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고맙다, 민수야. 고맙다, 우리 동기들 (2)
복막염 환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나름의 수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기동 교수와는 그동안 혈관 수술만 했다. 야간 투시경처럼 생긴 검은 루빼를 쓰지 않은 모습이 생소할 지경이었다.
어느 수술이든 첫 수술이 중요하듯 처음으로 손을 맞추는 집도의 역시 중요했다. 엉뚱한 실수라도 하면 고생길이 열리는 것이다. 수술 방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중얼거리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현수가 퍼스트 자리에 서고 있었다.
침착한 눈빛으로 자리를 옮기던 신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김지훈이 주먹을 쥐며 소리 없이 외쳤다.
‘파이팅!’
라이벌이라는 것을 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장민수를 통해 신현수는 라이벌이기 전에 동기라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신현수의 실력이 늘면 늘수록 더욱 강한 자극이 될 수 있었다. 50점짜리 라이벌보다는 100점짜리를 라이벌로 삼아야 훨씬 모양새가 좋지 않을까?
신현수가 콧바람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김지훈이었다면 저럴 수 있었을까?’
솔직히 아직도 김지훈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김지훈처럼 행동할 자신이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혼란해진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고는 수술에 집중했다.
김지훈도 바짝 긴장을 했다. 신기동 교수의 눈빛을 보니 긴장을 풀기가 쉽지 않았다. 신장 이식 이후에는 배를 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동안 숱하게 퍼스트를 서 온 혈관 수술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상하게 긴장되네. 오래간만에 복막염 환자 퍼스트를 서서 그러나?’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긴장이 수그러들지를 않았다.
곧 복부를 소독하고 소독된 천으로 드랩을 마치고 나자 긴장한 이유가 드러났다. 이준영 과장과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신기동 교수가 메스를 받으며 물었다.
“어디가 터졌을 것 같아?”
상복부의 강한 통증을 호소한 환자였다. 부위가 높아 위가 찢어졌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만 대장이나 소장도 얼마든지 터졌을 수 있었다.
“CT상으로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증상을 볼 때 위가 손상됐을 것 같습니다.”
“위가 터져?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뭔데?”
“매우 드물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CT상 장에서 흘러나온 내용물들이 하복부가 아니라 좌측 횡격막 밑에 고여 있어서 그렇게 추측했습니다.”
신기동 교수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럼 그 말을 믿고 시작해 볼까? 스물네 살밖에 안 된 여잔데 배를 더 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대개 외상으로 인한 복막염은 명치부터 시작해 배꼽 밑 2~3센티까지 개복한다. 그런데 신기동 교수가 배꼽 윗부분까지만 절개를 했다. 젊은 여자라고 해서 예외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의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어? 그냥 추측만 한 겁니다, 선생님. 설마 제 말 때문에 요만큼만 여시는 건 아니죠?’
정말 묻고 싶었지만 집도의의 결정이었다.
김지훈의 말은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이었다.
빠르게 복막까지 연 후 내부 장기를 확인했다. 위가 멀쩡했다. 뿐만 아니라 소장과 대장은 물론 간과 비장도 모두 아무런 손상이 없었다. 분명 터진 부위가 있어 장 내용물이 나왔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김지훈, 없네. 우리가 잘못 진단한 거야?”
그럴 리가 없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분명 프리에어까지 떴다. 김지훈이 곰곰이 고민을 하다 문득 한 곳이 빠졌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혹시 위의 후면부가 아닐까요?”
“뒤쪽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
위는 장간막과 대망이라는 구조물로 대장과 연결돼 있다. 따라서 개복을 하면 위의 앞면은 환히 보이지만 뒷면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사고의 경우 앞에서 작용하는 힘 때문에 손상이 발생해 후면부가 터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신기동 교수가 장간막과 대망 일부를 자른 후 위를 뒤집었다. 초조한 표정으로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려 7센티가 넘을 정도로 길게 찢어져 있었다.
‘이쪽이 손상받았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제법이야. 공부 좀 하는구나.’
“여기 맞네.”
담담한 말투로 고개를 끄덕인 신기동 교수가 봉합을 시작했다. 이중으로 봉합을 한 후 위까지 넣은 코 줄이 봉합한 부위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정을 했다. 그동안 고개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신기동 교수의 눈이 번쩍이고 있었다.
‘이 교수에게 들었던 것보다 훨씬 낫네.’
