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Ⅰ (1)
억측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이 홍재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기회인 것 같기도 했다. 이런 궁금함을 해결할 방법은 멀리 있지 않았다.
‘일석이한테 홍재순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라고 할까?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아냐?’
그 생각도 잠시, 김지훈이 아침 일과가 끝나자마자 손일석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전화가 연결됐다. 손일석이 혀를 찼다.
(얼마나 답답하면 예전에 어땠는지가 궁금할까. 에휴! 불쌍한 놈. 너도 인복 좋은 거, 나쁜 거 합치면 나랑 똑같네.)
“잔말 말고 그냥 뭐 특별한 거 있으면 얘기 좀 해 줘. 그래야 나도 좀 편하게 살 거 아니냐.”
(그래. 나만 믿고 기다려. 하긴 무식하게 정면 돌파해야 하는 시기는 지났지. 이제는 우리도 정치적인 감각을 길러야 할 때야. 홍재순 선생님에 대해서는 워낙 말도 많고, 사방에 원한이 많아서 곧 연락할 수 있을 거다. 방송하면 되지?)
“응. 방송해.”
손일석의 목소리를 들어서인지 기분이 좀 나아졌다. 게다가 유난히 한가로운 하루였다. 이혁원이 제출한 리포트를 보고 응급실 환자까지 봤지만 시간이 남아돌았다.
슬슬 밀려오는 졸음을 충분히 해소하고도 남았다.
결국 이혁원과 술을 하면서 어떻게 말을 풀어낼지 고민까지 했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는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회진을 돌고 오더를 내던 중이었다. 홍재순이 밤에 수술한 환자 차트를 펼치며 물었다.
“김지훈, 이 환자 오늘 수술 후 검사 괜찮아?”
어? 1년차에게 해야 할 질문이었다. 하지만 세컨을 세운 홍재순이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검사 결과는 이미 다 확인했다. 역시 치밀하고 충분한 대비만이 살길이었다.
“예.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혈색소 수치가 정확히 얼만데?”
출혈로 수술한 환자가 아니라 빤뻬리 환자였다. 백혈구 수치는 나름의 의미가 있었지만 빈혈의 척도인 혈색소 수치까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었다.
“예? 정상 범위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얼마냐고?”
한두 명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 데다 어떤 검사가 나가든 대부분 기본적으로 체크하는 항목이었다. 더구나 정상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포인트였다. 당연히 정확한 수치까지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홍재순이 눈살을 찌푸리며 김지훈을 노려보았다.
“하여튼 1년차나 2년차나, 이 새끼들은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김지훈, 수술만 할 줄 알면 일반 외과 의사야? 검사는 왜 나가냐, 이 새끼야.”
점점 욕의 강도가 심해졌다.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그냥 태우고 괴롭히고 싶어 트집을 잡는 것 같았다. 일로 인한 스트레스는 참을 수 있어도 사람이 주는 스트레스는 참기 어려운 법이었다. 가슴에서 불덩이 하나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무리 치프라도 말이 되는 걸 가지고 태워야지.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김지훈이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를 타고난 모양이었다.
천광호와 이혁원은 물론 인턴까지 눈치를 보았다. 꾹꾹 눌러 참는 수밖에 없었다. 자칫 잘못 입을 열었다가는 후배들 앞에서 보여서는 안 될 꼴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김지훈을 씹어 대던 홍재순이 오늘도 10시가 넘어서야 일과를 끝냈다. 정말 지랄 맞은 날이었다.
‘참자. 참을 인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참자. 싹 잊고 혁원이랑 즐겁게 술 마시자.’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선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광호야, 형 혁원이랑 술 마시러 간다. 찾지 마라. 가자, 혁원아. 역시 술은 맥주보다는 소주지?”
목소리에서까지 즐거움이 묻어났다. 이혁원이 다소 의아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속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억지로 망가진 기분을 숨기는 거라면 술 마시다 난리가 날 수도 있었다.
“선생님, 저 안 마셔도 되는데요.”
“야아! 이 자식 봐라. 감히 2년차의 오더를 거부해? 혁원아, 내 술에 죽을래, 아니면 광호 주먹에 죽을래. 원하는 대로 해 줄게.”
천광호가 씨익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선택은 당연히 술이었다. 이혁원이 벌떡 일어나 가운을 벗었다. 김지훈이 척 어깨동무를 하고는 신 나게 병원을 나섰다.
