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의사의 한계 (2)
다음 날 아침, 김지훈이 모처럼 오전부터 이혁민 교수의 수술에 들어갔다. 문순옥 간호사의 남편인 임현기가 수술을 받는 날이었다. 이제 마흔인데 3기 암으로 판정을 받아 마음이 무거웠다.
최철한과 함께 수술실 내의 뷰박스에 복부 CT를 걸었다. 사진상으로도 뚜렷이 보일 정도로 암 덩어리가 컸다. 원격 전이는 없었지만 주변 임파선에 전이가 의심됐고, 약간의 복수까지 관찰됐다.
“지훈아, 정확한 스테이징(staging:암 기수)이 어떻게 돼?”
“Stage IIIb(3기 말)로 생각됩니다.”
“예후가 어떻게 되지?”
“오 년 생존률이 이십 프로 전후 정도 됩니다.”
“에휴! 빨리 좀 오지. 하필이면 나이도 젊은 데다 문순옥 간호사 남편이냐. 나랑은 꽤 친한데 말이야.”
최선을 다해 수술과 항암 치료를 하고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환자였다. 가슴이 답답해진 김지훈이 수술실 밖을 기웃거리다 서도진과 함께 급히 달려 나갔다.
임현기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이혁민 교수가 환자를 안심시켰다.
“환자분, 마음 푹 놓으세요. 수술만 잘되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물론 항암 치료는 받아야 하겠지만, 그 정도 고생은 각오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큰 수술을 앞두고 코 줄에 소변 줄까지 끼웠다. 수술실의 모든 기기들이 낯설 것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쉬운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혁민 교수의 말에 웃음을 보였다.
잠시 후, 수술이 시작됐다. 명치서부터 배꼽 아래까지 길게 절개를 했다.
피하지방을 제치고 복벽 정중앙에 위치한 백색 선과 복막을 잘랐다. 김지훈과 서도진이 재빨리 리트랙터(retractor:끌개)를 걸었다.
배 속이 환히 드러났다. 그 순간 모두 말을 잃었다. 임파선이 주행하는 모든 조직에서 좁쌀 크기의 노랗고 작은 덩어리들이 셀 수도 없이 관찰됐다. 너무 작아 복부 CT로도 잡아낼 수 없는 병변이었다.
모두 암 세포 덩어리였다. 온몸에 암이 퍼졌다는 의미였다.
3기 말이 아니라 말기 암 환자였다.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위암을 제거한다고 해도 배 속 전체로 퍼진 암은 순식간에 자라 환자의 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일반 외과 의사의 한계였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가 와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무리한 수술은 환자를 살리기는커녕 고통만 가중시킬 것이다.
배 속을 들여다보던 이혁민 교수가 암의 첫 발병지인 위를 잠시 만져 보고는 말했다. 배를 연 지 불과 10분도 안 돼 결정을 내렸다.
“위치상 십이지장 입구가 막히지는 않겠다. 닫자. 철한아, 수술 끝나는 대로 문순옥 간호사 내려오라고 해라.”
의외라고 할 정도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마무리까지 직접 한 이혁민 교수가 침통한 표정으로 문순옥 간호사를 만났다. 예상외로 빠른 시간이었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창백한 안색으로 입술을 꼭 깨물고 있던 문순옥 간호사가 입가를 막고는 숨죽여 울었다.
김지훈과 최철한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필사적으로 버티고 선 문순옥 간호사를 지켜볼 뿐이었다.
‘후우! 힘들다.’
이혁민 교수가 문순옥 간호사의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
“문 간호사, 미안해요.”
문순옥 간호사가 비틀거렸다. 꼭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이 다가와 문순옥 간호사를 꼭 안으며 불안한 눈빛을 보였다.
이혁민 교수가 병실에서 만나겠다며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수술을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아무리 아파도 임현기는 잊고 다음 환자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이 의사였다.
먹먹한 가슴으로 회복실에 들어간 김지훈이 임현기 환자를 보았다.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했지만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도진아, 병실 올라가면 아프다고 호소할 때마다 바로 진통제 주라고 해.”
“선생님, 지금 막 수술 끝났는데 그래도 되나요?”
“이 상황에서 안 될 게 뭐가 있겠어.”
“알겠습니다. 그런데 수술명은 뭐라고 적죠?”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Explo-lapa(개복술).
