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1)
평소 신현수에게만 예외적으로 행동했던 금경태 과장을 생각해 보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이준영 과장을 인정하는 것 같은 뉘앙스까지 풍겼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금경태 과장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준영 과장의 판단까지 문제시될 수 있었다. 최소한 수술 중에 집도의와 퍼스트 간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다.
‘스승님께 배운 것만 확실히 말하면 된다.’
심호흡을 한 김지훈이 자신 있는 태도로 답을 했다.
“출혈 부위는 손상을 받은 간 문맥까지 정확히 잡았습니다. 또한 수술 후에도 간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손상된 부위 중 도저히 살릴 수 없는 부분만 제거했습니다. 재수술 당시 남은 간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재수술 당시 봉합한 간 내부의 출혈은 확인했나?”
“다른 부위에서 발생한 우징(oozing) 정도의 출혈만 관찰됐습니다. 또한 현재까지 간 기능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수술 중 과도한 절제는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금경태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준영 과장을 직접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반면 김지훈이 조금만 틈을 보여도 간접적으로 수술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내비칠 수 있었다. 그런데 김지훈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특별한 케이스는 환자 차트까지 내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대현만큼 특별한 환자도 없었다. 금경태 과장이 차트를 펼치며 물었다. 응급 처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역시 이준영 과장의 책임을 언급할 수 있었다.
“흐음! 외과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단 말인데, 응급실 처치에서는 문제가 없었나? 그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는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거야. 대량 출혈과 그에 따른 대량 수혈은 그 자체로 문제가 많잖아.”
“환자의 바이탈이 워낙 불안정해 불가피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시 응급실에 있었던 저희 전공의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 말은 좋지만 결과가 나쁘면 최선이라고 말할 수가 없겠지. 비지에이 소견을 보니까 말이야.”
금경태 과장의 난해한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김지훈은 침착하게 당시 처치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대답을 했다. 신현수와 서도진이 있었고, 그 뒤에는 이준영 과장이 있었다. 실수나 빼먹은 것이 있다면 걸러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이론에도 훨씬 밝단 말이지. 슬슬 마음에 드는군. 신현수와 김지훈이라! 이 년 동안만 잘 끌고 가면 양손에 꽤 괜찮은 놈들을 잡을 수도 있겠어. 김지훈이야 어차피 가진 거 하나 없는 놈이니까 이준영이 절대 줄 수 없는 것만 던지면 될 테고, 문제는 신현수 저놈인데.’
결국 꼬투리를 잡지 못한 금경태 과장이 물러섰다. 물론 김지훈에게 떡밥을 던지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좋아. 대답을 들으니까 아주 믿을 만해. 주말이야 그렇다고 치고, 다음 주에도 한대현에게 문제가 계속 있다면 내 수술은 상관하지 말고 환자에게 바짝 신경을 써. 허허! 이제부터 2년차들에게도 수술을 충분히 주려고 했는데, 김지훈 너는 조금 뒤로 미뤄야겠어.”
김지훈만큼 수술에 미친 놈도 없다는 사실을 금경태 과장이 모를 리가 없었다. 남들보다 난이도가 조금 높은 수술을 먼저 받게 되면 전공의들 대부분 착각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일반 외과를 좌지우지하는 과장의 총애를 받는다고 말이다.
노리는 바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중한 환자일수록 의사의 관심과 열정이 줄어들면 반드시 실수를 하기 마련이었다. 만일 김지훈이 수술에 정신이 팔려 실수를 하게 된다면 이준영 과장까지 도매금으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하나는 걸리겠지. 아니라고 해도 지금보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니까 급하게 생각할 것이 없어.’
금경태 과장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집담회를 끝냈다.
“구 교수, 대량 출혈에 이은 대량 수혈도 문제가 되잖아. 그런데 이 환자는 조금 다른 것 같지?”
“예. 시간을 따져 보면 그런 상황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과장님.”
