가각!

기구에 잡힌 조직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잘린 동맥을 잡았을 가능성은 없었다. 홍재순이 동맥을 놓치는 순간 이미 깊숙한 곳으로 숨었을 것이다.

“라이트 앵글, 하나 더.”

송재덕 과장이 가르쳐 준 랜드 마크!

맹장과 소장을 확인한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잘린 동맥이 숨었다고 해도 원래 주행하는 길을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김지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라이트 앵글에 힘을 주었다.

따가각!

기구에 달린 톱니바퀴 맞물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렸다.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마취과도 이미 상황을 알아챘다. 만일 김지훈이 잘린 동맥을 잡지 못했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린 동맥은 점점 더 깊게 숨을 것이다. 배를 크게 연다고 해도 잘린 동맥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홍재순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잘린 동맥을 정확하게 잡았는지 혼자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손이 필요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홍재순을 본 김지훈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침착하게 말했다.

“선생님, 동맥을 잡았는지 확인하셔야 합니다.”

“응? 도, 동맥?”

홍재순의 눈빛은 불안했고, 말까지 더듬었다.

“모스키토로 제가 라이트 앵글로 잡고 있는 부분을 확인하시면 됩니다.”

잠시 머뭇거린 홍재순이 조심스럽게 기구에 잡힌 조직을 파헤쳤다. 김지훈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예상대로 첫 번째 잡힌 조직에는 잘린 동맥이 보이지 않았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파헤쳐진 조직을 제거했다. 순간 홍재순이 꽤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 번째 라이트 앵글을 가리켰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홍재순의 느린 손 탓에 이마에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김지훈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더 이상 주변 조직이 피로 물들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 속에 있다. 후우! 송재덕 선생님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 홍재순 선생님, 침착하게만 하시면 됩니다.’

깨작깨작 조직을 파헤치는 홍재순의 손을 보던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선생님, 거기 있네요. 예. 지금 모스키토로 박리한 곳 바로 그 위예요.”

작고 동그란 구멍이 보였다. 잘린 동맥의 절단면이었다. 남은 일은 타이를 하는 것뿐이었다.

타이는 항상 해 왔던 과정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홍재순의 마스크가 심하게 불룩해졌다. 타이도 하기 전에 동맥을 놓쳐 버린 실수 때문일 것이다.

김지훈이 홍재순의 긴장을 분명하게 느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상태에서는 타이하다가 끊어 먹을 수도 있어. 라이트 앵글을 넘겨? 그러다 다시 동맥을 놓치면 진짜 배를 더 열어야 되는데.’

수술 중에는 철저히 동료들을 믿으라고 배웠다.

홍재순을 믿을 수 있을까?

이미 여러 차례 실수를 했다는 말을 들었고, 지금도 눈앞에서 실수를 했다. 그것도 가장 신중하고 조심해야 할 부분에서 말이다.

입가를 모으며 고민하던 김지훈이 홍재순에게 라이트 앵글을 넘겼다. 믿어야 할 때였다.

지금은 손이 느리고 빠른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같은 실수를 연이어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타이는 퍼스트가 할 일이었다.

“타이하겠습니다.”

홍재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린 동맥이 확실하게 묶인 것을 느낀 김지훈이 슬쩍 홍재순에게 눈짓을 했다. 라이트 앵글에 달린 톱니바퀴가 풀렸다가 다시 감겼다. 이중으로 타이를 한 후, 출혈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을 했다.

더 이상 문제는 없었다. 김지훈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아뻬를 잘라 내고 입구 부분까지 타이를 했을 때 송동화 과장이 들어왔다.

“아직 배도 못 닫았어? 어? 이거 뭐야?”

일순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뻬하다가 잘린 동맥을 놓치는 경우는 볼 수 없었던 데다 치프인 홍재순이 실수를 한 까닭이었다.

다들 눈치만 보았다.

