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주말? 이 정도는 가뿐하다 (2)
송동화 과장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빠르게 배를 열었다. 김지훈이 제때에 척척 손을 맞췄다. 여기까지는 1년차라고 해도 잘 따라올 수 있는 과정이었다. 당연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아뻬를 찾았다. 통상 맹장의 정면에 있어야 할 아뻬가 뒤에 달린 채 배 속 깊숙이 숨어 있었다. 흔치 않은 경우였다. 위치가 좋지 않아 기구를 조작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경우 퍼스트의 기본기가 상당히 탄탄하지 않으면 한참을 헤매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자연스럽게 맹장과 주변 장기들을 밀어내 시야를 확보했다.
송동화 과장이 슬쩍 김지훈을 보았다.
‘자식! 기본은 잘 다졌네.’
아뻬를 제거할 차례였다. 송동화 과장이 이리저리 몸까지 돌려 가며 간신히 동맥을 잡았다. 표정이 좋지 못했다. 절개 창은 작고 동맥은 아뻬보다 더 깊숙이 숨어 있어, 동맥을 잡는 것보다 타이를 하기가 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3년차라고 해도 방심하면 동맥을 타이하던 도중 실을 끊어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배를 크게 여는 수밖에 없었다. 출혈도 문제였지만 끊어진 동맥은 더 깊은 곳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타이를 줘도 될지 고민스러운 상황에 송동화 과장이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김지훈은 퍼스트였고, 앞으로도 응급 수술에서는 퍼스트를 서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다. 집도의가 퍼스트를 믿지 못하면 그보다 수술을 어렵게 하는 일은 없었다.
‘김지훈,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타이! 침착하게 해.”
송동화 과장이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이 배 속으로 최대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타이가 제대로 되는지는 오직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에 달렸다. 2년차들에게는 무리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눈가를 좁히던 김지훈이 곧바로 손을 뺐다.
“타이한 거야?”
“예, 했습니다.”
송동화 과장이 살짝 놀라며 타이를 확인했다. 정확하고도 깔끔했다.
‘이 자식 봐라? 정말 제법이네.’
동맥을 한 번 더 묶고 아뻬를 절제한 후 입구를 묶었다.
여전히 타이하기가 까다로운 상태였지만 김지훈은 별다른 어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주변 장기를 확인하고 배를 닫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수처를 하던 송동화 과장이 입술을 모으며 김지훈을 보았다. 마지막에는 의도적으로 수술을 빠르게 진행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상당히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퍼스트를 섰다.
2년차의 손이라고는 다소 믿기 어려웠다. 실제로 지난 6개월 동안 경험했던 2년차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도 기본기가 상당히 탄탄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김지훈, 아뻬 많이 해 봤어?”
“예. 받을 만큼 받았습니다.”
그래야 2년차들이 받는 정도였을 것이다. 약간은 어색해 보이는 김지훈의 웃음이 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어쨌든 김지훈이 기대 이상이라는 사실에 안심하면서도 송동화 과장은 여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이번 수술만 보고 2년차가 갖는 기본적인 한계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큰 수술에서는 문제가 될 텐데 걱정이야.’
구미 병원의 특성상 치프가 오프일 때는 2년차가 응급 수술을 들어와야 했다. 큰 수술이 걸릴 때마다 항상 불안하기만 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다른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김지훈이 잘해 주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홍재순 선생이 3년차 중에 제일 떨어진다고 해도 2년차보다 못할 리는 없는데, 제대로 일을 하려나?’
일반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판단이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아랫년차는 바로 위의 연차 중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전공의조차 못 따라가는 법이었다. 김지훈 역시 홍재순보다 나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그런 이유로 홍재순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성격이야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실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까지 듣고 있었다.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환자들을 맡기는 것도 문제였지만 송동화 과장의 개인적인 일과도 연관이 있었다. 어떻게든 서울 병원으로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차적으로 실적이 좋아야 한다.
문제는 의대 임상 교수에게 가장 중요한 실적은 바로 돈이라는 점이었다. 병원에 돈을 벌어 주기 위해서는 수술 건수도 많아야 하지만, 암 수술처럼 큰 수술을 해야 한다.
홍재순이 제대로 역할을 해 주지 못하면 그런 수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2년차인 김지훈을 대신 퍼스트로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 송동화 과장이 한숨만 쉬며 수술실을 나갔다.
