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52화 (252/1,329)

제2화 일반 외과를 왜 했지? (2)

같은 일상이 반복됐다. 김지훈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의 눈빛이 어딘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산만해졌어. 아직 체력 회복이 안 된 건가? 아니면 다른 일이라도 있는 걸까?’

이준영 과장이 몇 번이나 한마디 하려다 참았다. 꾀를 부리거나 일을 힘들어하는 문제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심리적으로 불안한 것 같았다. 누구보다도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김지훈이었기에 이준영 과장은 내심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지훈도 괴로워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혼이 나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가르치고자 하는 이준영 과장과 교수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금경태 과장의 문제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타격이었다.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사달이 날 것이다. 한마디 듣는 정도가 아니라 묵사발이 될 정도로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금경태 과장과의 문제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 몰랐다. 하지만 혼자 해결하기에는 너무 벅찬 문제였다.

마침내 신기동 교수에게 한 소리를 먹었다. 환자 파악은 물론 퍼스트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섰다. 그러나 어딘가 나사가 풀린 사람처럼 틈만 나면 얼굴을 구기며 멍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차라리 새카맣게 탈 때 김지훈의 표정이 편해 보일 지경이었다.

“김지훈, 수술 다 끝났는데 오더 안 내?”

김지훈이 머리만 긁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지훈, 너 내 말 안 들려?”

그제야 목소리가 들린 김지훈이 의아한 얼굴을 하자 신기동 교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몸이 아프면 더 쉬라고 했지? 너 정신을 어디다 두고 있는 거야? 환자가 병실 올라가기 전에 뭐 해야 돼?”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급히 인사를 하고는 회복실로 달려갔다. 국소마취하에 수술을 한 환자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당연히 오더를 다 냈을 줄 안 간호사들이 이미 환자를 병실로 옮긴 후였다. 부랴부랴 내과 병동으로 가 숨을 헐떡거리며 오더를 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집중하자, 집중.’

생각과 마음과 몸이 따로 놀았다. 잠시라도 일이 없으면 금경태 과장이 떠오르며 한숨부터 나왔다.

표정이 하도 안 좋아 1년차들이 슬슬 피했지만, 김지훈은 그런 일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집중력을 잃으면 연이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결국 그날 저녁, 큰 사달이 났다.

7시가 넘자마자 소장이 터진 교통사고 환자가 왔다. 급히 수술 준비를 하고 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여느 때와 똑같이 수술이 진행됐다. 수술을 진행하던 이준영 과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김지훈을 지켜보았다.

김지훈에게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준영 과장의 눈에는 김지훈의 손이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방향이 아니었다. 어떤 교수가 집도를 해도 훌륭하게 퍼스트를 설 수준이었지만, 이준영 과장이 보기에는 엉망이었다. 목소리를 높이려던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손이 문제가 아니라 머릿속이 문제였다.

‘이제는 체력 문제는 걱정할 정도가 아니고 다른 문제도 없는데, 이 자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더 집중을 못하지?’

극히 미세한 변화였다. 세심하기 짝이 없는 이혁민 교수라고 해도 알 수 없는 차이였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김지훈에게 지대한 관심과 정성을 쏟는 이준영 과장이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김지훈에 관한 것이라면 놓칠 수가 없었다.

이준영 과장이 묵묵히 수술을 진행하며 김지훈을 살폈다.

확실했다.

손은 정확하게 따라오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전보다 더 산만해지고 있었다. 수술에 집중하기는커녕 생각을 하는 기색도 없었다.

‘김지훈, 너 왜 이래? 기계적인 손은 그냥 수술만 해도 만들 수 있는 수준이야. 니 생각과 그 좋던 손은 도대체 어디 갔어? 아직도 몸이 안 좋은 거야?’

이준영 과장이 온갖 생각을 했다. 이런 경우 태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을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을 찾아야 했다.

수술은 무난하게 끝났다. 마취과 전공의가 내심 감탄을 터트렸다.

‘야! 정말 수술 잘하시고 퍼스트 잘 서네. 이 정도면 웬만큼 다쳐서는 죽고 싶어도 못 죽겠다.’

그런데 김지훈이나 이준영 과장이나 안색이 좋질 못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마취과 전공의가 이내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환자가 몸을 비트는 모습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수술실을 나왔다. 그제야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항상 장갑을 벗을 때 인사를 했던 김지훈이었다. 다른 때보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사람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김지훈의 심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강한 확신이 든 이준영 과장이 회복실에서 환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서도훈과 함께 환자를 옮기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스스로도 집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스승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김지훈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그동안 수술 중 왜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빤히 알고 계셨을 텐데 뭐라고 말씀드리지?’

김지훈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바닥만 보았다. 눈가를 좁히며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툭 한마디를 던지고 수술 방을 나갔다.

“당직실로 와.”

“예, 선생님.”

수술 중 실수를 하지 않아도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면 혼을 내는 스승이었다. 수술 중에 보인 자신의 모습에 너무 화가 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훈이 한숨을 쉬었다.

