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이것이 바로 써전의 모습이다 (2)
신현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고도 예리했다.
“이사장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선생이 바로…….”
“맞습니다. 상당히 뛰어난 선생이니까 믿으셔도 좋습니다.”
“알겠습니다.”
3년차는 물론 4년차인 치프까지 함께한 자리였다. 그런데 금경태 과장은 그들을 놔두고 2년차인 신현수를 거론했다. 못마땅한 마음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입장이 곤란해진 신현수가 슬쩍 삼사 년차를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신현수입니다.”
“아버님께 얘기 많이 들었네.”
이것저것 유의 사항을 설명한 금경태 과장이 차장 검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특실에서 나왔다.
문을 여는 신현수를 보던 금경태 과장이 힐끗 병실을 살폈다. 환자의 보호자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서울고검의 차장 검사였다. 막강한 힘은 그 자체로 수많은 사람들을 모으기 마련이었다. 병실인지, 화원인지 모를 정도로 난이 가득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금경태 과장이 눈가를 좁혔다.
‘역시 사람은 힘이 있어야 해. 달랑 난만 보내지는 않았겠지. 봉투 하나씩만 딸려 왔어도 치료비 정도는 우습겠어.’
금경태 과장이 전공의들에게 환자를 잘 보라는 말을 수차례 거듭했다.
그 시각, 이혁민 교수가 이준영 과장과 함께 외래에서 윤재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쉬셔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선생님.”
“아니야, 이 교수. 난 신경 쓰지 마.”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지훈, 혹시 시켜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환자 보는 동안 대기해.”
“예, 선생님.”
전공의가 외래 진료에 참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김지훈을 부른 것이다.
얼마 후, 윤재철이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오는 윤서연의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김지훈을 보는 눈빛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가족의 마음은 모두 그럴 것이다. 부인을 비롯해 함께 온 가족들 역시 착잡한 얼굴로 입을 열지 못했다.
이혁민 교수가 윤재철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죠. 제가 이혁민이고, 옆에 계신 분은 수술에 동의하신다면 함께 수술을 하실 이준영 선생님이십니다. 이미 여러 병원에서 말씀을 들으셨을 테니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이 교수님.”
사실상 말기 암과 다름없는 판정을 받은 윤재철이었다.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차분한 태도로 말을 기다렸다. 최악의 상황에 처한 환자에게서는 상당히 보기 드문 태도였다.
“수술은 물론 회복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수술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선택은 환자분이 하셔야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반드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술이 잘되어도 이후의 치료 역시 상당히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살 수 있겠습니까?”
윤서연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울고 말았다. 분위기가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의사로서는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자신의 병을 알고 진료를 받는 이상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말기 암 환자의 오 년 생존률은 십 프로 정도 됩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으시면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다들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단도직입적으로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제 몸속에 있는 암 덩어리를 제거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의사는 환자를 두고 자신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여기 계신 이준영 선생님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뿐입니다.”
윤재철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금경태 과장이 이혁민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의사에게 자신의 치료를 맡겼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사실상 치료받기를 포기했다. 겉으로는 수술이 너무 밀려 2주 후에나 가능하다며 전문 분야를 들먹였지만, 본심을 모를 수는 없었다.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자신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동안 만났던 의사들의 말을 생각하면 금경태 과장도 다를 바가 없었다.
윤재철은 누구보다도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고, 이미 한 달이라는 시간까지 흘렀다.
담담하게 마지막을 준비하고자 했다. 그런데 지난밤 늦게 신현수가 윤서연과 함께 찾아왔다.
반드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간곡한 말과 이혁민 교수와 이준영 과장이라면 절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보였다. 이제 2년차에 불과한 전공의의 말이었지만, 평소 아버님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따랐던 신현수였다.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심정일지도 몰랐다.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살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본능이었다.
윤재철이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현수 말로는 금경태 과장보다 더 뛰어난 의사라고 했나?’
날카롭고 예리한 구석은 없었지만, 묵묵히 앉아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모습에서 불현듯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 교수님, 죄송하지만 이준영 선생님께도 묻고 싶습니다. 이준영 선생님, 수술을 받으면 희망이 있겠습니까?”
윤서연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가족들 역시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김지훈이 답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준영 과장의 말을 기다렸다. 앞으로 이런 환자를 무수하게 볼 것이다. 윤서연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가져오는 감정을 죽이고,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반드시 알아야 했다.
이준영 과장이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말했다.
“받으면이 아니라 받아야만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 이혁민 교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혁민 교수와는 또 다른 말이었다. 자신을 가진다는 소리에 윤재철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신현수는 분명 어떤 수술이든 일반 외과 교수 2명이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이 받아야 할 수술이 어렵다는 말이었다.
반면, 2명의 교수가 서로를 깊게 신뢰하고 수술에 임한다면 신현수의 말대로 희망이 훨씬 커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문득 담담한 이혁민 교수의 눈빛 속에서도 자신감을 보았다. 이런 모습을 보인 의사들은 없었다. 믿고 수술을 받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선택할 시간이었다.
“알겠습니다. 수술을 받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아빠! 흐흑!”
윤서연이 눈물을 흘리며 윤재철의 손을 잡았다.
이혁민 교수가 눈빛을 굳히며 말했다.
