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불타는 2년차들 Ⅱ (1)
이준영 과장이 집도의 자리에 서자마자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를 자를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위에 연결된 수많은 동맥들부터 결찰하는 것이었다. 동맥을 싸고 있는 지방조직이 상당히 두껍기 때문에 켈리를 이용해야 했다.
“켈리(kelly:모스키토보다 큰 수술용 겸자).”
김지훈이 생각보다 한 박자 늦게 손을 내밀자 이준영 과장의 눈가에 주름이 생겼다.
따가각!
켈리에 달린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를 시작으로 위와 동맥을 포함한 주변 조직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온 신경을 다해 집중했지만 머릿속에서도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손이 제대로 따라갈 리 만무했다.
결국 터졌다.
“김지훈, 너 작년에 나랑 위절제술 해 봤잖아? 그리고 그동안 세컨으로도 여러 번 수술에 참가하지 않았어?”
“예, 선생님.”
“근데 뭐 하는 거야? 세컨은 왜 섰어? 니가 인간 끌개야? 얼마나 정신을 다른 데 팔았으면 이 정도도 못 따라와.”
김지훈은 물론 세컨을 서던 손일석까지 흠칫 놀라며 눈을 부릅떴다.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졌다.
“김지훈, 지금 내가 잡은 게 뭐야?”
“동맥입니다.”
“그냥 동맥이야? 지금 동맥 분지가 아니라 위동맥을 잡잖아. 아뻬 할 때도 주요 동맥은 두 번을 묶는데, 한 번으로 끝내자는 거야? 너 해부학은 왜 배웠어.”
사실 김지훈도 타이를 두 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 손이 흐트러지자 이준영 과장과의 호흡을 제때에 맞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경험이 적다고 해도 어쨌든 퍼스트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김지훈이 아무 말도 못했다. 손일석과 인턴은 아예 사색이 됐다.
등짝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을 때쯤, 위와 주변 조직이 깨끗하게 분리됐다. 살벌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어떤 문제도 없었고, 도리어 이준영 과장의 말만 아니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흠! 역시 타고났어. 이놈 손은 나도 부럽네.’
내심 만족스럽기만 한 이준영 과장이었지만 목소리는 무뚝뚝하고 살벌하기만 했다.
“이제 위 자른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퍼스트 제대로 서.”
“예, 선생님.”
위를 자르는 과정도 눈으로는 다소 익숙했지만, 손으로는 생소하기만 한 과정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화염방사기를 든 것처럼 김지훈을 새까맣게 태웠다.
3분의 1 지점에서 잘린 위의 일부를 봉합하고, 남은 절단면과 공장(소장의 중간 부분)을 연결할 때는 더 이상 탈 것도 남지 않았다.
“소장을 봉합하는 거하고 지금이 똑같아? 기본은 같지만 장기가 다르니까 뭐가 달라도 다를 거 아냐.”
“연속 수처를 할 때는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더 신경을 써야 돼. 너 이 환자 재수술하고 싶어? 어쭈! 이거 봐라. 그렇게 힘주다 실 끊어져. 그럼 다시 자르고 이어야 한다는 거 몰라?”
김지훈의 온몸이 땀으로 푹 젖었다. 손일석이 돌처럼 굳은 채 몸만 부르르 떨었다. 물론 절대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이준영 과장에게 처절한 응징을 당하고 말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살벌하다 못해 처절했던 수술이 거의 끝났다. 위와 소장이 연결된 부위를 꼼꼼히 확인하고, 배 속을 깨끗이 씻은 후 드레인을 박았다.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었다.
‘잘했다. 내가 가르치고자 한 부분을 절대 잊지 마. 그럼 다음에는 위를 직접 자르라고 해도 겁나지 않을 거야.’
“김지훈, 손일석하고 마무리해.”
마무리를?
비록 단순히 배를 닫는 것이 다였지만 2년차가 된 후 처음이었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김지훈이 무언가 한 단계 올라섰다는 암시였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힘찼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술용 덧 가운을 벗은 이준영 과장이 잘린 위를 살폈다. 다행히 육안으로는 암이 아니라 단순 궤양으로 보였다. 잠시 김지훈의 손에 집중하던 이준영 과장이 무뚝뚝한 한마디를 남기고 나갔다.
