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구미 치프(Chief) 오색 (2)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괜히 말했나? 내 말뜻을 알았으면 괜찮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정말 가네. 치사한 놈. 어이구! 배고파라.’
수술 방에 들어간 김지훈이 천광호를 보며 눈만 껌벅거렸다. 아직 두 번째 탈장 수술을 시작하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니 병동에서 환자를 내린다는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광호야, 무슨 문제 있었어?”
천광호가 주변을 쓰윽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홍재순 선생님 손이 너무 느려요. 과장님도 얼굴이 벌게지신 게 아무래도 화가 나신 것 같아요.”
“너 졸았지? 아무리 손이 느려도 4시간 동안 담낭 제거술하고 탈장 하나 간신히 하는 게 말이 돼? 무슨 문제가 있었겠지, 인마.”
“솔직히 졸긴 했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타이 하나 하는데도 엄청 오래 걸린다니까요.”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3년차라고 하지만 치프다. 더구나 이제 6개월만 지나면 4년차다. 허구한 날 했을 타이 때문에 시간이 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문득 홍재순의 원래 근무지는 구미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혹시 이런 이유 때문에?
‘에이! 말도 안 되지. 손이 느리다고 일부러 구미에 보낼 리는 없잖아? 그런데 정말 그렇게 느린 거야?’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을 테지만 사소한 일도 알고, 모르고는 큰 차이가 나는 법이었다.
천광호와 함께 멍하니 있던 김지훈이 귀를 쫑긋거렸다. 응급실에서 자신을 찾는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거의 매일 있다시피 한 아뻬였다.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에 왔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딱 2시가 넘자마자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송동화 과장에게 노티하면서 천광호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참이었다.
그 시간, 숙소에 있던 이혁원이 구석진 창가에 서서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한 사람이 병원 앞에 머물다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장소에서는 볼 수 없었다. 오직 그 자리에서만 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오지 마세요. 내일은 절대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런다고 내 마음이 바뀌지는 않아요. 남들에게 당당히 얼굴도 보이지 못할 거면서 왜 매일 옵니까? 내가 부끄러운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부끄러운 겁니까?’
구미를 떠나는 이준영 과장의 눈가가 벌게진 것 같았다.
첫날을 빼고는 이준영 과장은 단 한 번도 이혁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며칠 지나지 않아 전공의와 실습생들 몇몇이 자신을 알아보는 눈치까지 보였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혁원이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을 피하려 하는 아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병원 안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이혁원의 숙소가 보이는 곳에서 용서를 빌었다.
창문을 비추는 빛에 가려 아무도 볼 수 없었지만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버지가 준 충격과 분노와 증오를 떨치고, 스스로 꿋꿋하게 앞날을 헤쳐 나가기만을 바랐다.
오늘도 근무가 끝나자마자 구미로 달려왔다. 날이 무척 흐려 기분까지 축 가라앉았다. 그런데 흐린 날씨 탓인지 창가에 선 이혁원이 보였다. 분명 자신을 보고 있었다. 아들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혁원아, 미안하다. 고맙다.’
이준영 과장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송동화 과장에게 노티를 하던 김지훈이 잘근잘근 입술을 씹었다. 대개의 일반 외과 수술이 그렇지만 성인 탈장 수술에서는 특히 타이가 중요했다.
나일론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실로 약해진 근육들을 단단히 잡아 주어야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타이가 약하면 근육이 다시 벌어지게 돼 재발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3년차인 홍재순이 이런 원칙을 모를 리는 없었다. 문제는 천광호의 말처럼 심각하게 느리다는 것이었다. 보다 못한 송동화 과장이 한 소리를 했다.
“홍재순 선생님, 타이 들어갈 때는 빨리하고 근육을 조일 때만 신중하게 하면 됩니다. 쓸데없는 곳에서 천천히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바로 전 수술을 할 때도 분명히 말했잖아요.”
이미 들었던 말인 모양이었다. 분명 힐난이 섞인 말이었지만 홍재순은 꿋꿋했다.
“예, 선생님. 저도 잘 알죠. 그런데 힘주다가 끊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그거보다는 조금 천천히 하는 게 낫잖아요.”
