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도대체 넌? (2)
깜짝 놀란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일이야?”
(조금 있으면 언니가 응급실에 도착할 거예요. 오빠! 빨리 좀 가 봐요. 큰일 났어요.)
‘경아 씨가 응급실로 온다고? 설마 다치기라도 한 거야?’
고경희가 거의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울었다. 이유를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가슴이 섬뜩해진 김지훈이 그대로 뛰쳐나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응급실에 들어선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온통 눈물범벅이 된 고경아가 누군가의 손목을 꽉 잡은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여기저기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왜 그래요? 어디 다친 거예요? 피가 어디서 난 거야?”
깜짝 놀라 고경아를 살피던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경아가 아니라 환자의 손목에서 나는 피였다.
환자를 앞에 둔 인턴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응급실 간호사까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에요?”
“선생님, 환자가 중환자실 간호사예요. 자살을 할 생각이었는지 손목에 자해를 했고, 혈압까지 떨어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동맥이 나간 것 같아요.”
‘경아 씨와 굉장히 친한 모양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
슬쩍 고경아를 보며 환자를 살피던 김지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환자의 팔목에 감긴 압박붕대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수십 장의 거즈를 대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지만 스멀스멀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혈압이 80/60으로 떨어지며 박동 수는 120회가 넘었다. 저혈량성 쇼크의 징후가 보이고 있었다. 자살을 시도한 사람치고 이 정도로 심각한 경우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소리쳤다.
“인턴 선생, 계속 손목 압박해. 간호사, 수액 풀(full)로 틀고 중심 정맥 잡읍시다. 피도 신청하고. 고 간호사는 뒤로 물러나요.”
펑펑 눈물을 쏟고 있는 고경아를 물러나게 한 김지훈이 빠르게 쇄골 하 정맥을 잡았다. 수액을 최고의 속도로 주입하고 수혈까지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혈압은 돌아오지 않았고, 환자의 의식도 흐린 상태를 지속했다.
“간호사, 드레싱 준비해요. 인턴 선생은 손목 위쪽을 계속 압박하고 있어.”
김지훈이 빠르게 압박붕대를 풀었다. 거즈를 타고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다.
살짝 거즈를 들어 상처를 확인하려는 순간 피가 쭉 솟아올랐다. 얼굴과 가운에 온통 피가 튀었지만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
‘요골 동맥이 잘린 게 분명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기 손목을 이 정도로 깊게 그을 수 있지? 후우! 그건 그거고 지혈을 하려면 빨리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신기동 선생님에게 제때 연락이 될까?’
하필이면 교수들이 모두 퇴근한 토요일 오후였다.
김지훈이 다급하게 외쳤다.
“간호사, 신기동 선생님께 빨리 연락해요. 인턴 선생은 우리 과에 노티하고!”
급한 대로 다시 거즈를 잔뜩 대고 강하게 압박을 했다. 하지만 정맥이 아니라 동맥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는 동맥이라면 모르지만, 혈관 내부 직경만 5밀리미터가 넘는 동맥이었다. 외부의 압박만으로는 출혈을 막을 수가 없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환자 상태는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내려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신기동 교수와 간신히 연락이 됐지만 병원에 오려면 30분 이상 걸린다고 했다. 다급해진 김지훈이 최철한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신기동 교수와 직접 통화를 했다.
“선생님,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지혈을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혈압만 유지시켜. 수술 방에 올릴 여유가 없을지 모르니까 아예 수술 세트를 응급실로 갖다 놔. 만일 환자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그냥 동맥을 묶어 버려. 기능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자.)
대답을 할 겨를도 없이 신기동 교수가 전화를 끊었다.
김지훈이 손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환자의 손목을 압박하며 고경아를 불렀다. 공교롭게도 신기동 교수의 수술 팀이 모두 있었다. 환자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곧 신기동 선생님이 오신다니까, 루빼하고 혈관 수술 세트 빨리 갖고 내려와요.”
“선생님, 명희는 괜찮을까요?”
“일단 수술 세트부터 챙겨 와요.”
불안한 눈으로 환자를 보던 고경아가 급히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흘렀다. 김지훈이 최철한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 만일 쇼크가 더 심해지면 혈관을 잡으라는데 어떻게 하죠?”