한심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스승님께 이런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답답한 마음을 금치 못한 김지훈이 마구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미치겠다. 죽고 싶다.”

정말 간만에 재가 되는 것을 면하고 있는데, 왜 죽고 싶다고 할까? 그것도 이준영 과장과의 수술이었다. 서도훈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과 마주 앉았다.

“너 무슨 일 있어?”

“아닙니다, 선생님.”

“그럼 요새 수술 중에 왜 그러는지 말해 봐. 집중을 하지 못할 때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김지훈이 고개만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역시 스승의 눈은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어 너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말을 해도 될지 의문이 생겼다. 공연히 걱정만 끼칠 수 있었다.

금경태 과장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같은 교수였다. 스승에게 자신이 찍혔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구나 이제 서울 병원에 온 지 한 달이 갓 넘은 이준영 과장이었다. 응급실 근무 역시 과중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김지훈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눈가를 찌푸렸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입을 다물 김지훈이 아니었다.

“내가 알면 안 되는 사생활이야?”

“아닙니다, 선생님.”

김지훈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스승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준영 과장은 김지훈의 눈빛과 표정 속에서 도움을 청하는 손을 보았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분명했다.

‘왜 내게 말을 못하는 거냐. 난 네 스승이야.’

스승에게 제자는 어리고 예쁘기만 할 수 있었다. 반면 제자의 눈에 스승은 어렵고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스승이라면 더욱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동안 김지훈을 보던 이준영 과장이 조용히 밖으로 나가 믹스 커피 두 잔을 가져왔다.

믹스 커피 향이 유난히도 진하게 퍼졌다.

“마셔.”

“괜찮습니다, 선생님.”

“난 사실 믹스 커피 안 좋아했다. 그런데 네가 음성에서 준 커피 때문에 이제는 믹스 커피를 가장 좋아하게 됐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김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이준영 과장의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다.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이렇게 아껴 주는 스승을 두고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 사내자식이 눈물까지 보여?’

“뭐가 널 그렇게 괴롭게 만드는 거야?”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걱정했던 일이었다. 이준영 과장은 이미 수술실에서 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내색을 안 하려고 애를 썼기에 지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가슴속을 답답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스승이라면 속 시원한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가를 훔치며 길게 숨을 내쉰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이런 일을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안 해도 돼.”

다시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의자를 바짝 당겨 앉은 이준영 과장은 언제든 들을 준비가 돼 있었다. 아니, 어서 말을 해 보라는 눈빛이었다.

한동안 뜸을 들인 끝에야 김지훈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금경태 과장님께서 절 싫어하신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뭐야! 결국 그 사실을 안 거야?’

이준영 과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최고의 써전이 되기 위한 꿈을 가진 김지훈이었다.

음성에 왔을 때 이미 누구나 불평을 터트릴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코 기가 죽지 않았다. 도리어 10년간이나 극복하지 못했던 자신의 트라우마를 이겨 내게 했다.

그동안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성취도 있었다. 단 한 번도 교수들의 눈길이 갈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하기에 일반 외과의 과장인 금경태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준영 과장도 일순 입을 열지 못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김지훈에게 최선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숨길 수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장례식장 문제부터 정갑수 일까지 다 얘기해 주어야 할까? 나 혼자 결정하기 너무 어렵군.’

한참을 고민하던 이준영 과장이 전화를 들었다.

“이혁민 교수 좀 연결해 줘요.”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준영 과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조용히 커피만 비웠다. 평소에는 한 잔으로 끝냈던 이준영 과장이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연락을 받은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과 금경태 과장의 일 때문이라는 말에 급히 응급실로 달려왔다.

김지훈을 내보낸 이준영 과장이 한참 동안 이혁민 교수와 대화를 나누었다.

응급실 침대에 걸터앉은 김지훈이 멍청히 당직실 문만 보았다. 이혁민 교수까지 나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큰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잠시 후,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불렀다.

이준영 과장이 심각한 안색으로 턱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복잡한 눈빛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앉아. 니 금경태 과장님에게 찍혔다는 소리가 무엇인지는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어떻게 그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사실 난 작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네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동안 잘해 왔기에 앞으로도 이런 말을 할 날이 없기를 바랐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막상 이혁민 교수의 입을 통해 듣자 마치 처음 듣는 말처럼 새로운 충격이 느껴졌다.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이유가 뭡니까?”

“발단은 장례식장 문제다. 과장님이 관련이 있을 줄은 모르고 내가 큰 실수를 했어. 어쩌면 나 때문에 시작이 된 일일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이혁민 교수가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며 장례식장 문제에 이어 정갑수 문제까지 상세하게 설명을 했다.

김지훈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듣고는 있었지만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옳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금경태 과장의 이해와 계속 맞물리면서 도리어 문제가 됐다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화도 나지 않았다. 솔직히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과장에 부원장 자리까지 올라간 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모두 부당한 일이었잖아. 난 결국 아무 잘못도 없이 찍혔단 말이네.’

이혁민 교수의 말이 끝났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보다 부당한 일이 없었지만, 김지훈은 마치 남의 일처럼 황당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침묵이 길어지며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