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이것이 바로 써전의 모습이다 (3)
그 모습을 본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라도 모두 고심을 거듭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우였고, 최선의 선택이었다. 당연히 힘을 보태는 것이 마땅했다.
‘설마 서연이 아버님께서 수술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리 스승님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의사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조차 없는 일이잖아.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함께 병실로 들어갔던 신현수의 얼굴도 좋지 못했다. 신현수 역시 금경태 과장의 표정을 보며 무언가를 읽은 것이다.
뭔가 찜찜한 가운데 하루가 지나 드디어 수요일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처럼 분주했지만 오늘따라 더욱 부산했다.
회진을 끝낸 이준영 과장이 윤재철 환자의 수술 준비가 잘됐는지 상당히 신경을 썼다. 다른 무엇보다도 대장을 자르고 식도에 연결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최대한 대장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했다.
“환자분, 마시라고 드린 약은 다 드셨습니까?”
설사를 유도하는 약제를 이틀 내내 먹은 윤재철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서연을 비롯해 가족 모두를 최대한 안심시킨 이준영 과장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당직실로 향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어젯밤 수술 때문에 제대로 주무시지도 못했는데 괜찮으실까?’
김지훈도 잠을 거의 못 자 눈이 벌겠다. 신경을 써야 할 환자는 윤재철만이 아니었다. 이혁민 교수가 고령인 최윤성 환자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폈다. 금경태 과장마저 오현미 환자는 물론 윤재철 환자의 준비를 확인하며 채근했다.
부산함이 거의 사라질 무렵, 신동석 이사장까지 나타났다. 병동 간호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
마침 병동에 홀로 남아 있던 김지훈 역시 깜짝 놀라 급히 인사를 했다. 가운에 적힌 이름을 본 신동석 이사장이 살짝 눈썹을 치켜뜨며 조용히 말했다.
“김지훈 선생인가요?”
“예, 김지훈입니다. 교수님들께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윤재철 환자분과 오현미 환자분만 보면 됩니다. 병실이 어디죠?”
김지훈이 안내를 하려 하자 신동석 이사장이 손을 저었다.
“바쁠 텐데 간호사만 있으면 됩니다. 일 보세요.”
병동 수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 끝에 위치한 2개의 특실로 향하던 신동석 이사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표정이 묘했다. 누군가에게 김지훈에 대한 소리를 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먼저 윤재철 환자의 병실로 들어갔다.
최윤성 환자를 챙기던 김지훈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사장님까지 찾아오는 걸 보면 검사하고 돈이 무섭긴 한 모양이네. 하긴 오현미 환자 앞으로 온 그 많은 난이 다 왜 왔겠어? 그렇게 보면 서연이 아버님은 좀 다른 사람인가? 찾아오는 사람은 많은데, 난은 거의 안 보이네.’
잠시 후, 최윤성 환자가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곧 오전 첫 수술이 시작됐다.
오래간만에 하는 위암 수술이었지만 금경태 과장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위의 3분의 2를 절제한 후, 남은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 과정이 불과 3시간 반 만에 끝났다.
다음 수술을 위해 최윤성 환자의 수술 진행을 살피던 김지훈이 슬쩍슬쩍 금경태 과장의 수술실을 기웃거렸다.
‘송재덕 선생님만큼 빠르네. 역시 수술에 관한 한 최고 중 한 명이라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니었어. 최근에 들어와 두 손을 다 사용한다고 했으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
분명 배울 것은 넘치고도 남았다.
수술을 끝낸 금경태 과장이 수술실을 나왔다. 수술실 앞에서 서성이던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했다. 고개를 끄덕인 금경태 과장이 다른 때와는 달리 회복실에서 오현미 환자가 깨는 것까지 확인했다.
다음 수술도 잠시 미루고 병실로 올라가 신현수와 함께 차장 검사에게 수술 경과를 설명했다. 때마침 신동석 이사장까지 오자 더욱 설명에 열을 올렸다.
“생각보다 병변이 크고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이 까다로웠습니다만, 확실하게 제거를 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회복에만 신경을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신현수가 남몰래 눈가를 찡그리며 입술을 모았다. 금경태 과장이 다소 과장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시간, 고령인 최윤성 환자의 수술도 무사히 끝났다.
