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운명의 갈림길 Ⅰ (2)
퍼스트만이 아니라 어시스트를 서는 모든 전공의들이 각기 할 일이 있었다. 신기동 교수가 누차 강조를 했기 때문에 연차를 가리지 않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손일석이 김지훈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근데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그러게. 무슨 문제가 생겼나?”
예정된 시간에서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가중되는 긴장에 다들 말을 잃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급히 수화기를 든 최철한이 조용히 하라며 전화를 받았다.
신기동 교수의 딱 한마디 말을 듣고는 눈가를 찌푸렸다.
“철한아, 왜 그래?”
“수술 연기란다. 보호자가 수술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대. 일단 내일로 미루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니까 계속 대기하라네. 오늘내일 오프 모두 취소야. 병원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었다. 보호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투덜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만큼 긴장이 컸기 때문이었다. 오프를 가지 못하는 전공의들이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콧등을 찡그리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최철한을 보았다.
“선생님, 내과 병동에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내과 병동에는 왜?”
“수술받기로 한 환자들이 불안해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어떻게 한다. 갑자기 보호자 마음이 바뀌면 우린 바로 수술 방으로 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일단 지훈이 네가 가서 설명하고 와. 잘할 수 있지?”
유석재가 피식 웃었다.
“선생님, 장민수를 꼬신 놈이잖아요. 환자하고 형 동생 하는 놈인데 우리보다 더 잘 설명하겠죠.”
“하긴 그렇다. 빨리 갔다 와.”
김지훈이 급히 내과로 향했다. 손일석이 가운을 걸치며 따라왔다. 사실 이제나저제나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에게 연기됐다고 말하는 것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다. 손일석이라면 분명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일석아, 고맙다.”
“고맙긴, 인마. 혼자 가야 분위기만 어색할 거다. 나 없으면 너 어떻게 사냐. 사실 무지하게 고맙지?”
역시 짐작이 맞았다. 한결 부담이 덜해진 김지훈이 손일석과 함께 먼저 502호 환자를 찾았다. 그 시간 의국에 남아 있던 신현수가 이마를 주무르며 눈가에 힘을 주고 있었다.
‘이 정도는 환자에게 해야 할 기본인데 왜 나는 저 생각을 못했을까? 무엇을 빠트리고 있는 거지?’
김지훈과 함께 근무를 시작한 이후 점점 여기저기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한때는 완벽에 가깝다고 여긴 일들이 실상은 구멍투성이였다는 생각에 답답하기만 했다.
502호를 찾은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했다.
양순례 환자가 무척 불안해했다. 남편 역시 답답한 듯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10년 만에 가까스로 얻은 기회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한참 동안 어쩔 줄 몰라 하던 남편이 가슴을 치며 물었다.
“내일은 수술을 받을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확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하지만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신장을 주기로 한 환자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있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정말 초조하네요.”
“지금은 환자분도 그렇고 보호자분도 편하게 마음을 다스리시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겠죠.”
“잘 알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공정식을 만났다.
수술이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고 설명을 하러 온 길이었다.
“지훈아, 일석아, 연기됐다고 설명했어?”
“응. 그래도 네가 한 번 더 얘기하는 게 좋겠어. 두 분 다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닌 것 같아.”
“알았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는데 니들이 먼저 와 줘서 고맙다.”
공정식이 고맙다는 듯 김지훈의 어깨를 툭 치며 병실로 들어섰다. 미리 501호 앞에 서 있던 손일석이 소곤거렸다.
“여기가 악어 큰아버지?”
“응. 어째 들어가는 것 자체가 갑갑하네. 지금까지 환자하고는 말 한마디 못했거든. 신기동 선생님에게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냥 신 교수라고 부르더라.”
김지훈이 그 당시 신기동 교수의 반응을 말해 주자 손일석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정말 둘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어? 야! 신기동 선생님 멋지시네. 과장님도 안중에 없다 이거지? 그나저나 이 집안은 자기들이 되게 특별한 줄 아나 봐. 피가 다르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1년차라도 그렇지. 최소한 외과 담당 의사가 찾아왔으면 아는 척은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러게 말이다. 오늘은 듣는 척이라도 하겠지, 뭐.”