말 그대로 배를 열고 닫았다는 용어였다. 일반 외과 의사로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말이었고, 환자에겐 치명적인 선고였다.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위암이라도 제거해 주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한 사람의 생명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이혁민 교수만의 판단이 아니었다. 무수하게 많은 선배 의사들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문득 구미에서 손도 대지 못하고 놓쳤던 19살 꽃다운 나이의 대장암 환자가 떠올랐다.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 김지훈이 한동안 회복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날 오후, 뒤숭숭한 마음에 얼굴만 구기던 김지훈이 임현기 환자를 찾았다. 문순옥 간호사가 물끄러미 자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었다. 함께 복도로 나왔다.
“많이 아파하지는 않으세요?”
“아파할 때마다 진통제를 맞았어요.”
“힘내요. 기적이라는 게 있잖아요.”
눈가가 퉁퉁 부은 문순옥이 김지훈을 보았다.
“기적이라는 걸 믿으세요?”
“글쎄요. 그래도 가끔 TV에서 보면 의사들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암은 그대로 있는데 항암 치료를 꼭 해야 될까요?”
“당연히 해야죠. 크기라도 줄여 주면 수술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침울하고 낮은 목소리가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전 그런 경우를 한 번도 못 봤어요. 고생만 하고 결국 다 떠나더라구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요. 결과가 어떨지 누가 알겠어요.”
문순옥이 잠시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고는 쓸쓸하게 웃으며 병실로 들어갔다. 항암 치료를 포기할 것 같은 표정에 김지훈의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위에 발생한 암 덩어리라도 제거했다면 항암 치료라도 적극적으로 받았을까? 그렇다고 무리하게 수술을 했다가는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잖아. 후우! 모르겠다. 지금 수준의 항암 치료는 말기 위암 환자에게 소용이 없다는 걸 문 간호사도 알고 있을까?’
암마다 독특한 특성이 있었다. 대장암은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에 곧잘 반응했지만 위암은 다소 달랐다. 아마 아직까지 최적의 항암제를 개발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정말 답답하고 긴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더욱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그나마 낮에는 상황을 봐 가며 잠시라도 눈을 붙였지만, 오늘은 수술을 들어가느라 그럴 틈도 없었다.
최철한의 오더를 받아 적는 서도진을 보던 김지훈이 끄덕끄덕 졸았다. 자칫 책상에 머리를 박을 판이었다.
유석재가 최철한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 숙소 가서 자라고 할까요?”
“놔둬. 그런다고 가서 잘 놈이야? 에휴! 문제네. 어떻게 파트 2년차는 없고 1년차만 둘이냐. 어째 도진이 니가 더 쌩쌩한 것 같다.”
오더와 상관없는 말에 슬슬 눈이 감겨 가던 서도진이 반짝 눈을 떴다. 100일 당직 2주차인 1년차의 모습이 온전할 수가 없었다.
유석재가 웃으며 서도진의 어깨를 주물렀다. 최철한이 입술을 모으며 김지훈과 서도진을 번갈아 보았다.
“도진이야 원래 이렇게 일해야 하는 놈이고, 문제는 지훈이네. 이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 응급실이나 신기동 선생님 수술을 우리가 대신 들어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방법은 단 하나였다. 유석재가 입맛을 다셨다.
“선생님, 앞으로 우리 파트 일은 제가 하겠습니다. 도진아, 환자 노티할 일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해.”
다들 의국에 모여 오더를 내다 최철한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참이었다. 서도진이 대답을 하려는 찰나 손일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제가 지훈이 일을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
손일석의 말에 오상익 파트 4년차가 고민하는 눈치를 보였다. 김지훈의 업무량은 누가 보아도 무리였지만, 2년차 치고는 손일석의 일 역시 상당히 많았다.
“너도 일이 많은데 괜찮겠어?”
“양방만 안 뜨면 낮에는 시간이 제법 있습니다.”
“좋아. 석재야, 우리 파트도 좀 도와줄게.”
“선생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유석재가 손을 저으며 미안해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경태 과장 파트 4년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에이! 이러면 우리도 빠질 수 없잖아. 현수야, 이참에 니 능력 한번 보여 봐. 아니다. 전달처럼 셋이 다 함께 파트 가리지 말고 일해라. 어때?”
잠시 고민을 하던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선생님.”
“좋아. 이렇게 되면 2년차는 파트 구분이 없어지는 건가? 철한아, 그게 좋지 않겠어? 과장님만 모르시면 만사 오케이 같은데.”
