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서로의 벽을 조금이라도 허문 것일까? (2)
정신없이 병원 밖으로 달려 나온 신현수가 냉정을 잃었다.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자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 중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잘못된 일이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김지훈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일들마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괴로워하던 신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하려 해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왔던 자신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후회라는 감정이 이렇게 고통스러울지는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격한 감정에 휘말린 신현수가 괴로움에 몸만 떨었다. 갑자기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턱을 타고 흐른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급기야 신현수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었다. 입을 막은 주먹 사이로 울음소리가 삐져나왔다. 단 한 번도 이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오고 서러운지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며 조금이나마 냉정을 되찾은 신현수가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인턴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왔는지 되짚었다.
김지훈과의 일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턱턱 걸렸다. 김지훈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신현수 자신 때문이었다. 그제야 뭔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다 내가 문제였어. 편협하고 잘못된 승부욕에 매몰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도 못한 거야. 지금이라도 되돌려야 해. 무엇부터 해야 하지?’
사방이 온통 깜깜하기만 했다. 그때 불빛 하나 없는 본관 2층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창문 하나가 보였다. 이혁민 교수의 진료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그동안 왜 이렇게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는지 알았다. 담담하게 듣고 자신을 뒤돌아보면 될 김지훈의 말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 이유가 있었다.
금경태 과장과 논문이었다.
모든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잘한 일도 있었고, 후회하지 않아도 될 일이 더 많았다. 하지만 논문에 관한 한 조금의 변명도 허락하지 않았다.
금경태 과장을 욕하고 탓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결국 내가 잘못한 거야.’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자만과 김지훈보다 무조건 잘나야 한다는 비뚤어진 생각이 만들어 낸 욕망의 결과였다.
문득 김지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과 김지훈을 보는 금경태 과장의 눈빛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즐겼는지도 몰랐다. 금경태 과장이 자신에게 각별한 신경을 쓰는 진짜 이유를 알면서도, 누구보다도 뛰어나다는 착각에 빠져 애써 무시했는지도 몰랐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했다.
어둠을 뚫고 일어난 신현수가 환하게 불이 켜진 진료실로 달려갔다. 이혁민 교수의 진료실이 맞았다.
숨을 고르며 눈빛을 굳히던 신현수가 문을 두드렸다. 이혁민 교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문을 열다 말고 흠칫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중환자실이나 병동에는 이미 행선지를 알렸으니 환자 때문에 직접 달려올 일은 없었다. 더구나 신현수가 노티를 할 이유도 없었다.
“신현수? 새벽 한 시에 무슨 일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달려온 신현수였다. 그런데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이혁민 교수가 진료실에 있었다. 알지 못할 힘을 얻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선생님, 밤늦게 죄송하지만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말에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자를 가리켰다.
“흠! 앉아라.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혁민 교수 너머로 진료실 책상에 잔뜩 쌓인 책과 논문들이 보였다. 이 밤까지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꽉 감고 말았다.
‘교수님도 이렇게 노력을 하시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난 논문을 낼 자격도 없는 놈이었어.’
부끄러움에 이혁민 교수를 볼 수도 없었다.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이혁민 교수가 말없이 신현수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선생님, 논문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제출한 논문은 제가 쓴 논문이 아닙니다. 과장님의 논문을 베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늦지 않았다면 논문 심사를 취소해 주십시오. 아니, 제출 자체를 취소해 주십시오.”
신현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논문 표절이 공공연한 일이라지만, 이혁민 교수는 이를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시간까지 논문에 매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질 일이었다. 그런데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가 의외로 담담했다.
“니 그것 때문에 이 시간에 날 찾아왔나?”
“예, 선생님.”
“그래? 그런데 니가 입만 다물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을 일 아니가? 굳이 내게 말을 하는 이유가 뭐야?”
왜 아무 생각도 없이 불 켜진 창문만 보고 달려왔을까? 다름 아닌 김지훈의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오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되자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의사?”
순간 스승인 허경발 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신현수가 스승과 만났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들었을까? 이혁민 교수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설마 김지훈이? 흐음! 내 짐작이 맞는다면 너희들이 서로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었다는 말인데, 이거 놀랄 일인걸. 이 밤에 뜬금없이 스승님의 말을 전할 교수는 없을 테니까 확실하겠어. 김지훈, 무엇 때문에 말했는지는 몰라도 아주 잘했다. 그런 말은 당연히 너희들끼리 나눠야지.’
흐뭇한 미소를 살짝 머금었던 이혁민 교수가 헛기침을 터트리며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논문 제출을 취소해 달라고?”
“예, 선생님.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혁민 교수가 묘한 눈빛으로 신현수를 보았다. 금경태 과장이 논문 작성을 도와주었다고 했지만, 논문을 읽은 순간 누가 쓴 것인지 직감했다. 그 이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고민했다. 금경태 과장에게 직접 대놓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계 학회에 낼 논문을 준 이유가 빤했기에 금경태 과장이 스스로 철회할 리도 없었다.
