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309화 (309/1,329)

제4화 대가들 (1)

같은 지적을 연이어 받았다. 이번 수술 역시 아무 문제 없이 해냈다. 이준영 과장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혼날 각오를 하고 물었다.

“선생님,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뻬 때는 물론 지금도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현수, 너는?”

“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준영 과장이 혀를 찼다.

“쯧! 김지훈 넌 집도의였고, 신현수 넌 퍼스트였어.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몰라?”

솔직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혁민 교수에게 들었던 수술을 하기 전에 가져야 할 생각이나 태도에 관한 말은 지금도 가슴 깊이 단단히 새기고 있었다.

“선생님, 그러면 우리가 2년차라는 사실하고 관계가 있습니까?”

“김지훈, 1년차가 집도를 하면 집도의가 아니야? 내가 써드를 서면 써드가 아니야?”

이준영 과장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김지훈이 갑자기 입술을 꽉 깨물며 눈가에 힘을 주었다.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수술 방법이나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었다면 이미 수술실에서 큰 소리가 나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당장 자리를 바꿨을 것이다. 실수를 연발하는 집도의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죽일 수 있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스스로 깨달아야 할 가르침이었다. 평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 주려고 할 때는 그래 왔었다.

무뚝뚝하게 돌아서는 이준영 과장을 보며 김지훈이 눈빛만 굳혔다.

“지훈아, 뭐 짚이는 거라도 있어?”

“집도의와 퍼스트의 자세를 말씀하시는 건 분명해. 난 분명 지금까지 배운 대로 환자 상태에 따른 정확한 수술 방법을 생각했고, 계획대로 했어. 이번 수술에서만큼은 자신해. 그리고 너하고 수술하는 동안 처음을 제외하면 정말 손이 잘 맞은 것 같아. 결국 또 다른 뭔가 있다는 말이야.”

신현수의 얼굴이 살짝 발개졌다. 같은 년차에게 퍼스트를 잘 섰다는 말을 들어서가 아니었다. 처음에 잠시나마 당황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이 두 번째라서 그랬어. 미안하다. 하여튼 이준영 선생님께 말은 안 들었으니까 나한테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잖아.”

신현수가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런 뜻도 아니었다. 아차 싶었다.

“현수야, 그런 말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내가 미안하다. 니 말대로 분명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둘 모두 잘못한 일이 있는 거야. 핵심은 집도의와 퍼스트란 말에 있어. 뭘까?”

“도진이는 이번에도 지적을 안 받았으니까 그게 맞겠지. 사실 혹시라도 잘못하는 게 있을지 몰라서 이준영 선생님 표정을 수시로 살폈는데, 별 변화가 없으셨거든.”

고민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너도 그랬냐? 나도 불안해서 수시로 봤다. 자신감을 갖고 해야 되는데 막상 쉽지가 않더라. 이준영 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시는데도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모든 전공의들의 마음이었다. 전문의가 된다고 해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이준영 과장이나 이혁민 교수처럼 경험이 풍부하고, 누구보다 노련해도 불안감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준영 과장이 던진 말 때문에 김지훈과 신현수가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중간에 끼어든 손일석까지 2년차들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가만히 보면 신기동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현수야, 이혁민 선생님도 똑같잖아? 맨 처음에는 이론이 부족해서 태우고, 그다음에는 손이 못 따라온다고 태우고, 조금 따라간다 싶으면 또 다른 문제로 태우고. 그럴 때마다 정말 많은 걸 배우지만 솔직히 화가 난다. 타는 게 우리의 운명은 아니잖아.”

“다들 그렇게 배우는 거 아냐?”

“다들? 그렇긴 하지. 하지만 강도가 다르잖아. 다른 선후배들은 망치로 맞고 끝날 일을 우리는 해머로 맞아요. 그것도 풀 스윙으로 말이야.”

김지훈이 웃었다.

“그래서 싫어? 그럼 다음부터 혈관 파트 안 하면 되잖아.”

