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이것이 바로 써전의 모습이다 (1)
최고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수술에 관한 한 어떤 의사 못지않다고 생각하는 이혁민 교수였다.
“알겠습니다, 과장님.”
‘이혁민, 이제는 날 노릴 정도로 머리를 쓰는데, 설마 십 프로의 확률을 믿고 네 자리를 걸지는 않겠지. 그냥 내 대신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얘기를 하는 걸로 만족해. 무리하게 시도하다 문제가 생기면 넌 그날로 끝이야.’
짐짓 환자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는 표정을 지은 금경태 과장이 혀를 차며 의국을 나갔다.
이혁민 교수가 복부 CT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위험해. 환자가 사망할 확률이 너무 높아.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면 암이 더 진행돼 몇 개월 안에 사망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리며 고민하던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이혁민 교수에게도 이젠 자존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도 남을 사람이 있었다.
“김지훈, 차트하고 엑스레이 챙겨서 따라와라.”
파트를 맡고 있는 교수의 말이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움직이며 신현수를 보았다.
‘자식! 서연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집안까지 잘 아는 사이면 마음도 안 좋고, 신경이 많이 쓰이겠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니 나도 정말 답답하다. 후우! 돈도 많은 분이 정기검진도 안 받으셨나?’
안색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신현수의 어깨를 툭 친 김지훈이 서둘러 이혁민 교수를 따라 나갔다.
이혁민 교수가 곧장 응급실로 향했다. 이준영 과장이 반가운지 슬쩍 미소를 보였다.
“이 교수, 이 시간에 웬일이야?”
“상의드릴 환자가 있어서 왔습니다.”
“내게? 무슨 환잔데?”
“위암 환잔데 암이 식도까지 먹었습니다. 위를 모두 잘라 내고 소장을 잇기가 불가능할 것 같네요. 무리하게 연결했다가는 조직에 가해지는 과도한 긴장 때문에 연결 부위가 샐 가능성이 높아 보여 상의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이혁민 교수가 환자에 대한 설명을 하며 김지훈에게 눈짓을 했다.
김지훈이 재빨리 뷰(view)박스에 엑스레이를 걸었다.
‘기술적인 문제로는 누구와도 상의를 할 필요가 없는 이 교순데, 얼마나 진행됐기에 이러지?’
이준영 과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엑스레이를 확인했다.
이혁민 교수의 말대로 병변은 말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고, 수술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혁민 교수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이준영 과장도 이미 이를 짐작하고 있었다.
환자의 CT를 보던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환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상당히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김지훈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경우였다.
“김지훈, CT 판독 좀 해 봐.”
흠칫 놀란 김지훈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나름의 CT 소견을 말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수술은 어떻게 해야 돼?”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금경태 과장부터 이혁민 교수까지 통상적인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했다. 당황한 김지훈이 떠듬떠듬 대답을 했다.
“위를 모두 절제하고 식도와 공장(소장의 일부분)을 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그런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준영 과장의 눈이 번쩍였다.
“그래서? 대안이 뭐야?”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한마디만 삐끗하면 온 사방이 불바다가 될 판이었다.
그 순간 기적처럼 예전에 위암 수술 방법을 기술한 책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 비록 자세한 술기는 스쳐 지나갔지만, 뜻밖에도 그림으로 설명한 부분은 선명하게 기억이 났다.
“식도와 소장을 잇기가 어려울 때는 평행 결장의 일부를 잘라 식도와 연결하고, 반대편 평행 결장 부위를 소장과 연결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연결 부위에 과도한 긴장이 걸리면 수술 부위가 아물지 못하기 때문에, 대장을 이용해 긴장을 줄여 주기 위해섭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공부를 등한시하지는 않았구나.”
‘어? 내가 언제 이런 내용을 읽었었지?’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답을 하고는 스스로 깜짝 놀랐다. 비록 수박 겉핥기식이었지만 반복해서 읽은 덕이었다.
이혁민 교수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다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선생님, 수술이 가능하겠습니까?”
“수술은 한다고 해도 결과가 나쁠 가능성이 너무 높아.”
교수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지금도 윤서연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아 있는데, 아버지의 질환마저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미안해졌다.
“그래도 수술 이외에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식도 주변을 침범한 암이 종격동을 먹기 시작하면 얼마 못 살겠지만, 수술을 하기에는 너무 위험해.”
일반 외과 의사로서의 선택은 분명했다.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 반드시 해야 하는 환자였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10프로 정도의 성공 확률은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였다.
이준영 과장도 선뜻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책임은 결국 이혁민 교수가 지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이혁민 교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선생님, 이 환자 수술해야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응급실 근무로 힘드시겠지만 함께 수술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혼자 하기에는 자신이 없습니다.”
김지훈이 깜짝 놀랐다.