주요 과정이 다 끝나고 복강 내 세척이 시작됐다. 어시스트를 서던 인턴이 구역질을 해 댔다. 하필이면 해장국을 먹고 난 직후에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콩나물. 선지로 보이는 검붉은 찌꺼기. 파. 밥알. 김치.
‘아이! 이 자식은 왜 구역질을 하고 지랄이야.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나까지 비위가 상하네. 에휴! 하긴 소화도 안 된 걸 보니 그럴 만도 하지.’
음식물이 먹은 그대로 꾸역꾸역 나왔다. 다소 마른 체격인데 먹기도 엄청 먹었다. 한참을 씻어 낸 끝에야 건더기가 나오지 않았다. 신기동 교수가 마지막으로 내부 장기를 확인한 후 김지훈을 보았다.
“마무리해 봐.”
김지훈의 눈이 반짝였다. 퍼스트에 이어 마무리까지 한다니 서울에서는 정말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해 본 과정이었다. 신기동 교수가 조용히 어시스트를 서며 김지훈의 손에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배를 닫아 본 경험이 꽤 있어 보이긴 하지만 그 이상의 노력을 한 것이 확실해 보여. 흐음! 요것 봐라. 설마 벌써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거야? 정말 쓸 만한 거야 아니면 겉멋이 든 거야.’
신기동 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1년차는 아무리 뛰어나도 1년차에 불과했다. 그런데 김지훈은 1년차의 한계를 이미 넘은 것 같았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이준영 선생님만이 연차의 한계를 넘었다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설마 이놈도?’
존경하고 부러워하면서도 시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준영 과장이었다. 지금도 일이 잘 풀리면 이준영 과장의 수술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흥분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까마득한 후배가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선배에게서 받았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다가왔다.
수술이 모두 끝났다.
잠시 생각을 하던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을 보며 말했다.
“잘했다. 지금처럼만 해.”
잘하고 못하고가 확실한 신기동 교수의 말이었다. 인정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주먹을 쥐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수술실을 나온 신기동 교수가 이혁민 교수를 찾았다. 다음 환자가 올라올 때까지 교수 휴게실에서 두런두런 대화가 이어졌다. 김지훈과 신현수라는 이름이 들린 것 같았다.
얼마 후 손일석이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다.
역시 손일석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만족한 표정으로 수술을 마쳤다. 차례로 퍼스트를 선 1년차 세 명 모두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충분히 보여 준 시간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모든 수술이 끝났다. 피곤에 지칠 만도 했지만 의국에 들어온 손일석이 책상을 두드리며 콧노래까지 불렀다.
수술 기록지 작성을 거의 다 마친 김지훈과 손일석이 신현수를 보았다. 1년차들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 세 명이 모두 퍼스트를 섰다. 누가 잘 서고 못 서고를 떠나 절로 웃음이 날 일이었다. 함께 수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외과의들이 느끼는 묘한 동질감이 진하게 퍼졌다.
“하나 더 떴어야 경석이 형까지 들어오는 건데 아깝다.”
김지훈의 말에 손일석이 씩 웃었다.
“그러게. 야! 그래도 이거 신기하지 않냐. 어떻게 우리 셋이 나란히 연달아 퍼스트를 서지? 생각보다 우리 인연이 되게 깊은가 봐.”
“일석아, 너랑 나랑 현수가 일반 외과를 한 자체가 인연이잖아. 인턴 때 깨질까 봐 벌벌 떨었던 경석이 형하고도 같이한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인연이야.”
“맞다. 하하하! 갑자기 경석이 형이 술 먹다 말고 탁자에 그냥 머리 박은 게 생각이 나네. 그 자리에 병뚜껑 하나 탁 놨으면 부처 한 명 만드는 건데 말이야. 아까워.”
김지훈이 크게 웃었다. 신현수만이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거리다 기지개를 펴며 일어섰다. 벌써 4시가 다 됐다. 노닥거릴 때가 아니었다. 의국 문을 열던 신현수가 툭 한마디를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내일 일해야 되는데 그만 떠들고 한 시간이라도 자. 지훈이 너는 드레싱이 더 많아졌다는 생각은 안 해? 오늘 수술한 환자 다 네 파트야.”
“지훈아, 지금 현수가 네 걱정 한 거야? 이거 오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아냐?”
손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창문을 열고 아직도 깜깜한 하늘을 이리저리 쳐다보았다.
