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88화 (288/1,329)

제6화 의사의 한계 Ⅱ (2)

수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바이탈을 잡지 못하면 수술 방에 올라가기도 전에 사망할 상황이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대량의 혈액과 수액을 공급하며 혈압이 잡히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응급실로 돌아온 신현수가 바로 올려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환자를 옮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잔뜩 인상을 쓰며 환자를 보았다.

한대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20살의 젊고 건장한 환자.

‘한대현, 스무 살에 죽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최소한 수술이라도 할 수 있게 힘을 내.’

모두들 환자의 바이탈이 잡히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환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착했다. 환자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설명을 들은 어머니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버지 역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선생님, 제발 살려 주세요. 학비를 벌겠다고 주말이면 공사장에 나가 일을 한 자식입니다. 부모 잘못 만난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 주세요.”

어머니의 통곡에 가까운 소리에 아버지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준영 과장이 보호자들을 처치실로 안내했다. 보호자에게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어쩌면 심장이 뛰는 자식과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왔지만 아무런 말도 없는 아들.

생기마저 사라진 것 같은 반쯤 뜬 눈.

창백한 얼굴과 부풀어 오른 배.

쉬지 않고 자식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시뻘건 피.

“대현아! 엄마가 왔어. 눈 좀 떠 봐, 대현아!”

아들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울부짖었다. 눈가가 붉어진 아버지가 어머니의 어깨를 잡았다. 입술이 하얗게 변하도록 꽉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치료를 위해서는 더 이상의 시간을 허락할 수 없었다. 불과 일이 분도 되지 않는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 끝났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간신히 뗀 보호자들이 처치실을 나가자마자 전공의들이 우르르 환자에게 달려들었다.

삐삐삐삐삐삐! 삐이이익! 삐이이익!

심장박동 수가 떨어질 줄 몰랐다. 요란한 경고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할 수 있는 모든 처치를 하는 전공의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가 남아 있었다.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수술 방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조차 불확실했지만, 기회가 왔을 때 지체 없이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보호자를 찾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해 수술과 마취 중에는 물론, 수술 후 합병증까지 온통 아들이 사망할 수 있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환자의 아버지가 동의서를 받아 들었다. 볼펜을 든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사인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의사로서는 정말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순간이었다.

답답한 숨을 내쉰 김지훈이 처치실로 돌아오자마자 소리쳤다. 반드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도진아, 피 더 시키고 수액도 짜. 비지에이 다시 하자.”

피로 가득 찬 환자의 배가 점점 불러 왔지만 바이탈은 잡히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어레스트(arrest:심 정지)까지 난다면 한대현을 살릴 방법은 없었다.

가슴과 양팔에 연결된 라인을 따라 새로운 피와 수액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혈액 팩(pack) 두 개에 가득했던 피가 급속히 사라졌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 결과를 본 서도진이 환자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주사제를 투여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이제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의지와 힘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김지훈의 입술이 바짝 말라 갔다. 그때 돌연 모니터 경고음이 사라졌다.

잔뜩 인상을 구긴 채 이마를 주무르던 이준영 과장이 힐끗 모니터를 보았다. ‘위이잉’거리는 기계음이 들릴 때마다 혈압을 알려 주는 수치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80/50 - 90/50 - 100/60.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바이탈이 안정되기를 기다릴 수가 없는 환자였다. 여기서 다시 혈압이 떨어진다면 수술도 하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다.

“환자 올려.”

김지훈이 거의 동시에 소리치며 뛰쳐나갔다.

“도진아, 환자 올려. 현수야, 올라가자.”

계단을 따라 3층까지 내달렸다. 수술 방 문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마취과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고개를 내밀며 우르르 달려 나왔다.

“환자 올라옵니다. 혈압은 100/60입니다.”

환자가 얼마나 버틸지 몰랐다. 정신없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수술 방 문이 열리고 있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환자를 실은 이동식 침대를 잡고 수술실로 달렸다. 보호자를 만나 마지막 설명을 하는 이준영 과장의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또 나왔다.

