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40화 (240/1,329)

제8화 무조건 살리는 것이 목적이다? (3)

순간 묘한 긴장감이 이준영 과장에게 전해졌다.

“김지훈, 왜 그래?”

“선생님, 바이패스(bypass:혈관 우회술)를 하면 되지 않을까요? 두 곳이라고 해도 대장 전 절제술과 수술 시간을 비교하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김지훈과 함께 신기동 교수의 수술을 보조한 고경아까지 있었다. 수술을 위한 외부 조건은 완벽했다.

“바이패스?”

이준영 과장이 회색빛 대장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교과서에도 없는 수술법이었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대장이 완전히 죽은 상태가 아니었다. 빠르게 혈류를 회복시킨다면 대장을 살릴 수도 있었다. 이는 단순히 장기 하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목숨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렇게 가르치려 했던 수술의 목적을 정작 내가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 바이패스라면 역시.’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김지훈, 연락하자.”

“예, 선생님. 마취과 간호사, 신기동 선생님과 빨리 연결해 줘요.”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하지만 일반 외과 의사의 귀는 항상 열려 있어야 했다.

신기동 교수와 바로 통화가 됐다. 이준영 과장이 직접 상황을 설명하자 이삼십 분 내에 올 수 있다는 목소리가 들렸다. 남은 일은 대장의 혈류를 어떻게든 유지하는 것이었다.

“대장 내 압력부터 줄이자.”

어느새 김지훈이 석션기를 들고 있었다. 대장에 분포된 가느다란 동맥에 가해지는 압박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대장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 가스와 내용물을 제거했다. 빵빵했던 대장이 쭈글쭈글해졌다.

“고 간호사, 뜨거운 물.”

김지훈의 말에 이준영 과장이 눈가를 좁혔다. 김지훈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과장이 배 속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동맥을 최대한 확장시키려는 의도였다.

이런 방법들이 대장을 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조금이라도 혈류를 증가시켜 줄 것이다. 신기동 교수가 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 순간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바이패스를 하려면 정맥이 필요하잖아? 미리 준비를 해야지 시간을 최대한 아낄 수 있어.’

“선생님, 바이패스에 필요한 정맥을 다리에서 떼실 것 같습니다. 일석이와 함께 미리 준비를 하겠습니다.”

이준영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손일석에게 빨리 손을 씻고 들어오라고 했다.

환자의 좌측 다리를 노출시키고 깨끗이 소독을 했다. 고경아가 어느새 수술 보조 테이블을 하나 더 준비했다.

혈관을 뗄 준비를 마치자마자 신기동 교수가 도착했다.

“선생님, 막힌 부분이 어딥니까?”

“좌우측 대장 동맥 근위부가 거의 다 막혔어. 그래도 바이패스를 할 부분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야.”

바로 환자의 막힌 혈관을 확인한 신기동 교수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었고, 실제로도 극히 드문 경우였기에 살짝 흥분한 것이다.

“이식할 혈관은 십 센티미터 정도만 있으면 가능하겠습니다. 제가 다리에서 정맥을 떼면 바로 연결할 수 있도록 동맥 주변을 깨끗이 박리해 주십시오.”

“알았어. 빨리 시작해.”

이준영 과장과 김지훈이 대동맥과 대장 동맥에 붙은 조직들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기동 교수와 손일석이 좌측 다리를 절개하고 동맥의 압력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정맥을 찾았다. 고경아가 능숙하게 두 개의 수술을 보조했다.

신기동 교수가 정맥을 확보했다. 동맥으로 사용하기 위해 정맥 내부에 있는 밸브(valve)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정맥의 압력이 낮기 때문에 역류를 막기 위한 조직이지만 혈전이 생기는 원인이기도 했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손일석이 피로는 물론 환자 사망으로 인한 충격까지 완전히 잊고 신기동 교수와 손을 맞췄다.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바이패스를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준영 과장과 신기동 교수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선생님, 일단 일 분간 동맥을 차단한 후 혈관 연결을 시도하고, 일 분간 혈류를 다시 열어 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오른쪽을 하시겠습니까?”

