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92화 (292/1,329)

제8화 충격 (1)

‘삼풍? 삼풍이 뭐 어쨌다고?’

손일석과 신현수가 동시에 소리쳤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김지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백화점이 무너지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분명 두 귀로 똑똑히 들었지만 상식적으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석아, 현수야, 저게 무슨 소리야?”

손일석이나 신현수도 믿기 힘들다는 표정만 지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방송국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환자와 의료진을 찍는 카메라 불빛에 눈이 부셨다.

기자로 보이는 사람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찾고 있었다. 하필이면 스테이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환자를 보고 있었다.

“선생님, 환자들 중 크게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혹시 수술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나요?”

속사포 같은 기자의 말과 밝은 카메라 불빛으로 환자 진료가 방해될 정도였다. 응급실은 인터뷰를 하는 장소가 아니라 환자를 보는 곳이다. 일의 우선순위도 바뀌었다. 지금 당장은 남은 환자들을 우선적으로 진찰해야 했다.

“환자들부터 진료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기자들 본연의 속성인지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김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을 안 하자 거듭 재촉을 했다.

“죄송하지만, 그 대답만 해 주십시오.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사람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혹시 환자들이 사고에 대해서 말한 부분이 있나요? 혹시 삼풍백화점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기자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건물 붕괴 현장에서 다친 환자들이라면 정신없이 환자를 보는 와중에 심한 내부 손상을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조금 있다가 하죠. 지금 환자 보는 것 안 보이세요?”

“죄송합니다만, 다른 의사분들도 있으니까 대답부터…….”

김지훈이 인상을 확 썼다. 지금도 눈앞에서 빤히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정훈철을 알기에 기자들에 대한 인상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김지훈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환자 보는 거 안 보여요? 당신이 환자면 좋겠어?”

흠칫 놀란 기자가 눈가를 찌푸렸다. 목소리는 안 들렸지만 입 모양이 묘했다. 순간 화가 치밀었지만 환자를 앞에 두고 말싸움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혹시 놓친 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김지훈이 이미 보았던 환자들의 차트를 다시 확인했다.

그때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가 다급한 얼굴로 들어왔다. 평소 웬만한 일로는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이혁민 교수의 얼굴에 당혹과 긴장이 서려 있었다.

“김지훈, 너 오늘 오프지?”

“예, 선생님.”

“빨리 응급 키트 챙겨서 나 따라와라.”

한눈에 교수인 것을 알아챈 기자가 급히 이혁민 교수에게 다가와 질문을 했다. 이혁민 교수가 단칼에 잘랐다.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습니다. 김지훈, 뭐 하나? 빨리 출발할 준비해.”

이준영 과장 역시 심각한 기색으로 빨리 가 보라는 손짓만 했다. 간호사와 함께 부리나케 응급 처치 도구들을 챙긴 김지훈이 이혁민 교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병원 앰뷸런스가 파란색 경광등을 번쩍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길을 재촉했지만, 긴 꼬리를 문 빨간 후미 등은 움직일 줄 몰랐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재빨리 치고 들어오는 차량들 때문에 한남대교를 넘는 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앞좌석에 탄 이혁민 교수가 길을 가리키며 운전사와 나직하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사이렌 소리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실 귀를 기울일 기분도 아니었다.

응급실을 나오며 언뜻 본 TV 화면이 자꾸만 머릿속을 감돌았다. 멀쩡하게 서 있던 건물이 무너졌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백화점이 말이다.

마치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인 것처럼 현실과의 괴리가 느껴졌다. 이내 너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는 일에 짓눌렸는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리게이트를 친 경찰관들이 빨간 봉을 흔들며 거리를 통제하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와 신원을 물은 후 어디론가 무전을 쳤다. 모든 방송이 끝난 TV 화면처럼 시끄러운 소음을 내던 무전기를 통해 알아듣기 힘든 소리가 울렸다.

경찰들이 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뒤늦게 도착한 방송국 차량들이 먼저 바리게이트를 통과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이혁민 교수가 가운을 입은 채 경찰들에게 항의를 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의료진들을 막으면 어떻게 합니까?”

아마도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은 경찰들이 다시 무전을 쳤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통과가 허락됐다. 뒤이어 도착한 앰뷸런스들이 차례차례 완전히 통제된 우면로에 들어섰다.

도로 너머에 늘어선 아파트들 불빛 너머로 외벽에 붙은 불을 환하게 밝힌 건물이 보였다. 삼풍백화점이었다. 멀쩡해 보였다.

순간 그렇게 큰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몰려든 사람들을 막기 위해 도로 양쪽에 도열한 전경들과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우면로가 어쩐지 기이하게만 보였다.

