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불타는 2년차들 Ⅰ (2)
인간의 탈을 쓴 채 짐승으로 변한 놈들이 8명이나 응급실로 몰려왔다. 술에 떡이 된 1년차들이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끙끙 대며 응급실과 병동에 딸린 당직실에 1년차들을 눕혔다.
10퍼센트 포도당이 무서운 속도로 혈관을 따라 흘러들어 갔지만 눈도 뜨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었다.
천광호를 마지막으로 눕힌 손일석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광호 이 자식, 무지하게 무겁네. 아직도 이렇게 살이 붙어 있는 것 보니까 일 안 하는 모양인데, 아주 죽여 놔야 되나?”
“떡대가 있잖아, 인마.”
“아니야. 뱃살이 장난이 아냐. 이거 농땡이 치는 게 틀림없어. 하오문 애들 풀어서 확실하게 확인해야겠다.”
“에휴! 일석아, 언제 철들래.”
손일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지훈을 보다 말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래, 니 말이 맞다. 머리도 못 올렸는데 철이 들겠냐. 옆구리가 시려요. 아! 춥다.”
“말만 하지 말고 너도 하나 만들어, 자식아.”
“지훈아, 나라고 그러고 싶지 않겠니? 근데 내가 눈이 상당히 높잖아. 미모, 몸매, 성격, 지성. 최소한 이 네 가지는 충족이 돼야지. 그래야 나랑 어울리지 않겠어?”
김지훈이 가자미눈을 떴다.
“지랄을 해요. 네 가지가 아니라 싸가지다, 인마.”
“어쭈! 김지훈, 많이 컸어. 뚫린 입이라고 망발을 마구 지껄이네. 일단 지금은 이 형님이 몹시 피곤해 잠시 눈을 붙인다만 아침에 보자. 처절하게 응징해 주마.”
아닌 게 아니라 팔팔하게 살아 있는 입과는 달리 손일석의 눈이 반쯤은 감겼다. 김지훈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1년차들을 다시 한 번 살핀 후, 당직실 한구석 침대에 누웠다.
1년차들의 코 고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당직실이 온통 술 냄새로 가득했다.
‘심하네. 하긴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 걸 보니까 나도 작년에 저랬겠지? 자식들, 눈 뜨는 순간 술 먹인 윗년차들이 원망스러울 거다. 그런 몸으로 언제 밀린 일을 다 할래?’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고, 년차마다 하는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쉽게 잠에 들지 못한 김지훈이 한동안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다.
드르렁! 푸우! 커허허헉! 푸후!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자는 내내 들려온 코 고는 소리 속에서 뭔가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눈을 번쩍 뜨고 받아야 하는 소리, 바로 전화벨 소리였다.
(응급실 인턴입니다. 오십이 세 된 남자 환자로…….)
“내려갈게.”
대자로 뻗은 1년차들은 아직 한밤중이었다. 이미 9시가 훌쩍 넘어 창문 밖이 환했지만 입국식 다음 날이었다. 오늘만큼은 늦잠을 허락할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주섬주섬 가운을 챙겨 입은 김지훈이 하품을 하며 응급실로 내려가다 말고 급히 중환자실로 향했다. 하마터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환자를 지나칠 뻔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환자를 살핀 김지훈이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젊은 나이답게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환자분, 많이 아파요?”
“예. 배가 너무 많이 아파요.”
“통증 조절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간호사, 여기 데메롤 반 주고, 한 시간 후에도 아프다고 하면 나머지 주사하세요.”
일반적인 수술에는 마약성 진통제인 데메롤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췌장 수술을 한 경우에는 통증이 너무 극심하기 때문에 데메롤 이외에는 통증을 줄여 줄 수 있는 강한 진통제가 없었다.
잠시 데메롤을 맞은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던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우회 수술을 한 환자에 대해 물었다. 별문제가 없어 오늘 아침에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명 빠지면 한 명 들어오고, 정말 아픈 사람 많네.’
온갖 기계음으로 가득한 중환자실 특유의 소리를 뒤로한 김지훈이 응급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뷰박스에 걸린 흉부와 복부 사진에 떡하니 프리에어가 떠 있었다.