이준영 과장과 무슨 관계인지 어떻게 물어볼까 고민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성만 같을 뿐, 별 관계가 아닐 수도 있었다. 김지훈에게는 스승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큰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혁원에게는 따분하거나 혹은 곤란한 화제일 수도 있었다.
‘에휴! 아끼는 후배랑 술을 마시는데, 그 자체를 즐기는 게 맞지. 만에 하나 스승님과 껄끄러운 일이라도 있었으면 분위기만 망가질 게 빤해.’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병원 앞 진달래 식당으로 향했다.
넉넉하게 삼겹살 4인분과 함께 소주 2병을 시켰다. 홍재순 때문에 꿀꿀해진 기분과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묘하게 중첩됐다.
첫잔을 비우는 순간 목구멍을 타고 넘는 알싸한 자극에 김지훈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김지훈이나 이혁원이나 둘 다 만만한 주당이 아니었다. 삼겹살이 노릇하게 구워지기도 전에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소주 한 병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간만에 먹는 남의 살은 정말 맛있었다.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에 소주 한 잔씩 사라졌다. 빈병이 쌓여 갈수록 김지훈과 이혁원의 얼굴이 점점 벌게지고, 슬슬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전공의와 의대 학생과의 술자리였다. 더구나 학교 다닐 때부터 서로 잘 알았고, 이혁원은 곧 인턴이 된다. 인턴과 전공의의 생활에 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인턴 때는 잠이나 좀 자나요?”
“잠? 그건 니 재수지. 마이너과를 주로 돌면 밤에 뭘 하고 놀아야 할지 고민하는 거고,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아니면 메이저과들을 주로 돌면 죽었다고 복창하는 거야. 혁원아, 형이 인턴을 어떻게 돌았는지 알아? 죽는 줄 알았다.”
김지훈이 적절한 과장까지 섞어 가며 인턴 시절을 얘기했다. 모든 선배들이 그렇듯, 거의 무용담 수준이었다.
이혁원이 입을 쩍쩍 벌리며 놀라자, 김지훈이 잊고 있었던 기억마저 끄집어냈다. 급기야 정갑수와 악어까지 입에 올랐고, 김지훈은 분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연스럽게 전공의 생활까지 이어졌다.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김지훈에게는 역시 이준영 과장과의 인연이 가장 소중했다.
“혁원아, 내가 1년차 휴가 때 뭐 했는지 알아?”
“좋은 데 가셨었어요?”
어느새 소주 4병이 사라졌다. 주당들답게 아직까지는 발음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휴가철에 구미에서 근무했는데, 환자 한 명이 수술도 제대로 못 받고 죽었어. 그때 얼마나 괴롭던지 일반 외과를 한 게 후회가 될 정도였지. 근데 그 일 때문에 배워야 하겠다는 마음이 절실해진 거야. 그래서 망설이지도 않고 음성 병원으로 휴가 갔다.”
“음성 병원으로요?”
“내가 전에 이준영 선생님이 음성에 계셨었다고 했잖아.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선생님이거든. 타기도 무지하게 탔지만, 사실 이준영 선생님 덕분에 동기들한테 뒤떨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
그 순간, 이혁원이 고개를 숙이며 눈가를 찌푸렸다.
“선생님, 한잔하시죠.”
“응? 그래. 좋지. 그래서 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승에 관한 말이었다. 김지훈에겐 즐겁고, 행복하고, 뿌듯한 마음뿐이었다.
반면 이혁원은 점점 말을 잃었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이런 술자리에서 주로 말을 하는 사람은 선배들이었기에 김지훈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수술 방에서 활활 타 가며 배운 일들.
의사와 집도의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
금경태 과장까지 고개를 저었던 수술을 해낸 일들.
이혁민 교수와 신기동 교수를 불러 함께한 수술.
“이런 걸 다 누구한테 배웠겠냐. 정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으시지만, 딱 한 분을 꼽으라면 무조건 이준영 선생님이야. 그래서 내가 사부로 모신다.”
김지훈이 소주를 탁 털어 넣다 말고 눈을 껌뻑거렸다.
“야, 너 예쁜 마누라 얻고 싶어? 왜 자작을 하고 지랄이야, 인마. 그새 많이도 먹었네. 치사하게 혼자 먹지 말고 형한테 한 잔 따라 봐.”