“지훈아, 내가 또 마음이 약하잖니. 다 동기에 선배에 후밴데, 내가 총대를 메고 대신 맞아 줘야지. 니들도 다음에 다시 서울에 올라오면 이준영 선생님하고 이혁민 선생님 파트 맡아서 둘이 사이좋게 타라. 혼자 타기에는 너무 벅찰 거야.”

“그게 우리 마음대로 돼?”

손일석이 씨익 웃으며 신현수에게 고개를 들이밀었다.

“현수야, 까놓고 말할게. 이럴 때 니가 힘 좀 한번 써라. 후반기는 다 지방 근무니까 상관없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일반 외과의 꽃이라는 3년차 전반기 아니냐. 할 일 더럽게 없을 텐데 우리가 전담해서 타자.”

신현수가 정색을 했다.

“내가 무슨 힘을 써?”

“이럴 때 보면 너도 참 앞뒤가 꽉 막혔어. 누가 대놓고 부탁을 하래? 그냥 슬쩍 윗분들한테 3년차들 놀면 뭐하냐는 말만 흘려도 뭔가 일이 될 것 같지 않아?”

“그게 쉬워 보이면 니가 해. 왜 나한테 말해?”

“에이! 자식! 쉽다는 소리는 아니야. 너나 나나 다 입장은 같지. 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 말하기 편한 놈이 있잖아. 그게 누구겠니? 지훈이나 나는 아니다.”

신현수의 눈길이 사나워지자 손일석이 급히 딴청을 피웠다.

“아!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할까? 지훈아, 간단히 생각하자. 집도의는 수술하는 사람이고, 퍼스트는 메인으로 보조하는 사람이잖아. 그럼 집도의는 수술에 집중한 후 책임을 지면 될 테고, 퍼스트는 보조 잘하면서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실수나 이런 거 잡아내면 되는 거 아냐? 사실 이것도 말이 쉽지, 우리가 뭐 눈치 안 보고 수술을 할 수 있겠어?”

눈치를 본다?

김지훈이 눈을 치켜뜨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본다. 그래, 맞아. 우리도 눈치를 수시로 봤지. 내가 집도의고 이준영 선생님은 써드였는데, 도리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써드에게 확인을 한 꼴이네. 원칙적으로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난 수술에 집중하고, 퍼스트는 집도의에게 집중해야 하는 게 맞는데.’

만일 이준영 과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단 하나의 실수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수술이다. 따라서 더욱 집중력을 갖고 수술에 임했을 것이다. 그 말은 곧 집도를 할 때는 옆에 누가 있든 없든, 환자와 수술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으면 이준영 선생님이 당연히 지적을 하고 바로잡아 주셨겠지. 거기다 현수도 있었고.’

무엇인가 잡힐 것 같으면서도 가물가물하기만 했다. 신현수도 마찬가지인지 인상을 쓰며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지훈아,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 것 같아. 수술 중에 집도의와 수술에 집중하지 않고 이준영 선생님의 반응에 더 신경을 쓴 것 같아. 일석이 말대로라면 난 그게 문제였던 것 같은데?”

“그러게.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들긴 했어. 원래는 이준영 선생님이 계셨다고 해도 우린 서로를 믿고 수술을 했어야 되잖아? 맞는 소리긴 한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전공의가 교수에게 신경도 안 쓰고 어떻게 수술을 해? 그러다 일 나면 집도를 안 했다고 해도 결국 교수님들이 책임을 져야 하잖아.”

신현수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손일석이 도리어 눈만 껌벅거렸다. 중간에 끼어든 탓에 이준영 과장이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는 것이다.

“야야! 둘만 통하는 말만 하지 말고 알아듣게 얘기 좀 해 봐. 뭐야?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거야? 전공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긴 해도, 그건 누구나 아는 기본자세잖아.”

“혹시 오늘 같은 경우가 또 생기면 확인해 볼게. 그때까지만 기다려 봐.”

“이 자식들 봐라. 뭐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던 두 놈을 기껏 연결해 놨더니, 지금 날 따돌리는 거야? 나 참! 웃기지도 않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거지. 십 년 내에 해결해 주마. 대장부의 복수는 그때부터야. 각오해.”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이게 복수할 일이냐? 그런데 너 혹시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아직도 무협지 읽는 거 아냐?”