점심을 먹을 사이도 없이 바로 윤재철 환자의 수술이 이어졌다. 최윤성 환자와 달리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윤서연이 수술실 앞까지 윤재철의 손을 잡고 따라왔다. 김지훈이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환자를 수술실 안으로 옮겼다.
잠시 후, 신현수가 덧 가운을 입고 들어왔다. 2년차가 허락도 없이 참관할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도 이를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취가 시작됐다.
생체 징후를 나타내는 모니터 소리와 인공호흡기의 규칙적인 소리만이 나직하게 수술실을 울렸다. 이혁민 교수는 물론 이준영 과장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준영 과장과 눈을 마주친 이혁민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메스.”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복부를 길게 절개했다.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의 보조를 받으며 빠르게 복막까지 연 이혁민 교수가 복부 내 장기들을 살핀 후, 위암 병변을 확인했다. 식도와 위의 경계에서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이혁민 교수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다행히 원격 전이는 없지만, 내시경에서 확인한 것보다 식도 쪽에 더 바짝 붙어 있네요. 최악의 경우 가슴을 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혁민 교수의 말속에 반드시 수술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묵묵히 듣기만 했다. 상의나 조언은 할 수 있지만 집도의는 엄연히 이혁민 교수였다. 수술에 대한 최종 결정은 다른 누구도 아닌 집도의의 몫이었다.
이혁민 교수의 마스크가 가볍게 부풀어 올랐다.
“위 절제 시작하겠습니다.”
위와 십이지장 경계부인 유문 부위의 주변 조직을 박리했다. 유문을 깨끗하게 노출시킨 후, 기다란 겸자로 각각 십이지장과 위를 잡은 후 유문을 잘랐다.
시작 부위에서 잘린 십이지장을 단단히 봉합하고, 십이지장과 분리된 위 부분을 잡은 겸자는 그대로 유지해 내용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했다.
곧 위로 들어가는 동맥과 임파선을 포함한 모든 조직들을 광범위하게 절제하기 시작했다.
신중하고도 침착한 이혁민 교수의 손을 따라 이준영 과장 의 손이 조화롭게 움직였다. 임파선을 포함한 조직과 동맥이 빠르게 분리됐다. 어느새 위를 포함한 주변 조직이 모두 분리되고, 식도만이 유일한 연결 부위로 남았다.
여기까지는 다른 수술과 동일한 과정이었고, 별다른 문제나 출혈 없이 깔끔하게 진행됐다.
김지훈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술에 집중했다. 이혁민 교수가 위와 연결된 식도 부분을 보며 말했다.
“횡경막 엽니다.”
수술실 전체에 긴장감이 확 퍼졌다.
이준영 과장이 분리된 위를 다소 강하게 잡아끌어 식도가 보이는 부분의 시야를 확보했다. 이혁민 교수가 조심스럽게 식도를 감싸고 있는 횡경막을 잘랐다. 암이 침범해 다소 딱딱해진 식도가 드러났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식도는 가슴속의 좁은 구역 내부에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힘든 것은 물론, 수술 시야조차 확보하기 어려운 장기였다.
김지훈이 서도진에게 눈짓을 하며 리트랙터(수술용 끌개)를 강하게 당겼다. 흉골과 연결된 갈비뼈와 복부 근육의 강한 저항이 느껴질 정도로 힘을 주었다. 그래도 수술 시야가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 정도였다.
초조한 눈으로 수술 진행을 지켜보고 있는 신현수를 본 이준영 과장이 나직하게 말했다.
“신현수, 포커스 맞춰.”
신현수가 무영등을 움직여 식도에 초점을 맞췄다. 이혁민 교수가 시각과 촉각을 총동원해 식도와 주변 조직을 어디까지 제거해야 할지 가늠했다. 이혁민 교수에 이어 이준영 과장이 다시 확인했다.
“위식도 경계부터 위쪽으로 최소한 7센티미터 정도까지는 식도를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변 조직도 이 부분까지는 제거를 해 줘야 안전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혁민 교수가 제거해야 할 부분을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한 이준영 과장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식도를 7센티미터 정도 자르는 것부터 문제였다. 소장을 연결하는 것은 이것으로 이미 불가능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혁민 교수는 식도 주변부 조직을 최소한 2센티미터 간격을 두고 잘라야 한다고 했다.
