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의사의 한계 Ⅱ (1)
김지훈과 신현수가 은근히 긴장하고 있었다. 언뜻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준영 과장으로서는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누가 정확하게 맞혔느냐가 아니었다. 집도의가 가져야 할 생각과 준비를 말하고 싶었다.
“적절하다는 말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판단은 어디까지나 집도의의 몫이야. 하지만 집도의의 판단 또한 가장 적절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어. 미리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라는 말에 집중해.”
이준영 과장의 눈이 간호사에게로 향했다. 신현수의 눈과 귀가 온통 이준영 과장의 입으로 쏠렸다.
“티 튜브(T-tube) 준비해요.”
김지훈의 판단이 더 적절하다는 말이었다. 콧등을 찡그리며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신현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순간 밀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같은 환자를 두고 다른 판단을 내렸다. 이준영 과장과 같은 판단을 내린 사람은 김지훈이었다. 최소한 기뻐하는 기색이라도 보일 줄 알았다. 그런데 김지훈은 별다른 반응도 없이 바로 수술에 집중했다.
“메스하고 화이트 실크 두 개 빨리 준비해요. 도진아, 너는 석션(suction:흡입)할 준비해.”
이준영 과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마치 여러 번 해 본 수술인 것처럼 척척 다음 과정을 준비하고 있었다. 금경태 과장의 수술을 참관한 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 이젠 이렇게 해야지. 금경태의 수술을 보며 내가 가르치지 못한 것들까지 배운 모양이구나.’
이준영 과장이 조심스럽게 담낭 벽에 두 바늘을 뜨자, 김지훈이 실을 받아 들며 신중하게 당겼다. 이준영 과장이 실 사이의 담낭 벽을 절개했다.
열린 구멍을 통해 끈적끈적하고 시커멓게 변한 담즙이 흘러나왔다. 서도진이 재빨리 담즙을 석션기로 빨아들였다. 빵빵했던 담낭이 순식간에 쪼글쪼글해졌다.
준비했던 T-tube(T 자 모양으로 생긴 투명한 플라스틱 관)의 머리 부분을 절개된 구멍에 넣고 주변을 조심스럽게 봉합했다.
김지훈이 타이를 하며 바짝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힘이 과하면 담낭이 찢어지고, 제대로 타이가 안 되면 튜브 주변으로 담즙이 새어 나올 수 있었다.
조심하라는 말 한마디쯤 나올 상황이었지만, 이준영 과장은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T-tube가 확실하게 담낭 내에 고정된 것을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피부에 구멍을 뚫어 남은 부분을 배 밖으로 뺐다.
담낭과 외부를 연결해 주는 주요 과정이 모두 끝났다.
담낭 내에서 정체되는 담즙과 염증성 체액이 T-tube를 통해 원활하게 배출되는 이상, 환자의 상명을 위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Cholecystostomy with T-tube
(T-tube를 이용한 담낭루 형성술)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고, 시간도 불과 15분 정도 걸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치 익숙한 수술인 것처럼 척척 보조를 맞춘 김지훈이 아니었다면 족히 두 배는 걸렸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수술 부위와 주변 장기를 살펴본 이준영 과장이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불안한 눈으로 수술을 지켜보던 마취과 교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르게 닫혀 가는 배를 보던 마취과 전공의가 서둘러 마취를 깨우기 시작했다.
마지막 봉합을 마쳤을 때, 패혈증에 빠진 고령의 환자가 몸을 뒤틀었다. 수술 중 환자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했다는 의미였다.
총 수술 시간 40분.
총 마취 시간 55분.
생각 이상으로 훨씬 빠르게 수술이 끝났다. 적절한 판단과 노련한 집도의,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퍼스트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부지런히 환자를 회복실로 옮길 준비를 하는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의 입가가 살짝 움직였다.
‘이제는 수술을 다시 줘도 되겠어. 이렇게만 가면 머지않아 더 어렵고, 큰 수술도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때를 위해 금경태에게도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워.’