“좋아. 신 교수가 좌측을 맡아.”

“예, 선생님. 김지훈, 십 분 내에 바이패스를 끝낼 거야. 정신 바짝 차려. 실수하면 안 돼.”

“예, 선생님.”

혈류를 열어 주는 시간을 빼면 혈관을 연결하는 시간은 불과 5분이었다. 그만큼 빠르고 급박하게 수술이 진행된다는 말이었다.

“고 간호사, 하던 대로 합시다.”

고경아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눈에 바짝 힘을 주고 있었다. 김지훈 역시 긴장을 하면서도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스승님께서 혈관 수술도 하셨어?’

이준영 과장과 신기동 교수가 이마에 루뻬를 썼다.

“혈관 겸자.”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혈관 겸자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동맥의 위아래를 확실하게 잡았다. 혈류가 완전히 차단됐다. 대장이 순식간에 꺼멓게 변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수술실을 휩쓸었다.

메스로 동맥을 절개하고 이미 준비된 정맥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눈을 부릅뜨고 수술 부위를 보며 말했다.

“일석아, 일 분 되면 알려 줘.”

이준영 과장과 신기동 교수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실이 동맥과 정맥의 벽을 뚫고 오갔다. 김지훈이 헤파린이 섞인 생리 식염수를 뿌리고, 다시 석션을 하며 집도의들의 손이 멈추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일 분 됐습니다.”

동맥을 잡고 있던 혈관 겸자를 풀고 바이패스로 연결될 부분을 막았다.

따가각! 따가각!

강한 동맥 혈류가 혈전으로 좁아진 혈관에 막혀 제대로 흐르지 못했다. 혈액 공급이 더욱 부족해진 대장이 점점 짙은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일 분 됐습니다.”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따가각!

다시 동맥이 차단되고, 두 개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동맥과 정맥이 첫 번째 부위에서 연결됐다.

혈관을 잡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김지훈과 고경아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시계를 보는 손일석의 혀가 바짝 말랐다.

“일 분 됐습니다.”

마침내 손일석이 10분이 지났음을 알렸다. 동시에 두 개의 동맥을 우회한 두 개의 정맥이 정확하게 연결됐다. 이준영 과장과 신기동 교수가 눈을 마주쳤다.

“신 교수, 풀자.”

“예, 선생님.”

동맥을 잡고 있던 혈관 겸자가 풀렸다. 막힌 부분을 우회해 위아래로 연결된 정맥이 강한 압력에 부풀어 올랐다. 심장에서 출발해 대동맥을 지나 대장 동맥으로 흐른 피가 힘차게 흘렀다.

툭! 툭! 툭! 툭!

이식된 정맥이 심장박동을 따라 불끈불끈 움직였다.

장간막을 따라 나뭇가지처럼 갈라지며 대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가느다란 동맥들이 서서히 붉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마침내 시커멓게 보였던 가장 말단의 동맥들까지 발갛게 변하기 시작했다.

과연 혈류가 회복된 대장이 완전히 살아날까?

모든 시선이 일제히 회색빛 대장에 쏠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우회 수술이 실패했다면 대장을 모두 제거해야 했다.

초조함을 못 이긴 김지훈이 시계를 보는 순간 무언가 움직였다. 대장이 꿈틀거렸다. 미세하게 시작된 움직임이 점점 커지며 파도처럼 이어졌다. 급기야 회색빛이 사라지며 분홍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혈류를 완전히 되찾은 대장이 규칙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정상적인 연동 운동이었다.

‘성공이다!’

숨을 죽인 채 대장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과 조용한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게 무뚝뚝하고 무표정했던 이준영 과장도 긴 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양 교수, 됐다. 성공했어. 안 잘라도 된다.”

극도의 긴장 속에 수술을 지켜본 이혁민 교수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말했다. 양승철 교수가 이제야 거칠게 숨을 내쉬며 수술 팀을 보았다. 아직도 두 주먹을 꽉 쥔 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과연 이런 수술을 성공할 수 있을까?