병실 문을 열려던 손일석이 입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금경태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잠시 고민하다 뒤돌아섰다. 들어가 봐야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없었다.
손일석이 궁금해 죽겠다는 듯 문에 귀를 갖다 댔다. 김지훈이 인상을 쓰며 가자고 했지만 손일석이 기다리라는 손짓만 했다. 금경태 과장에게 잘못 걸리면 한 소리 듣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네.’
김지훈이 손일석의 목을 잡고 억지로 잡아끌었다. 한사코 저항하던 손일석이 김지훈의 힘에 못 이겨 질질 끌려왔다.
“어휴! 무식한 놈들이 힘은 좋다고 하더니. 너 때문에 좋은 기회 다 놓쳤다, 인마.”
“무슨 기회를 놓쳐?”
“내가 정보통이라는 거 잊었어? 은밀하게 때를 놓치지 않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말이야. 목소리를 들으니까 악어까지 다 있는 것 같았는데 아깝네. 이런 완벽한 기회를 놓치다니 다 너 때문이야, 자식아.”
손일석이 투덜거리며 김지훈을 째려보았다.
“지랄을 해라. 그러다 걸리면 욕만 뒤지게 먹지 좋을 게 뭐가 있어? 이 시간에 악어는 또 뭐야. 정형외과 3년차는 일 안 해도 되나?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 건지.”
“에휴! 너는 그래서 안 되는 거야. 생각을 해 봐, 인마. 아버지가 재단 이사에 사촌 형이 정형외과 교순데 악어가 무서워할 게 뭐가 있어. 통박 굴리면 딱 나오는 걸 넌 왜 모를까. 하여간 넌 나 없으면 사회생활 힘들어진다는 거 잊지 마.”
김지훈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손일석을 보았다.
“그 정도는 나도 알아, 자식아.”
“알면 생활에 응용을 좀 해라. 응용이 안 되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야. 머릿속에 새기기만 하면 백날이 가도 말짱 도루묵이라고. 혹시 네 머리가 한 번 새기면 도저히 지울 수도 다시 꺼내지도 못한다는 그 전설의 돌머리?”
손일석의 농담에도 기분이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다.
양순례 환자에 대한 걱정과 501호만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가슴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금경태 과장의 말과 행동에 점점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었다.
12월 30일.
여느 때처럼 일찌감치 오전 회진을 마쳤다.
회진을 마친 금경태 과장의 표정이 몹시 안 좋았다. 짜증과 신경질이 잔뜩 묻어 있어 전공의들의 긴장을 더욱 가중시켰다.
“사람들이 말이야, 한번 하기로 했으면 최소한 오늘 아침까지는 결정을 해야지. 오늘 날짜로 수술을 예약한 환자들은 생각도 안 하나? 안 그래, 임 교수.”
“그러게 말입니다.”
“이러다 내일까지 결정이 안 되면 내리 사흘을 허비하는 건데 아무리 자식 문제라지만 그걸 모르면 안 되지. 어제 내가 보호자에게 알아듣기 쉽게 언질을 줬는데도 이러네.”
한동안 스테이션 앞에 서서 임동완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금경태 과장이 내려가고 나서야 분위기가 풀렸다.
이제부터 다시 대기 상태였다.
연기가 불가능하거나 응급 수술 이외에는 모든 수술이 연기됐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평이 터졌지만 언제 이식 수술이 벌어질지 몰라 어쩔 수가 없었다.
반면 1년차들에겐 때아닌 휴식이었다.
기본적인 일은 똑같았지만 수술이 없어 주말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김지훈도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환자들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위암과 유방암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불안과 초조는 물론 간단한 수술을 받은 환자들조차 다들 나름의 걱정이 있었다. 그동안 환자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노력했지만 부족한 게 정말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과 관련된 문제는 정말 끝이 없네. 반드시 배워야 할 것들과 전공의로서 해야 할 일들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이 있는 걸까? 2년차가 되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두런두런 환자와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홀로 회진을 돌다 보니 어느새 601호 앞이었다. 막 장민수가 하영희와 함께 운동을 나오고 있었다. 이젠 부축하지 않아도 혼자 곧잘 걸을 정도였다.
“민수야, 운동 나왔어?”
“예, 형.”