응급실 인턴이 급히 달려와 노티를 했다. 병력과 환자 증상을 듣지 않아도 답은 빤했다.
“얼서(ulcer:궤양) 빤뻬리네.”
아침부터 위궤양이 터져 복막염이 발생한 환자가 왔다.
프리에어의 양이 상당히 많았다. 아마도 시간이 꽤 경과했거나, 터진 구멍이 의외로 클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김지훈이 환자를 진찰한 후, 보호자를 만나 상태를 설명하고 수술 스케줄을 챙겼다.
‘인턴 한 명에게 잠시 응급실을 맡기고, 일석이하고 같이 들어가는 게 훨씬 나은데.’
일반 외과를 도는 인턴 2명이 어시스트를 서는 것보다 1명이 서도 손일석이 서는 것이 백번 나았다.
‘어제 일석이하고 경석이 형과 함께 수술을 들어가니까 정말 좋던데. 스승님도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지?’
잠시 고민하던 김지훈이 손일석을 호출했다.
“일석아, 얼서 빤뻬린데 수술 같이 들어가자.”
아직 꿈나라를 헤매던 손일석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뭐? 같이 타자구?)
“싫으면 응급실 커버나 해. 끊는다. 계속 자라.”
김지훈이 짐짓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깐. 지훈아, 너 왜 이렇게 성격이 급해졌니. 내려갈게. 같이 들어가자. 너 혼자 타는 것보다는 쌍으로 타는 게 더 낫겠지?)
전화기를 내려놓기가 무섭게 응급실 문이 열린 것 같았다. 부스스한 머리를 만지며 들어온 손일석이 김지훈을 보며 차트와 사진을 확인했다.
“수술 준비는 거의 다 됐어. 과장님께 노티하고, 오케이 하시면 스케줄 내자.”
김지훈의 노티를 받은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당직실 문을 열며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중환자실 환자는.”
“예. 바이탈 안정적이고, 드레인도 깨끗합니다. 아침에 통증을 호소해서 데메롤 반 정도 투여했습니다.”
“전과하기로 한 환자는.”
“오늘 아침에 일반 병실로 올라갔습니다.”
“시간 나면 한번 가 봐.”
이준영 과장이 대답도 듣지 않고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바짝 붙어 이준영 과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느 때처럼 보호자에게 환자의 치료와 수술 및 마취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한 후 결정을 기다렸다.
보호자가 동의하자마자 김지훈이 재빨리 수술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응급실에 남은 손일석이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수술 준비인 코 줄과 소변 줄을 삽입했다.
잠시 후, 스케줄을 내고 온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일석이가 이번 수술도 들어오고 싶답니다.”
이준영 과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당직실로 들어갔다.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허락하신 거지?”
“역시 손일석이야. 눈치가 빠삭하네. 그런데 너 표정이 너무 좋다.”
“지훈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췌장 수술에서도 안 탔는데 설마 빤뻬리 가지고 타겠냐.”
김지훈이 손가락을 튕기는 손일석을 보며 싱긋 웃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고 든든했다.
2년차가 함께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동기, 혹은 동료이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함께 수술을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손일석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술이 시작됐다. 순조롭게 배를 열고 천공된 부분을 찾았다. 지름이 1센티미터가 훌쩍 넘을 정도로 큰 구멍이 나 있었다. 위치까지 좋지 않아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 부분인 유문 부위였다.
위 천공이 발생한 경우 수술의 목적은 명확했다. 일차적으로 터진 구멍을 봉합하고, 이차적으로 향후 기능에 이상이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 통상의 방법으로는 천공 부위를 확실하게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순간 김지훈이 당황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유문 성형술을 해야 하나? 아니면 위를 일부 잘라야 하나?’
김지훈이 머뭇거리자 이준영 과장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김지훈, 뭐 해. 어떻게 해야 돼?”
“그게… 이 환자의 경우에는…….”
“쯧쯧쯧!”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과 손일석의 얼굴이 꺼메졌다.
