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마지막 한 주 (3)
빠르게 수술 과정을 상기한 김지훈이 신현수와 눈을 마주치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메스를 들었다.
‘현수야, 잘해 보자.’
‘자존심이 상하지만 배울 수 있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담낭까지 제거해 본 김지훈과 신현수였다.
이미 천안에서 손을 맞춰 본 적도 있었다. 아뻬는 이제 눈에 환할 정도로 많이 보았고, 경험도 충분했다.
신현수도 확실히 달라졌다. 김지훈이 집도의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접고 퍼스트의 본분에 충실했다.
‘2년차가 돼서 그런가. 현수야, 너무 편하다. 스승님, 저 제대로 하고 있죠?’
‘퍼스트부터 제대로 서야 수술을 주시겠지?’
무영등 불빛 아래 부지런히 움직인 두 개의 손이 불과 25분 만에 수술을 끝냈다. 흠 잡을 부분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기만 했다. 그동안 이준영 과장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김지훈이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했다. 이준영 과장이 퍼스트도 세컨도 아닌 써드를 섰기 때문이다.
자리 배치상 집도의 자리에서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써드를 볼 수가 없다. 그 탓인지 얼굴을 보며 수술을 할 때와는 달리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결국 수술하는 도중 잠깐씩 이준영 과장의 얼굴을 보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신현수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이 다소 상기돼 있었다.
‘야! 아뻬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송재덕 선생님 때와는 다르네. 스승님이 봐주신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그런가? 도진이도 배워야 하긴 하지만, 왜 써드를 서신 걸까.’
무척 궁금했지만 이준영 과장의 평가를 들을 때였다. 내심 잘했다는 소리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김지훈, 신현수, 수술을 하는 동안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 서도진만 그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 다음 수술에서 보자.”
1년차도 저지르지 않는 잘못을 2년차 두 명이 모두 저질렀다니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표정이 완전히 사라진 이준영 과장의 얼굴을 보니 상당히 큰 잘못임이 틀림없었다.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김지훈의 얼굴이 굳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시는 거지?”
신현수도 눈가를 찌푸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현수야,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 보자. 내가 보기에 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그럼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내가 보기에도 실수는 없었어. 솔직히 아뻬를 하면서 너하고 내가 동시에 잘못할 게 없잖아. 만약 있었다면 너나 나나 둘 중의 한 명은 분명히 알았을 거야.”
자신감의 발로였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배 잘 열었고, 무난하게 아뻬 제거했고, 배 속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다 확인했잖아. 원래 수술을 주시면 수술 중에는 말씀을 안 하시는 분이기는 하지만, 정말 잘못한 게 있었다면 말을 안 하실 수가 없는 일인데.”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쓸데없는 꼬투리를 잡거나 허튼소리를 할 이준영 과장이 아니었다.
하도 답답해 서도진에게도 물었다.
“도진아, 너는 뭐 지적할 만한 거 없어?”
“지적이요? 제가 어떻게 지적을 해요.”
“있으면 눈치 보지 말고 말해 봐.”
서도진이 머리만 긁적였다. 1년차라고 해도 이제 아뻬 정도는 충분히 눈에 보일 시기였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훈과 신현수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큰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답답한 기운만 흘렀다. 김지훈이 오만상을 쓰며 심각하게 말했다.
“그동안 다음 수술에서 보자는 말은 한 번도 하신 적이 없어. 분명 뭔가 중대한 잘못을 한 거야. 확실히 너하고 나하고 동시에 저지른 잘못이 있어. 후우! 도대체 뭘까? 오늘 수술 하나 더 떴으면 좋겠다.”
“아뻬가 떠야지.”
“아! 그렇구나. 아뻬가 떠야 하는구나.”
혹시 천안이나 구미라면 모를까, 서울 병원에서 김지훈과 신현수가 집도의와 퍼스트를 모두 설 수 있는 수술은 아뻬뿐이었다. 확고한 믿음이 있다고 해도 서울 병원 분위기상 그 이상의 수술은 불가능했다.
아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술이 뜨긴 했다. 그런데 얼서(ulcer:궤양) 빤뻬리였다. 좌측 횡경막에 검은색으로 걸려 있는 커다란 프리에어(free air)와 환자의 병력은 위궤양 천공에 의한 복막염을 확신하게 했다.
