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의사의 한계 Ⅰ (1)
며칠 전, 간암 수술을 한 환자가 힘겹게 앉으려 하고 있었다. 급히 등을 받쳐 준 김지훈이 보조 침대에 앉았다. 인간성을 떠나 금경태 과장을 다시 보게 한 환자였다.
암 발생 위치가 좋지 않아 CT 소견만으로는 절제가 가능할지 확신을 할 수 없었던 환자였다. 언뜻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나 했지만, 최철한은 성공을 확신하지 않으면 절대 배를 열지 않는 사람이 금경태 과장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금경태 과장은 무려 7시간에 걸쳐 전체 간의 3분의 2에 달하는 우측 간을 완벽하게 절제했다.
수술 중에 본 금경태 과장의 손은 환상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고 간결했다. 특히 위험한 부위를 수술할 때는 양손을 자유롭게 쓰며 최대한 위험을 회피했다. 절로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그 덕에 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간을 어떻게 절제하는지 똑똑히 보았다. 물론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수술을 본 의사와 안 본 의사의 차이는 생각 외로 대단했다. 김지훈에게는 소중한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와 수다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김지훈의 입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좌측 간만 남은 상태였지만 환자는 꾸준한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의사에게는 그런 모습이 최고의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역시 환자가 건강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네. 암이란 놈이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기뻐해야 할 때는 기뻐해야겠지? 후우! 난 언제 저런 수술을 해 볼 수 있을까? 더 열심히 보고 배우는 수밖에 없겠지.’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기 마련이었다. 암 환자의 앞날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생존률은 말 그대로 확률에 불과했다. 환자에겐 0퍼센트, 아니면 100퍼센트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이만큼 의사가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알려 주는 질병도 없었다. 상당히 씁쓸한 일이기도 했다.
그날 밤, 바이탈이 흔들리는 환자가 연속으로 들어왔다. 김지훈에 1년차는 물론 손일석까지 내려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하필이면 무슨 바람이 들어 응급실에 왔는지 모를 악어까지 마주쳤다. 정형외과 환자라고 해도 4년차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손일석이 투덜거렸다.
“에이 씨! 아무리 정형외과라고 해도 짬밥이 있으면 바이탈 정도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 어떻게 4년차가 될 때까지 입만 가지고 다닐 수가 있어. 아니, 우리가 지 쫄다구야? 하라 마라 말은 정말. 내려오지나 말든지.”
“난 악어가 불쌍하다.”
“뭐? 악어가 불쌍해? 너 지금 제정신이야?”
“저 악어 말고 진짜 악어.”
김지훈도 역시 기분이 좋진 못했다.
4년차라고 나타나서는 아직도 유세를 떨고 있었다. 환자는 일반 외과에서 다 봤는데, 마치 혼자 일을 한 것처럼 구는 모습은 꼴불견 정도가 아니었다. 그나마 부목 대는 일도 정형외과 1년차가 다 했다.
“니 말도 맞다. 참! 지훈아! 악어가 군 복무를 면제받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더라. 전에 교통사고 한 번 났었는데, 그때 무릎을 많이 다친 게 사유란다. 부목 삼 주 댔는데 면제는 개뿔. 악어도 신의 아들인가 보다.”
뜬소문일 수도 있었지만 기분이 찝찝해진 김지훈이 바람을 쐬러 응급실 밖으로 나갔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뽑아 들고 조용한 곳을 찾았다. 시계탑을 보니 어느새 새벽 2시 반을 알리고 있었다.
‘손이 부족할 때는 4년차라고 해도 도와야지. 바이탈을 두려워하는 정형외과의 한계야, 아니면 악어라는 인간의 한계인지 모르겠네.’
물끄러미 허공을 응시하던 김지훈이 일어나려다 말고 고개를 쭉 내밀었다.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최윤성 환자와 부인이었다.
‘이 밤에 왜 나오신 거야?’
궁금함에 슬며시 환자에게 다가가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아무리 보아도 행색이 이상했다. 마치 퇴원하는 사람인 것처럼 부인의 손에 보따리 2개가 들려 있었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친 김지훈이 급히 달려갔다.
“할머니, 어디 가세요.”
“에구머니!”
깜짝 놀라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 부인이 일어서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최윤성 환자도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할머니, 무슨 일이에요. 이 새벽에 할아버지하고 어디를 가시는 거예요?”
부인의 손에서 보따리가 툭 떨어졌다. 눈시울이 붉어지다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김지훈의 팔을 잡으며 사정을 했다.
“선생님, 제발 우리 좀 보내 주세요.”
“할머니, 보내 달라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나중에 꼭 와서 밀린 돈 다 갚을 테니까 제발 우리 좀 보내 주세요. 선생님,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환자의 부인이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영문을 알 길이 없었던 김지훈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야반도주였다.
대학 병원의 치료비는 생각 외로 비쌌다. 암 환자의 경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도 제법 많았다. 넉넉지 못한 환자들에게는 집안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치료비를 내기 막막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아침에 텅 빈 침대만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후우! 차라리 얼굴이나 못 봤으면.’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어차피 돈 문제는 의사 소관이 아니라고 해도 당장 내일부터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였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지훈이 환자 상황을 찬찬히 설명하며 설득하려 했지만 환자의 부인은 고개만 저었다.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어요. 반드시 부족한 병원비는 갚을 테니까 제발 보내 주세요.”
항암 치료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완강하게 막아서자 눈물범벅이 된 환자의 부인이 하소연처럼 입을 열었다.