목소리에도 제법 힘이 실렸다.
김지훈이 함께 복도를 걸었다.
“민수야, 퇴원하면 뭐부터 하고 싶어?”
“검정고시 봐야죠. 나 중학교 중퇴잖아요.”
“그렇구나. 맞아. 공부는 해야지. 그래도 지금 당장은 욕심 내지 마. 아직은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니까 일단 몸부터 만들자. 밥은 먹을 만해?”
“죽 반 밥 반? 조금씩 입맛이 나요.”
복도 끝까지 갔을 때 의국에서 나오던 손일석이 쪼르르 달려왔다. 눈을 부라리며 장민수를 노려보았다.
“장민수, 너 큰형을 놔두고 둘째 형이랑 무슨 역적모의를 하고 있는 거야?”
“큰형이요?”
“그럼 내가 둘째겠어? 그냥 딱 보면 답이 안 나와?”
“형, 같은 1년찬데 저 형이 나이가 더 많아요?”
그간 엄마와의 대화가 거의 다였다. 아직 농담에도 익숙하지 못한 탓에 장민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렸다. 김지훈이 웃으며 장민수의 어깨를 잡았다.
“민수야, 네가 보기에는 누가 형 같아?”
“난 형이 더 형 같은데요.”
“그치? 쓸데없는 말에 신경 쓰지 말고 가자.”
김지훈이 쓱 째려보며 장민수와 다시 걸음을 옮기자 손일석이 입을 쫙 벌리며 허탈한 소리를 냈다.
“와! 김지훈, 많이 컸네. 자식! 그래야 내 손바닥 안이다. 발버둥치지 마라.”
휙 하고 한달음에 곁에 선 손일석이 장민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몇 마디 말이 오고 가자 장민수의 표정에 흥미가 확 떠오르며 손일석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역시 한 수 위였다.
‘누가 저 자식의 말발을 누를 수 있을까?’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그날 저녁 1년차들을 빼고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2~3년차들의 입에서 일제히 불평 섞인 말들이 쏟아졌다. 시간이 지나며 수술이 물 건너갔다는 것은 알았지만 또 연기가 될 줄은 몰랐다.
저녁 회진을 올라온 금경태 과장이 급히 한 바퀴 돌고는 별관 501호로 향했다. 이혁민 교수 역시 답답한 표정으로 회진을 돈 후 신기동 교수와 함께 중환자실로 향했다.
앞장서 걷던 김지훈도 갑갑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장기를 기증하는 쪽이나 이식을 기다려야 하는 환자들이나 무척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내심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무작정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기증 의사를 철회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말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혁민 교수와 나란히 걷던 신기동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
“이 교수, 답답하지만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돼. 장기 기증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활성화돼 있는 미국도 이런 일이 가끔은 있더라구. 솔직히 보호자가 생각할 때는 살아 있는 자식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
“이해는 하는데 다른 환자들이 문제 아니가. 당장 내일 예약된 수술도 할지 말지 결정을 못하니 이걸 어쩌나. 이러다 이식도 못하고 다른 수술 일정까지 모조리 다시 잡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 말도 맞지만 보호자 입장에 서서 한 번만 이해를 해 줘. 한 사람 희생으로 두 사람이 살잖아.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수술도 아니고.”
“아이고! 그러니까 기다리지. 외래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그런 환자는 수술 못하잖아. 결국 수술 결정은 우리가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가 하는 거 아니겠어?”
귀를 쫑긋거리며 대화를 듣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응급으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 하는 환자들과 선택을 할 수 있는 환자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그에 따라 의사 역시 다른 방법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
‘역시 응급 환자하고 입원 환자만 보는 눈하고 외래까지 보는 선생님들 눈은 다르네.’
1년의 경험은 경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뇌사 환자의 보호자들과 면담을 하고 나온 신기동 교수와 이혁민 교수의 얼굴이 어두웠다. 최철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수술은 하게 되는 겁니까?”
“하루만 더 달란다. 아버지는 동의하는데 어머니는 도저히 아들을 보낼 수가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내 자식이 저런 상황이면 나라고 별수 있겠나. 내일 오후까지는 확실히 결정하기로 했으니까 기다려 보자.”
새해를 이틀 앞둔 날이 그렇게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