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90화 (290/1,329)

제7화 수술은 치료의 끝이 아니다 (1)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신현수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인턴 대신 써드를 서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서도진 대신 세컨을 선다고 했어도, 그 상황에서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 때문에 이준영 과장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했을 것이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분명했다. 이준영 과장의 수술을 보겠다는 일념이었을 것이다. 그 덕에 조금이나마 수술이 더 빨리 끝났을지도 몰랐다. 결국 환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일이 된 것만큼은 확실했다.

‘자식! 확실히 뭔가 달라졌어. 날 너무 불안하게 하네. 그래, 맞다. 인턴보다는 니가 들어오는 게 환자한테는 백배 낫지.’

“현수야, 고맙다.”

힐끗 김지훈을 본 신현수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솔직히 무엇이 고맙다는 것인지 조금은 알쏭달쏭했다.

“과장님하고는 확실히 다르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전공의 입장에서 교수들의 수술을 평가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었다. 각자 보고 느낀 바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공공연히 말할 문제는 절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다르긴 하더라. 그래서 배울 게 너무 많아. 솔직히 과장님 파트를 안 돌았으면 퍼스트도 제대로 못 섰을 거야.”

신현수가 또 눈가를 찡그렸다. 조금씩 김지훈의 속을 알아 가면 갈수록 희한하게만 보였다. 똑같은 처지였다면 어떻게든 금경태 과장 파트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3주 동안 참관만 시켰는데 나올 말이 아니었다.

문득 김지훈의 두 번째 원칙이 생각났다.

‘배움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했나? 도대체 가르쳐 줄 마음도 없는 사람에게 뭘 배웠다는 거지?’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몰라도 분명 배워야 할 자세였다. 김지훈은 그 와중에도 스스로 금경태 과장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수술에서 보인 김지훈의 모습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린 신현수가 중환자실을 나가며 습관처럼 안경을 고쳐 썼다. 언제부턴가 답답한 일이 있으면 나오는 행동이었다.

한동안 한대현의 호흡과 의식 상태를 살피던 김지훈이 병동 콜을 받았다. 중환자실 인턴에게 잠시 환자 킵을 부탁하고 밖으로 나가다 말고 멈칫거렸다. 한대현의 아버지가 중환자실 앞에 놓인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김지훈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선생님, 우리 아이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은 뭐라고 말씀드릴 상태가 아닙니다. 그리고 과장님께 말씀 들으셨겠지만, 회복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불편하게 기다리지 마시고, 보호자 대기실에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계세요. 드릴 말씀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요?”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할 때라, 그때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한대현의 아버지가 혹시 자신이 자리에 없을 때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며 명함 한 장을 건넸다. 한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한철수에 대한 첫인상은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아들에게는 더욱 말이 없고, 아침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였을 것이다. 흔히 그렇듯 아무리 힘들어도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하게 보아 온 아버지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런 아버지였을 한철수의 눈빛이 유난히 아파 보였다.

문득 그리운 사람들이 떠오른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애써 웃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병동으로 향했다. 몇 가지 일을 처리한 후 다시 중환자실로 왔을 때, 한철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홀로 앉은 한철수의 어깨가 들썩였다. 북받치는 슬픔과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기기 힘든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후우! 이제야 눈물을 흘리시네.’

김지훈이 조용히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 때문일까? 과다한 출혈과 오랜 수술로 얼굴까지 퉁퉁 부은 한대현이 생각보다 빠르게 의식을 되찾았다. 드레인을 통해 검붉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간 절제 수술을 한 환자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양만 늘지 않는다면 대개는 이삼 일 후에 멈추기 마련이었다.

“한대현 씨, 많이 아프죠? 조금만 참으세요. 중환자실에 있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는데, 며칠은 있어야 하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기관 내 삽관을 유지한다는 것은 환자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여기에 코 줄과 소변 줄에 주렁주렁 수액 줄까지 매달려 있었다. 모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무의식적으로 잡아 뺄 수도 있어 팔다리를 묶을 수밖에 없었다.

한대현이 거칠게 고개를 흔들며 고통을 호소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검사 결과 보고 곧 빼드릴 겁니다.”

중환자실 특유의 기계 소리와 한눈에도 심각한 환자들이 사방에서 보이자 몹시 불안한지 한대현이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김지훈이 침대 옆에 앉아 최대한 환자를 안심시켰다.

얼마 후, 수술 직후에 내보낸 검사 결과들이 나왔다. 불안한 점들이 많았지만 환자 상태까지 고려한다면 호흡기를 제거하기에 충분했다. 김지훈이 호흡기를 빼주자 한대현이 컥컥거리며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찾았다.

“어… 엄마…….”

“보호자 대기실에 계실 겁니다. 면회는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음! 한 시간 있으면 면회 시간이니까 곧 볼 수 있겠네요.”

말을 마친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환자들은 백이면 백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먼저 찾았다. 열 달 동안 어머니 속에 있다 세상에 나와 어머니의 젖과 눈물을 먹고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네. 우리가 무슨 말을 했고, 뭘 같이 했었지?’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아니면 정말 특별한 추억이 없는 것인지 딱히 떠오르는 기억이 없었다. 분명 가족을 위해 하루 종일 땀을 흘렸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희미하기만 한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리던 김지훈이 문득 먹먹해지는 가슴에 고개를 흔들었다. 추억이 없다고 사랑까지 잊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수술 후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사이, 어느새 면회 시간이 왔다. 부모가 들어오기 전에 거즈를 깨끗하게 갈아 주기 위해 드레싱을 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였던 피가 나오는 것 치고는 색깔이 너무 밝고 생각보다 양도 많네. 손상이 너무 심해서 그렇겠지.’

