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57화 (257/1,329)

제4화 어려운 수술일수록 기본기가 중요하다 (3)

이준영 과장이 심각한 눈빛으로 췌장을 수직으로 가르고 있는 빨간 선을 보았다. 주변 조직의 손상이 의외로 심했다.

발판 위에 올라가 수술을 지켜보던 송재덕 과장의 나직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도 눈가를 찡그리며 빠르게 머리를 돌렸다.

‘책에 쓰여 있는 대로 판단해 보면 새로 잘라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네. 사고로 절단된 부분을 남겨 두고 처리하기에는 너무 손상이 심하지 않나?’

김지훈의 판단이 맞았다. 사고로 잘린 부분을 남겨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손상되지 않는 부분에서 새로 잘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과 이경석을 보았다.

기본기가 탄탄해 3년차 이상으로 타이를 잘하는 김지훈이었다. 여기에 송재덕 과장이 신뢰하는 이경석이 세컨을 서고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수술을 진행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언제 불상사가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김지훈, 새로 잘라야겠다.”

“예, 선생님.”

의외일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개념이 없다면 나올 수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김지훈이라면 엉뚱한 생각으로 판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슬며시 고개를 돌린 이준영 과장이 이경석의 눈빛을 보고는 불안감을 모두 지웠다. 믿고 수술을 진행하기에 충분했다.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몸통과 꼬리 부분부터 제거하자.”

췌장은 부드럽고 약한 조직을 가졌지만 후복막에 단단히 붙어 있는 장기다. 더구나 가늘고 미세한 혈관들이 수없이 연결되어 있다. 후복막에서 췌장을 조금씩 박리할 때마다 타이가 반복됐다.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타이(tie). 타이. 타이.

연결 조직을 잡은 수술 기구의 톱니가 맞물릴 때마다 김지훈의 손이 신중하고도 빠르게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강하게 힘을 주면 혈관이 끊어질 수 있었다.

출혈량은 많지 않겠지만 약한 췌장 조직을 따라 피가 번져 수술 부위를 가릴 것이다.

반면 조금이라도 약하면 혈관을 확실히 묶지 못한다. 이 역시 출혈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으로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타이(tie). 타이. 타이.

얼마나 타이를 했을까?

마지막 타이를 끝냈을 때는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불편한 자세에서도 조금만 출혈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거즈로 닦아 내 시야를 확보한 이경석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터졌다. 단순한 수술 과정이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어떤 술기보다 힘들고 어려웠다.

드디어 반으로 잘린 췌장의 몸통과 꼬리 부분이 제거됐다.

식염수로 깨끗이 주변을 씻어 낸 이준영 과장이 절단면을 살폈다. 단순히 새로 자르기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소화액이 다량으로 새어 나오면 실크로 만든 실마저 녹일 수 있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칙을 알고 있어야 한다.

“김지훈, 다음엔 뭘 해야 하지?”

“소화액이 흐르는 주관(main duct)은 물론 주관에 연결된 관들을 모두 찾아 확실하게 묶어야 합니다.”

‘그 짧은 사이에 많이도 찾아봤구나. 이제 제대로 집중을 한다는 소리겠지.’

“모스키토(mosquito:켈리보다 작은 수술용 겸자).”

이준영 과장과 함께 모스키토를 받아 든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단면이 작고 가늘기 때문에 손상된 면에 노출된 소화관들을 찾아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말없이 지켜만 보던 송재덕 과장이 무영등을 잡으며 말했다.

“보이니? 보여? 안 보이지. 어두우면 찾기 어렵다. 어려워. 경석아, 머리 좀 치워라. 빨리 치워. 빨리.”

무영등의 초점이 체장의 절단면에 맞춰졌다. 위치상 김지훈이 훨씬 보기가 수월했다. 한결 환해진 덕에 끊어진 채 너덜거리는 회색이 감도는 하얀 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게 주관 같습니다.”

“잡아.”

따르륵!

소화관의 끝을 잡은 모스키토에서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이준영 과장이 직접 타이를 했다. 톱니를 풀며 살짝 힘을 빼 소화관을 확실하게 묶게 한 김지훈이 다시 톱니를 맞물렸다.