“조직 검사 확실하게 확인하고 환자 잘 봐.”
“수고하셨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이젠 아예 활기가 넘치다 못해 밝기만 했다.
손일석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태우고 난데없이 마무리를 주셔? 지훈아, 넌 타는 게 좋냐? 솔직히 이건 타는 정도가 아니잖아. 이젠 아예 1년차 취급을 하시네. 어떻게 점점 더 심해지시냐.”
“자식, 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지훈아, 넌 그 와중에도 이준영 선생님 말이 귀에 들어와? 뭘 배우고 싶어도 겁나서 머릿속까지 텅 비더라.”
“배우는 거 많다. 정말 많아.”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은 뭘 배웠는데?”
“혼을 내실 때마다 가르쳐 주시는 게 있어. 예를 들면 위동맥을 한 번만 타이 한다고 뭐라고 하셨을 때는 위동맥의 위치와 구별 방법을 말씀해 주신 거야. 그리고 연속 타이 할 때 그렇게 힘주면 끊어진다고 하셨잖아.”
“그랬지.”
“그때가 바로 멈춰야 할 때야. 그러니까 적절하게 타이가 됐다는 말이지. 그리고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라는 주의까지 주셨잖아. 결국 이준영 선생님의 말과 그때의 감각과 상황에 집중을 하면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지.”
손일석이 멍하니 김지훈을 보며 입맛만 다셨다.
“니가 아주 이젠 타는 데 달인이 됐구나. 꿈보다 해몽이 좋다더니, 딱 그 꼴이네. 하긴 나도 2년차로서 세컨 잘 서라는 교훈은 얻었다.”
김지훈이 피식 웃다 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일석, 뭐 해? 컷(cut) 안 해? 정신 똑바로 차려.”
딱 이준영 과장의 말투였다. 손일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김지훈 선생님.”
툭!
어느새 피부 봉합이 끝났다. 손일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힐끗 시계를 보았다.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끝났다. 그렇다고 대충 한 것도 아니었고, 자연스럽기만 했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역시 이준영 선생님 수술 실력은 알아줘야 해. 가만! 그러면 지훈이가 심하게 타긴 했어도 그걸 다 쫓아가고 있었다는 말이네. 이 자식 봐라. 내가 알고 있는 김지훈이 맞나?’
김지훈이 손일석의 속마음도 모르고 씨익 웃었다.
“일석아, 너랑 들어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왜, 인마?”
“우리 손이 척척 맞잖아. 배 닫는 게 너무 수월해. 역시 손일석이 손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런가?
어쨌든 기분 좋은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준영 과장에게 탈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김지훈과 함께 배를 닫을 때는 너무 즐거웠다. 손일석도 웃으며 김지훈의 등을 툭 쳤다.
“이제야 김지훈이 날 제대로 보네. 자식! 이 형만 믿고 앞으로 잘해.”
회복실로 환자를 옮기던 손일석이 눈빛을 굳혔다.
‘어느새 지훈이가 그 정도까지 달려갔단 말이지. 후우! 더 열심히 해야 돼. 손일석, 파이팅하자.’
손일석의 가슴속에 전보다 더욱 강한 불이 붙기 시작했다.
물끄러미 오더를 내는 김지훈을 보던 손일석이 화들짝 놀랐다.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이름까지 들렸다.
“김지훈, 손일석. 내일 아침까지 왜 위를 잘라야 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아 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사라졌다.
‘아! 저 목소리에는 정말 적응이 안 되네.’
손일석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요일 오후, 1년차들이 복귀했다. 아직도 해롱해롱한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쉴 여유는 없었다. 불과 하루 만에 산더미처럼 밀린 일에 정신없이 움직였다. 주말 오프인 신현수도 의국에 남아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시 눈을 붙인 김지훈이 논문 자료를 꺼냈다. 하지만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응급실에서 콜이 왔다. 아직도 논문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못 잡은 김지훈이 한숨만 푹푹 쉬다 손일석과 함께 응급실로 내려갔다.
아뻬였다.