‘그나저나 신현수처럼 배경이나 빵빵하면 모르지만, 김지훈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 거지? 그냥 서울에 있을 때 아껴 주면 되는 문제잖아. 전공의를 잘 통제하는 것도 교수의 능력이라는 말은 왜 한 걸까? 분명 김지훈이 과장님을 따르게 만들라는 소린데.’
속마음도 모르고 오늘도 힘차게 인사를 한 김지훈이 천광호와 함께 회복실로 환자를 옮기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천광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안 힘드세요?”
“뭐가 힘들어?”
“새벽 3시예요, 선생님. 거기다 오늘 서울에서 내려오셨고, 원래는 홍재순 선생님이 들어와야 하잖아요. 나 같으면 짜증 날 것 같은데요.”
“짜증이 왜 나니. 수술하려고 일반 외과 했고, 오자마자 퍼스트 섰잖아. 이건 즐거운 일이야. 홍재순 선생님 오시면 당직 때 응급 수술밖에 더 들어가? 이런 기회는 많을수록 좋은 거다. 혁원아, 수술 잘 봤어?”
얼떨결에 수술을 들어온 이혁원이었다. 수술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써드를 섰을 뿐이었다. 당연히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있었다.
“예, 선생님. 잘 봤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그래?”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써드에서는 수술을 제대로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눈을 반짝였다.
“너 서울 응급실에서 근무하시는 이준영 선생님 알지?”
순간 이혁원이 움찔했다. 김지훈이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이 자식 봐라. 분명히 놀랬지? 그럼 뭔가 확실히 관계가 있다는 말인데 뭐지? 아! 되게 궁금하네.’
“알아, 몰라? 그때 일식집에서 봤잖아.”
“예, 압니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이준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써드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하셨어. 정신 놓으면 퍼스트를 서도 배우는 게 없는 법이야. 이왕 배우려고 주말까지 반납했으면 눈 크게 뜨고 배워. 그리고 너 삼겹살 몇 근이나 구워 먹었어?”
이혁원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천광호가 열심히 수처하는 시늉을 했다.
“아! 세 근 정도 사서 연습했습니다.”
“실제로는 해 봤어?”
“선생님, 저 실습 중입니다. 어떻게 수처를 해 보겠습니까.”
김지훈이 콧등을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그렇긴 해. 그래도 혹시 아냐? 일단 한 근 더 사라.”
천광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혁원이한테 수처 주시려고요?”
“기회 되면 한 바늘 정도 못 주겠어? 물론 삼겹살 네 근을 구워 먹고도 수처를 못하면 손모가지를 잘라야 할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네 근 값은 하겠지? 아이구! 늦었다. 빨리 가서 자자. 홍재순 선생님은 아무래도 아침에나 오실 모양이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이준영 과장을 어떻게 아는지 대놓고 물어볼 일이 아니었다. 별 관계가 아니었다면 일식집에서 이미 말했을 것이다. 나름 머리를 쓴 김지훈이 손을 흔들며 숙소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수술 방을 나온 이혁원이 눈가를 비볐다. 비록 경험은 거의 없지만 수술을 볼 때마다 은근히 다가오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후우! 어떻게 해야 하지? 얼굴을 보면서 일반 외과를 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왜 난 이러고 있을까? 다른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게 좋을까?’
이혁원이 일반 외과를 두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시꺼먼 구름이 달빛을 반쯤 가리며 흘러갔다.
***
눈부신 아침 햇살에 눈을 뜬 김지훈이 시계를 찾았다.
8시 반이었다.
천광호의 침대가 텅 비어 있었다. 일요일이라고 해도 지금쯤은 드레싱을 하고 있을 것이다.
서둘러 일어난 김지훈이 3년차 숙소를 찾았다.
‘야! 아직도 안 왔네. 도대체 언제 올 생각이야. 정말 사고라도 난 거야. 뭐야.’
사고가 났으면 연락이라도 왔을 것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한 김지훈이 뭐가 그렇게 급한지 부리나케 병동으로 달려갔다. 막 드레싱을 마치고 들어오는 천광호가 보였다.
“광호야, 밥 먹자. 혁원이도 불러.”
그렇다.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김지훈과 천광호가 순식간에 식판을 깨끗이 비웠다. 몇 숟갈 뜨지도 못한 이혁원이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지훈은 매몰차게 일어났다.