Table death(수술 중 사망)!

모든 의료진들이 우르르 환자를 에워쌌다.

주렁주렁 매달린 혈액과 수액을 정리하고 바로 마취에 들어갔다. 마취가 되기를 기다릴 시간조차 아까운 상황이었다.

“마취과 선생님, 소독 시작합니다.”

손을 씻고 들어온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이 마취도 되기 전에 환자의 배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환자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한 마취과 교수가 빠르게 마취를 마무리했다.

“혈압은 90에 60이고, 박동 수 95회입니다.”

수술을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마취과 의사의 경고였다. 마취를 하면 몸 전체의 근육이 이완되며 혈관을 압박하는 힘이 줄어들고, 그 때문에 혈압이 떨어지게 된다. 한대현처럼 혈압이 불안정한 환자의 경우에는 특히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소독이 끝나고 환자의 몸 전체를 깨끗한 천으로 덮자마자 서도진과 신현수가 빠르게 자리에 섰다. 아무도 인턴 대신 신현수가 써드 자리에 섰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메스.”

주우우욱!

단번에 복벽을 깊숙이 절개했다. 길고 깊은 절개 창에서 단 한 방울의 피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환자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혈관을 따라 흐르는 모든 피를 필수 장기에 보내고 있을 것이다. 빠르게 복막을 열자마자 배 속에 가득 고인 피가 배 밖으로 줄줄 넘쳐흘렀다.

환자의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복강 내 압력이 갑자기 줄며 출혈까지 심해진 탓이었다.

삐! 삐! 삐! 삐! 삐!

마취과 의사의 다급한 경고가 들렸다.

“혈압 80에 60입니다. 박동 수 110회로 증가합니다.”

“탭(tap:수술용 천). 워터(water). 석션(suction:흡입).”

배 속의 피를 제거하기 위한 모든 방법이 동시에 동원됐다. 피를 잔뜩 흡수한 탭들이 수술실 바닥에 쌓여 갔다. 따뜻한 물로 응고가 시작된 피를 빠르게 씻어 냈다. 석션기를 통해 시뻘겋게 변한 물이 줄줄 빨려 나왔다.

잠깐 사이에 수술실이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김지훈이 빠르게 손을 놀리며 신현수에게 눈짓을 했다. 이준영 과장 옆에 섰던 신현수가 리트랙터를 강하게 끌었다. 손상된 간의 윗부분이 보였다. 아직도 주변에는 피가 잔뜩 고여 있었다. 신중하게 손을 움직여 수술 시야를 확보해야 할 때였지만, 지금은 시간이 생명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공기에 노출돼 덩어리지기 시작한 피를 과감하게 손으로 퍼냈다. 피를 제거하기 용이하도록 물을 부으며 석션을 하던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덩어리진 피와는 다르게 보이는 덩어리가 보였다.

“선생님, 이건 피가 아닌 것 같습니다.”

김지훈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준영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지훈이 가리킨 덩어리는 응고된 피가 아니라 부서진 간이었다. 복부 CT로 판단한 것보다 훨씬 손상이 심했다. 수술 방법이 완전히 달라져야 했다.

“탭!”

이준영 과장이 간 위로 탭을 우겨 넣었다. 간이 꽉꽉 눌릴 때까지 탭을 밀어 넣은 후, 재빨리 주변에 고인 혈액들을 제거했다. 마취과 의사의 세 번째 경고가 울렸다.

“혈압 70에서 잡힙니다.”

간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지만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간이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부서졌거나, 아니면 간 내 혈관이 손상을 받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전자라면 수술 중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후자라면 아직 기회가 있었다.

“김지훈, 출혈 부위부터 확인한다.”

이준영 과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지훈이 간 동맥과 간 문맥이 간으로 들어가는 부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퉁퉁 부은 소장을 밑으로 밀어 내리고, 담낭과 총수담관을 노출시키며 소리쳤다.

