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운명의 갈림길 Ⅰ (1)
“김지훈, 과장님 말씀 못 들었어? 1년차가 낄 자리가 아니야. 내과 교수님까지 직접 오시니까 넌 그냥 가 봐.”
“그래도 최소한의 병력은 알아야…….”
금경태 과장이 인상을 쓰며 손을 저었다.
“차트에 다 있을 거 아냐? 넌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네가 있을 자리가 있고 빠져야 할 자리가 있는 거야. 에이! 내가 왜 하필이면 저놈을 신기동 파트에 보냈는지 몰라.”
혼자 중얼거리는 것처럼 목소리가 작아지는 바람에 마지막 말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좋은 소리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김지훈이 인사를 하고는 병실을 빠져나왔다. 금경태 과장과 악어의 웃음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할 일은 해야 했다.
‘도대체 누군데 과장님에 악어까지 와 있는 거지? 씨펄! 악어는 언제 봐도 기분이 나빠지네. 너도 정갑수만큼 피곤하다. 그런데 과장님은 점점 더 왜 저러지? 뭐야?’
얼굴까지 찡그리며 병동으로 간 김지훈이 환자 차트를 다시 확인했다. 인적 사항에 관해서는 특별한 기록이 없었다. 마침 인턴 때 안면을 익힌 간호사가 막 스테이션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자 간호사가 활짝 웃었다.
“어머! 따르륵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반가운 미소와 따르륵이라는 소리에 마음이 좀 풀렸다.
“에이! 따르륵이 뭐예요. 일반 외과 1년차 김지훈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죠?”
“호호호! 그럼요. 맨날 똑같은 생활인 거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김지훈 선생님, 웬일이세요.”
“501호 환자 때문에요. 그 환자 누구예요?”
간호사가 입을 삐죽 내밀며 목소리를 낮췄다.
“악어 선생님 아버지가 재단 이사인 건 아시죠?”
“예. 그런데요?”
“환자가 큰아버지래요. 좀 유별날 거예요. 전에도 몇 번 특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유세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문병 오는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것 같고 다들 회장님이라고 부르더라구요.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말도 있어요.”
여기저기 연줄도 많은 데다 엄청난 부자인 모양이었다. 하긴 돈과 권력은 별개의 것이 아니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501호 쪽을 보고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카가 전공의라면 최소한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문득 악어와 비슷하게 생긴 정형외과 교수가 생각났다.
“그럼 정형외과 교수님은 왜 저기 있는 거예요?”
“어머머! 악어 선생님은 진상원. 정형외과 교수님은 진상철. 이름하고 생긴 것만 봐도 둘이 형제나 사촌이라는 게 딱 보일 텐데요. 사촌 간이래요.”
김지훈이 머리를 톡톡 치며 웃었다.
악어 이름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그래요? 내가 좀 눈치가 없잖아요.”
‘아들과 조카가 의산데 어떻게 보는 척도 안 하냐. 돈이 많으면 단가? 하긴 과장님까지 계신데 그런 사람 눈에 1년차가 보일 리가 없지.’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진상철 교수도 전공의 때 악어처럼 꽤 진상을 떨었다고 했다. 공연히 가슴만 답답해진 김지훈이 차트를 보다 벌떡 일어났다.
신기동 교수와 최철한이 온 것이다.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이 왜 여기 있는지 묻지도 않고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김지훈, 환자 어디 있어?”
“예. 501호와 502호에 입원했습니다.”
“가자.”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신기동 교수의 걸음이 무척 빨랐다. 부랴부랴 달려간 김지훈이 501호의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며 고개를 내민 악어가 인상을 쓰다 말고 인사를 하며 재빨리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교수님.”
신기동 교수가 고개만 끄덕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던 금경태 과장과 진상철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신기동 교수를 맞이했다.
“신 교수, 회장님 뵈러 왔어?”
“회장님이라니요?”