금경태 과장은 물론 이준영 과장까지도 고개를 젓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너무도 과감하게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순 이혁민 교수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놀라운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윤재철 환자는 이혁민 교수의 전문 분야인 위장관 질환을 가진 환자였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일은 처음 보았고,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비록 예전에 이준영 과장이 신기동 교수와 함께 수술을 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엄연히 전문 분야가 달랐다. 더구나 전공의인 김지훈을 앞에 두고 자신이 없다는 말까지 하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망설였다. 의료사고나 과실은 아니더라도 수술 직후 환자가 사망하면 엄청난 부담과 비난에 직면할 수도 있었다. 이미 기억하기도 싫은 대가를 치른 이준영 과장이었기에, 이혁민 교수의 결정을 쉽사리 수긍할 수 없었다.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환자야.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지 우리는 알지만, 보호자는 백날을 설명해도 몰라. 수술을 실패했을 때의 문제를 생각해 봤어? 잘못하면 며칠 내에 사망할 수도 있어.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이미 봤잖아. 그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정말 할 생각이야?”
이혁민 교수가 눈빛을 굳혔다.
“암을 제거하지 못하면 결과가 어떤지 알면서 환자를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이라면 포기하시겠습니까? 저 혼자면 몰라도 선생님과 함께한다면 성공을 확신합니다.”
이혁민 교수의 말에 이준영 과장이 긴 한숨을 터트렸다.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었다. 사실상 본격적으로 수술을 한 지 이제 2년이 채 안 되는 자신을 믿어 주는 것 역시 고맙기만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승님, 이혁민 선생님과 힘을 합치시면 이보다 더 어려운 수술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연이 아버지가 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세요.’
이준영 과장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 교수, 하자. 날 믿어 줘서 고마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럼 선생님을 믿고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입술을 꼭 다물고는 스승과 멘토를 보았다.
이혁민 교수는 전공의 앞에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당당히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도움을 요청받은 이준영 과장 역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답을 했다.
바로 눈앞에서 일반 외과 의사가 반드시 가져야 할 태도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위해서는 자존심 따위는 미련 없이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거였어. 후우!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묘한 감동이 몰아쳤다.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숨이 가빠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때, 이준영 과장과 이혁민 교수의 말이 김지훈을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우리 둘이 하니까 3년차 이상이 들어올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이 교수 생각은 어때?”
“김지훈이 들어오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유석재는 어차피 논문 때문에 당분간 수술에 들어오지 못하고, 4년차인 최철한에게 세컨을 서라는 말을 할 수는 없지요.”
“김지훈, 들었지?”
힘차게 대답을 하려던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단순히 수술에 들어오라는 말도 아니었다. 일반 외과 의사에게 경험은 지식 그 이상으로 필요한 자산이었다. 처음 보는 수술인 만큼 철저하게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였다.
이 와중에도 자신을 생각하는 스승과 멘토의 마음에 감히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단단히 각오를 다진 김지훈이 응급실을 나오자마자 의국으로 달려갔다.
‘일단 논문도 중요하지만 이번 수술에 대한 공부도 정말 많이 해야 해. 세컨도 분명 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휴우! 긴장되네. 서연이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충격이 대단히 컸을 것이다. 의사이기에 아버지인 윤재철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밖에 없었다. 한 달 동안이나 다른 병원을 전전했다는 것은 윤서연도 지금까지 아버지의 병을 몰랐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만큼 더욱 괴롭고 힘들 것이다.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한 김지훈이 의국 문을 열다 말고 그대로 멈춰 섰다.
윤서연이 신현수 앞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현수야, 우리 아빠 어떻게 해. 나 걱정할까 봐 몰래 다른 병원 알아보다 수술이 힘들다는 소리만 들었을 텐데, 난 이제야 그걸 알았어. 현수야, 나 어떻게 해.”
신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눈가가 벌게져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윤재철 환자와의 친분이 훨씬 깊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윤서연에 대한 감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함께할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의국 문을 닫으며, 조용히 신현수에게 손짓을 했다.
“현수야, 이혁민 선생님이 서연이 아버님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셨어. 이준영 선생님하고 함께 수술에 들어가실 거야.”
“두 분이 함께 수술을 하신다고?”
“응. 그러니까 서연이한테 잘 얘기해. 일단 암은 제거해야 그다음에 뭘 할지 결정할 수 있잖아.”
평소라면 대단한 화젯거리가 되고도 남을 말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지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의국으로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윤서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
5월 마지막 주가 왔다.
파트와 지역 이동을 불과 한 주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고검 차장 검사의 부인이 특실에 입원을 했다.
금경태 과장이 전공의들을 모두 대동하고 환자의 상태와 수술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차장 검사는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부인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 듯 무표정하기만 했다.
“말씀드린 대로 모레 아침에 첫 번째로 수술을 하겠습니다. 환자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수술 잘 받으시고, 치료를 열심히 하시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환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지만, 곧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실감했는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과장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사님. 사모님께서 안정을 잘 취할 수 있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여기 신현수 선생을 찾아 주십시오.”
차장 검사의 목소리가 나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