“바이탈 흔들리는 환자가 와도 이렇게 할 겁니까?”
“그땐 조금 더 빨리해야죠.”
여전히 꿋꿋했다. 자신의 말대로 바이탈과는 상관이 없는 환자라 그런지 마지막 타이까지 조금도 빨라지지 않았다. 송동화 과장이 눈가를 심하게 찌푸렸다.
“아뻬도 하나 더 있는데 빨리빨리 좀 합시다. 외래에서 환자 밀렸다는 연락 온 거 못 들었어요?”
“예? 과장님, 응급 수술은 지훈이가 들어가는 거 아닙니까? 솔직히 치프가 아뻬 수술에서 퍼스트를 설 군번은 아니잖아요. 지훈이하고 하시죠.”
주간에 뜨는 응급 수술은 치프가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설혹 아니라고 해도 치프가 먼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분위기가 싸해졌다. 홍재순을 뺀 전원이 송동화 과장의 눈치만 보았다.
‘이상한 정갑수라고 하더니, 듣던 것보다 더하네. 아무리 학교 선배라고 해도 아직은 전공읜데, 과장님에게 저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잠시 홍재순을 노려보던 송동화 과장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갑자기 장갑을 확 벗었다.
“그럼 선생님은 마무리하고, 지훈이 너는 아뻬 준비되는 대로 외래에 연락해.”
짜증이 팍팍 실린 목소리였다. 폭발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홍재순은 전혀 개의치 않는지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탈장 부위가 상당히 커 절개 부위만 열 바늘 정도 봉합해야 했다.
수술 스케줄을 낸 김지훈이 응급실에 가 오더를 내고 올라온 후에야 막 봉합을 끝내고 있었다. 마취과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서두르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후아! 정말 느린 거야. 아니면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야. 그나저나 이거 비상이네. 과장님께도 저렇게 할 정도면 우리한테는 어떻게 할지 말할 것도 없네.’
결국 오후 4시가 훌쩍 넘어서야 정규 수술이 모두 끝났다.
아뻬 환자가 수술 방에 올라오자마자 송동화 과장에게 노티를 한 김지훈이 천광호와 함께 재빨리 수술 준비를 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이혁원을 부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홍재순이 수술 방을 나가며 준비를 하고 있는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었다. 눈빛이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이글거렸다. 전공의가 된 이후 함께 근무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수술실에 들어온 송동화 과장이 나직한 콧소리를 냈다. 메스만 잡으면 시작할 수 있게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느려 터진 홍재순 때문에 갑갑했던 기분이 조금은 사라진 모양이었다. 목소리가 다소 밝아졌다.
“이거 좋네. 앞으로는 이렇게 수술 준비 해 놓고 연락해.”
“예, 선생님.”
수술이 시작됐다.
불과 네 번째 수술이었지만 김지훈이 송동화 과장과 척척 호흡을 맞췄다. 이준영 과장에게 받은 트레이닝대로 오직 수술에만 집중한 덕이었다.
가뿐하게 수술을 끝낸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정도 손을 맞추려면 보통 이삼 주는 걸려야 가능한데 벌써 맞춰? 이 자식이 정말 날 깜짝 놀라게 하네.’
조금은 놀랍고도 희한한 일이었다.
내심 기대를 품던 송동화 과장이 투덜거리며 나갔다. 홍재순의 느리기만 한 손이 떠오른 것이다.
“수술은 이렇게 해야지 말이야. 에이! 손이 그렇게 느리면 안 되는데 정말 문제네.”
한편으로는 홍재순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느린 것이 잘못이라고는 절대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 외과 의사에게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은 확실했다.
피곤에 절은 눈으로 오더를 내던 천광호가 시계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회진 시간까지 불과 30분밖에 안 남았다.
“선생님, 죄송한데 드레싱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환자는 내가 볼 테니까 빨리 올라가.”
천광호가 후다닥 병동으로 올라갔다.