이준영 과장의 시선이 신현수에게로 향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모습이 무언가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이혁민 교수에게 논문 문제까지 대충은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지훈을 라이벌로 생각한다면 오늘 일이 꽤 신경이 쓰일 것이다.
‘라이벌이란 게 그렇긴 하지. 복잡한 문제야. 하지만 신현수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김지훈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 할지 많이 고민해야 할 거야. 그건 그렇고, 금경태와 얽힌 논문 문제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놈이란 말이지.’
때론 엉뚱한 오해나 사소한 문제로도 사이가 벌어질 수 있는 것이 라이벌이었다. 자신과 금경태 과장 같은 사이가 된다면 외과의 손실이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할 수는 없었다.
“신현수.”
“예, 선생님.”
“네 판단도 적절했다. 다만 내 판단과 달랐을 뿐이야. 이런 경우에는 확실한 정답이 없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의사다.”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신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마치 보호자를 대할 때처럼 부드러웠던 것이다.
살벌하게 태웠을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2개, 아니 서도진까지 3개의 시선을 느낀 이준영 과장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하며 수술실을 나갔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수야, 너 혹시 이준영 선생님하고 개인적인 친분이라도 있어? 목소리가 왜 저러시냐.”
“친분은 니가 더 있지.”
냉정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 신현수가 회복실까지 따라와 함께 환자를 보았다. 딴청을 피우는 것처럼 엉뚱한 곳을 보고 있었지만, 서도진에게 환자 수술에 관해 설명을 하는 김지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지훈, 이번에는 네 판단이 더 적절했지만 다음번에는 어림도 없어.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내가 될 테니까 두고 봐.’
전과 비교해서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생각이었다. 표정도 예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기분 나쁜 얼굴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했다. 도리어 눈에 불꽃이 튀며 투지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무심코 신현수를 본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심상치 않은 눈빛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서늘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받은 것이다.
잘못 느낀 것일 수도 있지만,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였다. 죽으나 사나 신현수는 반드시 이기고 싶은 라이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밤, 김지훈도 신현수도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깜박 잠이 들었다 싶은 순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창문 밖이 환한 걸 보니 그래도 몇 시간은 잔 모양이었다.
기지개를 펴며 전화를 받은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것처럼 신현수를 흔들어 깨웠다.
“현수야, 응급실에 바이탈 흔들리는 환자 왔단다. 도진이 혼자서 잡기 힘든 모양이야.”
원칙대로 하면 신현수는 자도 그만이었다. 김지훈이 서도진과 환자를 본다면 굳이 함께 내려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신현수가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났다.
세수만 대충한 2년차 두 명이 급히 응급실로 향했다. 서도진의 목소리가 응급실을 울리고 있었다.
“여기 피 세 개 더 시키고, 중심 정맥 잡을 준비됐죠? 그리고 방사선과에서 연락 없었어요? 빨리 CT 찍어야 한다고 다시 재촉 좀 해요. 인턴 선생, 팍팍 좀 짜라.”
1명의 환자를 두고 서도진과 인턴 2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낮은 혈압과 급격하게 상승된 박동 수에 모니터가 삑삑 소리를 질렀다.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던 서도진이 김지훈을 보자 간략하게 노티를 하며 간호사에게 바로 눈짓을 했다.
“선생님, 이 층에서 떨어진 환잔데 헤모뻬리(혈복강)가 의심됩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 보호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탭니다.”
중심 정맥을 잡을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서도진은 아직 경험이 없었고, 서울 병원에서는 1년차에게 허락하지 않는 술기였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우측 쇄골 하 정맥에 굵은 도관을 넣었다. 간호사들이 재빨리 혈액을 옮겨 달았다.
서도진이 날카로운 눈으로 환자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인턴 선생, 소변 얼마나 나왔어?”
“거의 안 나옵니다.”