금경태 과장이 구영선 교수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컨퍼런스 룸을 나갔다.
김지훈이 쩝쩝 입맛을 다셨다.
‘정말이면 어쩌지? 에이! 어쩌긴. 일단 한대현부터 살려야지, 지금 수술이 문제야.’
김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수술에 대한 욕심을 잠시 접었다.
수술을 하는 이유는 의사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점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한 주를 되돌아보며 다음 주를 대비해야 할 주말이 악몽으로 변했다. 한대현의 출혈이 점점 더 심해졌다. 거의 두세 시간마다 거즈를 갈아 주어야 할 정도였다.
주말 내내 병동과 응급실에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한대현에게 매달렸다. 언제 바이탈이 흔들리고, 소변량이 감소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불안해 떠날 수가 없었다.
이준영 과장에게 수시로 노티를 하고, 한철수에게도 상황을 설명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회사에 출근할 때를 빼고는 한시도 쉬지 않고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는 한철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의사의 잘잘못을 떠나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급기야 일요일 밤에는 혈압이 떨어지며, 심장박동 수까지 빨라지기 시작했다. 응급으로 혈액 검사를 내보냈다. 혈색소 수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 전혈 두 팩을 수혈한 지 만 하루도 안 돼 추가로 두 팩을 더 시켜야 했다.
“아버님, 수혈을 다시 할 예정입니다.”
“또 수혈을 해야 하는 겁니까?”
한철수의 얼굴에서 공포가 보였다.
“죄송합니다만, 출혈을 멈출 방법이 없습니다. 다음 주에 나오는 검사 결과에서 원인이 밝혀지면 그때야 확실한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겠죠?”
출혈이 멈추지 않는다면 결과는 명확했다.
응급실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수혈된 피만 50파인트(pint or pack:혈액 단위)가 넘었다. 더구나 수혈된 혈액 대부분이 300~400cc 용량인 전혈이나 농축적혈구였다.
한대현의 피 전체를 두세 번은 족히 갈고도 남을 양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대량 수혈 그 자체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하다지만 보호자에게는 정확한 사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김지훈이 눈빛을 굳히며 에둘러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철수가 김지훈의 손을 잡으며 연신 부탁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며 아내와 함께 있을 때는 가급적이면 안 좋은 말은 피하고 자신에게만 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다. 생사를 장담하기 어려운 아들을 두고도 아내와 슬픔을 나누지 못했다. 도리어 아픈 아내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족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책임감이 아니면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일이었다.
‘아버지란 사람이 이런 존재였나? 난 그걸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했었던 걸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그리운 이들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착잡한 마음에 잠시 쉬려고 해도 세상은 온통 아픔뿐이었다.
속보! 속보!
TV는 하루 종일 처참하게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모습을 방영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원인을 진단하고, 책임자들을 성토했다.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지만, 과연 그들은 현장의 처참한 모습을 보기는 했을까?
사상자의 수가 너무 많아 입에 담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들은 몇 명이 다치고, 몇 명이 죽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 댔다.
그들 중 몇몇이 보인 눈물은 정말 진심을 담고 있을까?
눈을 감을 때마다 한대현의 얼굴과 무너진 건물의 잔해만 떠올랐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할 때마다 시간을 내 고경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랑해요. 힘내세요.)
고경아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악다구니처럼 소리를 질러도 가슴이 뚫리지 않았을 것이다.
***
변함없는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지난주나 그 전주나 지금이나, 해야 할 일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삼풍백화점 때문에 병원 전체가 상당히 침울했다.
여기에 단 한 명의 환자에게서 비롯된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김지훈의 일상은 더 힘들고, 어둡기만 했다.
한대현 때문이었다.
모든 혈액 응고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다. 결국 일반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희귀하고 특수한 원인들에 관한 검사까지 시행됐다. 그러나 그마저도 결국에는 정상으로 나왔다.