열쇠는 신현수가 쥐고 있었다. 절대 순간의 유혹과 욕심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인재였다. 그리고 오늘 그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고맙다. 훌륭하다. 네 용기가 정말 가상하다. 그래. 이렇게만 가다오. 그러면 너 역시 최고의 써전이 될 수 있어. 스스로를 믿고 가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 역시 신현수였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기에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였다.
이혁민 교수가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도 그러고 싶지만, 그건 곤란하다.”
신현수가 깜짝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벌써 심사가 끝난 겁니까?”
“심사? 신현수, 아직 난 최종 논문을 못 받았어. 그걸 받아야 심사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가. 니 설마 완성되지도 않은 논문에 내가 신경을 쓸 거라고 생각했나? 넌 이제 2년차야. 그리고 나도 석재와 쓰는 논문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그만 가 봐라. 쓸데없는 일로 방해하지 말고, 이럴 시간에 최종 논문이나 잘 작성해.”
신현수가 꼼짝도 하지 못하고 거칠어지는 숨을 간신히 참았다. 혼이 나기는커녕 큰 소리 한번 듣지 못했다. 그러나 몽둥이로 매타작을 당한 것처럼 아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해 주는 이혁민 교수의 마음에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신현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혁민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논문 자료를 뒤적였다.
“뭐 하나? 나도 집에 가야 한다. 빨리 가 봐라.”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 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신현수가 돌아서는 순간, 이혁민 교수의 나직한 말이 들렸다.
“신현수, 난 니가 그 어느 때보다도 자랑스럽다. 그리고 난 오늘 널 만난 적이 없다.”
신현수가 한 발작도 떼지 못했다. 금경태 과장에게 논문 문제를 꺼내면 모르긴 몰라도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게다가 오늘 일까지 안다면 이혁민 교수보다는 자신의 입장이 더욱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신현수 스스로 해결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판단과 적절한 조언이었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 준다는 것이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일 줄은 몰랐다.
신현수가 이를 악물며 울음을 참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절 용서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밤, 2년차 3명이 고민에 잠겼다.
부끄럽지 않은 의사가 어떤 의사를 말하는지, 최고의 써전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2년차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응급실을 오가며 환자를 보는 신현수의 눈빛이 변하고 있었다. 김지훈을 대하는 태도는 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진찰과 치료가 끝날 때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응급 수술 하나가 떴다. 수술 방으로 올라가기 직전까지 환자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신현수를 보던 김지훈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자식! 환자 보는 자세가 좀 달라졌네. 내 말 때문인가? 그러면 나한테도 좀 잘해라. 어떻게 아직도 표정이 없어요, 표정이. 차가운 자식.’
응급실을 나와 수술 방으로 향하는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왠지 기분 좋은 주말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수술실을 들어가기 직전까지였다.
아무리 잡아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바퀴벌레처럼 김지훈을 태울 거리도 한이 없는 모양이었다. 땀에 푹 젖은 재가 되어 수술 방을 나온 김지훈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해 냈다.
‘스승님, 다른 건 몰라도 타이 하나 끊어 먹었다고 정말 이러시깁니까? 배 속도 아닌 배를 닫던 중이었습니다.’
김지훈, 많이 컸다. 아니면 간덩이가 부었든지.
그런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었다.
드디어 100일 당직이 끝난 1년차들이 곳곳에서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벌이고 있었다. 각각 구미와 천안으로 가는 서도훈과 천광호를 아쉬움 속에 보낸 서도진과 안호석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막 수술실에서 나온 서도진이 떡이 진 머리를 한 채 헐레벌떡 1년차 숙소를 찾았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안호석이 씨익 웃으며 침대 밑에서 조용히 뭔가를 꺼냈다.
“수고했다, 도진아.”
“고생했다, 호석아. 우리 이제 정말 오프 가는 거지?”
“그럼, 가야지. 꼭 가야지.”
잔뜩 죽인 목소리였지만 팍팍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맥주 캔 두 개가 톡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미지근한 맥주가 순식간에 목구멍 너머로 사라졌다.
“캬! 바로 이 맛이야.”
서도진이 고개를 흔들며 부르르 떨었다. 안호석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여운을 즐겼다.
그때 나직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응, 나다. 문 좀 열어 봐.”
‘헉’ 소리가 절로 났다. 그동안 단 한 번도 1년차 숙소에 온 적이 없던 김지훈이었다.
깜짝 놀란 서도진과 안호석이 부랴부랴 맥주 캔을 감췄다. 혹여 술 냄새가 날까 봐 창문까지 열었다.
서도진이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은 물론 신현수까지 서 있었다.
그 순간 열린 창문을 통해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맥주 특유의 냄새가 사라락 퍼지며, 2년차들의 코를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