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75화 (275/1,329)

제1화 진정한 써전들 (1)

일 초가 한 시간 같은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덧 가운을 입은 신현수가 수술실 문을 열었다. 모든 시선이 일제히 신현수에게 쏠렸다.

“프리(free)랍니다, 선생님.”

암세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결과를 전하는 신현수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수술에 참여한 모든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간절히 원하고 바라던 결과였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가슴을 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가슴을 꽉 채웠던 긴장이 다소나마 사라지자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식도를 포함한 병소를 제거했는데, 수술을 시작한 지 이미 4시간이 지났다. 더구나 이혁민 교수와 서도진은 오전부터 지금까지 8시간째 쉬지도 못하고 수술을 하고 있었다. 과도한 긴장까지 겹쳐 피곤이 가중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김지훈이 마취과 간호사에게 눈짓을 했다.

‘교수님들하고 도진이 우유 좀 챙겨 줘요.’

종종 벌어지는 일이었다. 마취과 간호사가 재빨리 빨대를 꽂은 우유 4개를 가져왔다. 모두들 계속되는 긴장과 피로에 목이 바짝 마른 상태였다. 얼굴을 돌려 마스크 사이로 빨대를 물고는 우유를 마셨다.

목이 타는 갈증은 면했지만 입이 마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술이 재개됐다. 수술실 전체가 다시 무거운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지훈이 서도진에게 눈짓을 하며, 평행 결장이 충분히 보이도록 리트랙터 위치를 조절했다.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가 동시에 평행 결장을 잡았다.

“선생님, 20센티미터 정도 자르겠습니다.”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수술 과정이 눈에 환한 교수들이었다. 단지 다음에 이어질 수술 과정의 시작을 알릴 뿐이었다. 이제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할 때였다.

수술 속도가 빨라졌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준영 과장이 수술을 주도했다. 집도의 자리에 선 이혁민 교수가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물 흐르듯 움직인 두 개의 손이 평행 결장을 20센티미터 정도 잘랐다.

수술 전 아무리 깨끗하게 장을 청소했다고 해도 대장 내용물의 유출은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식도와 소장 사이에 잘려진 평행 결장을 대며 연결할 부위를 확인했다.

눈을 마주친 두 교수가 마침내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과정에 돌입했다. 식도와 대장을 연결하는 과정이었다.

단순히 자르는 과정조차 위험하고 힘든 수술이었다. 이젠 남은 식도의 끝 부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수술 기구를 이용해 간신히 식도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극도로 나빠진 수술 시야 속에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식도와 대장을 봉합해야 했다. 사소한 실수는 물론 순간의 방심조차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이혁민 교수가 이준영 과장과 눈을 마주쳤다.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은 후 손을 내밀었다.

“니들 홀더(Needle Holder:봉합용 수술 기구).”

이혁민 교수가 극도의 긴장과 신중함을 유지하며 한 바늘 한 바늘 식도와 대장을 번갈아 가며 떴다. 타이를 하며 정확하게 봉합이 됐는지 일일이 확인을 하는 이준영 과장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술용 봉합사가 하나둘 사라졌다. 그때마다 연결된 부분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단 한 곳이라도 식도나 대장의 점막이 빠져 있으면 연결 부위는 절대 붙지 않는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윤재철 환자의 수술은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더구나 재수술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이 위험했다.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로지 모니터 소리와 인공호흡기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집도의도 보기 힘든 수술 부위가 세컨의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김지훈도 극도의 긴장 속에 오로지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방심하다 스승님 팔이라도 건드리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김지훈이 서도진을 보았다. 장시간의 수술과 그동안 쌓인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은 집도의를 살짝 건드리는 것조차 위험한 상황이었다. 수처나 타이 중에 손이 조금만 빗나가거나, 약간의 힘이라도 더 가해지면 조직이 찢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가슴을 열고 식도를 다시 잘라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서도진에게 경고를 보냈다. 서늘한 눈빛에 흠칫 놀란 서도진이 고개를 흔들며 바짝 긴장을 했다. 세컨과 써드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강하게 리트랙터를 끌며, 절대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

수술 시작 후 5시간이 지났다.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는 지금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수술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서로의 생각을 환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손을 맞추고 있었다.

째깍! 째깍!

시계 초침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수술은 계속 진행됐다. 교수들의 이마에 맺힌 땀이 마를 틈이 없었다. 간간이 허리가 아픈 듯 몸을 일으킬 때마다 마취과 간호사가 재빨리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 주었다.

어느 순간 한없이 움직일 것 같던 교수들의 손이 멈췄다. 식도 주변을 닦으며 연결 부위를 살피던 교수들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마침내 식도와 대장을 연결한 것이다.