응급실에서부터 수술까지 무수한 변수가 있었다.

무조건 제거해야 한다는 기계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했거나, 자존심 때문에 신기동 교수를 부르지 않았다면 실패했을 것이다. 김지훈이 우회 수술을 생각하지 못했고, 손일석이 제대로 퍼스트를 서지 못했다면 역시 실패했을 것이다. 고경아의 완벽한 수술 보조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니, 이 모든 것을 떠나 배를 열어야 한다는 판단을 정확하게 내리지 못했다면 환자의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었다. 이준영 과장과 신기동 교수, 그리고 김지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한 사람 고맙지 않은 이가 없었다.

양승철 교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준영 과장님, 고맙습니다. 신 교수, 이 교수, 정말 고마워. 김지훈 선생, 정말 고맙다. 손일석, 수고했어. 우리 간호사도 정말 수고했어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은 이준영 과장이 10여 분을 더 기다렸다. 대장은 끊임없이 움직였고, 색은 더욱더 밝은 분홍빛을 유지했다. 마지막 과정이 남았다.

“신 교수, 혈관 보강하고 끝내자. 시작해.”

“예? 제가 하라고요?”

“내가 알고 있는 방법은 십 년도 더 됐어.”

신기동 교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고 간호사, 보강할 준비합시다. 김지훈, 시작하자.”

이준영 과장이 슬며시 옆으로 비켜섰다.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과 함께 혈관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우회 수술 동안 번개처럼 움직이던 손이 섬세하고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도 확실한 목적이 있었어. 목적에 따라 빨라야 할 때는 거침이 없을 정도로 빨라야 하고, 섬세해야 할 때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아. 어떤 술기도 단순하게 접근하는 게 아니었어.’

주변 조직과 인공 구조물을 이용해 이식된 정맥 외벽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신중하게 이식된 정맥이 동맥의 압력을 충분히 버티는 것을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모두 끝났다.

신기동 교수가 손에 들고 있던 수술 기구를 고경아에게 건넸다. 눈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대장 전 절제술을 했다면 대여섯 시간은 걸렸을 시간을 3시간 이상 단축했다. 마취 시간까지 짧아진 것을 생각하면 환자에게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일이었다.

마취가 끝나고 환자가 회복실로 옮겨졌다.

김지훈이 수술실을 청소하고 있는 고경아에게 슬쩍 눈인사를 했다. 이런 수술을 함께했다는 것이 이상스럽게도 행복했다. 고경아도 분명 웃고 있었다.

이준영 과장이 회복실로 가는 김지훈을 보았다.

‘오늘은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내가 원하던 수준까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왔지만 아직은 혼란스럽겠지. 조금은 더 밀어붙여야 하나? 저놈 얼굴을 보니까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도 들고 고민이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과장이 수술실을 나가려는 이혁민 교수와 신기동 교수를 붙잡았다.

“신 교수, 이 교수, 고마워.”

둘 다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지난 시절 고맙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트레이닝 시절부터 교수가 될 때까지 항상 저만치 앞서 있던 이준영 과장이었다. 자존심과 자부심이 남달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일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의료사고가 난지도 몰랐다.

10년의 세월이 변하게 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

신기동 교수가 웃었다.

“오늘 수술에 불러 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선생님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신 교수, 이 교수, 내일, 아니 오늘 저녁에 지훈이하고 고 간호사와 함께 회식하기로 했어. 그때 왔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되나?”

“선생님이 부르시는데 당연히 가야죠.”

신기동 교수의 말에 이혁민 교수가 당연하다는 듯 웃었다. 이준영 과장이 일어나며 고경아를 보았다.

“고 간호사, 괜찮지? 그놈에게도 좋은 일이야.”

“네, 선생님.”

김지훈이 교수들에게 잘 보여 나쁠 일은 없었다. 고경아가 밝게 웃으며 대답을 하자 이혁민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난데없는 그놈이 누굴까?

다른 사람도 아닌 이준영 과장의 입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욱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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