오늘따라 환자가 마취에서 잘 깨지 못했다. 6시가 다 돼서야 병동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성형외과 장성기 과장과 흉부외과 변상훈 과장을 만나 인사까지 하는 바람에 결국 6시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병동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회진이 거의 다 끝났을 무렵이었다. 분위기가 또 이상했다.
송동화 과장이 인사를 받는 등 마는 둥 인상만 쓰며 외래로 내려갔다. 홍재순이 의국으로 들어가며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지훈을 불렀다.
“김지훈, 의국으로 들어와.”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회진 돌 때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유는 묻지도 않고 애먼 화살부터 날렸다.
“김지훈, 너 이따위로 일할래? 6시부터 회진인데 이제 올라와? 1년차 새끼는 드레싱도 다 못해서 쩔쩔매기나 하고. 그러면 과장님이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이나 해야 할 거 아냐? 너 똑바로 일하고, 1년차 제대로 관리해.”
꽤 화가 났는지 말까지 빨라졌다.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선생님, 죄송한데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회진을 안 돌았으니까 알 수가 없지. 다음부터 시간 안 지키면 죽는다. 오더 낼 거니까 빨리 차트나 모아.”
김지훈이 잠시 머뭇거리자 소리를 버럭 질렀다.
“빨리 차트 모으라니까 뭐 해?”
천광호와 인턴이 부리나케 차트를 모아 의국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30명이 넘는 환자 중에 달랑 오늘 수술한 환자 3명의 오더만 냈다. 그러고는 나머지 차트를 김지훈 앞으로 척 밀었다.
“김지훈, 나머지 환자 오더 내. 그리고 다음부터 절대 회진 늦지 마라. 내가 믿고 맡기면 너도 그만큼 해야 되는 거 아냐? 천광호, 넌 드레싱 한 번만 더 빵꾸 내면 죽을 줄 알아.”
“예, 선생님.”
“알아서들 저녁 먹고 당직 제대로 서. 그리고 내일 아침에 환자 리스트에 핵심적인 오더만 적어서 나한테 줘.”
홍재순이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나갔다.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문만 바라보던 김지훈이 천광호를 보았다. 홍재순이 이유 없이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 1년차들이 잘못한 일이 있기 마련이었다.
“무슨 일이야? 도대체 너 뭘 잘못한 거야?”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뻬 환자 중에 수술 창 감염된 환자 한 명 있잖아요.”
“그 환자가 왜?”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김지훈의 목소리가 좋을 리가 없었다. 천광호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송동화 과장님이 회진 돌면서 갑자기 홍재순 선생님에게 상처 괜찮으냐고 물으시더라구요. 그런데 보신 적도 없으면서 괜찮다고 하신 거예요.”
“뭐? 아직도 고름 나오잖아.”
“그러니까요. 거기다 드레싱을 아직 못했는데 과장님이 갑자기 거즈를 들추시는 거예요. 고름이 그대로 보였죠, 뭐. 그다음에도 다른 환자에 대해서 몇 가지 물으셨는데, 홍재순 선생님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잖아요. 결국 복도에서 큰 소리 한 번 나오고 분위가 살벌해지더라구요.”
김지훈이 잔뜩 눈가를 찌푸렸다. 상황을 볼 때 천광호가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다. 회진에 늦지 말라는 말이 핵심이었다. 송동화 과장도 치프 대신 2년차가 먼저 대답을 하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정갑수하고 비슷하네.’
하도 답답해서 천광호에게 묻고 말았다.
“광호야, 한 가지만 묻자. 그러니까 내가 오전, 오후 회진 책임지고, 응급 수술은 주간이든 야간이든 모두 들어가라고 말하는 거지? 혹시 빠진 거 있냐?”
천광호가 슬며시 차트를 가리켰다.
“맞네. 오더도 나보고 내라는 소리네. 그러면 홍재순 선생님은 정규 수술만 들어가고, 오더도 그 환자들만 낸다 이거지?”
“그런 것 같은데요.”
한숨만 나왔다.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각 년차들마다 해야 할 일이 있고, 이를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김지훈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광호야, 아직 드레싱 다 못했지?”
“예, 선생님.”
“그럼 지금 빨리하고 와. 오더는 그다음에 내자.”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오만상을 다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