입원 보증금과 중간 정산까지는 다 했다. 미리 준비한 돈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리저리 조금만 융통을 하면 낼 수는 있었다. 그런데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 잠시만 돈을 빌려달라고 했고, 순박한 시골 노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돈을 내주었다. 물론 병원비라는 말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기를 치는 놈은 돈을 가리지 않는 법이다. 두 눈 멀쩡하게 뜨고 남은 돈을 모두 날렸다. 곤궁한 살림에 당장 남은 치료비를 모두 마련할 수도 없는 처지에 빠졌다. 전전긍긍하며 고민과 걱정을 하던 시골 노인들이 선택한 것은 더 이상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노부부의 행동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비난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죽했으면 암 환자가 항암 치료까지 포기하고 밤을 도와 사라질 생각까지 했을까.
무엇이 최선일까?
당연히 병실로 돌아가 남은 치료를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의 설득에도 노부부는 고개만 저었다. 급기야 무작정 병원 밖으로 달려 나갈 태세였다.
‘원무과에 알리면 이분들은 더 힘들고 괴로워하겠지?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인데.’
그때 문득 음성 병원의 진료비가 서울보다 훨씬 쌌다는 기억이 났다. 항암 치료라고 해도 분명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을 것이다.
김지훈이 환자 부인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했다.
“할머니, 그럼 이십 분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환자와 부인의 눈에 불안이 감돌았다.
“다른 사람을 불렀을 것 같았으면 벌써 불렀겠죠. 할머니, 이대로 가시면 할아버지 수술하신 거 아무 소용도 없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어디를 가시든 치료는 받아야죠.”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마음이 급해진 김지훈이 몇 번이나 뒤돌아보며 병동으로 향했다. 최윤성 환자의 차트를 몰래 집어 들고는 의국으로 들어와 환자 기록을 작성했다.
병명부터 수술명은 물론, 그간의 경과와 예정된 항암 치료 약제와 투약 일정까지 모두 세세하게 적었다.
시간이 없는 탓에 약자가 난무했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알아볼 단어들이었다.
부리나케 병원을 나왔다. 다행히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환자 기록을 든 김지훈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했다.
‘이게 정말 잘하는 일일까? 후우! 모르겠다. 일단 다 제쳐 놓고 환자 치료만 생각하자. 지방에 가도 항암 치료는 분명히 받을 수 있지. 됐어. 그럼 다른 생각 하지 말자.’
“할머니, 이거 할아버지 소견서예요. 어느 병원에 가시든 이것만 보여 주시면 알아서 잘 치료해 주실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꼭 남은 치료 받으세요. 그래야 후회하지 않으실 거 아니에요.”
소견서를 받아 든 환자의 부인이 눈물만 줄줄 흘렸다. 잘 듣지도 못하는 최윤성 환자의 눈가가 벌겋게 변해 있었다.
‘차비는 있을까? 버스를 타더라도 그때까지는 쉴 곳이 있어야 되잖아. 노인들한테는 새벽 공기가 쌀쌀할 텐데, 밖에서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최윤성 환자와 부인을 본 김지훈이 만 원짜리 몇 장을 보따리 속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동으로 향했다.
잠자리가 뒤숭숭할 정도로 심란했다.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아침부터 병동이 소란했다. 첫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할 최윤성 환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안 것이다.
간호사들부터 전공의들까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손일석은 머리까지 쥐어뜯고 있었다.
환자 치료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의사의 책임이기도 했지만, 그 때문이 아니었다. 손일석 역시 환자가 걱정돼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회진을 올라와 빈 침대를 확인한 이혁민 교수가 담담한 목소리로 의외의 말을 했다.
“이 환자, 경제 사정이 많이 안 좋았다. 아마 집으로 내려갔을 거다. 우리가 해야 될 중요한 치료는 다 했으니까, 남은 치료만 잘 받기를 바라자. 그놈의 돈이 뭔지.”
기분이 찜찜한지 안색이 어둡기만 한 이혁민 교수가 손일석을 보며 말했다.
“혹시 다른 병원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해서 환자 기록 꼼꼼하게 작성해 놓고 잘 보관해라. 연락 오면 병원에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바로 보내 줘.”
“예, 선생님.”
하마터면 손일석보다 먼저 대답을 할 뻔했다. 급히 입을 다문 김지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소한 전적으로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환자가 남은 치료를 받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의사의 한계는 의술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득 재력가라고 소문이 난 윤재철 환자와 남편이 차장 검사인 오현미 환자가 떠올랐다.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었다.
***
고경아와 몇 번의 데이트를 하는 사이 벌써 3주가 흘렀다. 그사이 첫 번째 항암 치료를 끝낸 오현미 환자가 퇴원을 했다. 금경태 과장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퇴원을 축하했지만, 차장 검사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왜 금경태 과장의 표정이 안 좋은지 모를 일이었다.
가장 큰 수술을 받은 윤재철 환자는 이제야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가장 강력한 항암제를 사용했지만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항암 치료의 부작용을 꿋꿋하게 이겨 내고 있었다.
전공의들에게도 큰 변화가 왔다.
1년차들이 첫 집도를 하고, 한꺼번에 거나한 집도식을 치렀다. 이제는 응급실 환자도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했다.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었지만 100일 당직은 공연히 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신현수와 손일석도 간간이 수술을 받으며 배움의 의지를 불태웠다. 비록 각자 꼭 해 보고 싶은 수술은 아니었지만, 서울 병원에서는 수술을 받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