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배우자. 그게 결국 남는 거다 (2)
금경태 과장이 들어왔다. 김지훈을 쓱 한 번 보고는 항상 그렇듯 습관적으로 박수를 두 번 쳤다. 수술용 장갑에 묻은 하얀 붕산 가루가 휘날렸다.
“시작하자.”
김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간간이 지나치며 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금경태 과장 파트를 돈 적이 없었다. 게다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큰 탓에 천안 병원조차 복강경 수술은 아직 시작을 하지 못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사실상 처음 보는 수술이기도 했다.
금경태 과장이 환자의 배꼽 주변을 날카로운 집게로 잡았다. 최철한이 재빨리 반대쪽을 잡고는 동시에 배를 들어 올렸다.
“트로카(troca).”
트로카는 환자의 배를 뚫을 때 사용하는 기구다. 금경태 과장이 10밀리미터 트로카를 배꼽 밑에서 강하게 찔렀다. 복벽이 뚫리자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에어(air).”
처컥! 처컥! 처컥!
환자의 배 속에 이산화탄소를 밀어 넣는 기계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김지훈이 머리를 긁적이며, 주말에 틈틈이 공부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이산화탄소가 가장 안전하다고 했지? 흡수도 잘되지만, 환자의 호흡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출이 되니까 중독될 일이 없겠지. 누가 생각해 냈는지 몰라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네.’
환자의 배가 점점 부풀어 올랐다. 배 속에 찬 공기가 일정 정도의 압력에 도달하자 자동적으로 공기 주입이 중단됐다. 빵빵해진 배를 탁탁 두드리며 압력을 확인한 금경태 과장이 트로카로 낸 구멍을 통해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모니터 화면을 통해 배 속 장기들이 보였다. 모든 영상이 확대되어 나오기 때문에 육안으로 볼 때보다 훨씬 자세하고 세밀하게 보였다. 이리저리 카메라를 돌려 간과 위, 그리고 대장과 소장까지 확인한 후, 환자의 우측 복부에 5밀리미터 트로카로 구멍 3개를 더 뚫었다.
그 구멍들을 통해 수술 기구를 집어넣은 금경태 과장이 간을 밀어 올려, 간 밑에 붙어 있는 담낭을 노출시키고는 서도진을 보았다.
“잘 밀어.”
잽싸게 수술 기구를 받은 서도진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복강경을 이용한 담낭 절제술에서는 간을 들어 올리는 것이 바로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경험이 많은 듯 최철한이 카메라 각도를 적절하게 바꾸어 가며 담낭을 화면 정중앙에 나타나게 했다.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모두들 환자의 배가 아니라 화면만 보고 있었다.
처음 어시스트를 서는 서도진이 적응이 안 되는지 자꾸만 화면과 환자 배를 번갈아 보았다.
반면 금경태 과장은 물론 최철한 역시 화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지만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었다.
‘개복할 때와는 다르게 눈과 손이 완전히 따로 놀아야 되는데, 저게 쉬운가?’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화면으로 보며 손을 놀렸다.
한참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던 김지훈이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금경태 과장은 단순히 손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수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손동작을 따라 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의 시선이 금경태 과장의 손과 화면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탄이 나왔다. 금경태 과장이 두 손을 모두 자유롭게 사용하며 담낭을 떼어 내고 있었다.
‘일단 화면에 뜨는 영상과 손동작을 정확하게 연결해야 돼.’
첫날, 첫 수술 참관부터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드르르르! 드르르르!
그때, 수술복 주머니 속에서 삐삐가 요동을 쳤다. 재빨리 번호를 확인한 김지훈이 급히 회복실로 나가 병동으로 연락을 했다. 당연히 환자 때문이었다.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병동으로 달려갔다.
급히 환자를 보며 필요한 조치를 하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수술을 봐야 한다는 마음에 너무 조급하게 굴고 있었다. 환자는 유리병과 같은 존재였다. 조그만 실수가 병을 깨트릴 수도 있었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었다.
‘후우! 앞으로 석 달 동안 지겹게 볼 텐데 서두르지 말자.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이 난리야.’
마음을 다잡은 김지훈이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환자를 보았다. 불안해하는 모습에 충분한 설명을 하며 안심을 시키려 최대한 노력을 했다.
