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2)
김지훈은 물론 노련한 이준영 과장까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고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대현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근심에 과도한 체력 소모가 겹친 것이 원인이었다. 더 이상은 낮에도 병원에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한철수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아예 병원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의사들보다 더욱 절망에 빠질 사람이 한철수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꿋꿋했고, 결코 희망을 버리지도 않았다. 아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한대현의 의식이 멀쩡할 때면 웃음까지 보였다.
그러나 속은 슬픔으로 문드러지고 있었다. 아무도 없을 때면 남몰래 숨죽여 울었다. 가끔은 시뻘게진 눈가가 퉁퉁 부은 채 설명을 듣곤 했다.
“최선을 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차라리 원망을 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이준영 과장이 그런 한철수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드러내진 않았지만 자식을 향한 끝없는 사랑이 한철수를 버티게 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단연코 어떤 이유도 없었다.
‘이런 아버지가 또 있을까? 우리가 모를 뿐, 정말 많겠지?’
김지훈이 이럴진대 이준영 과장의 마음은 오죽할까.
‘혁원아, 미안하다.’
이준영 과장이 한철수의 마음이 느껴질 때마다 자식인 이혁원을 생각하곤 했다. 무겁게 다가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그 때문인지 한대현을 반드시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김지훈, 한대현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준영 과장이나 김지훈이나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는 못 올 곳으로 떠나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다. 한철수의 사랑과 정성을 헛되게 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겠습니다, 선생님.”
김지훈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주무르며 한대현의 차트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놓친 것이 정말 없을까? 이대로 가다간 얼마 못 버틸 게 뻔한데, 지금처럼 수혈만 하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걸까? 어떻게든 고리를 끊을 방법을 찾아야 해.’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문득 의아하게만 생각했던 일이 뇌리를 스쳤다.
혈액 응고 검사만이 아니라, 간 기능을 비롯해 다른 장기 기능들까지 이상 소견이 하나도 없었다. 수술 후 다시 시행한 복부 CT나 초음파에서도 남아 있는 간에서는 치명적인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검사 결과가 정상인데 생명을 위협하는 출혈이 멈추지 않다니, 의아한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현대 의학의 한계가 아니라면 의학적으로는 절대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간경화 초기 환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경우가 떠올랐다. 간은 단 20퍼센트 정도만 정상적으로 기능을 해도 몸에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그때는 정상적인 간 효소 수치가 도리어 간경화 진단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
‘검사 결과를 100퍼센트 믿을 수 있을까?’
비록 외상이 원인이지만, 한대현의 경우 약 30~40퍼센트 정도의 간이 남아 있었다. 어쩌면 간 기능에 이상이 있는데도 검사상으로는 멀쩡하게 나올지도 몰랐다.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때였다.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없을까?
김지훈이 이마를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스무 살인 환자가 중환자실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을까? 그래. 중환자실 환경도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일단 한대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킬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환자의 아버님도 하루 종일 병원에 있고, 나도 지금처럼 환자를 본다면 일반 병실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환자는 육체적 문제와 심리적인 문제를 모두 갖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제 20살인 한대현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받을지는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검사 결과에 가려진 간 기능 저하와 심리적인 문제.
김지훈이 자신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언뜻 그럴듯하지만 지나친 억측이거나, 출혈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문제였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경우에 안 맞는 판단이라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한대현이 더 나빠질 일도 없었다. 어차피 이대로 가서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응급 상황만 제때에 잡아낼 수 있다면 중환자실을 벗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치료 방법을 두고 한참을 고민하던 김지훈이 결론을 내렸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수혈만 하며 기다리는 것은 한대현이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곧 이준영 과장이 보호자 면회 시간에 맞춰 저녁 회진을 올라왔다. 갈수록 표정이 굳고 있었다.
“선생님, 환자 치료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한철수가 있는 자리였다. 치료에 관한 문제는 확실한 방침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보호자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한철수가 옆에 있었지만 들을 자격이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예. 아버님도 들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충분히 생각하고 말을 꺼낼 김지훈이었다.
잠시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세 가지 면에 초점을 맞췄으면 합니다. 첫 번째는 간 기능 저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검사 결과도 괜찮고, 이미 간 손상에 대한 치료를 하고 있잖아. 추가해야 할 것이 있어?”
“만일 간 기능 저하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면 현재 치료로는 부족합니다. 기능 회복제는 물론 혈액 응고에 반드시 필요한 비타민 K를 최고 농도로 투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분지아미노산과 지질수액제를 포함한 고농도 영양 요법도 시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나직한 콧소리를 냈다. 효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합당한 의견이었다. 긍정적인 반응에 자신을 얻은 김지훈이 두 번째 치료에 대해 말했다.
“검사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혈액 응고 인자가 충분한지는 불확실합니다. 앞으로 전혈과 함께 동결혈장까지 추가로 수혈하겠습니다.”
인체에 필요한 모든 혈액 응고 인자를 포함한 혈액은 전혈(whole blood)과 동결혈장뿐이었다. 출혈로 심각한 혈액 부족까지 겹친 상태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혈을 필요로 하는 병원은 많았고, 성분을 분리할 경우 더욱 많은 환자들에게 투여할 수 있어 확보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동결혈장도 문제지만 전혈도 하루 두 팩은 필요한데, 계속 구할 수 있겠어?”
