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불타는 2년차들 Ⅰ (1)
오늘따라 응급실에 환자가 없었다. 그 덕에 송재덕 과장이 잠깐씩 쉴 때를 빼고는 끝까지 수술을 참관했다. 수술하는 사람보다 참관하는 사람이 더 힘든 법인데 정말 대단한 체력이었다. 더구나 이미 12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준영아, 완전히 네 손을 찾았구나. 고맙다. 정말 고맙다. 김지훈, 요놈은 췌장 수술인데 아주 제대로 퍼스트를 서네. 삼사 년차 뺨칠 정도야. 좋아. 준영이는 준영이고, 넌 반드시 내 밑에 와야 된다. 아암! 그래야지.’
이준영 과장과 함께 휴게실로 들어선 송재덕 과장이 흐뭇한 표정을 짓다 말고 연거푸 헛기침을 했다.
역시 최대 방해물은 이준영 과장이었다. 그런데 뜻밖의 호기가 왔다. 이준영 과장이 가뜩이나 묵직한 목소리를 더욱 낮췄다.
“선생님, 지훈이가 금경태 과장과의 일을 알았습니다.”
송재덕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그래서? 지금 저놈 상태 괜찮은 거야? 괜찮지? 그래야 된다. 반드시 그래야 돼.”
“저놈, 정신력 하나는 정말 강한 놈입니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의외일 정도로 차분하네요. 잠시 집중력을 잃었었는데, 오늘 보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말고 이준영 과장을 째려보았다.
“뭘 어떻게 했기에 그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개싸움은 우리가 하기로 했잖아. 이건 개싸움이야, 개싸움. 준영이 너 확실하게 안 할래?”
“죄송하게 됐습니다, 선생님.”
“죄송하다면 다야? 그러다가 아까운 놈 하나 잃을 수도 있어. 에이! 안 되겠다. 안 되겠어. 지훈이, 천안에 남기자. 그게 좋겠다. 아암! 그게 좋아.”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이준영 과장이 펄쩍 뛰었다.
“선생님, 다 끝난 일인데 왜 이러십니까? 천안이라니요?”
“준영아, 잘 생각해 봐. 금경태가 과장 자리에서 물러나도 지훈이를 그냥 놔둘 것 같아? 아니지. 절대 아니다. 개과천선을 한다면 모르지만 아니야. 그러니까 차라리 떨어트려 놓는 게 나아. 그게 백번 낫지. 좋다, 좋아. 금경태도 안 보고, 내가 쭉 가르쳐서 과장 만들어 주면 얼마나 좋니. 좋다.”
“그런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 내면 더 훌륭한 써전이 될 겁니다. 그리고 서울에는 이 교수와 신 교수까지 있지 않습니까? 오상익 선생님도 많이 가르쳐 주실 겁니다.”
송재덕 과장이 흠칫 놀랐다. 노련한 만큼 눈치도 백단이었다.
“신기동이도 탐을 내?”
“신 교수가 혈관 수술 좀 몇 번 같이하더니 대놓고 탐을 내긴 하더군요.”
“이 자식이! 어디 감히. 어딨어? 신기동이. 응? 신기동이 어딨어? 아! 입국식 하는 자리에 있었지. 내 이 자식을 당장.”
정말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다. 이준영 과장이 피식 웃으며 말렸다.
“선생님, 입국식 벌써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왜 선생님이 화를 내십니까? 제가 내야죠. 다시 한 번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김지훈이 제 제자라는 사실 잊지 마세요.”
목소리가 묵직하다 못해 바닥에 깔릴 지경이었다.
“이준영, 심각하면 다냐? 그러면 내가 ‘그래, 니 제자다.’ 그럴 줄 알았어?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 천안에 언제 오더라. 오면 그냥 저절로 해결될 일이야, 저절로. 넌 방해나 하지 마. 알았어? 알았지?”
어린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던 이준영 과장과 송재덕 과장이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싹 바꿨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선생님, 환자 중환자실로 옮기겠습니다.”
“그래. 먼저 가 있어.”
이준영 과장이 굳은 어깨를 풀며 일어섰다.