병실을 나오자마자 다시 수술 방으로 달려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마무리 단계였다. 금경태 과장의 손과 화면에 다시 집중했다.
한 시간 반 만에 깨끗하게 담낭을 절제한 금경태 과장이 5밀리미터 트로카 구멍을 통해 배 속에 콘돔을 집어넣었다. 절제된 담낭을 능숙하게 콘돔 속에 넣은 후 잡아 뺐다.
수술 부위를 세척하고, 주변부 손상이 있는지 확인한 후 수술을 끝냈다. 복부에 난 창상 봉합은 다섯 바늘로도 충분했다.
김지훈이 나름 감탄을 했다.
‘수술이 정말 깔끔하네. 환자도 수술 후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을 테니까 정말 좋은 수술 방법이야.’
장갑을 벗은 금경태 과장이 절제된 담낭을 반으로 잘랐다. 까만색 담석 5개를 확인하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담석 때문에 수술을 했지만 다른 병변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을 해야지. 역시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해도 끝까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돼.’
첫날부터 보고 배워야 할 점이 의외로 않았다.
수술실이 깨끗이 정리되자마자 다음 수술이 이어졌다. 복강경 수술 한 건에 개복 수술 두 건이 남아 있었다.
김지훈이 참관을 하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무턱대고 아무 생각 없이 배우려고 한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간담도 쪽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손만 보면 무슨 소용이 있어? 일단 수술 자체부터 보자. 과정이 확실하게 눈에 익은 후에 손을 배우는 게 순서야.’
자꾸만 앞서는 욕심을 끌어 내린 김지훈이 수술 과정에 집중했다. 불과 두 번째 보는 복강경 수술이었지만, 첫 번째와는 상당히 다르게 보였다. 단순한 생각의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점심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수술 방과 병동을 오갔다. 그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뛰어다녀야 한다는 것이 무척 불편했다. 하지만 수술을 보며 얻는 배움과 즐거움 앞에서는 극히 사소한 일이었다. 물론 수술을 보는 내내 서 있던 탓에 온몸이 뻐근한 것은 감수해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파트의 하루가 지났다. 금경태 과장이 어떤 말을 할지, 어떻게 대할지 걱정이 컸지만 지극히 무난하게 지났다. 단 한마디도 듣지 못했어도 이렇게만 가면 불평을 할 이유가 없었다.
오후 회진을 끝낸 금경태 과장이 신현수를 불렀다. 신현수가 상당히 심각해 보여서 그렇지, 의국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의국 문이 열렸다. 그런데 표정이 정반대가 됐다. 화가 난 건지,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는지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반면 신현수는 눈가를 찌푸리면서도 짐을 덜어 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신현수, 논문을 포기하다니 내가 네놈을 잘못 판단했었나? 혹시 신동석에게 이번 일을 얘기했을까? 아니지. 자존심 때문이라도 말은 못했겠지.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는 법. 이럴수록 침착해야 돼. 감정에 휘둘리면 빤한 수에도 당할 수 있어.’
그때 인사를 하는 전공의들 사이에서 김지훈이 보였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감정을 죽이며 태연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금경태 과장이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김지훈,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면 내게 한 번이라도 반감을 보였겠지. 그간의 행동을 봐서는 확실히 단순한 놈이야. 이준영이 저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생각이 많은 신현수에게는 도리어 더 두려운 라이벌일 수도 있어. 내 뜻을 거역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차근차근 보여 줘야겠군.’
금경태 과장이 사라지자 전공의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현수에게로 향했다. 신현수가 별일 아니라며,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전공의들에게 저녁 한 시간은 특히나 아까운 시간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다. 이내 남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모두들 부산하게 움직였다.
***
다음 날, 김지훈과 손일석이 병동 일을 마치자마자 책상에 앉아 고개도 들지 않았다. 최종 논문 제출이 단 하루만 남았다. 오상익 교수 파트의 수술이 있는 날인 데다 신기동 교수 수술까지 겹친 신현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못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논문을 붙들고 씨름을 하던 김지훈과 손일석이 동시에 뒤로 넘어갔다.
“어이구! 머리야. 지훈아, 좀 썼냐?”