“인턴 선생, 포커스 맞춰. 도진아, 더 세게 끌어.”

무영등의 환한 불빛 아래 손상된 간 일부가 드러났다. 간 동맥과 손가락만큼이나 굵은 간 문맥이 간으로 들어가는 부위까지 깨져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빠르게 손상 부위를 확인했다. 간 문맥 손상이 강력히 의심됐다. 분명 정맥 중 하나지만, 간에서 보면 동맥처럼 대량의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이었다.

수술 시야를 확실하게 확보하기 위해 간을 누르고 있던 탭 하나를 제거했다. 그 순간 검붉은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피가 고이며 간 문맥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대현의 육신이 한계에 부딪쳤다. 모니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이이! 삐이이! 삐이이!

이준영 과장이 손상된 간을 압박하며 소리쳤다.

“혈관 겸자.”

동시에 김지훈이 흘러나오고 있는 피를 석션기로 제거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겸자를 받아 든 이준영 과장이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김지훈이 탭으로 피를 제거하며, 간 문맥을 따라 석션기를 바짝 들이댔다.

기괴한 소리가 나며 피가 제거되는 순간, 간 문맥이 살짝 드러났다. 이준영 과장의 손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동시에 김지훈이 그 윗부분을 한 번 더 잡았다.

따가각! 따가각!

출혈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그러나 요란한 경고음은 멈추지 않았다. 혈압이 너무 떨어져 수술까지 일시 중단됐다. 마취과 의사들이 바이탈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수술 팀에게는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이 흘렀다. 입안의 침이 바싹 말라 왔다.

어느 순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경고음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준영 과장이 마취과를 보았다.

“혈압은?”

“80에 60이고, 박동 수는 120횝니다.”

수술 팀과 한대현이 한 번의 기회를 다시 얻었다. 하지만 간 문맥의 출혈을 잡았는데도 혈압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남은 출혈 부위는 명확했다. 간이 조각조각 부서졌다면, 그 안에 있던 동맥과 문맥의 수많은 분지들이 함께 잘렸을 것이다.

간을 누른 채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과장이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 우측 간 문맥 분지는 묶어 버리고, 조각난 간 중에 작은 것은 모두 포기한다. 일단 다 제거하고 살릴 수 있는 부위만 살리자. 타이.”

혈관 겸자로 잡았던 간 문맥을 묶고 잘랐다. 이것만으로도 간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했다. 조심스럽게 간을 눌렀던 탭을 하나씩 꺼내며 조각난 간을 제거했다. 그냥 손으로 꺼낸다고 할 정도로 손상이 심했다.

잠깐 사이에 제거한 간만 한 움큼이었다.

남은 간이 보였다. 아직도 혈관과 간 내 담도에 연결된 채 간신히 형체만 유지하고 있는 간 조각들이 관찰됐다. 그 부분에서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살릴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마취과가 다시 혈압이 떨어진다는 말을 했지만 이준영 과장은 신중하게 간을 살폈다.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어디까지 제거하고, 어디까지 살려야 환자가 살 수 있을까?

집도의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무턱대고 손상된 간을 모두 제거하면 수술 후에 간 기능 부전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대로 이를 우려해 출혈 부위를 확실히 잡지 못하면 그 또한 사망을 초래할 것이다. 더구나 한대현이 언제까지 버텨 줄지 알 수 없었다.

허용되는 수술 시간까지 고려해 최적의 수술 부위를 결정해야 했다. 이는 온전히 집도의의 경험과 확신에 달려 있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런 경우 어디까지 제거해야 하지? 눈에 안 보이는 손상을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멀쩡해 보이는 좌측 간만 살려도 괜찮을까?’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수술이었다. 최악의 경우 한대현을 잃는다고 해도 다음에 똑같은 환자가 온다면 반드시 살려야 했다. 그러려면 하나라도 더 배워야 했다.

눈가를 잔뜩 찡그리던 이준영 과장이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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