‘후우! 실수. 제길! 그놈의 수첩은 왜 봤을까? 치프 때 이런 실수를 하면 타격이 더 크겠지?’

입술을 꽉 깨물었던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제가 타이를 끊어 먹었습니다.”

“뭐? 타이를 끊어 먹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실수를 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송동화 과장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시 물어도 대답은 똑같았다. 홍재순은 입을 꾹 다문 채 눈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수술 방 분위기도 묘했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눈가를 찡그리던 송동화 과장이 입맛을 다셨다.

“김지훈, 정신 똑바로 차려. 아뻬라고 무시하다가는 언제든 이런 실수를 할 수밖에 없어. 알았어?”

목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송동화 과장이 손을 씻고 들어와 꼼꼼하게 수술 부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김지훈, 수술 끝나고 휴게실로 와. 홍재순 선생님, 마무리해요.”

피부 봉합을 모두 끝낸 홍재순이 답답한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역위증에 이어 치명적인 실수까지 덮어 주었다. 게다가 놓쳤던 동맥을 다시 묶을 때 보았던 김지훈의 눈빛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속에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행동한 선후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들과 똑같았던 김지훈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바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있었다.

‘김지훈, 넌 다르다는 거야?’

홍재순이 잠시 주저하다 수술 방을 나갔다.

“선생님, 왜 그러셨어요? 그런다고 고마워하는 것 같지도 않네요. 최소한 고맙다는 말은 해야죠.”

김지훈이 서도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기만 했다.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왠지 마음이 편하네.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그렇게 홍재순과의 첫 수술이 끝났다.

토요일 퇴근 전이었다. 여느 때처럼 외과 과장들이 수술 방 휴게실에 모여 커피를 마셨다. 외과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마취과 이용철 과장도 당연히 함께 있었다.

즐거운 대화가 오고 갔다. 그런데 이용철 과장이 자꾸 송동화 과장에게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변상훈 과장이 웃으며 물었다.

“이 과장, 왜 자꾸 송 과장 눈치를 보고 그래? 할 말이 있는 거야, 아니면 죄라도 지었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일 아닌데, 송 과장도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지나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

“우리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뭔데?”

당연히 송동화 과장이 관심을 보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이용철 과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송 과장, 방금 전 아뻬한 환자 말이야. 김지훈이 타이를 끊어 먹은 게 아니라 홍재순이 동맥을 놓친 거라네. 그리고 끝나고 나서 김지훈이 입조심해 달라고 그랬다는데?”

장성기 과장과 변상훈 과장이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외과 의사들이기에 무슨 상황인지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크게 놀랄 것 같았던 송동화 과장이 묘하게 웃었다.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분위기를 보는 순간 딱 그럴 것 같았습니다. 선생님들도 모른 척해 주세요. 사실 역위증 환자도 홍재순 선생은 놓쳤고, 김지훈이 발견을 했네요. 자식! 무슨 생각인지 응급실 차트까지 맨 뒤에 숨겨 놨더라구요.”

장성기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아니,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을 하던 변상훈 과장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어이구! 의국 분위기가 상당히 안 좋다고 들었는데, 결국 홍재순이 아니라 2년차가 치프를 챙기고 있네. 송 과장, 속상하면서도 뿌듯하겠어.”

“예. 솔직히 그렇습니다. 지훈이 덕에 홍재순 선생이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네요. 저도 느낀 게 많습니다. 사실 짜증만 내고, 어떤 면에서는 무관심했거든요. 저 역시 과장이지만 의국원이기도 한데 잘못한 것 같습니다.”

이용철 과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왜 송 과장 잘못이야? 다 지가 못난 탓이지. 아이고! 김지훈 그놈을 잡았어야 되는 건데. 볼 때마다 사람 놀라게 해서 그런지 정말 아쉬워.”