“혁원아, 너 이것부터 연습해야겠다. 인턴 딱 시작하는 순간 여유 있게 밥 먹을 시간이 없어요. 특히 외과를 돌잖아.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많이 먹어야 된다. 지금처럼 먹으면 굶어 죽어, 인마. 광호야, 회진 돌자.”
멍청히 반도 더 남은 밥을 보던 이혁원이 급히 김지훈의 뒤를 따랐다.
차트를 보며 오더를 확인한 김지훈이 전공의 회진을 돌았다. 천광호가 일일이 드레싱 결과를 보고했다.
30명 정도의 환자는 김지훈에게 부담이 될 수 없었다. 천천히 할 말 다 하며 회진을 돌아도 한 시간이면 족했다.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니 딱 10시였다.
그때 드디어 홍재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아! 왜 이제 오셨어요.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좀 피곤해서 쉬다 왔다.”
어이쿠! 전공의가 피곤하다고 하루나 늦게 오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도 치프가 말이다.
더구나 말이 다소 느릿느릿한 탓인지, 그나마 서둘렀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 환자 파악부터 하셔야죠? 광호야, 차트 다시 모아. 인턴 선생 부르고.”
“됐어. 환자 파악은 천천히 하자. 지금은 일단 오프 문제나 결정하고 잠부터 자야겠다.”
지금까지 쉬다 온 사람이 잠을 또 잔단다. 의아한 일이었다. 게다가 생각보다 말이 더 느렸다. 홍재순이 불과 몇 마디를 끝냈을 때는 이미 천광호가 차트를 모두 모아 온 후였다.
“됐다니까 너는 차트를 왜 모아? 니들 오프는 주중에는 수요일, 목요일에 하루씩만 가고, 주말은 3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가자. 그리고 다음 주 주말은 1년차들 교대니까, 그때도 오프 없는 건 알지?”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원래 구미는 주중에 3년차와 2년차가 각각 이틀씩 갔다. 슬쩍 천광호에게 손가락 2개를 펴며 고갯짓을 하자 천광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저도 원래 이틀 아닌가요?”
“응? 1년차도 오프 보내야지. 안 보낼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이삼 년차는 주중 오프가 이틀씩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지훈아, 가라는 대로 가.”
“선생님, 그래도 주중에 하루라는 것은…….”
말은 느린 홍재순이 남의 말은 제때에 정확히 잘랐다.
“김지훈, 오프 결정은 치프가 하는 거 맞지? 내가 치프야. 앞으로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해. 그래야 니들이 편해진다.”
자신이 치프라는 말에 목구멍이 턱 막혔다. 맞는 말이긴 했다. 각 병원 전공의들의 근무 스케줄은 치프들이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랫년차들의 오프를 하루아침에 마음대로 막 바꿀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순간 울컥한 김지훈이 입을 열려다 말았다. 홍재순의 표정과 눈빛이 영 좋지 않았다.
‘성격 이상한 정갑수라더니, 여기서 조금만 더 개기면 어째 나만이 아니라 1년차까지 힘들어질 것 같네.’
불과 5분도 안 돼 가슴이 답답해진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뭐 불만 있어? 그러면 1년차 오프 없애고 너 줄까?”
“아닙니다, 선생님.”
“그래. 그래야지. 나는 내일 아침부터 정식으로 근무 시작할 테니까 오늘 수술 있으면 지훈이 니가 들어가.”
수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김지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선생님, 근무를 교대하는 주에는 모두 당직 아닙니까? 그리고 송동화 선생님께 뭐라고 합니까. 오늘 새벽에 아뻬 하나 있었는데 선생님을 찾으셨거든요.”
“넌 그런 거에 신경 안 써도 돼. 송동화 과장님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친해서 서로 잘 알아. 수술 떴을 때 혹시 물어보면 내가 너 들어가라고 했다고 하면 돼.”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을 못하자 홍재순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툭툭 쳤다. 아주 여유로웠다.
“신경 쓰지 말라니까. 그럼 일들 하고, 난 내일 아침에 올 테니까 찾지 마라.”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나던 김지훈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참! 선생님, 내일 수술 스케줄은 확인 안 하세요?”
“수술? 뭐가 있는데?”
“담낭 제거할 환자 한 명하고 탈장이 두 명입니다.”
“알았어. 수술 준비나 잘해 놔.”
느린 말과는 달리 병동에서 사라지는 속도는 재빠르기만 했다. 회진은커녕 수술할 환자도 보지 않았다.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