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89화 (289/1,329)

제6화 의사의 한계 Ⅱ (3)

손상된 간 위에 선 하나를 그었다. 한대현에게는 생사의 선이었다. 수술 팀에게는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이었다.

누구보다도 큰 부담을 느낄 이준영 과장이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지훈, 이 선을 기준으로 우측 간은 모두 제거하고, 반대쪽에 손상된 부분은 어떻게든 봉합해 살린다. 이 정도 손상을 받은 환자의 경우, 생각보다 더 많이 살리지 않으면 수술 후 간 부전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명심해.”

수술의 목표가 정해졌다. 지체하지 말고 진행시켜야 할 때였다. 제거하기로 결정된 부분을 거칠게 보일 정도로 과감하게 제거했다. 노출된 혈관과 담도는 보이는 대로 묶었다.

‘위이잉’ 하는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울렸다.

“혈압은 80에 60이고, 박동 수는 120횝니다.”

바이탈이 회복되질 않았다. 수술실에 있는 이상 바이탈을 잡는 것은 마취과의 일이었다. 외과 의사는 수술에만 전념해야 했다. 그것만이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준영 과장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가시질 않는 긴장과 불안으로 등짝이 축축하게 젖은 김지훈이 이를 악물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이었다.

이제야 잘게 부서진 간 조각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준영 과장이 눈빛을 굳힌 채 묵묵히 손만 놀렸다. 모든 신경이 오로지 손상된 간에만 집중되고 있었다.

얼마나 빠르게 수술을 끝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간 봉합용 바늘.”

끝이 뭉툭하고, 지름이 7~8센티미터에 달할 정도로 큰 바늘을 이용해 살리기로 한 부분을 깊숙하게 떴다. 끝이 뭉툭하고 둥글어야만 간 속에 주행하는 혈관과 담도의 손상을 최대한 피할 수 있었다.

“타이.”

타이를 하던 중 봉합사가 끊어진다면 다시 간에 바늘을 찔러야 한다. 또 다른 손상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타이를 했다.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묵직해질 정도의 힘을 사용했다. 금경태 과장의 수술을 보지 못했다면 최소한의 감도 못 잡았을 것이다.

첫 번째 봉합이 끝나자 이준영 과장이 말없이 두 번째 바늘을 떴다. 타이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두 번째 타이를 했다.

갈라지고 깨졌던 간들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준영 과장의 빠른 손에 최대한 보조를 맞추며, 간은 어떻게 봉합을 하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금경태 과장과의 다른 점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신현수 역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마침내 살리기로 한 부분을 모두 봉합했다. 이준영 과장의 시선이 다시 마취과로 향했다.

“마취과, 혈압은?”

“90에 60 정도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심장 박동 수는 100회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안심할 수 없는 수치였다. 혈액과 수액을 투여하며 바이탈을 잡고 있는 마취과 전공의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이준영 과장이 손을 멈춘 채 이미 진행된 부위만 꼼꼼하게 다시 살폈다. 잠시 당황했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숨어 있는 출혈 부위가 있다면 혈압이 다시 떨어질 수밖에 없어. 그런 상태에서 수술을 계속 진행하다 뒤늦게 출혈을 발견하면 손을 쓰기가 더 어려울 가능성이 높겠지. 아무리 급해도 이런 수술은 출혈을 잡지 못하면 실패라는 것을 잊지 말자.’

시간이 관건인 수술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도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주변 장기에 손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김지훈이 마치 그런 생각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귀중하기만 한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뭔가 생각한 것이 없다면 분명히 시간을 끄는 이유를 물었을 김지훈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만일 심각한 출혈 부위가 남아 있다면 지금쯤 피가 많이 고였을 것 같습니다.”

조금은 놀랐는지 이준영 과장이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이 신현수에게 눈짓을 하며 간 주변의 시야를 확보했다. 소량의 피만 고여 있었다. 일단 우려할 만한 출혈은 모두 잡았다는 의미였다.

수술 팀의 시선이 일제히 마취과로 향했다. ‘위이잉’ 기계음이 울렸다. 한대현의 팔에 단단히 고정된 혈압계 커프(cuff)가 서서히 풀리며 혈압을 체크했다.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입이 바짝 말랐다.

모니터를 보던 마취과 전공의가 돌아섰다.

“혈압은 100에 60이고, 박동 수는 90회입니다.”

이보다 반가운 말은 없었다. 바이탈이 이 정도만 유지된다면 최소한 수술 중에 사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김지훈은 물론 신현수까지 주먹을 불끈 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대로만 가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듯 퍼졌다.

그 순간 찬바람이 휭 불었다.

“김지훈, 신현수, 수술 안 끝났어.”

이준영 과장만이 눈빛을 굳힌 채 김지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수술이 아직 안 끝났고, 아직은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는데 너무 빨리 안심을 했어. 집도의가 아니더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 돼.’

정신을 바짝 다잡은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김지훈, 수술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 마음을 놓으면 안 돼. 지금처럼 그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한 번 더 바이탈을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소변이 잘 나오는 것까지 점검한 후 수술을 재개했다. 이준영 과장의 한마디에 수술 팀은 물론 마취과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시간과의 싸움이 이어졌다. 이제는 환자의 바이탈만이 아니라, 수술 후 간 기능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하는 것 역시 주요한 목적이었다.

아직도 소량의 출혈을 하고 있는 절단면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출혈량이 적은 곳은 단순 봉합으로 처리했다. 양이 많은 부위는 다시 자른 후 꼼꼼하게 봉합과 타이를 진행했다.

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였다. 또한 우측으로 갈수록 점점 커지기에 절단된 면 또한 상당히 넓었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지만 한대현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수시로 바이탈을 점검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손이 빠르고도 정확하게 움직였다. 2년차의 손이라고는 다소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삐! 삐! 삐! 삐! 삐!