따르륵!

소화관을 이중으로 묶어 확실하게 막았다.

이어 주관보다 더 가는 소화관들을 찾아내며 타이를 했다. 이경석은 물론 가장 시야가 나쁜 손일석까지 눈을 부릅떴다. 대여섯 개의 소화관을 더 찾아냈다. 아직 남은 소화관들이 있겠지만, 더 이상 찾아낸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절단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김지훈을 보았다.

‘잘하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진행하자.’

“자르자.”

마지막 과정이 시작됐다.

췌장은 무턱대고 자를 수 없는 장기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마치 췌장을 봉합하는 것처럼 바늘을 뜬 후 손으로 타이를 하고, 남은 부분을 제거해야 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바로 타이를 하는 퍼스트였다. 수술의 성패가 퍼스트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힐끗 시선을 준 이준영 과장이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블랙 실크 삼 번.”

블랙 실크는 수술용 실 중 가장 부드러운 실이다. 강도가 강하고 단단한 실들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췌장을 찢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블랙 실크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블랙 실크로 췌장의 일부를 작은 콩 크기만큼 한 바늘 떴다. 김지훈의 손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블랙 실크를 잡았다. 드디어 이번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부처럼 물렁물렁한 췌장 조직은 절대 기구를 이용해 타이를 할 수 없다. 자칫 조금이라도 강하게 매듭을 지으면 췌장 조직이 부서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직에서 전해지는 저항과 강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손으로 직접 타이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김지훈이 타이에 얼마나 숙련됐는지에 따라 환자의 예후가 결정될 것이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실매듭을 서서히 조였다. 말랑말랑하면서 연약한 췌장 조직의 저항이 고스란히 손으로 전해졌다. 부서지지 않으면서 최대한 확실하고 강하게 묶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팽팽하게 당겨진 실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에 최대한 집중하며 매듭을 조였다. 실에 묶인 췌장 조직이 조금씩 압축되는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어느 순간 타이를 마무리했다.

타이를 정확하게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준영 과장의 몫이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매듭을 확인하던 이준영 과장이 손을 내밀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 이거야. 잘했다. 역시 기본기를 확실하게 익혔어.’

“블랙 실크.”

수술을 계속 진행한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 극히 작은 부분을 잘랐을 뿐이었다.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손에 전해지는 느낌에 집중하자, 집중.’

두 번째, 세 번째 타이를 하면 할수록 점점 확실한 감이 왔다. 집중력도 잃지 않았다. 등짝에 흐르는 땀과는 달리 김지훈의 눈은 확실히 냉정하고 차분하게 변하고 있었다.

이경석이 조심스럽게 절개 면을 닦았다. 실이 말라 단단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식염수를 뿌려 부드럽게 만들었다.

손일석이 불편하기만 한 자세를 꿋꿋하게 유지하며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의 시야가 가려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지금은 조그만 소리나 자극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었다. 수술실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이준영 과장의 목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렸다.

수처와 타이 한 번에 실 하나가 소모됐다.

반으로 잘라진 블랙 실크가 쌓여 갔다.

김지훈이 타이를 하려다 말고 이준영 과장을 보았다.

“선생님, 이 부분으로 우리가 찾은 소화관이 주행할 것 같습니다.”

“블랙 실크.”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같은 부위를 다시 한 번 수처를 했다. 이중으로 조직을 묶으면 조직 괴사의 위험이 있지만 소화관이 확실하게 막히도록 하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타이를 하는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의 눈에 순간 만족스러운 빛이 스쳤다.

‘잘하고 있다. 집중력을 절대 잃지 마.’

무거운 침묵 속에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너비 3~4센티미터, 높이 1센티미터 남짓한 췌장의 절단면을 수십 번이나 묶어야 했다. 마침내 마지막 타이가 끝났다. 깨지고 멍든 절단면이 사라지고 밝은 노란색을 띠는 새로운 절단면이 만들어졌다.