삼풍백화점과 다소 떨어진 곳까지 진입한 앰뷸런스가 멈췄다. 뒷문을 여는 순간 요란한 호각 소리와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아수라장이었다.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곧 서울 소재 대학 병원에서 급히 출발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지만 어디에서 대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이어졌다. 모두들 환자들을 구호해야 할 앰뷸런스를 세운 곳 앞에서 당황스러운 표정만 짓고 있었다.

전경들이 열을 지어 앞을 지나갔다. 잠시 후, 반대쪽에서 나타난 경찰들이 현장에 도착한 의료진들의 물음에 고개만 저으며 앞을 지나쳤다.

귀중한 시간이 흘렀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난 현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력인 의료진들이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를 사람들과 뒤섞인 채 움직이질 못했다.

사고 현장에는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현장으로 접근했다. 멀쩡하게 서 있는 우측 건물 반대편으로는 암흑뿐이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전경들이 막고 있는 마지막 선에 도착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일까?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좌측 건물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무너진 좌측 건물의 일부였을 한쪽 벽면만 위태롭게 서 있었다. 처참한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중앙 건물 사이까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날카롭고 거대한 힘이 그 부분에만 작용한 것처럼 차곡차곡 무너져 있었다.

TV 화면은 단지 그림에 불과했다. 두 눈으로 보는 현장의 처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무너진 건물에서 풍겨 나오는 매캐한 콘크리트 냄새와 텁텁한 공기 속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공포와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백화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그 안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덮친 회색빛 콘크리트 더미와 검은색의 철근들은 어떤 생명도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방송국 카메라가 내뿜는 불빛과 어디선가 무너진 건물을 비추고 있는 조명은 밝기만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단 하나의 조치라도 취하고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뛰어다니며 소리만 질렀다. 분홍색 상하의를 입은 119 구급대원들은 현장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방송국 기자와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무슨 소리가 날 때마다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이곳 역시 김지훈의 눈에는 아수라장이었다. 검은 헬멧과 두툼한 전투복을 입은 전경들이 길게 라인을 치고 현장 접근을 막지 않았다면 지옥을 방불케 했을지도 몰랐다.

이혁민 교수의 답답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마주쳤지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너진 건물의 처참함은 길거리에서도 여실하게 보였다. 구두 발자국이 날 정도로 허옇게 쌓인 먼지가 대로를 뒤덮고 있었다. 셀 수도 없는 구두와 핸드백들이 건물에서 날아온 파편들과 뒤섞인 채 널려 있었다.

백화점에서 팔던 물건인 것 같았다. 그중에는 주인을 잃은 구두와 핸드백도 있을 것이다. 응급실에 온 환자들이 왜 얼굴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건물이 붕괴되며 발생한 후폭풍에 휘말렸을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병원에 실려 온 것이다.

누군가는 위험을 느끼고 건물을 빠져나오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쇼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줄 선물을 들고 나오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백화점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을 것이다.

혹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모두가 삼풍백화점 안에 있었다는 이유로, 또는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됐다.

멀쩡하게 서 있는 반대편 건물에 있던 사람들은 과연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만 내쉴 수 있을까?

눈앞에서 무너지는 건물과 귀를 찢는 굉음, 그리고 사람들이 죽어 가며 내지른 비명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는 희미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지만, 결코 짧은 시간 내에는 찾아오지 않을 일이었다.

너무도 답답해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아직도 소리를 지르며 부산을 떨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 방송국 기자와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일제히 한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번쩍이는 무궁화를 단 경찰관들도, 회색빛 잠바를 입은 공무원들도, 분홍색 상하의를 입은 119 대원들 중 일부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발걸음이 바빴다.

무슨 일일까?

누군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유난히도 귀에 박혔다.

“제길! 시장이 왔다고 저 지랄들이네. 대책 본부부터 꾸리고 현장을 통제해야지. 그래야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할 거 아냐? 그런 생각은 안 하고 인터뷰부터 해? 그게 시장이 할 짓이야?”

무슨 이유인지 경찰들이 전경들이 구축한 라인 안을 왕복하길 반복했다. 뚜벅뚜벅 경찰관들의 구두 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얼마 후, 또 한 번의 소란이 일었다. 어느 부서인지 모르지만 장관들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장관이나 시장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마다 현장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권한이 있을 사람들 역시 하는 일이 없었지만, 현장의 구조 인력들을 통제할 사람이 필요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건물 속에 매몰돼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조하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답답하고 허탈하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일개 의사에게 주어진 권한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시장이든 장관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경찰이나 119라도 앞서서 나서 주기만을 바랐다.

그렇게 시간은 헛되이 흘렀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이 사람들을 지배했다.

그때 붕괴된 건물 앞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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