“쓰긴 뭘 써. 나도 머리만 아프다.”
“현수가 부럽다. 야! 논문 심사 통과되면 이거 완전 뉴스감인데. 선배들하고 교수님들 논문까지 제치는 거 아냐. 만일 세계 학회에서 채택이라도 되면?”
‘설마? 응? 아니지. 그럴 수도 있지. 세상일을 누가 알아.’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등짝을 휙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주무르며 논문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자꾸 시계만 보던 손일석이 급히 쓰던 논문을 정리하며 일어섰다.
“너도 아직 먼 것 같은데, 어디 가?”
“신기동 선생님 수술할 시간이 됐잖아. 수술실 밖에서라도 봐야지. 그래야 김지훈한테 창피하지 않은 혈관 외과 전문의가 될 거 아니냐. 혹시 콜 오면 수술 방으로 연락해 줘.”
고개를 젓던 김지훈이 웃고 말았다.
‘혈관 수술에 완전히 미쳤네. 하긴 저렇게 미쳐야 최고가 되겠지. 그런데 왜 난 저 정도로 관심이 가는 분야가 없지?’
당연한 일이었다. 혈관 수술에 관심이 조금 적다 뿐이지, 수술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 미쳤는데 구분이 될 리가 없었다. 김지훈이 입맛만 쩝쩝 다셨다.
‘에이! 스승님하고 이혁민 선생님 손만 자꾸 생각나네. 분야는 개뿔. 더 배우고 생각하자.’
얼마 후, 수술에 들어갔던 전공의들이 모두 나왔다. 쉴 사이도 없이 변함없는 저녁 일과가 끝나고 나서야 모두들 짧은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김지훈에게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응급 수술이 떴다. 탈 거리는 무궁무진했다. 이준영 과장의 가공할 공세에 파김치가 돼 수술실을 나왔을 때는 이미 새벽 1시가 넘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과 똑같은 것 같지만 스승님 분위기가 확실히 이상해. 신경 쓰이는 일이 있으신가? 웬만한 일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분인데 뭘까? 너무 피곤하셔서 그런가?’
얼마 전부터 받은 느낌이었다. 최근에 와 점점 그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었다. 딱히 떠오르는 일도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지훈이 찜찜한 얼굴로 의국에 들어섰다.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논문을 붙잡고 있던 손일석이 돌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현수의 표정도 참 편안해 보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김지훈이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었다.
“야, 손일석, 날 보니까 마음이 푹 놓여? 현수야 논문을 잘 썼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넌 이러면 안 되잖아.”
“뭐가 안 돼, 인마. 같이 혼날 놈이 있으니까 마음이 아주 편하다. 역시 우린 친구야. 힘들고 슬픈 일을 함께 나누잖아.”
“미친놈. 벼락치기의 진수를 보여 주마.”
본과 3학년 때 흔히 경험했던 일이었다. 스무 과목에 육박하는 시험을 일주일 안에 모두 치다 보면 불가피한 일이었다. 특히 0.5학점에 불과한 데다 형식적으로 배우는 치과는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손일석이 피식 웃었다.
“지훈아, 이게 시험이냐? 벼락이든 당일치기든 통하는 과목이 있지, 인마. 논문을 뭘로 보고.”
“번쩍이는 영감이 떠오를지 누가 알아.”
“번쩍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벼락치기의 벼락이 그 벼락이냐? 너나 나나 내일 처분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이혁민 선생님이 뭐라고 하실까? 으이구!”
손일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타는 것 또한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쫙 째려보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몸부림을 쳤다.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 어느새 새벽 3시가 됐다. 그때 당연히 날밤을 새울 줄 알았던 신현수가 논문을 책상에 탁탁 치며 일어섰다.
김지훈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어? 너 벌써 자려고? 그래도 우리 년차의 유일한 희망인데, 확실하게 점검해야 하지 않아?”
“유일한 희망이라니?”
“일석이나 나나 물 건너갔지만 넌 아니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라도 심사 통과를 해야지. 솔직히 자존심은 상하지만, 난 니 논문이 꼭 통과됐으면 좋겠다.”
진심일까? 주말에 오고 간 말들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닐까?
잠시 김지훈을 보던 신현수가 갑자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