최철한이나 유석재나 혈관 수술은 제대로 본 적조차 없었다. 이런 문제는 조언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일단 최대한 압박하며 기다리자는 말만 할 뿐이었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동맥을 따라 흐르는 피의 압력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했다. 새로 댄 거즈와 압박붕대가 피로 흠뻑 젖었다. 혈압이 더 떨어지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숙여 소변 줄을 확인했다.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환자의 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급기야 심장박동 수까지 치솟으며 모니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삐익! 삐익! 삐익!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 상태로는 단 5분도 버티지 못할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동맥을 잡아 목숨까지 위협하는 상황은 막아야 했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지훈아, 안 되겠다. 혈관 잡자. 니가 신기동 선생님하고 수술을 많이 해 봤으니까 직접 해. 우리가 도울게.”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신기동 교수와 수술을 하며 손목에서 엄지 방향 쪽으로 주행하는 요골 동맥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혈압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해도 동맥은 피를 뿜을 것이다. 시야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유석재가 재촉을 했다.
“지훈아, 이러다 환자 놓치겠다. 빨리 하자.”
이미 소독 장갑을 낀 최철한과 유석재가 김지훈의 좌우에 앉았다. 눈빛을 굳히던 김지훈이 고경아를 보았다.
“혈관 겸자. 켈리(kelly:수술용 집게).”
각각 혈관 겸자와 켈리를 받아 든 김지훈과 최철한이 긴 숨을 내쉬었다.
“최철한 선생님, 석션과 시야 확보를 맡아 주시고, 유석재 선생님은 동맥 윗부분을 강하게 압박하시면서 환자 상태를 체크해 주세요. 그럼 시작합니다.”
강한 긴장감이 응급실을 휘감았다.
압박붕대를 풀었다.
끈적끈적한 피로 하나처럼 뭉쳐진 거즈를 강하게 누르며 시선을 교환했다. 동맥 주행 방향을 어림잡은 유석재가 엄지로 강하게 손목을 압박했다. 석션(suction:흡입)기를 잡은 최철한이 바짝 긴장했다.
거즈를 제거했다. 유석재의 압박과 떨어진 혈압에도 불구하고 깊게 난 자상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최철한이 재빨리 출혈 부위에 석션기를 댔다. 피가 빨려 들어가며 손목에 난 상처가 드러났다.
가장 중요한 순간이 남았다. 입술을 꽉 깨문 김지훈이 최철한에게 눈짓을 했다. 최철한이 깊은 자상을 켈리로 강하게 벌리는 순간 피가 솟구쳤다. 최고의 압력까지 올린 석션기가 강한 압력으로 뻘건 피를 빨아들였다.
그 순간 반쯤 잘린 동맥이 보였다. 혈관 겸자를 든 김지훈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따가각!
겸자에 달린 톱니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극도의 긴장과 함께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멈췄다. 한 사람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출혈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긴장된 눈으로 지켜보던 최철한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극도의 긴장이 풀리며 맥이 다 빠진 것이다.
“지훈아, 출혈 잡혔다. 됐다.”
주변에 둘러서 있던 의료진들이 이제야 제대로 숨을 쉬었다. 빠르게 흘러들어 간 수액과 피가 환자의 혈관을 채웠다. 마침내 거의 잡히지 않았던 혈압이 잡히기 시작했다.
‘됐어. 일단 고비는 넘겼다.’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환자의 바이탈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목숨은 건진 것이다.
“김지훈 선생님, 이젠 괜찮은 거죠?”
“고 간호사, 괜찮으니까 걱정 말아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던 김지훈이 갑자기 흠칫 놀라며 시계를 보았다.
동맥을 꽉 물고 있는 혈관 겸자가 손목으로 가는 혈류의 절반을 차단하고 있었다. 신기동 교수가 오려면 10분 이상이 남았다. 잘린 혈관을 이어 주는 시간까지 더하면 앞으로 20분은 소모될 것이다.
그 시간까지 혈관을 막고 있으면 문제가 없을까?
신기동 교수는 분명 골든타임이 10분이라고 했다.
손으로 주행하는 동맥이 2개긴 하지만, 그중 하나가 영구적으로 막힌다면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뜻밖의 말을 했다.
“최철한 선생님, 지금 혈관을 복구해야겠습니다. 신기동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습니다.”
최철한이 깜짝 놀랐다.