푸우욱! 푸우욱!

규칙적으로 들리는 환자의 심장박동과 인공호흡기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렸다. 수술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특히 인턴 대신 써드를 서는 신현수 덕에 인턴의 미숙함까지 사라졌다.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의 손이 척척 맞아 들었다. 어느새 절단면의 혈관과 담도를 모두 처리하고, 절단된 부위에 혈액 응고제를 바르고 있었다.

드디어 간 손상 부위에 대한 처치가 모두 끝났다. 꼬박 4시간이 걸렸다. 이준영 과장이나 경험 많은 마취과 의사의 예상보다 빨리 끝났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단축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대현에게는 목숨과 바꾸었을지도 모를 귀중한 시간이었다.

“혈압은 100에 60이고, 박동 수는 90회입니다.”

아직은 불안한 상태였지만,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바이탈에 모두들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다른 장기 손상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간이 부서질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간 주변에 위치한 장기들은 손상을 입을 시 매우 위험한 경우가 많았다.

십이지장과 담도 및 췌장의 머리 부분은 물론 우측 신장까지 확인했다. 다행히 늑골 몇 개가 부러진 것 이외에 추가 손상은 없었다. 그나마 운이 좋았다는 말 이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배 속을 깨끗이 세척하고 드레인 3개를 박은 후 수술을 끝냈다. 창백하기만 했던 환자의 얼굴에 벌거스름한 홍조가 돌았다. 여전히 정상보다 낮은 수치였지만 혈압은 안정적이었고, 소변도 잘 나왔다.

이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김지훈도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간의 절반 이상이 산산조각 난 환자를 살렸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환자 상태에 대한 적절한 판단과 상황 변화에 따른 과감한 결정, 그리고 막힘없이 움직인 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스승님이시다. 누가 이렇게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었다. 평소처럼 인사를 하려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지훈, 수고했다.”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이었다.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비록 퍼스트에 국한된 말일지라도 확실하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더구나 그 말을 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승이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갈 수 있다는 강한 희망과 각오가 가슴속을 휘감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김지훈의 힘찬 목소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칭찬받을 자격이 충분해.’

남몰래 미소를 머금던 이준영 과장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신현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어떤 의미인지는 이준영 과장만이 알 일이었다.

신현수가 마른침을 삼키며 이준영 과장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퍼스트를 선 김지훈의 실력 역시 정말 놀라웠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김지훈, 당당하게 붙어 보자. 난 반드시 널 이기고 만다.’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며 환자와 함께 수술 방을 나왔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부모가 달려왔다.

기관에 삽관한 튜브조차 제거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 경과와 향후 문제를 설명했다. 아직은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던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격해졌다.

학비를 벌겠다고 나선 자식이었다. 아침까지 멀쩡한 얼굴로 인사를 하며 웃었던 아들이었다. 그동안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 준 것이 못내 서럽고 아쉽기만 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을 들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아픔을 주체하기 힘든지 입술을 꽉 깨물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한대현의 아버지는 그 말 한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이준영 과장의 말대로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수술은 환자 치료의 시작일 뿐이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 후, 김지훈이 서도진과 머리를 맞댔다. 지금도 신현수는 옆에 있었다.

“도진아, 오늘 복부 CT 소견 잘 기억해. 나도 식겁했다. 멋모르고 배를 열었다가는 큰일 나겠어. 그리고 수술 후 삼 일째까지는 하루 세 번 혈액 검사 내보내고, 혈색소 수치만이 아니라 간 기능하고 콩팥 기능까지 확실하게 확인해야 돼. 역시 간부전하고 신부전이 제일 문제가 되지 않겠어?”

김지훈의 말투가 묘했지만 서도진은 열심히 받아 적고만 있었다.

“예, 선생님.”

“지금 바로 흉부 촬영하고, 매일 아침마다 찍고 확인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마. 늑골 골절도 문제지만 혈액하고 수액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 잘못하면 폐에 물차겠다. 상황 봐서 소변 잘 안 나오면 이뇨제 팍팍 써야겠지?”

출혈도 많았지만 환자의 몸속에 주입된 피와 수액의 상당 부분이 조직 속으로 스며들어 갔을 것이다. 이 또한 폐와 콩팥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체된 물이기 때문에 빠르게 제거해 주어야 했다.

김지훈이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말했다.

“도진아, 내가 빠트린 거 잊으면 너도 나한테 알려 줘. 올라가 봐.”

서도진이 깜작 놀랐다.

“선생님, 이 환자 킵(keep)해야 되지 않습니까?”

“킵? 당연히 해야지. 이준영 선생님 파트는 나밖에 없는데 누가 서니. 니가 설래?”

“예. 제가 서겠습니다.”

“아이구!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세요. 과장님이 아시면……. 아니다. 빨리 올라가서 일하고, 혹시 노티할 일 있으면 삐삐 쳐.”

이젠 중환자실에 환자가 있다고 해도 치료에 관한 한 당황하거나 힘들어하는 김지훈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대현은 경우가 달랐다. 최소한 중환자실을 벗어날 때까지는 1년차처럼 살아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는 서도진을 올려 보낸 김지훈이 한대현을 보았다. 죽고 사는 문제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2층에서 떨어졌을 뿐이었다. 훨씬 높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멀쩡한 경우를 종종 보았다. 그런데 한대현은 생사의 기로에 섰었고,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단지 한 고비만을 넘겼을 뿐이었다. 앞으로 넘어야 할 고비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한대현 씨, 힘냅시다.’

한대현과 같은 환자를 볼 때마다 의사의 한계를 절감했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해서 반드시 산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저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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