“그럴 경우를 대비해 미리 저도 피를 뽑아 놓겠습니다. 다행히 환자와 제 혈액형이 맞습니다.”
이준영 과장은 물론 한철수도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가족도 아닌 사람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벼운 한숨을 내쉰 이준영 과장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일인실로 옮겼으면 합니다.”
이준영 과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환자는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없는 상태야. 일반 병실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어. 갑자기 문제가 생기면 일분일초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잖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병실에서도 똑같이 킵을 하겠습니다. 바이탈을 체크할 장비만 갖춘다면 아버님도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환자가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극심합니다. 출혈과는 상관이 없겠지만 심리적인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회복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심리적인 문제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대현의 육체적 상태를 감안할 때 일반적인 치료 원칙과는 정면으로 위배되는 말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심각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하나하나 떼어 놓으면 효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웠고, 환자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치료를 계속한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명확한 일이었다.
고강도의 간 기능 개선 치료와 전혈을 통해 모든 혈액 응고 인자를 공급하고, 환자의 심리적인 문제를 개선한다면 뜻밖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치료를 결정할 때의 원칙 중 하나는 이득과 손해 중 어느 것이 더 큰지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험성이 얼마나 동반될지가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망설이자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는 중환자실에 있나, 일인실에 있나 환자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비만 확보한다면 병실에 있을 때 도리어 더 빨리 대처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갑작스럽게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출혈은 간당간당하게 유지되고 있을 육체의 균형마저 완전히 깰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심정지의 발생 가능서도 배제할 수 없었다. 수술 전후에 받은 손상을 생각하면 결코 과한 우려가 아니었다.
‘장비를 갖추고, 아버지가 항상 곁에 있다면 만에 하나 지훈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문제가 생겨도 대처할 수는 있겠지. 손일석과 신현수도 가까이 있고 말이야.’
이준영 과장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러나 의사가 된 이후 한결같이 지켜 온 원칙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을 철석처럼 믿었지만, 결국 조금 더 생각해 보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김지훈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사실 일인실로 옮겼으면 하는 생각에 확신은 없었다. 따라서 이준영 과장의 동의가 없으면 두 번 이상 거론할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인생이든 환자든 간에 스승의 판단과 결정보다 올바르고 정확할 수는 없었다.
“고강도 치료는 시작해.”
“알겠습니다, 선생님.”
확실하게 대답을 한 김지훈이 회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혹시 일이 생기면 집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이번 주말은 오프였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은 수시로 나와 볼 것이다.
김지훈 역시 애초에 갈 마음조차 먹지 못했다. 이미 고경아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수술 방 간호사에게 전해 들었는지 삼풍백화점에 이어 환자 문제까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며 도리어 걱정을 했다. 그런 고경아가 너무 고마웠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낀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행복한 느낌에 잠시나마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아 씨, 미안해요. 나중에 내가 정말 행복하게 해 줄게요.’
중환자실 스테이션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환자에게 집중해야 할 때였다.
“간호사, 전혈 얼마나 확보했어요?”
“적십자도 피가 부족한지 일단 다섯 파인트는 보내 준다는데, 그다음에는 장담할 수가 없대요.”
“이 상태면 이틀 반밖에 못 버티네.”
혈액형이 맞는다고 바로 수혈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에이즈나 간염 등의 검사를 거치고, 교차반응까지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특히 감염의 우려가 상존하는 의료인은 더욱 철저한 검사가 필요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친 김지훈이 서도진을 불렀다.
“도진아, 잠깐 중환자실 환자 좀 봐. 한 시간도 안 걸릴 테지만, 혹시 일 있으면 임상병리실 안에 혈액실이 있거든. 그리로 연락해.”
“혈액실이요?”
고개를 끄덕인 김지훈이 중환자실을 나갔다. 물끄러미 한대현을 지켜보던 서도진이 마침 환자 기록을 하러 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특별한 검사가 또 나갔어요?”
“김지훈 선생님이 혈액실에 간 이유가 궁금하세요? 적십자도 혈액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으시더니 피 빼러 가셨어요.”
“피를 빼다니요?”
“혈액 응고 인자 중 무엇이 부족한지 모른다고 전혈이나 동결혈장만 수혈을 하신다네요. 에휴! 저런 선생님 참 보기 힘들지만, 피까지 뽑으면 훨씬 더 힘드실 텐데 어쩌죠?”
서도진이 말을 잃었다. 환자에 대한 김지훈의 마음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잠이라도 제대로 잔다면 모르지만 이미 열흘이 넘도록 쪽잠을 자고 있었다. 걱정이 될 정도였다.
답답한 한숨이 연거푸 터졌다.
그때 멍청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한대현이 눈가를 찡그렸다. 수술 이후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신경을 쓴 의사가 이젠 피까지 뽑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사라졌다.
‘저런다고 내가 살 수 있을까?’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갈 때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느낌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 눈앞까지 다가오는 그 느낌을 말이다. 이젠 남몰래 흘릴 눈물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고통이 없기만을 바랐다.
이제 20살에 불과한 사람이 할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대현은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한계에 몰린 지 오래였다. 가장 힘들고 두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환자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