찜찜했지만 지금은 한대현이 순조롭게 깨어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들어서는 보호자들 중에 한대현의 부모가 있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아들의 손을 잡은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이 서글펐다. 퉁퉁 부은 얼굴만 쓰다듬었다.

“엄마!”

한대현도 이제야 눈물을 흘렸다.

묵묵히 서서 아들을 지켜보던 한철수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눈가에 잔뜩 힘을 주며 입술을 꽉 물고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면회 시간 내내 울고 있는 부인과 아들만 지켜보다 마지막에 한마디 말만 했다.

“대현아, 내일 아침에 보자.”

돌아선 한철수의 눈에서 이제야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인지, 김지훈의 손을 꽉 쥐며 인사를 하고는 짧은 면회를 끝냈다.

얼마 후, 이준영 과장이 들어와 한대현의 상태를 살폈다.

“검사 결과는 어때?”

“간 기능과 신장 기능은 정상적입니다. 혈색소 수치도 수술 직후에는 11.6이었고, 지금은 11.8로 안정적입니다.”

“드레인은?”

“시간당 거즈 한두 장 정도 부분적으로 젖고 있습니다. 배 속에 남아 있던 피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드레인을 감싼 거즈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중환자실을 나갔다. 마침 오후 회진을 돌 시간이 돼 김지훈이 그 뒤를 따랐다. 한철수가 면회를 하고 난 뒤에도 불편하기만 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시네. 하루 이틀 싸움도 아니고, 내일은 출근도 해야 할 텐데.’

이준영 과장이 짧게 현 상태를 설명하고는 병동으로 향했다. 안도하는 한철수를 보며 김지훈이 재빨리 말했다.

“아버님, 이러다 먼저 쓰러지십니다. 최소한 대기실에서 기다리세요.”

“아닙니다. 제가 여기 있어야 아들놈에게 힘이 될 겁니다.”

“그럼 어머님과 교대를 하시든지요.”

“사실 와이프도 몸이 많이 안 좋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제 아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고집스러운 표정에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부리나케 달렸다. 이준영 과장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궁금한 게 있대?”

“아닙니다, 선생님.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해도 수술이 끝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 의자에 앉아 꼼짝도 안 하시네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면 그래도 좀 편할 텐데요.”

이준영 과장이 슬며시 한철수를 보았다. 아픈 자식을 둔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평소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 하지 않아도, 그 속에는 어머니만큼이나 뜨거운 사랑을 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였다.

문득 이혁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10년 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들이었다. 이혁원의 입장에서는 자식을 버린 아버지일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자신은 분노와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혁원아, 미안하다. 훌륭하게 자라 줘서 고맙다.’

깊은 밤 홀로 있을 때면 어김없이 생각났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었다.

착잡한 표정을 지은 이준영 과장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이럴 때는 환자에게 집중해야 잠시라도 그리움과 죄책감을 잊을 수 있었다.

***

월요일 내내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조심하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이유는 빤했다. 아침에 받은 주말 수술 보고 때문이었다.

비록 외상이지만 이준영 과장이 간을 절제했다. 수술을 하는 것조차 보기 싫은데, 다른 부분도 아닌 자신의 전문 분야였다. 더구나 초응급 상황에서 광범위한 간 절제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교수와 전공의들 몇몇은 나직한 감탄까지 터트렸다. 아무도 없었으면 손에 잡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던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시간이 가도 분위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갑갑하게만 하는 묘한 긴장 속에 하루가 흘렀다.

그날 저녁 손일석이 호들갑을 떨었다.

“지훈아, 내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해 줄까? 책 좀 그만 보고, 내 말부터 들어 봐.”

간 절제 후 합병증에 관한 부분을 읽고 있던 김지훈이 손일석을 째려보며 눈가를 찌푸렸다. 한대현의 드레인에서 계속 피가 나오고 있었다.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점점 양이 늘고 있었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뭔데, 인마.”

“이혁민 선생님이 이상해졌어. 오후에 우리 파트 양방 뜬 건 알지? 나도 그때 수술 방에 있어서 현수가 잠깐 브레스트 수술에 들어왔거든. 완전 개박살 났다. 얼굴이 누렇게 뜨는데, 보는 내가 다 안타깝더라.”

“뭐? 큰 실수라도 했어?”

“브레스트에 로칼(local:국소 마취하의 수술)이었는데, 그럴 일이 뭐 있어? 근데 하여튼 무지하게 타더라. 언뜻 들으니까 그동안 뭐 했냐, 이게 2년차 손이냐, 정신 똑바로 차려까지 정말 살벌했다. 오늘 현수 조심해라. 그 자식, 슬쩍만 건드려도 그대로 터질 거야.”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곤조곤하게 말로만 타도 살벌하긴 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식은땀이 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런 면을 잘 알고 있는 손일석이 호들갑을 떨 정도라면 분명 전과 달라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석아, 넌 안 탔어?”

“내가 누구냐. 손일석이야, 인마. 나처럼만 해 봐. 탈 일이 없어요. 내가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은 신기동 선생님 한 분뿐이야. 그것도 멀지 않았다. 음하하하! 이제 네놈들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건가.”

그놈의 웃음도 무협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허탈해서라도 웃었겠지만, 지금은 한대현에게 신경이 쓰여 웃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자식! 내 말에 충격 먹었구나. 그럴 만도 하지.”

거만한 미소를 머금으며 손일석이 혈관 수술에 관한 책을 펼쳤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책을 덮으며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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