다소 아쉬운 마음으로 수술실에 올라갔다. 환자를 기다리며 수술 방법을 상기하던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병변의 상태에 따라 세 가지 수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수술이었다. 단순 봉합과 유문 성형, 혹은 위절제술까지 규모와 어려움이 극과 극이기에 더욱 문제였다.
어떤 수술 방법이 적절한지 빠르게 판단해야만 이준영 과장을 정확하게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엉뚱한 판단을 하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불붙은 숯덩이가 될 것이다.
그때 신현수가 마치 김지훈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었다.
“이준영 선생님은 주로 어떤 방법으로 하셔? 이준영 선생님과 한 궤양 수술은 이제 두 번째라 난 잘 모르거든.”
대개 외과 의사들은 한 질환을 두고도 각자 선호하는 수술이 있었다. 약간의 부족함이나 과함으로 인한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익숙함으로 대체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궤양 수술의 경우에는 대부분 단순 봉합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특정하게 선호하시는 수술은 없어. 환자와 병변 상태에 따른 원칙을 정확하게 지키시거든. 그러니까 어떤 수술을 하실지는 예측을 할 수가 없고, 배를 열자마자 무지하게 요걸 돌려야 돼.”
김지훈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치며 대답을 하자, 신현수가 입술을 오므리며 눈가를 좁혔다.
원칙에 따라 수술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술은 자신감이 없으면 하질 못한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익숙하지 않거나 오래간만에 하면 알게 모르게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외과 의사였다. 하기에 가장 익숙하고 자신 있는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었다.
‘지훈이만큼 이준영 선생님과 수술을 많이 해 본 전공의도 없지. 더구나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정확한 말이겠지. 원칙을 정확하게 지킨다. 명심하자. 그게 곧 진정한 실력을 갖출 수 있는 힘 중의 하나일 거야. 그럼 아뻬 때는 나하고 지훈이가 지키지 않은 원칙이 있었다는 말일까?’
‘어떤 수술을 하실까? 궤양 천공의 위치와 크기를 보고, 주변 위 조직에 염증성 반응이 얼마나 진행됐는지부터 확인해야겠지? 아뻬 때는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수술을 했는지도 몰라.’
다음 수술에서 보자는 이준영 과장의 말이 2년차 두 명의 머릿속을 복잡하게만 했다. 환자가 올라와 수술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필사적으로 이유를 찾았다.
이준영 과장이 들어왔다.
“김지훈, 수술해. 신현수, 퍼스트 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더구나 아뻬 때처럼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없이 써드 자리에 섰다. 서울 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취과 전공의가 너무 놀라 헛바람 소리를 낼 정도였다.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과 책임감을 느낀 김지훈이 숨을 몰아쉬며 집도의 자리에 섰다. 신현수 역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뭐 해? 자신 없어?”
“아닙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지훈과 신현수의 눈이 마주쳤다. 아뻬하고는 차원이 다른 수술이었다. 교수들이라면 모르지만, 2년차들에게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대한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해야 할 수술이었다.
‘현수야, 부탁한다.’
‘김지훈, 넌 집도의고 난 퍼스트지만, 이준영 선생님께 여기까지는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겠지. 부럽고 화도 나지만, 나도 곧 이준영 선생님의 수술에서 그 자리에 서게 될 거야. 잘해 보자.’
강한 긴장감 속에 수술이 시작됐다.
개복을 하고 병변과 주변 조직 상태를 확인한 김지훈이 잠시 고민을 했다.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 부위인 유문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이런 경우 단순 봉합은 수술 후 합병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유문 성형술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문제는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처음 하는 수술은 항상 신중하게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의욕만 앞세우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었다.
‘후우! 유문 성형술은 처음이지만, 난 할 수 있다. 원칙만 정확히 지키면 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승님이 옆에 계신데 불안해할 이유가 없잖아.’
결정을 내린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을 보며 말했다.
“천공 부위가 유문에 너무 가깝고, 크기가 큽니다. 단순 봉합을 하게 되면 수술 후에 유문이 좁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문 성형술을 하겠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눈가를 잔뜩 좁혔다.
‘단순 봉합을 할 케이스가 아니라는 판단은 정확한데, 수술을 줘도 될까? 네 실력 정도면 충분하다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부족하면 안 돼. 하긴 자신이 없으면 집도를 한다고 할 놈이 아니지. 지훈아, 수술 원칙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배운 대로만 해. 자신을 갖고 해 봐.’