수술을 시작한 지 6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무영등 불빛의 초점을 맞춰 가며 최종 점검을 하는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섬세하고 부드러워야 하는 과정은 이혁민 선생님이 맡고,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해야 할 과정은 스승님이 자연스럽게 주도하시네.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이해하기에 이렇게 완벽한 호흡을 보일 수 있을까? 나는 그런 파트너를 만날 수 있을까?’

문득 손일석과 이경석이 떠올랐다. 열심히 노력하고, 지금보다 더 마음으로 다가가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불가능하다는 것을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수술 부위를 보려 애를 쓰는 신현수가 보였다.

‘현수는 또 어떨까? 혹시 이런 생각이 스승님께서 수술에 들어오라고 한 이유 중에 하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수술인지 보여 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반 외과 의사는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해야 하는지 말해 주려는 것 같았다. 잠시 동안 다른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세심하게 연결 부위를 확인한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가 눈을 마주쳤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눈빛 속에 힘이 가득했다. 그것은 곧 가장 어려운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은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이준영 과장의 손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섬세하기만 하던 이혁민 교수의 손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조화롭게 보조를 맞췄다. 마치 한 사람이 4개의 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드디어 식도와 연결된 대장의 반대 부분이 소장의 중간 부분인 공장과 완벽하게 연결됐다.

위가 사라진 자리를 대신한 식도-대장-소장으로 이어진 소화관이 기괴하게 보였다. 하지만 김지훈에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누가 이런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의사가 자존심을 꺾어 가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얼마나 서로를 믿고 이해하기에 두 명의 의사가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었을까?

불가능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모여 윤재철 환자를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그들이 바로 스승인 이준영 과장과 멘토인 이혁민 교수였다.

그들은 과연 어떤 의사들일까?

그 순간 김지훈이 숨도 쉬지 못했다.

‘최고의 써전!’

그들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토록 바랐지만 막연하고 흐릿하기만 했던 최고의 써전이 다름 아닌 스승과 멘토였던 것이다.

어떤 의사도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수술을 해낸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들이었다. 자신의 명예와 안위보다 환자의 생명을 가장 앞에 놓고 있는 의사들이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에게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의사들이 바로 스승과 멘토였다.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너무나 뜨거워져 누군가 말을 걸면 눈물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수술을 마무리하는 이혁민 교수의 모습이 전과는 정말 다르게 보였다. 자신에게 과분할 정도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 이준영 과장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벅찬 감동에 김지훈의 손이 멈칫거렸다.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의 손을 톡톡 치며 말했다.

“김지훈, 수술 아직 안 끝났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정신 안 차릴래.”

따끔한 말이었다. 이준영 과장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환자에게 사적인 감정을 품지 말아야 하듯, 수술 중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금물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웃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격정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스승과 멘토가 조금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것 또한 일반 외과 의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였다. 지금도 그런 원칙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스승님, 영원한 멘토인 이혁민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상하게 활기차면서도 떨리는 목소리에 힐끗 김지훈을 본 이혁민 교수가 이내 수술에 집중했다. 이준영 과장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배 속을 깨끗이 세척하고 드레인을 5개나 넣었다. 이로써 주요 과정이 모두 끝났다. 이혁민 교수가 이제야 피곤을 느꼈는지 목과 어깨를 돌리며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수고했어. 이 교수 아니면 누구도 하지 못할 수술이었어.”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시계가 어느덧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배를 닫는 과정이 남았는데도 무려 8시간이나 지났다.

이혁민 교수가 미안한 눈빛으로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12시간 동안 수술실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준영 과장에게 오늘은 일주일에 한 번뿐인 오프 날이었다. 전공의도 힘들어하는 야간 응급실 근무였기에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선생님, 이제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근무가 없는 날인데도 밤늦게까지 수술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교수, 계속하지.”

역시 이준영 과장이었다. 무뚝뚝한 말로 단번에 자신의 의견을 전했다. 모처럼 만에 근무가 없는 날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더욱 미안해진 이혁민 교수가 눈가에 살짝 주름을 만들며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더 지난 후에야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길고 길었던 수술이 이제야 끝이 난 것이다.

환자를 깨우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수술용 덧 가운을 벗자 땀이 흘러내릴 정도로 등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수술실을 나가며 김지훈에게 말했다.

“김지훈, 오늘 이 환자 잘 봐. 환자에게 문제 생기면 나나 이 교수에게 바로 연락해.”

“예,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힘찼다. 끝까지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며 스승이야말로 최고의 써전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준영 과장이 나가자 이혁민 교수가 길게 숨만 내쉬었다.

‘그래. 이게 바로 우리 일반 외과 의사의 모습이야.’

젊은 시절 이준영 과장과 함께 수술을 하며 느꼈던 흥분과 감동이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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