“십 분 내에 혈류를 순환시켜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누가 해? 나나 석재는 건드리지도 못해. 설마 니가 한다고? 퍼스트를 서는 것과 실제 수술은 달라. 게다가 혈관 수술이야.”
“이대로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수술을 다시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혈류부터 회복시켜야 합니다.”
최철한이 상당히 고민스러워하자 유석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지훈이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 놓치면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긴 한데. 김지훈, 할 수 있겠어?”
“해 보겠습니다, 선생님.”
잠시 고민을 하던 최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
혈관을 복구하는 것도 급하지만, 1년차에 불과한 김지훈이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치프로서 책임을 함께 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눈을 감았다.
신기동 교수가 수술을 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혈관 봉합 과정을 복기했다. 그동안 함께 수술에 참여하며 어시스트를 섰던 고경아도 있었다. 자신감이 필요했다. 고경아가 간절하면서도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 간호사, 루빼 주세요.”
야간 투시경처럼 생긴 루빼를 쓴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가 니들 홀더(needle holder)와 실을 건넸다.
헤파린이 섞인 식염수가 반쯤 잘려진 혈관을 축축하게 적셨다.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는 확실히 달랐다. 루빼 덕에 확대돼 보인다고 해서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선뜻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십 분은 긴 시간이다. 서두르지 말고 최대한 천천히 하자.’
마음을 다잡고 심호흡을 했지만 긴장이 가시질 않았다.
그때 고경아의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선생님, 하실 수 있어요. 믿어요.”
환자는 중환자실 간호사이자 고경아와 상당히 친한 사이로 보였다.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힘들 것이다. 그런데 입술을 꼭 다문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김지훈이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손으로 혈관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눈은 오직 혈관과 자신의 손에만 가 있었다. 한 바늘 한 바늘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응급실 간호사가 닦아 주어야 할 정도로 이마에 땀이 맺혔다.
‘후우! 집중하자, 집중. 난 할 수 있다.’
거의 절반 정도 진행이 됐다. 봉합이 정확하게 됐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다시 손을 움직이는 순간, 어시스트를 서 주던 최철한과 유석재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던 김지훈이 수술 기구를 놓으며 벌떡 일어났다. 신기동 교수였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계속해. 수술 중에 손 바꾸는 거 아니다.”
다들 놀란 기색으로 신기동 교수를 보았다. 지금이라도 손을 바꾸는 것이 당연했다. 수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소리만이 아니었다. 1년차에게 혈관 수술을 주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강한 신뢰와 확신이 필요한 일이었다.
신기동 교수의 단호한 눈빛에 김지훈이 고개를 숙이고는 남은 부분의 봉합을 진행했다.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혈관 봉합을 모두 끝낸 김지훈이 신기동 교수를 보았다.
“계속해. 왜 날 봐?”
문제없이 봉합을 했다는 말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신기동 교수가 수술 부위를 보며 물었다.
“인대하고 신경 손상은 확인했겠지?”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혈관 봉합에만 정신이 팔려 동맥 부근의 중요 조직들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신기동 교수의 눈가에 힘이 팍 들어갔다.
“김지훈, 넌 위험한 부위는 다 확인해야 할 일반 외과 의사야. 정신 똑바로 차려. 최철한, 유석재, 니들은 이삼 년차가 돼서 1년차 하나 제대로 못 가르쳐? 이따위로 할래?”
“죄송합니다, 선생님.”
모두들 고개를 들지 못했다. 최철한이 김지훈의 옆구리를 툭툭 치며 수술 부위를 활짝 벌렸다. 김지훈이 인대와 신경들을 확인했다. 천운이 따랐는지 추가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 없습니다, 선생님. 마무리하겠습니다.”
“진행해.”
피부 봉합을 마치고 드레싱을 했다. 수술 부위에 압박붕대를 단단히 감고, 손목 고정을 위해 깁스까지 했다. 신기동 교수가 상당히 놀랍다는 표정을 애써 감추고 있었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신기동 교수가 여전히 김지훈을 보고 있으면서 말했다.
“최철한, 유석재, 잘했다. 일반 외과 선배들답다.”
무슨 소릴까?
자존심을 꺾어 가며 자신이 못하는 수술을 후배에게 줄 수 있는 선배는 그리 흔치 않았다. 신기동 교수가 어깨를 탁탁 치자 최철한과 유석재가 서로를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