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56화 (256/1,329)

제4화 어려운 수술일수록 기본기가 중요하다 (2)

젊은 환자이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보호자분, 췌장이 반으로 잘린 상탭니다. 제거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췌장은 대단히 위험한 장기이기 때문에 수술 후 결과를 장담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뿐입니다.”

당황한 보호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위험하다는 말씀인가요?”

“췌장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듭니다. 수술 중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절단면을 확실하게 처리한다고 해도 절반 이상에서는 소화액이 새어 나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주요 장기는 다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소화액에 의해 장기가 손상받을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혈관이라도 녹이면 치명적인 출혈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합병증이 발생하면 언제 퇴원할지 장담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확률은 반반입니다.”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을 뿐이었다. 심한 복통을 호소할 뿐 의식도 멀쩡했다. 게다가 이제 21살에 불과한 나이였다. 그런데 사망할 확률이 50프로가 넘는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호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췌장은 잘린 면을 다시 연결할 수가 없는 장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백 프로 문제가 생깁니다. 결정하시기 힘드시겠지만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지금도 소화액이 환자의 몸을 녹이고 있을 겁니다.”

보호자들이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맞댔다.

결정을 기다리던 이준영 과장이 김지훈을 보았다. 한 손에 책이 들려 있었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췌장 수술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는 알고 있겠지. 후우! 그보다 수술 팀이 더 문제군.’

이준영 과장이 처음으로 세컨 문제를 고민했다. 이번 수술은 3년차 이상이 퍼스트를 서야 할 수술이었다. 그것도 경험이 적으면 배제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김지훈의 실력과 노력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술의 난이도 때문에 세컨 역시 경험이 풍부한 전공의가 필요했다. 문제는 오늘이 입국식 날이라는 점이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입에 술 한 모금 대지 않은 삼사 년차는 없을 것이다. 음주 수술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다.

김지훈도 잔뜩 인상을 쓰며 고민에 잠겼다.

‘어시스트를 설 사람이 인턴 둘밖에 없네. 일석이가 함께 들어갔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응급실이 완전히 텅 비는데. 게다가 이 정도 수술이면 세컨과 써드의 역할도 굉장히 중요할 게 빤한데, 어떻게 하지?’

진퇴양난이었다.

이준영 과장도 김지훈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만일 수술 팀의 숙련도가 모자라 위험성을 높인다면 차라리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나았다.

‘별문제 없이 수술을 끝낼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든다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 안 되겠어. 이건 나와 김지훈만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를 위해서는 보다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마땅했다. 정확한 판단을 내린 이준영 과장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응급실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쑥 들어왔다.

송재덕 과장과 이경석이었다.

흠칫 놀란 이준영 과장이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쪼르르 달려가 인사를 한 김지훈과 손일석도 의아하긴 마찬가지였다.

“송재덕 선생님! 여긴 어떻게.”

“어! 이 과장, 환자 보고 있었구나. 봐, 봐.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빨리 봐. 지훈이 너도 가서 빨리 환자 봐라. 지훈아, 빨리 보자.”

이준영 과장이 송재덕 과장에게 다가가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췌장이 절단된 환잔데 아무래도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겠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췌장이 잘라졌어? 그럼 자르면 되지. 왜 보내? 이 과장하고 김지훈이 있잖아. 지훈이 수술 잘한다. 잘하지. 아암! 저놈이 수술은 잘하지. 하자. 수술하자.”

송재덕 과장이 마치 응급실 과장 같았다.

“김지훈 한 명만으로는 힘듭니다.”

“왜? 경석이하고 일석이가 있잖아. 경석아, 일석아, 수술 들어가자. 이런 수술 보기 힘들다. 힘들어. 빨리 들어가자.”

입국식 날 천안도 아닌 서울까지 와 술 한 잔 못하는 게 억울했던 이경석이었다. 여기에 수술까지 들어가야 한다니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경석이 숨도 쉬지 않고 대답을 했다.

“술 한 잔도 안 마시길 잘한 것 같습니다, 과장님.”

“그치? 그래서 내가 너 운전을 시킨 거야, 운전을. 준영이가 어떻게 수술을 하는지, 김지훈이 퍼스트를 어떻게 서는지 잘 봐. 좋다. 좋아. 니들에게도 이런 수술은 정말 좋은 기회야. 평생 못 볼 수도 있어.”

손일석이 반색을 하면서도 머리를 긁적였다.

“과장님, 저 응급실 당직입니다.”

“당직?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내가. 이 과장, 내가 인턴하고 같이 응급실 환자 봐줄 테니까 둘 다 데리고 들어가. 좋다. 좋아. 아! 좋다.”

천하의 송재덕 과장이 응급실을 커버한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이준영 과장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송재덕 과장이 별일 아니라는 듯 허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오면 얼마나 오겠니. 하자. 빨리하자.”

“선생님,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이 과장, 왜 이래. 왜 이래. 나 응급 환자도 잘 보는 거 알잖아. 술 먹은 것 때문에 그래? 나 몇 잔 안 마셨어. 냄새나나? 냄새나? 그럼 마스크 쓰고 보면 되지. 암! 그러면 되지.”

이준영 과장이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손일석은 충분히 믿을 만했다. 문제는 이경석이었다. 하지만 송재덕 과장은 아무에게나 신뢰를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민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이경석에게 수술을 들어가라고 했다면 그만큼 뛰어나다는 말이기도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전공의들을 앞에 두시더니 여전하시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선생님.’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보호자들도 수술에 동의를 했다.