“거의가 아니고 정확하게 얼마나 나왔냐고?”
“지금까지 20cc 정도 나왔습니다.”
“간호사, 수액 하나 더 달고 인턴 선생은 피 계속 짜자. 어? 산소가 왜 오 리터야? 간호사, 산소 십 리터로 올려요.”
마음이 앞서는 것 같았지만 서도진은 환자의 바이탈을 확실하게 잡고 있었다. 환자 상태가 무척 급박한데도 정작 피를 짜 주는 정도 말고는 김지훈과 신현수가 크게 할 일이 없었다. 혹시 몰라 환자 처치를 꼼꼼하게 확인한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도진이 너답다.’
수액과 혈액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갔다. 파리했던 환자의 혈색이 조금은 돌아오며 혈압이 잡히기 시작했다. 때마침 CT를 찍을 준비가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서도진이 인턴과 함께 직접 방사선실까지 따라가 환자를 살폈다. 일반 외과 전공의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
김지훈이 신현수를 보며 말했다.
“도진이 참 엑설런트하네. 지적할 일이 하나도 없을 줄은 몰랐어. 바이탈에 관한 한 우리가 없어도 되겠다.”
신현수가 입술을 모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어느새 1년차들이 무섭게 성장해 자신들이 했던 일을 대신하고도 남을 정도가 된 것이다.
김지훈이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내가 왜 이렇게 뿌듯하지?”
이 와중에도 웃음이 나온다니, 참 희한한 일이었다. 그만큼 응급 상황에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뛰어난 후배에 대한 믿음인지 모를 일이었다.
서도진이 복부 CT를 들고 부리나케 뛰어들어 왔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챙기던 김지훈이 뷰박스로 향했다.
눈가를 찡그리며 자세하게 복부 CT를 보던 김지훈과 신현수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우측 간의 절반에 달하는 부위에서 간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검게 보이는 선들이 여러 개 보였다. 간 주변으로는 손상된 간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여겨지는 혈액들이 상당량 관찰됐다. 다행히 다른 장기의 손상은 보이지 않았다.
“현수야, 간이 깨진 것 같지?”
“그런 것 같은데.”
“제길! 어쩐지 피가 너무 많이 들어가더라. 도진아, 환자 갑자기 나빠질 수 있으니까 바짝 붙어서 잘 봐. 현수야, 미안한데 수술 방 좀 빨리 알아봐 줘.”
간은 혈액 덩어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동맥 역할을 하는 혈관이 두 개라는 특이한 혈류 공급 때문이었다.
간 조직의 혈액 공급을 맡는 간 동맥은 간에 들어가는 혈액 중 불과 20퍼센트만을 담당했다. 문제는 나머지 80퍼센트를 담당하는 간 문맥의 존재였다.
간 문맥은 소화기를 통과하며 영양소를 간직한 혈액들을 간 내로 운반하는 길이었다. 그래야 우리 몸이 흡수한 것을 분해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혈액이 간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혈관 구조를 가진 간이 파열되면 출혈량 역시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만일 간 동맥이나 간 문맥이 손상됐다면 수술 중에 사망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간이 가진 역할이 무엇인지 아직도 완전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하는 일이 많은 장기였다. 빠르게 손상을 복구하고, 간 기능을 회복시키지 않으면 어떤 합병증이 생길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김지훈이 급히 CT를 들고 당직실로 들어갔다. 이준영 과장의 판단도 동일했다. 조금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언제 환자가 과다 출혈로 인해 갑자기 사망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보호자가 도착하지 않아 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해도 즉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심한 간 손상은 혈관 손상만큼이나 빠른 응급 수술을 요했다.
이준영 과장이 바로 환자를 찾았다. 바이탈이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삐삐삐삐삐! 삐이이익! 삐이이익!
혈압이 떨어지며 박동 수가 백 회를 넘어가자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서도진과 인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피를 짜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던 소변도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