말없이 잔을 채운 이혁원이 눈가를 비볐다. 아버지에 관한 말은 결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김지훈의 얘기를 막지도 못했고, 도리어 귀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면 뭐합니까. 가족을 버린 비정한 사람인데요. 선생님은 그 사람 인간성이 어떤지 몰라서 존경하는 겁니다.’
반감이 치밀어 오른 이혁원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이준영 선생님은 어떤 분이세요?”
“이혁원, 너 여태 뭘 들은 거야? 내가 인마…….”
“아니요. 실력이나 그런 게 아니라 성격 같은 거요. 실력이 좋아도 인간성은 나쁜 사람이 있잖아요.”
‘설마 이 자식도 금경태 과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나? 이러면 우리 과 지원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데.’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물을 마셨다.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준영 선생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셔. 물론 체구도 크신 데다 워낙 무뚝뚝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겁부터 먹을 거야. 나도 솔직히 처음엔 그랬고, 지금까지도 몇 마디 못 들었거든. 하지만 정이 무척 많으시고, 제자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하시는 분이야. 그건 확실해.”
‘자기 자식은 내팽개친 사람이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요? 정말입니까? 그럼 도대체 난 뭔가요?’
이혁원이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인 이준영 과장에 대해 말할 때마다 김지훈은 행복해 보였다. 그게 더 화가 났다. 차라리 모든 사람에게 욕을 먹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혁원을 본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네. 혁원아, 아버님은 뭐 하시냐?”
꼭 이준영 과장을 의식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그냥 화제도 돌릴 겸, 선배들이 흔히 아끼는 후배에게 하는 호구조사일 뿐이었다. 물론 잠재의식의 발로일 수는 있었다.
이혁원이 답답한 숨을 내뱉었다.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감정이 거칠게 치밀어 올랐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내뱉지 못해 쌓이고 쌓였던 분노와 애증이었다. 이대로 가슴속에 묻었다간 온몸이 그대로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 순간, 술기운이 이혁원의 마음과 심장을 먹어 치웠다.
“아버지요? 전 그런 사람 모릅니다. 중학교 때 나가서 십 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선생님, 그런 사람이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요?”
아차 싶었다. 술이 번쩍 깰 정도였다.
“에휴! 미안하다, 혁원아. 난 그런 사연이 있었는지도 몰랐네. 그래도 안 계시는 것보다는 낫다. 하긴 나도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돌아가신 지 십 년이 훌쩍 넘으니까 이젠 생각도 많이 안 나긴 해. 너무 원망하지 마라. 혹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으셨는지도 모르잖아, 인마.”
그냥 미안해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혁원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사정이요? 있죠. 사고가 났답니다. 사람이 하나 죽었대요. 하지만 그게 가족을 버릴 이유가 됩니까? 거꾸로 가족과 함께 아픔을 나누는 게 맞는 일이잖아요.”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공연한 말을 꺼내서 이혁원의 아픈 상처를 건드린 것이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정확히 무슨 사고인지는 모르지만, 내 잘못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그게 말처럼 쉽게 극복될 일은 아닐 것 같다.”
“선생님, 아버지란 사람이 의사였어요. 수술하고 나서 환자가 죽었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가족의 마음까지 죽인 거죠. 아버지란 사람이 자식의 마음을 죽였단 말입니다.”
이혁원의 눈가가 붉어졌다.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문 모습이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 같았다.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혁원이 받은 심적 충격이 얼마나 큰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아세요? 어머니도 불쌍해요. 그런 사람을 십 년이나 기다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다시 함께 살자고 하시네요. 선생님, 정말 우습죠. 남들은 쉽게 이혼도 잘하던데,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잘 모른다만, 혹시 너 때문이 아닐까? 흔히들 자식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고 하잖아.”
“선생님, 제가 나이가 몇인데 저 때문일 리가 없잖아요. 정말 저 때문이라면 당장 인연을 끊으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그게 맞는 거죠?”
“솔직히 난 잘 모르겠다. 어머님과 니가 마음이 제일 편한 쪽으로 가는 게 맞겠지. 그러면 지금도 넌 아버지 얼굴을 안 보겠네.”
무심코 한 말이었다.
“안 보죠. 절대 안 봅니다. 근데 매일 찾아와요. 이제 와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다고 십 년이란 세월이 사라집니까?”
10년? 이제 와 매일 찾아온다?
김지훈이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