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93화 (293/1,329)

제8화 충격 (2)

놀람과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드디어 119 구급대원들이 건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두 명의 대원이 구조 준비를 했다. 전등이 달린 빨간 헬멧과 허리에 묶은 밧줄, 그리고 손전등이 다였다. 안전 장비라고 말할 수도 없는 채비를 하고는 완전히 무너진 건물 잔해 앞에 섰다.

회색빛 콘크리트 잔해 사이로 삼각형 모양의 틈이 있었다.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암흑만이 가득한 곳으로 두 명의 대원이 몸을 밀어 넣었다.

사람들이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수준이자 현주소인지 모르지만 너무도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119 대원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두 명의 대원들이 사라지고 밧줄만이 조금씩 움직였다. 헬멧의 불빛과 손전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건물 안이었다. 119 대원들이 느끼고 있을 공포는 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문득 시장과 장관이 왔을 때 달려가는 119 대원들을 욕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들이 달려간 이유에는 한시라도 빨리 구조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생존자를 구할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죽음을 각오한 대원들에 대한 걱정이 교차했다. 사람들의 입이 하나둘 닫혀 가며 주변은 점점 무거운 침묵 속에 잠겨만 갔다.

사람들의 짧은 환호성과 탄식이 동시에 터졌다. 좁은 틈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빨간 헬멧을 쓴 두 명의 대원이 밧줄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빼내고 있었다. 극심한 공포와 긴장 때문인지 안전한 곳으로 나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임시 산소 탱크를 든 다른 대원들이 그들의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있었다.

아무런 소득이 없었지만 누구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탓할 수 없었다. 도리어 목숨을 걸고 구조를 위해 나섰다는 사실에 박수와 격려, 그리고 한없는 고마움을 전해야 했다.

단지 직업이라는 이유로 그토록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말은 입에서 꺼낼 수도 없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고도 넘쳤다.

수십 명의 119 대원들이 모여 상의를 하고 있었다. 붕괴 위험이 너무 크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이제야 그들이 누군지 알았다. 가족 중 누군가를 찾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동안 느꼈던 소란과 소음 속의 어지러움은 그들의 눈물이자 슬픔이었고, 안타까움이었다.

미안하기만 했다.

그때 119 대원 두 명이 다시 헬멧을 썼다. 허리에 밧줄을 묶고, 손전등으로 처참하기만 한 건물의 잔해를 비추며 전진했다. 그들의 모습이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지옥의 입구처럼 어둡기만 한 삼각형의 틈만 남았다.

방송국 카메라가 생생하게 중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뉴스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런 바람과 소망이 모인다면 생존자를 구해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힐끗 앰뷸런스를 보았다. 만일 생존자를 이송한다면 가장 먼저 환자를 보게 될 위치에 있었다.

또다시 한없이 길기만 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시간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사람들의 환호성이 사방에서 터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방송국 카메라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분홍색 상하의를 입은 119 대원들이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그 사이로 이동식 침대에 누워 담요를 덮고 있는 생존자가 보였다.

이혁민 교수와 함께 앰뷸런스기 있는 곳으로 달렸다. 앰뷸런스 기사가 침대를 내렸다.

바이탈을 체크할 준비를 하며, 간호사에게는 수액을 달 준비를 하라고 했다. 생존자를 눕힌 이동식 침대가 앰뷸런스 앞에 도착했다. 이혁민 교수가 생존자의 의식과 동공반사를 확인했다.

의식이 있었다. 혈압은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호흡이나 박동 수는 정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수액을 달기 위해 정맥 라인을 잡았다.

갑작스럽게 몰려든 사람들과 눈을 뜨기도 힘든 카메라 조명 속에서 생존자의 상태를 묻는 질문들이 빗발쳤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일은 어떤 부상을 입었어도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는 병원으로 빠르게 이송하는 것이었다.

생존자에 대한 최소 정보를 확인하고 이송을 준비했다. 그때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빨리 옮겨.”

이제야 현장을 통제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일까?

갈색 잠바를 입은 공무원과 다른 조직의 간부들이었다. 그들이 가리킨 것은 앰뷸런스가 아니라 119 구급 차량이었다. 그 사이에는 서울 지역 대학 병원들에서 온 앰뷸런스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119 대원들이 잠깐 멈칫거렸다. 다시 한 번 큰 목소리가 터졌다. 마치 자신의 말을 빨리 이행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릴 지경이었다.

결국 수액 하나 달랑 단 생존자를 실은 간이침대가 구급차로 향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수많은 의료진들이 멍한 표정으로 지켜만 보았다.

뭐 하는 짓일까?

생존자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응급 상황에 대비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적절한 조치를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게 무너졌다.

의료진의 판단은 고사하고 응급 환자를 다뤄 본 119의 판단도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볼펜을 굴리며 환자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일을 하던 이들의 결정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자신의 결정이 최선이라고 여긴 걸까?

현장에 와 있던 의료진들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엄청난 규모의 재난이었다. 인명 손실이 얼마나 날지 모르기에 모든 인력을 다 동원해 빠르고 적절하게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공무원과 경찰, 그리고 119와 의료진들에게는 각기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그런 점들은 철저하게 무시됐다.