“입국식도 다 끝났을 텐데 이제 천안으로 내려가시죠. 기회가 되면 제가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선생님.”
“지금 나보고 빨리 가라는 거야? 왜 이러니. 너 왜 이래? 경석이 때문이라도 환자 마무리는 보고 가야지. 가자. 중환자실이 어디냐. 응? 어디야?”
마지못해 앞장선 이준영 과장을 따라가면서도 송재덕 과장이 입을 쉬지 않았다.
“금경태 일을 알았단 말이지. 음! 금경태. 지훈이하고 떨어뜨려 놔야 돼. 그게 좋아. 준영아, 그치? 내 말이 맞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수술 방에서 중환자실로 가는 시간까지 너무 짧았다. 미처 할 말을 다 하지 못했는지 중환자실에 들어선 송재덕 과장이 입맛만 다셨다.
2년차들이 환자 옆에 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상의를 하고 있었다. 가끔 김지훈이 책을 뒤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췌장 수술 환자에 대한 오더 때문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보고만 있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김지훈이 차트를 들고 스테이션으로 왔다. 이준영 과장이 차근차근 오더를 확인하고는 뚜벅뚜벅 환자에게 다가갔다.
“바이탈은?”
“안정적입니다.”
“드레인은?”
“출혈의 징후는 없습니다.”
“새는지 어떻게 확인할 거야?”
“하루에 한 번씩 스텀프를 통해 수술 부위를 세척하고, 세척한 물에서 소화 효소가 검출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누군가의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서울 병원 진료 부장인 양승철 교수였다.
“과장님, 오늘도 큰 수술을 하신 모양입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젊은 환자가 중환자실에 있다니, 무슨 수술을 하신 겁니까?”
“췌장이 나가서 일부를 제거했습니다.”
양승철 교수가 감탄을 했다. 일반 외과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과의 교수였기에 췌장 수술의 위험성을 모를 수는 없었다. 단단히 준비를 해도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종종 보아 온 터였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누가 어시스트를 섰습니까? 오늘 입국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삼사 년차 중 들어올 사람이 있었나요?”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자, 양승철 교수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김지훈, 니가 어시스트를 섰어?”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 2년차 세 명이 모두 들어갔습니다. 저 혼자서는 퍼스트를 서기 힘든 수술이었습니다.”
“그래? 이번 일반 외과 2년차들이 다 괜찮네. 과장님, 좋으시겠습니다. 아! 그리고 제 아버님이 많이 호전되셨는데, 이제는 일반 병실로 올라가도 되지 않겠습니까? 외과 문제가 없다면 내과로 전과를 시켜 주십시오.”
이준영 과장이 또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어제 창상 치료는 모두 끝났고, 드레인도 오늘 아침에 다 뽑았습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는 상탭니다.”
“알았다. 양 교수님, 그럼 전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과장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준영 과장에게 인사를 한 양승철 교수가 전과를 위해 스테이션을 향하다 깜짝 놀랐다. 송재덕 과장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이쿠! 과장님, 여기 웬일이십니까.”
“어! 양 교수! 오래간만이야. 입국식 때문에 왔어, 입국식. 그런데 무슨 환자 때문에 이 과장하고 상의를 한 거야? 오늘 토요일이잖아, 토요일. 퇴근도 안 하고 중환자실에서 뭐 해? 토요일에는 쉬어야지. 그러다 쓰러져.”
“그게… 저희 아버님을 이준영 과장님께서 수술하셨습니다.”
양승철 교수가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기동 교수까지 달려와 대장 동맥을 우회 수술했다는 소리에 송재덕 과장이 크게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과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우회 수술을 누가 생각해 냈는지 아십니까?”
“누군데? 누구야? 응급 수술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은데 말이야. 쉽지 않지. 음! 그렇고말고. 누구야?”
“김지훈입니다.”
“김지훈이? 지금 저기 서 있는 저놈 말하는 거야? 저놈.”
“일반 외과에 김지훈이 또 있습니까?”
“없지, 없어. 허허! 저런 놈은 없지.”