“추워, 이 자식아. 빨리 닫아. 근데 저 자식 말도 되게 길어졌네. 일석아, 방금 전에 본 놈이 신현수 맞지?”
“난 신현수에 한 표.”
신현수가 많이 변했다고는 느꼈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그 시간 응급실 간호사들이 피로도 잊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김지훈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 못하는 게 뭘까?”
“인턴 때부터 일 잘하기로 유명했잖아. 아휴! 이번 일반 외과 1년차 선생들처럼만 일하면 몇 배는 편해지겠네.”
“말 확실히 해라. 저기에 정갑수 끼면 순식간에 엉망 되는 거 시간문제야.”
“맞아. 계속 지방에만 있었으면 좋겠네.”
한번 찍힌 놈은 어디에 있든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
세상은 마음과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제 장민수는 짐만 싸서 병원 밖으로 나가면 됐다. 그런데 하영희의 얼굴은 초췌해졌고 김지훈도 하루 종일 얼굴을 펴지 못했다. 입원비가 문제였다. 김지훈이 차팅은 할 생각도 하지 않고 한숨만 쉬자 손일석이 인상을 썼다.
“지훈이, 그러다 병원 무너져, 인마. 아까부터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민수 때문에.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정작 퇴원을 못하네.”
“왜? 또 문제가 생겼어?”
“아니. 돈이지, 뭐. 2억이라며. 그 돈이 어디 있겠냐. 민수 어머니 얼굴이 말이 아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어. 이혁민 선생님이 총무과에 말은 해 본다는데 그런다고 얼마나 줄어들겠냐.”
7년이란 세월은 정말 많은 난관을 만들어 놨다. 숱한 어려움을 다 이겼지만 돈 문제만큼은 1년차들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재단 이사장이면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하지 않을까?’
신현수에게 부탁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쉽게 입을 열 문제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장민수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당장 얼마 전에 신장 이식을 한 양순례 환자도 경제적인 문제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었다.
김지훈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손가락 사이로 빤히 신현수를 보았다. 아버지가 재단 이사장이라고 해도 신현수는 일반 외과 전공의에 불과했다. 신현수의 입장이 곤란할 수 있었고 재단 이사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닐 것이다.
‘모른 척하고 말을 해 봐? 에휴! 죽겠네. 이 병원이 현수 것도 아니고 나름의 입장이 있을 텐데.’
묵묵히 차팅을 하던 신현수가 김지훈의 시선을 느꼈다. 내심 고민을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부탁을 해도 되는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민수의 경우가 특별하긴 하지만 병원이 자선 단체는 아니잖아. 이 사정 저 사정 다 봐주다 보면 결국 문 닫는 일밖에 안 남을 텐데 모른 척할 수도 없고. 혹시 아무도 모르게 하고 일부만 받는 걸로 하면 들어주실까?’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에 이어 손일석과 이경석의 눈길까지 느껴진 것이다. 순간 답답하고 화도 났지만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장민수의 얼굴이 떠오르자 한숨을 쉬고 말았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김지훈이 반색을 하며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라고 하고 그냥 다 까 달라고 하자. 솔직히 7년 전에 우리만큼 노력한 의사들이 있었다면 그때 퇴원했을지도 모르잖아.”
손일석이 입을 쫙 벌렸다.
“2억을 다? 아무리 현수 아버지가 재단 이사장님이라고 해도 그게 말이 되냐.”
“어렵지. 그런데 얼마를 받을 거야. 지금 형편으로는 천만 원도 힘들걸? 민수 아버님이 계시긴 하지만 들어 보니까 노부모에 민수 동생에 딸린 식구 먹여 살리는 것만도 힘든 것 같더라.”
김지훈의 말에 이경석이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래도 세상이 그게 아니다. 어느 정도는 내고 퇴원을 해야지 서로 마음이 편한 거야. 어렵다고 해도 민수 어머니 자존심을 생각해야지. 얼마가 됐든 액수를 정하고 깨끗하게 털어 버리는 게 제일 좋아.”
역시 세상 경험이 많은 이경석이었다.
김지훈이 투덜거리며 혀를 찼다.
“그런가요? 형 말을 들으니까 또 그렇긴 하네. 에이! 우리끼리 말하면 뭐해.”
“나 오프 간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신현수가 툭 한마디 던지고는 밖으로 나갔다. 김지훈이 신현수의 뒷모습을 보며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