이유는 분명했다. 재난이 일어난 지 6시간 가까이 지났다. 시장과 장관들까지 왔다. 중간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수를 셀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재난의 현장은 아직도 어수선하기만 했다. 현장에 도착한 인력들을 정확하게 통제하고, 이끌어야 하는 최소한의 주체들도 없단 말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생존자를 구출하면 어떤 식으로 대처하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 하나 없었다. 의료진들끼리 아무리 협의를 하고, 준비를 해도 그 말을 들을 사람은 없었다.

현장에 있던 의료진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답답한 눈으로 현장을 지켜보던 이혁민 교수도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에게도 충격의 연속이었다.

대낮에 멀쩡하게 서 있던 백화점이 무너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매몰돼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필요한 인력은 모두 있었지만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구조 활동에 투입할 시점을 결정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력인 의료진은 존재 자체를 무시당했다. 119 구급대원은 안전 장비라고 할 수도 없는 장비들을 걸치고 무너진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정상적으로 돌아간 것이 있기는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과 슬픔만이 정상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6월 29일 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응급실이 한산했다. 이렇게 큰 사건이 발생한 날에는 이상하게 환자도 없었다. 어쩌면 너무도 충격이 커 집 밖으로 나올 생각도 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로비 벽에 걸린 TV에서 한참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생존자 한 명을 구출했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하게 사건을 수습하고 생존자를 구출하겠다는 발표가 들렸다.

재난 대책 본부였다.

본부장을 맡은 인간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급박하게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사건을 수습하고 있었다. 심각하면서도 결의에 찬 표정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이나 현장에 가 보았을까?

욕이 절로 나왔다.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답답한 속을 달래며 고경아에게 전화를 했다.

“경아 씨, 연락 못해서 미안해요.”

짜증이나 화를 낼 법도 했지만 고경아는 도리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지훈 씨, 사고 때문에 바쁘셨죠? 그런데 무슨 일 있었어요? 목소리가 왜 그래요? 심하게 다친 사람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사실은 삼풍백화점에 갔다 왔어요. 현장을 직접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답답하기도 하고.”

고경아가 나직한 한숨만 내쉬었다. 아무리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는 직업이 의사와 간호사라지만, 죽음에 관한 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더 심각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하죠? 지금이라도 잠깐 볼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중환자실 환자도 있어서 오늘은 힘들 것 같네요. 피라도 멈췄으면 좋겠는데. 흐음! 다음 주 수요일에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고경아도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답답한 분위기에서 전화를 끊었다. 수없이 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을 텐데도 응급실은 한산했다.

턱을 괸 채 한숨만 쉬던 김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흔들었다. 부상자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이유가 떠오른 것이다.

경상 아니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

5층 건물 전체가 삽시간에 무너졌다면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현장의 참혹함을 생각해 보면 무리한 일도 아니었다.

‘재수 없는 생각 말자. 다친 사람들은 다 다른 병원으로 간 거겠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가슴이 말할 수 없이 무겁기만 했다.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지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도 의사만 바라보는 환자가 있었다. 김지훈이 피곤하기만 한 눈가를 비비며 중환자실로 향했다.

오늘도 한철수는 밤마다 자리를 지키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매일 말을 해도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김지훈을 보자 벌떡 일어나며 한대현의 상태를 물었다.

“선생님, 혹시 피는 멈췄나요?”

답답한 가슴이 더욱 답답해졌다.

“오후까지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삼풍백화점에 갔다 오는 바람에 저녁에는 확인을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한철수가 다소 놀라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삼풍백화점에요? 후우! 선생님도 참 힘드시겠습니다. 그래서 표정이 안 좋으셨군요.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사고가 많이 나는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2층에서 떨어진 아들이 수술 나흘째가 되도록 중환자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물며 사람들로 가득했을 백화점이 폭삭 주저앉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을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한철수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은지 조용히 의자에 앉아 한숨만 쉬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아버님, 오늘도 여기서 밤을 새우실 겁니까? 이러다 먼저 쓰러지세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자고 있어요. 원래 집에서도 일찍은 못 자던 사람이라서요.”

말은 그렇게 해도 얼굴에 온통 피곤함뿐이었다. 며칠 동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아픈 아내 대신 중환자실 앞을 내내 지켰다. 마흔이 훌쩍 넘은 사람의 체력으로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지극한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만큼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수록 부담이 되고 미안했다.

중환자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침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한대현의 옆구리에 박힌 심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분명 아침보다 심지를 타고 떨어지는 핏방울의 속도가 빨라졌다. 저녁 직전에 갈아 준 수십 장의 거즈가 이미 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간호사, 혈액 검사 바로 내보내고 검사실에 결과 최대한 빨리 달라고 해요. 비지에이도 하나 갖고 와요.”

다행히 바이탈은 흔들리지 않았고, 시간당 소변량도 충분했다. 금식하는 환자의 경우 보통 하루 2,500cc 정도 투여했지만, 출혈을 감안해 3,500cc로 늘린 것이 유효한 모양이었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 결과상 체내 ph와 산소포화도도 괜찮았다. 지속적인 출혈을 생각할 때 상당히 잘 버텨 주고 있었다.

하지만 혈액 검사를 받아 든 순간 김지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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