신현수가 힐끗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절한 결정을 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집도까지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문득 김지훈이 생각보다 훨씬 앞서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해지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자신 역시 김지훈처럼 적절한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준영 과장은 퍼스트를 설 의향이 없어 보였다. 경험이 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이준영 과장은 김지훈만큼이나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언젠가는, 아니 조만간에 김지훈의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 것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 멀지 않았어. 자존심은 그때 세워도 늦지 않아. 차이라고는 김지훈이 이준영 선생님께 먼저 배웠다는 것뿐이야.’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중단됐던 수술이 재개됐다. 눈가에 바짝 힘을 준 김지훈이 슬며시 어깨를 흔들며 과도하게 다가오는 긴장을 풀었다.
“화이트 실크.”
김지훈의 목소리에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며 수술에 집중했다. 얼서(궤양) 빤뻬리는 꽤 볼 수 있지만, 의외로 유문 성형술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평소 머릿속으로라도 꾸준히 상기하지 않았으면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 과정이 정확하게 떠오르질 않네. 김지훈, 너도 이런 수술을 해 본 경험이 없을 텐데 잘할 수 있어?’
신현수가 불안한 얼굴로 김지훈을 보았다.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이준영 과장에게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의 손이 예상 밖으로 자신 있게 움직였다.
‘유문 성형술은 종으로 절개하고, 횡으로 봉합을 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통로가 좁아지지 않아.’
가장 먼저 할 일은 위 속에 고인 내용물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위를 절개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생략하면 배 속으로 음식물 등의 찌꺼기들이 새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천공 부위를 통해 위 속으로 석션기를 넣었다.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빨려 나왔다.
위가 홀쭉해진 후, 천공 부위를 중심으로 위와 십이지장의 주행 방향을 따라 4~5센티미터 정도 위를 절개했다.
핵심 과정이 시작됐다.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신현수의 타이밍이 조금씩 늦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경험 부족으로 기인한 문제는 단박에 해결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2년차 중 누구보다도 수술을 많이 했다는 것이 모든 수술을 익숙할 정도로 여러 차례 봤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몇 번만 봤어도 이럴 현수가 아닌데, 혹시 처음인가?’
김지훈이 힐끗 이준영 과장을 보고는 신현수에게 말했다.
“중간 부위에 실을 걸어서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벌린 후 가로로 봉합합니다. 세로로 잘라서 가로로 봉합.”
신현수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영 과장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래, 지훈아. 잘하고 있다. 집도의는 책임감을 갖고 퍼스트를 이끌어야 해. 언젠가는 경험이 전혀 없는 후배들과 수술을 하게 될 텐데, 그때를 대비하는 것 역시 수련이야.’
김지훈이 의도적으로 다음 수술 과정을 말했다. 물론 신현수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도진아, 수처 시작한다. 잘 끌어.”
위와 장을 봉합할 때는 절대 점막이 빠지면 안 된다. 김지훈은 이런 원칙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그대로 적용했다. 타이를 할 때는 조직마다, 혹은 병변의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힘을 조절해야 한다. 신현수 역시 많은 경험을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몸에 밴 것처럼 타이를 했다.
세로로 열린 위와 유문을 가로로 봉합했다. 가장 바깥쪽 조직인 장막을 겹쳐 꿰매 보강을 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모두 끝났다. 수시로 이준영 과장을 보며 제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하던 김지훈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제대로 했구나.’
‘수술에 관한 한 김지훈은 나보다 앞서 있는 게 확실해. 하지만 그 차이는 절대 크지 않아. 이건 단순히 경험이 있고, 없냐의 차이에 불과해.’
각자 생각은 달랐지만 김지훈과 신현수는 자신들이 왜 뛰어난지 여실히 보여 주었다. 2년차들의 수준을 상회하는 수술을 정확하게 해낸 것이다. 집도의와 퍼스트가 제대로 손을 맞추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무리가 모두 끝날 때까지 이준영 과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수술 내내 매서운 눈으로 조그만 잘못이나 실수라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잘했다. 하지만 이번 수술 역시 같은 잘못을 저질렀어.’
마취가 끝나고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직후, 이준영 과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김지훈, 신현수,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거 몰라? 아뻬 수술 후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은 한 거야?”
처음 하는 수술을 정말 잘해 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신현수 역시 의아한 눈으로 이준영 과장만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