“마취과, 오 분만 수술 중단합시다. 김지훈, 얼서 빤뻬리 수술 방법에 뭐가 있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김지훈이 세 가지 수술 방법을 설명했다.
첫 번째 방법은 가장 흔하게 시행되는 수술 방법인 일차 봉합술 후 대망을 이용한 보강이다.
(1st : primary repair with omental patch)
두 번째 방법은 천공 부위가 크고 위와 십이지장의 연결 부위인 유문에서 터진 경우 주로 시행하는 방법인 유문 성형술이다. 일차 봉합 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좁아질 위험이 크고, 음식물이 통과하는 부위를 넓혀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시행한다.
(2nd : pyloroplasty)
마지막 방법은 어떤 방법으로도 천공 부위를 봉합할 수 없거나, 혹은 암이 의심될 경우에 시행하는 수술이었다. 위의 3분의 1 이상을 절제하고, 소장의 일부인 공장과 연결해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위 부분 절제술, 혹은 대부분 위절제술이 바로 그것이다.
(3rd : antrectomy or subtotal gastrectomy)
또한 그동안 언급이 없었지만 궤양 수술에서는 반드시 식도를 따라 주행하는 미주신경(vagus nerve)을 절단해 주어야 한다. 이 신경이 살아 있으면 위궤양의 주요 원인인 위산 과다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지훈의 말이 끝나자 이준영 과장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 환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돼?”
“유문 성형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목소리에 자신이 없었다.
“손일석, 어떻게 해야 돼?”
“예?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준영 과장의 숨소리가 커졌다.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운 거야? 김지훈, 넌 2년차 퍼스트야. 눈으로만 보고 수술을 결정해? 손은 왜 달고 다녀? 병변을 만져 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야.”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게 기본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새로운 환자와 새로운 수술을 해야 할 때마다 깜빡 지나치고 있었다.
‘후우! 어떤 수술을 하든 기본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지?’
잠깐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험악해졌다.
“김지훈, 뭐 해? 수술 진행해야 할 거 아냐? 내가 니 입에 밥까지 떠먹여 줘야 돼?”
아차 싶은 김지훈이 급히 병변과 주변 조직을 손으로 확인했다.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궤양이 훨씬 크고, 주변 조직이 돌처럼 딱딱하게 만져질 정도로 염증이 심했다.
막상 병변의 심각함을 알자 더욱 혼란스러웠다.
‘유문 성형술로 가능할까? 하지만 궤양에 불과하다면 위를 자르는 것은 과도한 수술이 아닐까?’
김지훈이 고민하는 사이, 이준영 과장의 시선이 손일석에게로 향했다.
“손일석, 너 1년차야? 왜 들어왔어?”
순간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껌뻑이던 손일석이 흠칫 놀라며 병변을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돼?”
손일석과 눈을 마주친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유문 성형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문 성형술? 이 경우에는 잘라야 돼. 간호사, 위 절제 준비하고. 마취과 선생, 보호자 부릅시다.”
살벌한 분위기에 마취과 전공의와 간호사가 부산하게 움직였다. 이준영 과장이 매서운 눈초리로 김지훈을 보았다. 기본도 잊었고, 판단도 틀렸다. 새카맣게 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가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다소 의외였다.
“똑바로 해.”
“예, 선생님.”
곧 보호자가 수술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준영 과장이 다른 때와는 달리 수술실에서 나가 보호자를 만났다. 수술 방 복도를 따라 나직한 대화가 오갔다.
“지훈아, 우리 왜 혼난 거야? 판단이 틀려서 그런 건가?”
“아니야. 기본이야.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신 걸 보면 수술 방법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일은 아직 우리에겐 무리라는 말씀 같아.”
“그런가? 근데 말이야.”
“일석아, 미안하다. 생각 좀 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위 절제 수술은 음성에서 퍼스트를 한두 번 서 본 것이 다였다. 어떻게 퍼스트를 서야 할지 가물가물했다. 경험이 너무 부족한 탓이었다. 필사적으로 지난 수술들을 떠올렸지만 수술 과정이 어지럽기만 했다.
잠시 후, 이준영 과장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