부리나케 수술 준비를 하고 노티까지 마쳤다. 곧 마취과에서 환자를 올리라는 연락이 왔다.
아직도 술기운이 남아 얼굴이 벌건 안호석을 본 손일석이 눈을 반짝였다. 이상하게도 이준영 과장이 아뻬 수술을 할 때는 어떤 점을 지적할지 궁금하기만 했다.
“지훈아, 호석이 상태가 너무 안 좋다. 이번 수술까지만 내가 들어가 줄게. 고맙지?”
“고맙다. 이준영 선생님도 별말씀 안 하실 거야.”
김지훈과 사이좋게 수술실에 들어선 손일석을 본 이준영 과장의 입가가 슬쩍 움직였다.
‘손일석, 이번에도 들어왔어? 볼수록 괜찮은 놈이네. 안 그래도 수술을 줄 참이었는데, 네 손도 좀 보자.’
“김지훈, 수술해. 손일석, 퍼스트 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지훈이 힘차게 소리쳤다. 흠칫 놀란 손일석이 당황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이준영 과장이 손일석에게 퍼스트를 서라고 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그보다 더 큰 감격에 젖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2년차가 된 후 처음으로 하는 수술이었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김지훈이 잠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이상하게도 감동이 큰 만큼 어깨가 무거웠다.
‘1년차 때와는 다르다고 하셨다. 수술 방법이나 목적이 달라질 것은 없으니까, 결국 내가 가져야 할 자세가 달라져야 한다는 말씀이시겠지. 난 환자의 수술과 회복까지 책임져야 하는 집도의자, 주치의다.’
마취과 전공의의 목소리가 김지훈의 상념을 깼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무영등 불빛을 받은 은색 메스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날카롭게 반짝였다.
김지훈이 피부를 절개하는 순간 손일석이 무심코 시계를 보았다. 삼사 년차들은 가끔 누가 더 빨리 수술을 하는지 경쟁을 하곤 했다. 불현듯 그 생각이 났는지도 몰랐다.
‘일곱 시 십오 분이네.’
메스를 따라 흐르는 빨간 피를 닦은 손일석이 이내 수술에 집중했다. 배가 열리고 아뻬를 찾았다. 주변 장기들을 조심스럽게 확인하고 아뻬를 절제했다. 가장 위험한 부위인 동맥이 포함된 조직도 깔끔하게 자르고 묶었다.
정확하면서도 물 흐른 것처럼 모든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마지막으로 주변 장기를 다시 확인한 김지훈이 배를 닫기 시작했다.
‘그래, 김지훈. 앞으로 집도를 할 때나 퍼스트를 설 때나 지금의 마음을 잊지 마라. 생각과 자세가 달라지면 다른 사람 눈에도 수술하는 사람의 손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조금만 더 노력하자.’
처음으로 손을 맞췄지만 손일석의 손도 정말 잘 어울렸다. 세컨을 서며 수술을 지켜보던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퍼스트를 서는 기본은 신현수보다 훨씬 낫네. 손도 아주 꼼꼼하면서도 정확하고 말이야. 딱 신 교수 타입이야. 이번 2년차들은 정말 기대를 할 수밖에 없겠어.’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은 없었지만 김지훈의 실력은 이미 인정하고도 남았다. 손일석 역시 퍼스트를 서는 실력과 수술에 임하는 자세가 이 정도라면 충분히 신뢰하고도 남았다.
어느새 마지막 봉합을 끝내고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동시에 외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여느 때처럼 아무 말도 없이 이준영 과장이 수술실에서 나갔다. 환자가 깨기를 기다리던 손일석이 히죽 웃었다. 무척이나 많이 섰던 아뻬 수술의 퍼스트였다. 그런데 절친한 친구와 함께해서 그런지 수술이 정말 매끄럽고 즐겁기까지 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했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손일석이 힐끗 시계를 보았다.
‘뭐야? 즐겁긴 했지만 그냥 다른 수술처럼 똑같이 한 것 같은데 이십 분도 안 걸린 거야? 지훈이나 나나 서두르지도 않았잖아.’
수술에 걸리는 시간과 실력은 반드시 비례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 강렬한 자극이 손일석의 뇌리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