“난 좋은데, 정말 그래도 될까?”
“야, 우리 2년차들 능력 대단하다는 건 온 병원이 다 아는 사실이야. 일 좀 나눠 한다고 까딱이나 하겠어? 현수야, 일석아, 내 말이 맞지? 어이구!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지훈이 저 자식은 그냥 퍼 자고 앉았네.”
아닌 게 아니라 김지훈이 아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다들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고, 손일석은 신현수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했다.
‘내가 지훈이와 똑같은 경우였어도 이렇게 걱정하고 배려를 해 주었을까?’
왠지 자신이 없어진 신현수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오전, 스테이션에서 엎드려 졸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며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시계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밤에는 심근경색으로 들어온 내과 환자 한 명과 아뻬 수술 하나뿐이었다.
서너 시간 정도 잠을 잤지만 피로감은 똑같았다. 이번 역시 별말이 없었던 이준영 과장 때문이었다.
‘아뻬는 왜 안 태우시지? 수술에 따라 내 손이 달라질 리는 없잖아. 분명 뭔가 있는데 감도 안 와서 미치겠네.’
잠시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기지개를 펴며 오늘 할 일을 챙겼다. 그런데 이미 누군가 다 하고 난 후였다.
“아까 손일석 선생님이 다 하셨어요.”
간호사의 말에 어리둥절한 눈으로 손일석을 찾았다. 이제야 이유를 들은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고마울 뿐이었다.
“고맙다, 일석아.”
“고맙긴. 2년차 두 명 될까 봐 한 거야, 인마.”
김지훈의 생활이 조금은 폈다. 더구나 수요일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잠이 급했지만 일주일 만에 가는 오프인 이상 일단 고경아를 만나야 했다. 마침 고경아의 야간 당직도 일주일 뒤로 밀려 시간이 딱 맞았다.
만나기 전까지는 의욕이 넘쳤지만 막상 만나고 나니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을 먹은 후 가볍게 한 잔 마신 맥주가 원흉이었다. 된통 욕만 먹었다.
“어휴! 내가 못 살아, 정말. 그러게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요. 무슨 무쇠로 만든 몸도 아니고.”
음! 이것은 분명 잔소리다.
“미안해요, 경아 씨. 맥주 한 잔에 이렇게 될 줄은 몰랐네요. 우리 스승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그나저나 이젠 그만 타고 싶은데. 경아 씨, 난 새까매지지 않았어요?”
“만날 탄다면서 이 와중에도 이준영 선생님 걱정을 해요? 지훈 씨 걱정이나 하세요. 그렇게 일을 하는데 몸이 어떻게 버텨요. 안 쓰러진 게 다행이지. 아휴! 이준영 선생님은 예뻐해도 모자랄 지훈 씨를 왜 그렇게 태운대요.”
김지훈이 웅얼거리기만 했다. 고작 맥주 500cc에 비틀비틀 몸을 가누지 못했다. 쫑알거리는 고경아의 목소리는 자장가였다. 슬슬 기울어지던 김지훈이 고경아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채 잠이 들었다. 어느새 입을 다문 고경아가 김지훈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우리 지훈 씨 힘들어서 어쩌지.”
호프집의 소란 속에서도 김지훈은 잘도 잤다. 밤이 점점 깊어 갔다. 고경아의 어깨에 머리를 비벼 가며 코를 골던 김지훈이 깜짝 놀라 번쩍 눈을 떴다.
빠빠빠! 빠빠빠!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나요~
나이트도 아니고 맥주집에서 이게 뭔 날벼락일까? 노래 가사처럼 정말 아쉬운 시간이었다.
“미안해요, 경아 씨.”
“이번 주말 오프죠? 만날 환자만 치료하지 말고, 그때는 내 어깨 치료해 줘야 돼요.”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있었다. 김지훈이 웃기만 했다.
고경아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후,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간신히 끌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올라가자마자 그대로 뻗었다.
당직이었던 신현수가 복잡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았다.
밤새 눈 한번 뜨지 않고 깊은 잠을 잔 김지훈이 다음 날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했다. 다들 엄지를 치켜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체력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체력뿐일까? 그 뒤에 가려진 강한 의지와 열의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었다.
김지훈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 병원을 뛰어다녔다. 손일석과 신현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극심한 일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