“무협지가 아니라 무협 소설이야, 인마. 만날 말을 해도 어떻게 아직도 무협지냐. 용어 똑바로 사용해라. 의학을 한다는 놈이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지 말이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래서 무협 소설 읽고 있으세요?”

“휴가 때 좀 읽었다. 재밌어서 눈물이 다 나더라.”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손일석이었다. 김지훈이 히죽 웃으며 일어섰다. 신현수는 아예 무협 소설이 뭔지도 몰랐다.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고 사라졌다. 만에 하나 관심이 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반응을 보일 리가 없긴 했다.

“야! 이 자식들아! 끝까지 얘기 안 할래?”

버럭 소리를 지르던 손일석이 코웃음을 쳤다. 김지훈처럼 행동하면 마음껏 패 줄 수 있는 서도진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만 던지면 원하는 답이 술술 나올 것이다.

***

하루 종일 이준영 과장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신현수가 회식을 가야 할 시간이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회식 자체를 잊을 뻔했다.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지만 유석재의 말대로 처신 문제였다.

“아이고! 이걸 꼭 가야 하나. 안 가도 되면 정말 가고 싶지 않다. 현수야, 그래도 안 가면 안 되겠지?”

“신경 안 쓴다며?”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신경이 왜 안 쓰여. 에휴! 그냥 마음 편하게 가르치고 배우면 안 되나? 하여튼 난 근무 때문에 밥만 먹고 오면 되니까 다행이다.”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솔직히 김지훈의 반응도 의아했지만, 금경태 과장이 한 말이 있었다.

“오늘은 일석이가 응급실 당직을 설 거야. 과장님 오더다.”

“뭐? 아니, 이 중요한 시국에 근무를 바꾸라는 거야? 이준영 선생님께 최소한 대답은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못해. 주말이면 구미로 가야 하니까 시간 없어서도 안 돼. 이러다 정말 중요한 거 놓친다. 회식 끝나는 대로 난 근무할 거야.”

김지훈이 손사래까지 치며 방방 뛰었다.

금경태 과장의 말속에 담긴 뜻을 정말 모르는 걸까?

이미 뜻을 어기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신현수도 그 정도까지는 갈 수 없었다. 어쨌든 적당한 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고, 그걸 지켜야 몸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어려움을 자초할 이유는 없었다.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 과장님이 이준영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 니가 수술 들어간 거 알면 절대 잊을 분이 아니다. 그 점을 생각해.”

“그렇구나. 그럼 나중에 배워야 할 걸 못 배울 수도 있겠네. 야! 요거 곤란하네.”

눈가를 좁히며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좋았어. 써드를 서면 되네. 아침 수술 보고에는 집도의하고 퍼스트만 올라가니까 내 이름은 안 올라갈 거 아냐. 누가 일부러 말하지 않는 한 알 수가 있겠어? 요즘 내 잔머리가 왜 이렇게 잘 돌아가는지 몰라.”

좋은 방법을 생각해 냈다는 것처럼 희희덕거리며 신현수를 따라 나오던 김지훈이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현수야, 너 그런데 요새 말이 되게 길어졌다. 가만히 보면 내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설마 내가 과장님한테 다시 찍힐까 봐 걱정하는 거야?”

신현수가 차가운 표정으로 힐끗 김지훈을 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 앞서갔다. 쩝쩝 입맛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신현수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하게 혀를 찼다.

‘내가 정말 김지훈을 걱정하고 있나? 맞아. 걱정을 해야지. 라이벌이 없어지는 건 내게 좋은 일이 아니거든. 최소한 전문의가 될 때까지는 열심히 달려. 물론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나겠지만, 그래야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혼자 구시렁거리며 회식 자리까지 온 김지훈이 구석에 앉았다. 몇 잔의 술이 돌았다. 웬만해서는 술을 마다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시는 척하며 몰래 물 컵에 술을 쏟아 버리고 있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신현수가 눈가를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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