이로써 수술 팀이 결정됐다.

집도의 이준영 과장.

퍼스트 김지훈, 세컨 이경석. 써드 손일석.

비록 삼사 년차는 한 명도 없었지만, 입국식 날 짤 수 있는 최상의 수술 팀이 꾸려졌다. 평상시 인원이 남아돈다고 해도 2년차가 세컨과 써드를 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더구나 모두 믿을 만한 전공의들이었다.

이준영 과장과 송재덕 과장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환자가 옮겨지기를 기다리던 2년차 3명이 머리를 맞댔다. 오래간만에 봐 반가운 인사를 나눌 만도 했지만, 간단하게 눈인사를 한 것으로 끝났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어시스트를 서야 할지였다.

“지훈아, 췌장 수술 들어가 봤어?”

“아니요. 형도 처음이에요?”

“응. 나도 처음이야. 뭘 주의해야 하는지 알아?”

“가장 기본적인 술기지만 다른 어떤 술기보다 타이가 제일 중요한 것으로 보여요. 타이(tie:매듭)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샐 가능성이 무척 높아지니까, 절단된 면을 처리할 때가 가장 주의해야 할 때겠죠? 기구를 이용한 타이는 안 되고, 모두 손으로 해야 할 겁니다.”

이경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네 손에 집중을 해야겠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세컨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술의 경우에는 퍼스트가 타이를 할 때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손일석이 입맛을 다셨다.

“남은 일은 하나뿐이네. 지훈아, 시야 확보는 내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야! 떨린다. 우리 판단이 틀리면 죽었다고 복창해야 될 수술이잖아. 난 이준영 선생님 목소리만 들어도 오금이 저려.”

이경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일석아, 그렇게 살벌하셔?”

“못 봤으면 말을 마세요. 아주 죽습니다.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니까요.”

“하긴 목소리하고 표정이 예사롭진 않더라. 나도 은근히 걱정되네.”

김지훈이 씨익 웃었다.

“형, 절대 안 죽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냥 식은땀 좀 흘리고, 수술 끝났을 때 재만 털면 돼요. 그건 그렇고, 조심해야 할 사항이 또 있을까요?”

한동안 수술 시 주의 사항 등을 얘기하던 2년차 3명이 곧 환자를 따라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졸지에 일반 외과를 도는 인턴들이 응급실을 지켜야 했다. 이제 한 달이 갓 지난 탓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취가 시작됐다. 부산하던 수술실이 조용해지며 2년차들의 긴장이 점점 고조됐다. 송재덕 과장이 덧 가운을 입고 수술을 참관한 탓에 입도 벙긋하기 힘들었다.

말없이 환자를 보며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과장이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뭐가 제일 중요해?”

“절단면 처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타이를 할 때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손일석.”

긴장으로 굳은 어깨를 움직이던 손일석이 깜짝 놀랐다.

“예? 아! 예. 수술 시야 확보에 주력하겠습니다.”

“이경석.”

“이번 수술은 퍼스트의 역할이…….”

“간단하고 확실하게 말해.”

이경석이 흠칫 놀라며 재빨리 머릿속을 정리했다.

“수술 시야 확보 및 퍼스트가 타이를 할 때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손일석과 이경석이 눈을 마주치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김지훈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가에 살짝 주름을 그렸다.

‘일단 각자 역할은 제대로 파악했다는 말씀이신데.’

마취과 전공의의 사인과 함께 수술이 시작됐다.

이준영 과장의 손에 메스가 들리자 긴장감이 확 퍼졌다.

환자의 상복부 정중앙을 길게 절개하고 복막을 열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빠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환자의 절개된 복벽을 잡은 김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경석이 반사적으로 리트랙터(retractor:수술용 끌개)를 들어 올렸다.

환자의 우측에 선 이준영 과장이 위와 소장 및 좌측 대장과 비장을 확인했다. 위와 평행 결장 일부가 타박을 입어 빨갛게 피멍이 들었지만 우려할 만한 손상은 없었다.

이준영 과장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일석이 재빨리 리트랙터를 들어 올려 환자의 우측 복부 쪽의 시야를 확보했다.

김지훈이 눈과 손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우측 대장 및 간을 확인했다.

“이상 없지?”

“예. 이상 없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한 김지훈이 위와 평행 결장 사이를 벌렸다. 췌장에 접근하는 경로였다. 당연히 추가로 간 손상을 확인해야 할 이준영 과장이 그대로 수술을 진행했다.

이경석이 묘한 눈빛을 보였다.

‘췌장만큼 중요한 장기인 간의 손상을 확인하는데 지훈이 말로 끝이야? 도대체 얼마나 믿으신다는 말이지?’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수술용 가위와 전기 소작기를 이용해 췌장을 덮고 있는 구조물들을 차례로 절개했다.

췌장을 마지막으로 싸고 있는 얇은 막이 드러났다. 그 아래로 밝은 노란색의 췌장이 보였다. 한가운데에서 약간 우측으로 처진 위치에 심한 피멍이 들어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신중한 손길로 막을 제거했다. 김지훈이 빠르고도 정확하게 손을 맞췄다. 손일석이 탭(수술용 천)을 이용해 소장과 평행 결장을 아래로 밀어 전체적인 수술 시야를 확실하게 확보했다. 이경석 역시 출혈 부위를 재빨리 닦으며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경석도 괜찮네. 이 정도면 안심하고 진행해도 되겠어.’

마침내 췌장이 완전히 노출됐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경험만 있으면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하고도 위험한 과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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