“그럼 모레로 수술을 잡겠습니다. 그날 두 번째로 수술을 받게 될 겁니다. 주치의는 서도진 선생이고, 여기 있는 김지훈 선생도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할 겁니다.”
윤재철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서도진 선생님이 누굽니까?”
“우리 파트 1년차 선생입니다. 김지훈 선생은 2년차고요. 전공의가 주치의라는 사실이 의아하시겠지만, 대학 병원에 입원하시는 이상 따르셔야 합니다. 물론 모든 치료는 제가 주관하고, 책임 역시 제가 지게 됩니다.”
윤서연이 윤재철의 손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지위에 있는 환자라도 원칙이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윤재철이 다소 불안한 눈빛을 보이며 일어났다.
바로 입원 수속이 시작됐다. 이제부터가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이 상당한 부담감을 가슴에 품은 채 외래에서 막 나가려는 순간 다음 환자가 들어왔다.
‘김지훈, 외래 환자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이참에 조금 더 배워. 이 교수만 한 의사도 없다.’
이준영 과장이 힐끗 이혁민 교수를 보며 말했다.
“이 교수, 한 명만 더 부탁해.”
척하면 착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살짝 눈길을 주고는 김지훈에게 손짓을 했다. 다음 환자 진료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모처럼 수술이 오전에 끝났는데 쉬시지도 못하고 오후 내내 환자를 보시네. 우리만 힘든 줄 알았는데 선생님들도 엄청 힘드시구나.’
밀려드는 환자에 비해 의사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것이 대학 병원의 현실이었다. 수술 환자가 아닌 일반 질환을 봐야 하는 과들의 경우, 몇 분도 안 걸리는 진찰 시간 때문에 환자들의 원성을 사는 이유였다.
물론 질환의 경중을 떠나 무턱대고 대학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외래 환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일반 외과는 충분한 진료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다음 환자 역시 성심을 다해 보았다.
한눈에도 가진 것 없는 시골 노부부였다. 특히 환자인 최윤성의 나이가 83세로 무척 고령이었다. 위암에 걸린 남편의 뒤에 선 아내의 손마디는 거칠었고, 이마에는 주름살이 굵게 패여 있었다.
대학 병원의 치료비는 여타 종합 병원보다 훨씬 비쌌다. 게다가 굳이 서울에 있는 대학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되는 환자였다. 하지만 누구나 최고의 치료를 받고 싶어 하듯, 늙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술 준비를 다 하셨으니까 오늘 입원만 하시면 됩니다. 모레 첫 번째로 수술을 받으실 겁니다. 연세가 많으시니까 조금이라도 불편한 게 있으시면 바로 말씀을 하셔야 합니다. 감기만 걸려도 수술이 연기될 수 있어요.”
“예, 선생님. 잘 알겠습니다.”
“그럼 입원 수속하시고, 저녁 회진 때 뵙겠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고 모든 준비를 마친 환자였다. 별문제가 없다면 바로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다행히 위암도 초기에 발견돼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외래를 나서던 아내가 주춤거리며 선뜻 발을 떼지 못했다.
“왜 그러세요, 보호자분? 하실 말씀이 또 있으십니까?”
“예, 선생님. 혹시 병실이 다인실인가요?”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에게는 4인실도 무리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치료 비용이 많이 드는 암 환자에게는 병실료도 결코 만만한 액수가 아니었다.
이혁민 교수가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미리 원무과에 말을 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노부부가 외래를 나갔다. 김지훈도 이혁민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공연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돈이 많은 사람은 생명을 걸고 수술을 받아야 하고, 수술만 받으면 되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문제구나. 참 복잡한 게 세상이야. 답답하다. 후우! 그래도 이혁민 선생님이 원무과에 미리 말씀을 해 놓으셨다니 다행이네. 정말 세세한 것까지 배우고, 명심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차장 검사 부인인 오현미와 윤서연의 아버지이자 소문난 재력가인 윤재철, 그리고 가진 것 없는 최윤성 환자가 같은 날 입원을 했다. 특실 2개와 8명이나 함께 써야 하는 다인실이 오늘따라 묘하게 대비됐다.
***
화요일 오후 회진을 돈 후, 다음 날 수술 스케줄을 확인한 금경태 과장의 눈빛이 묘해졌다. 이혁민 교수의 두 번째 수술에 윤재철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뭐야? 어떤 결정을 하든 일주일은 고민할 줄 알았는데 벌써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했어? 이혁민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무모한 결정을 내린 거지?’
마침 병동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보였다.
“김지훈, 이리 와 봐. 윤재철 환자 수술하기로 했나? 몇 호에 입원해 있어?”
김지훈이 병실을 말하자마자 금경태 과장이 윤재철 환자를 찾았다.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병실을 나오는 금경태 과장의 눈가가 부들부들 떨렸다.
한마디로 날벼락이었다. 아니, 마음을 푹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세게 한 방 맞은 꼴이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존심 강한 이혁민 교수가 이준영 과장과 함께 수술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준영과 함께 수술을 한다고? 이혁민, 자존심도 없었구나. 그런다고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아? 제길! 이혁민을 데리고 들어갈 생각을 못하다니.’
금경태 과장이 갑자기 윤재철 환자의 차트를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차트를 보는 내내 입을 꽉 다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색은 안 했지만 한눈에도 심사가 불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