그깟 2센티미터 정도는 별거 아니다? 절대 아니었다.
다른 장기라면 모르지만 식도 주변에서 2센티미터라는 간격은 어마어마한 위험을 내포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이미 수술은 진행됐고, 지금에 와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두 교수의 눈빛 속에 강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교수, 출혈도 문제고 조직이 너무 딱딱해져서 분리가 쉽지 않겠어. 전기 소작기로 길만 열고, 나머지는 모두 손으로 타이를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은데. 어때?”
“제 생각에도 그게 좋겠습니다.”
보비(bovie:전기 소작기)를 든 이혁민 교수가 조심스럽게 식도 주변 조직을 절개했다. 이어 켈리와 모스키토, 혹은 라이트 앵글이라 불리는 수술용 겸자들을 모두 사용해 식도와 주변 조직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식도가 분리되면 될수록 시야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나빠졌다. 마침내 퍼스트를 서는 이준영 과장은 물론, 집도의인 이혁민 교수까지도 눈으로 확인하며 동시에 손을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따가각! 따가각!
톱니바퀴 물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준영 과장의 커다란 손이 움직였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공간에 손가락을 넣어 확실하게 타이하는 모습에 김지훈이 숨을 죽였다.
마치 눈을 감고 수술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그렇게 수술을 했다. 오직 손가락에서 전해지는 감각과 경험만으로 식도 주변을 박리하고 타이를 했다.
문득 췌장을 타이했을 때가 떠오른 김지훈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에 숨을 골랐다.
‘췌장은 눈으로 보면서도 타이하기가 힘들었는데, 식도 주변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 그런 상태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느낌만으로 조직을 안전하게 자르고 확실하게 타이를 하시다니. 후우! 두 분 정말 대단하시다.’
정상적인 경우에도 자르기 힘든 부위였다. 하물며 암이 침범하면 딱딱하면서 혈관까지 많아져 잘못 건드리면 심각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서의 출혈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의 수술용 모자가 축축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흉강 깊숙한 곳에 숨은 식도의 윗부분으로 다가갈수록 긴장은 더욱 심해졌다. 이제는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따가각! 따가각! 툭! 툭!
조직을 잡고 묶고 자르는 단순한 동작의 연속이었지만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극도의 신중함과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감각이 아니면 불가능한 과정이었다.
누구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마취과 간호사가 교수들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마침내 목표했던 부위까지 식도와 주변 조직을 모두 박리했다. 이혁민 교수가 이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영등 초점을 몇 번이나 바꾸어 가며 출혈 유무를 확인한 후,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선생님, 자르겠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식도 경계부에서 위쪽으로 7센티미터에 달하는 식도가 잘렸다.
이혁민 교수가 한 덩어리가 된 위와 식도 일부, 그리고 임파선을 포함한 주변 조직을 꺼냈다. 간호사가 재빨리 받자 이준영 교수가 제거된 식도의 끝부분을 잘랐다.
“신현수, 프로즌(임시 급속 냉동 조직 검사의 약칭) 결과 최대한 빨리 받아 와.”
잘린 식도 일부분을 받아 든 신현수가 급히 해부 병리실로 향했다.
수술실에 점점 더 진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번 수술의 조직 검사는 다른 수술과는 달리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암은 주로 임파선의 주행을 따라 퍼진다. 임파선은 최종적으로 흉강 상부에 있는 혈관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모든 소화기 암은 조직을 따라 위쪽으로 퍼져 나가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위쪽 방향으로는 암 병소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절제하는 것이 중요한 원칙이었다.
윤재철의 위암은 식도까지 퍼졌다. 만일 프로즌에서 암 세포가 발견된다면 식도를 더 잘라 내야 한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는 더 이상 식도를 제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가슴 정중앙에 위치한 뼈인 흉골을 반으로 절개해 가슴을 열어야만 가능했다. 가뜩이나 육체적 손상을 크게 동반하는 수술이었다. 흉골까지 절개해야 한다면 환자의 예후는 거론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긴장이 고조됐다. 다들 입이 바짝 말라 말도 하지 못했다.
신현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리 경험 많은 써전이라고 해도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째깍! 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나직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