“이 과장, 그런 말 마. 난 그 자식이 인턴 때 흉부 도관까지 줬어. 그런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놈이야. 나쁜 놈. 우리 과를 했어야지 말이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은 송 과장이 부럽네.”

송동화 과장이 간만에 기분 좋은 미소를 활짝 머금었다.

그때 장성기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송 과장, 동맥을 놓치면 아뻬일 때가 더 어렵지 않아?”

“맞습니다, 선생님. 절개 창이 적은 데다 소장이 동맥을 깊게 끌고 들어가기 때문에 기구 조작이 정말 어렵죠. 거기다 동맥 자체가 가늘어서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2년차 놈이 그걸 바로 해결한 거야? 자식! 대단하네. 손재주 하나는 타고난 모양이야.”

변상훈 과장이 손을 저었다.

“그게 손재주만으로 되나. 머리하고 가슴이 따라와야지. 하여간 부러워. 내 밑에 김지훈 같은 놈이 있었으면 마음 놓고 놀러 다녔을 거야. 문제 될 게 하나도 없잖아. 그냥 환자 오면 잘 보라는 말만 하면 되는 거 아냐?”

“에이! 왜들 이러세요. 사실 자랑은 아니지만…….”

송동화 과장이 막 뭔가 자랑을 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이 들어오다 말고 과장들이 4명이나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송동화 과장이 씨익 웃으며 김지훈을 옆에 앉혔다.

“선생님,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별일 없어. 그냥 커피 한잔하라고 불렀다.”

사실 송동화 과장 입장에서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해 주고 싶은 말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보자 커피 한 잔에 담긴 마음을 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이라면 모르지만,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까?

‘혹시 홍재순 선생님이 실수했다는 걸 아신 건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입을 연 거야?’

과장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전공의가 낄 자리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다 단숨에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4명의 과장이 흐뭇한 시선을 보냈다.

‘도대체 왜 부르신 거야? 어색해서 혼났네.’

김지훈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급히 병동으로 올라갔다.

토요일 오후 회진을 돌았다.

홍재순이 송동화 과장의 눈치를 보며 김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휴게실에서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궁금했지만 얼굴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둘 다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홍재순도 입 밖으로 내기에는 너무 껄끄러운 일이었다.

오늘도 오후 3시까지 오더를 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빨리 끝났다. 물론 홍재순이 오프였으면 자신이 본 환자의 오더만 냈을 테니 더 빨리 끝났겠지만 말이다.

“김지훈, 오프 가라.”

홍재순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어쨌든 주말 오프를 받았다.

부랴부랴 고경아와 연락을 하고 서울로 출발했다.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오프를 늦게 보내 줄까 봐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흐흐흐! 역시 양수리가 진리야. 이번에는 기필코.’

휴가 때의 기억을 되살린 김지훈이 파이팅을 외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들떴던 마음이 사라지고 초조해졌다. 길이 밀려도 너무 밀렸다. 게다가 난데없이 서도진이 주말을 잘 보낼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별 생각이 다 드네. 이놈의 전용 차선은 누가 만든 거야?’

안성 무렵에서 막히기 시작한 길이 잠시 뚫렸다 싶더니,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또 막혔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자 졸음이 쏟아졌다. 허벅지를 꼬집고, 물을 마셔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것처럼 무거웠다.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릅뜨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엔진 소리가 이상했다. 급기야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액셀을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마치 1단 기어를 넣고 달리는 것 같았다.

‘어후! 차까지 왜 이러냐? 똥차라고 하더니 정말 똥차였나? 제발 버텨라. 일단 병원 앞까지만 가자.’

고속도로 중간에서 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딸딸딸! 텅텅텅!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내는 차를 끌고 간신히 병원 앞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늦었다. 차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얼핏 병원 근처에서 본 정비소가 생각났다.

다행히도 막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잠시 차를 살핀 정비소 주인이 처음 듣는 소리를 했다.

“이씨유(ECU)가 나갔네요.”

이건 또 무슨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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