“처음 뵙지? 재단 이사이신 진필호 이사님의 형님 되시는 진평호 회장님이시네. 인사드려. 회장님, 신기동 교수라고 이번에 이식을 집도할 선생입니다.”
“진평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필호의 형이자 악어의 큰아버지인 진평호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쓱 신기동 교수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말투는 점잖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거만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명함을 받아 든 신기동 교수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용건을 말했다.
“신기동입니다. 이식받을 두 분인데 나이와 상태를 고려한 결과 먼저 수술을 받으시게 됐습니다. 기증자의 좌측 신장을 이식받으시게 될 겁니다.”
“좌측 신장을요? 문제는 없겠죠.”
신기동 교수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금경태 과장이 김지훈을 가리키며 복부 CT를 가져오라고 했다. 급히 필름을 챙겨 오자 직접 CT를 보며 말했다.
“양쪽 다 문제없어 보입니다. 기증자의 신장 기능도 정상적이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신 교수, 자네도 같은 생각이지?”
“방사선 판독과 검사상으로는 그렇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기증자의 신장을 직접 봐야만 합니다. 만일 좌측 신장에 발견하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이식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진평호의 안색이 변하자 금경태 과장이 신기동 교수를 힐끗 째려보고는 손을 흔들었다.
“회장님, 만에 하나의 경우를 말한 거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수술 시간이 결정되면 저도 직접 참관을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별일 있겠습니까?”
“금 과장만 믿어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허허허! 금 과장 덕분에 마음이 편해집니다.”
의사는 당연히 환자를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금경태 과장의 태도는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더구나 진평호 역시 집도의를 앞에 두고 엉뚱하게도 금경태 과장에게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신기동 교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다시 한 번 수술의 원칙을 말한 후 병실을 나왔다.
“환자분이 이식받을 신장은 좌측 신장입니다. 그럼.”
“신 교수,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만 살짝 숙인 신기동 교수가 502호로 향하며 말했다.
“신 교수? 날 언제 봤다고. 마음에 안 드네. 니들은 저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의사나 환자나.”
김지훈과 최철한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기동 교수는 작은 체구와는 달리 꽤 직선적인 성격을 가진 것 같았다.
매서운 눈초리로 501호를 힐끔 쳐다본 신기동 교수가 502호로 들어섰다. 양순례 환자와 남편이 신기동 교수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었다.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신기동 교수는 무려 30분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만큼 특별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환자를 안심시키려는 기색이 더 강했다. 물론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환자분은 우측 신장을 이식받게 됩니다. 수술이 두 번째니까 501호 환자보다는 30분에서 한 시간 뒤에 수술을 받게 되실 겁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시고 편안하게 마음먹고 기다리세요.”
병실을 나온 신기동 교수가 최철한과 함께 신장 이식을 위한 회의에 들어갔다. 스테이션에 앉아 두 환자의 상이한 형편과 태도를 생각하던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드레싱, 회진.’
어이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바람처럼 달려갔지만 늦었다.
유석재가 이미 장민수를 치료하고 있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옆에 서자 유석재가 피식 웃었다.
“어디 갔다 왔어?”
“예. 신장 이식받을 환자 두 명이 다 입원해서 신기동 선생님과 함께 잠깐 환자 파악 좀 하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특별한 거 있어?”
“별다른 건 없는데 501호 환자가 재단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악어 큰아버지라는데요.”
유석재가 드레싱을 하다 말고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많이 컸네. 3년차를 악어라고 부른단 말이지. 하긴 이름이 뭔지 기억도 안 나지? 나도 안 나. 참! 민수 십이지장루에 넣은 관 교체해야 될 것 같다. 거의 남은 공간이 없고 길만 남은 것 같은데. 어때?”
“예.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드레싱을 마친 유석재가 장갑을 벗으며 장민수의 어깨를 툭 쳤다.
“민수야, 지금처럼만 하자. 내 마음이 다 편하다.”