가장 힘든 과정은 끝났지만 아직 수술이 끝나려면 멀었다. 다른 수술보다 훨씬 엄격하게 출혈에 대처해야 했다.

이준영 과장이 마른 거즈를 절단면에 대고는 수시로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김지훈 역시 눈을 부릅뜨고 수술 부위를 살폈다. 5분이 넘도록 수술 부위를 지켜보고 나서야 안심이 됐는지, 이제야 이준영 과장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갔다.

“물.”

따스한 물로 배 속을 깨끗이 씻어 냈다. 추가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췌장을 노출시켰다.

출혈을 포함한 위험 징후들이 없는지를 재차 확인한 이준영 과장이 간호사를 보았다.

“피브린 글루, 젤라틴 글루.”

끈적끈적한 액상으로 만들어진 의료용 접착제를 절단면에 두텁게 발랐다. 그 위에 얇은 천처럼 만들어진 접착제를 이중으로 덮었다. 소화관이 새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의료용 접착제가 췌장의 절단면에 단단히 들러붙기를 기다린 후, 드레인(drain:심지)을 박았다. 다른 수술과는 달리 내부에 이중 관 구조를 가진 스텀프라고 불리는 드레인을 넣었다. 한쪽 구멍으로 물을 밀어 넣으면 다른 구멍으로 흘러나오게 만든 드레인이었다.

만일 수술 후 소화관이 새는 것을 감지하면 스텀프를 통해 수술 부위를 세척하기 위해서였다. 2차 수술을 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가 아니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수술이 시작된 지 4시간 만에 복벽을 닫았다.

마지막 봉합이 끝나고 이준영 과장이 장갑을 벗자 한꺼번에 긴장이 풀리는 숨소리가 길게 터졌다. 막상 특별한 술기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술기 하나하나가 모두 위험하고, 중요하기 짝이 없는 수술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은 물론 손일석과 이경석에게도 눈길을 준 후, 송재덕 과장과 함께 수술실에서 나갔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만족스럽다는 눈빛에 김지훈의 입이 찢어졌다. 물론 손일석과 이경석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정말 무뚝뚝하시네. 근데 일석이 니 말하고는 다르시네. 어떤 대목에서 오금이 저려야 되는 거야?”

이경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맛을 다시던 손일석이 김지훈을 보며 갑자기 싱글싱글 웃었다.

“지훈아, 우리 욕 안 먹었으니까 잘한 거지?”

“그런 것 같아. 생각보다 표정이 좋으시네.”

이경석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저게 좋은 표정이야? 지훈아, 그럼 나쁠 때는?”

“그때는 고개도 못 드니까 모르죠. 하지만 아마 내 생각에는 똑같으실 것 같아요. 눈빛만 조금 다르다고 할까?”

이경석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눈빛으로 통한다는 거야? 너 이준영 선생님하고 사귀냐?”

“에이! 징그럽게. 자주 보니까 그런 감이 온다는 거죠.”

손일석이 피식 웃으며 김지훈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 가슴에 꽃이 펴서 알지도 몰라요. 어이구! 옆구리 시려라. 세상은 참 불공평해. 가진 놈은 퍼스트를 서고, 나처럼 가진 거 없는 놈은 써드를 서요. 다음 달까지 나도 하나 만들든지 해야지 서러워서 살겠나.”

이경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새끼손가락을 폈다.

“김지훈, 너 이거 생겼어?”

“그렇게 됐어요, 형.”

“야! 이 자식 대단하네. 그 와중에 언제 여자를 만났대. 손일석이 저건 말만 많지, 니가 진정한 고수였구나.”

손일석이 발끈했다.

“형, 그게 사실은 말이에요.”

그 순간 마취과 전공의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일석을 보았다. 하필이면 3년차였다.

“일석아, 마취 깨우는 중이다. 조용히 하자.”

“옙, 선생님. 죄송합니다.”

수술이 가져온 긴장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김지훈이 환자를 보며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이번 수술은 2년차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을 확실하게 한 걸까?’

어쩌면 고위험을 가진 수술이라 도리어 태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퍼스트가 당황하면 더욱 상황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수술을 들어가 봐야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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