내과 혈액 파트는 물론 임상병리 의사들까지 머리를 맞댔지만, 한대현의 출혈을 야기하는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흔히 말하는 현대 의학의 한계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한대현과 가족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시간만 나면 한대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출혈을 확인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거즈를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몸의 피가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처럼 출혈은 계속됐다.
이준영 과장이 아침저녁에는 물론 자정 무렵마다 한철수를 만났다. 김지훈은 몇 번을 만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주 한철수와 상담을 했다. 마음이 위안될 뿐이었다. 수백 번을 만나고 얘기한다고 해서 한대현의 상태가 호전될 리는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혈한 피가 모두 빠져나갈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바이탈이 흔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한대현의 의식까지 흐려졌다. 그 상태에서 급히 수혈을 하면 흐렸던 의식이 말짱하게 돌아왔다. 결국 매일 두 팩 정도의 피를 수혈해야 했다.
다행스러운 일인지, 희한한 일인지, 악순환에 빠진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는 한대현만이 아니었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는 없었다.
체력에 한계가 왔다. 낮이든 밤이든 한대현을 지켜보다 말고 피곤에 절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두 번째 수술 이후 완전히 의지가 꺾인 한대현이 거의 말을 하지 않아 더욱 힘들었다. 더구나 아무런 신호도 없이 의식이 흐려져 대화를 나누기도 쉽지 않았다.
오늘도 시뻘게진 눈으로 한대현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의자에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툭툭 치는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어? 현수야, 웬일이야?”
“가서 눈 좀 붙여.”
“내가 깜빡 졸았나 보네. 아니야. 환자 봐야 돼.”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환자에 대한 김지훈의 열성이 이럴 때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다. 의사가 먼저 쓰러지면 환자는 누가 볼까?
“나도 수술 들어갔잖아. 내 환자기도 해. 세 시간 후에 연락할 테니까 가서 자.”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지만 너무도 고마웠다. 내 환자라는 말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신현수의 어깨를 툭 치며 고마움을 전한 김지훈이 오래간만에 숙소로 올라갔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더듬더듬 전화기를 잡던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창밖이 환하게 밝아 오고 있었다. 아침 일과를 시작해야 할 새벽 6시였다. 밤새 잔 것이다.
‘이거 뭐야? 내가 전화도 못 받았나?’
급하게 수화기를 든 김지훈이 눈을 비볐다.
(지훈아, 여섯 시다. 빨리 일어나라.)
신현수가 아니라 손일석이었다.
“어! 일석아, 그런데 왜 니가 전화를 해?”
(중환자실이야, 인마. 현수 그 자식 때문에 밤을 꼴딱 새울 뻔했네. 빨리 내려와서 회진 준비해. 아침에 드레싱한 거는 옆에 놔뒀으니까 확인하고.)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내려간 김지훈이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지난밤 신현수와 손일석이 번갈아 가며 꼬박 킵을 해 준 것이다. 동기들이 전한 마음에 잠시나마 가슴 벅찬 행복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감정도 잠시였다. 한대현을 볼 때마다 의사로서의 무력감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날 정도였다.
무슨 이유인지 금경태 과장이 유난히도 한대현에게 관심을 보였다. 회진 때마다 상태를 물어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중환자실 환자 피는 멈췄어?”
“아직 안 멈췄습니다.”
“젊은 환잔데 문제군. 내과로 전과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 환자를 볼 능력이 없으면서도 붙잡고 있는 건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자존심을 세워서도 안 되고 말이야. 첫 수술을 할 때 판단을 정확하게 했어야 하는데……. 쯧쯧!”
묘한 말이었다. 한대현을 내과로 전과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모를 리가 없었다. 더구나 김지훈의 눈에는 금경태 과장의 태도에도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을 할 때마다 보이던 짜증을 내지 않았다. 도리어 이 상황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환자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님을 견제하는 건가? 스승님이 과장 자리를 탐내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러지?’
이래저래 심난한 나날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지만 출혈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더 이상 의사로서 손을 쓸 수 있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