송재덕 과장의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이준영 과장이 환자 상태를 모두 확인하자마자 김지훈을 서둘러 병동으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칠 송재덕 과장이 아니었다.
시간이 꽤 늦었지만 이왕 늦은 길이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을 불러 함께 이준영 과장의 당직실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꼬치꼬치 당시 수술에 대해 물었지만 이준영 과장이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러다 김지훈이 이 자식 헛바람 들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대놓고 욕심을 내실까.’
“선생님, 그냥 수술 하나 한 겁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이젠 내려가셔야죠.”
“가야지, 가야지. 곧 갈 거야. 걱정하지 마.”
그때 송재덕 과장의 눈에 손일석이 딱 뜨였다.
“일석아, 너도 그 수술 들어갔지? 그 수술. 맞지? 내 말이 맞지?”
“예. 들어갔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얘기해 봐. 자세히. 일반 외과 의사는 말이야, 평생 수술을 배워야 하는 거야. 아암! 배워야지. 빨리 말해 봐, 빨리. 경석아, 너도 잘 들어.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다.”
손일석이 이준영 과장의 마음도 모르고 열심히 설명을 했다. 송재덕 과장이 간간이 맞장구를 치며 감탄을 터트리자 신이 났는지, 아예 손짓 발짓까지 섞어 가며 입을 놀렸다.
‘손일석, 그만해라.’
신기동 교수의 수술을 보며 느낀 감동이 다시 살아났는지 이준영 과장의 다소 살벌한 눈초리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물론 봤다면 자동적으로 입이 닫혔을 것이다.
손일석의 말이 끝나자 송재덕 과장이 김지훈과 손일석의 등을 두드리며 허허 웃었다.
“잘했다. 둘 다 아주 잘했다. 니가 김지훈이지. 김지훈. 맞지? 그래. 니가 김지훈이구나. 허허! 일석이도 잘했다. 잘했어.”
송재덕 과장이 마치 자신이 수술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덩달아 엉덩이도 단단히 의자에 달라붙었다.
한동안 이러저런 대화를 나누던 송재덕 과장이 결국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서야 일어났다. 사실 이준영 과장의 말이 아니었다면 커피를 더 마셨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생님, 이러다 애들 잠 못 잡니다.”
“그렇구나. 자야지. 내일 또 일하려면 푹 자야지. 지훈아, 이 과장이 수술 좀 줬어? 수술 말이야.”
“예? 그게… 제가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요.”
김지훈이 대놓고 말을 할 수는 없어 에둘러 말했다. 송재덕 과장이 응급실을 나갈 때까지 혀를 찼다.
“에이! 쯧쯧! 천안에 빨리 와. 나랑 수술하자, 수술. 지훈아, 너도 좋지? 좋지? 안 좋아?”
“예, 선생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외과 2년찬데 수술을 많이 줘야지 말이야. 사람이 그러면 못 써. 안 돼. 안 돼. 수술해 봐야지. 지훈아, 천안에 빨리 와라.”
이준영 과장이 슬며시 웃기만 했다.
모두 병원 주차장까지 따라가 배웅을 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과장님.”
“간다. 나 정말 간다. 잘 있어라. 지훈아, 천안에서 보자. 일석이도 빨리 와라. 가자. 가자. 경석아, 가자.”
“경석이 형, 운전 조심하세요.”
조수석에 탄 송재덕 과장이 창문을 내리고는 이준영 과장에게 수술을 주라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웃을 말이 아니었지만 김지훈도 결국 웃고 말았다. 다행히 송재덕 과장이 탄 차가 멀리 사라진 후였다.
‘그동안 본 놈들 중 이번 2년차들이 제일 뛰어나네. 그중에서도 김지훈이 저놈은 정말 탐이 나. 지훈이가 천안에 오면 준영이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이야. 있을 때 꽉 잡아야지. 허허! 그나저나 신현수가 꽤 속상해하겠어.’
피곤이 몰려온 송재덕 과장의 눈이 슬슬 감겼다.
이경석이 눈빛을 굳혔다. 김지훈보다 더 열심히 배우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