“선생님, 그럼 퇴원은 언제 할 수 있어요?”
“아이구! 이제 막 걷고 먹으면서 무슨 퇴원을 생각하세요. 최소한 이 관을 뺄 수 있어야 하고 밥을 잘 먹어야지요. 아직은 멀었으니까 지금처럼 열심히 걷고 드세요.”
예전이었으면 하지도 못할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농담처럼 던질 수도 있었고 하영희와 장민수도 밝게 웃고 있었다. 501호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고 있었다.
김지훈이 무려 10분이 넘게 장민수와 수다를 떨었다. 시시콜콜한 말들이었지만 장민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숨 쉴 틈도 없는 하루가 또 지났다.
이혁민 교수의 첫 번째 수술이 끝나자마자 신기동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 뇌사 판정을 내린다면서 중환자실로 오라고 했다. 김지훈이 사정을 설명하자 이혁민 교수가 웃으며 손을 휘저었다.
“니가 신 교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빨리 갔다 와. 신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환자를 보는지 잘 보고 배워라.”
“예, 선생님.”
같은 절차가 반복됐다. 뇌사 상태에서 장기 이식을 하는 경우에는 세 명 이상의 의사가 최소한 두 차례 이상 뇌사 판정을 해야 했다. 오늘도 동일한 판정을 내린다면 보호자의 동의를 재차 확인하고 수술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판정이 진행됐다.
보호자들이 다시 들어와 신경외과 과장에게 뇌사가 확실하다는 결과를 들었다. 다들 눈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어디서 나오는지 또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직한 오열과 흐느낌이 더욱 슬프게 들렸다.
‘환자분, 편히 가세요. 보호자분들도 정말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하지만 그 덕분에 두 사람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이보다 더 고귀한 일이 있을까요?’
최종 결정이 나자 김지훈의 마음도 숙연해졌다.
누가 아직도 심장이 뛰는 자식의 죽음을 인정할 수 있을까?
누가 멀쩡히 살아 있는 자식의 장기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주라고 할 수 있을까?
어머니 아버지의 눈에 자식은 그저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이 평탄하게 그려지는 뇌파도 의사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부모에게는 단순한 선에 불과할 것이다.
모든 의료진들이 차마 보호자들을 보지 못했다.
신기동 교수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보호자분, 2차 동의를 해 주신다면 내일 신장 이식을 하겠습니다. 이식을 받을 환자들을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자식 놈이 힘들거나 아파하지는 않겠죠?”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아마 어디선가 웃으면서 아버님과 어머님을 보고 있을 겁니다.”
설움이 북받친 환자의 어머니가 힘없이 주저앉으며 자식의 손을 잡았다. 꽉 닫힌 입에서 고통스러운 소리가 삐져나왔다. 차라리 통곡이라도 했으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띠! 띠! 띠! 띠! 띠!
스물네 살 젊은 남자의 심장은 아직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
12월 29일.
서울에 근무하는 일반 외과 전공의 전원이 비상 대기에 들어갔다. 최철한의 우려와는 달리 금경태 과장도 예정된 수술을 모두 취소했다. 모두들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이유는 멀리 있지 않았다.
재단 이사의 형이면서 엄청난 부와 인맥을 가진 사람이 이식을 받을 환자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정형외과 교수인 진상철은 금경태 과장의 주요한 지지 세력이기도 했다. 이래저래 반드시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규 수술이 취소된 탓에 도리어 한가해진 전공의들이 의국에 모여 신장 이식 수술에 대비했다. 다른 병원의 사정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그동안 신장 이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병원이 아니었기에 경험이 매우 부족했다.
3년차들도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철한아, 그러니까 수술을 어떻게 들어간다고?”
“일단 신기동 선생님이 신장을 적출하는 데 세 명이 들어가고 한 명은 적출된 신장이 죽지 않도록 관리해야 해. 그리고 이식을 받을 사람이 둘이니까 각각 세 명씩 들어가면 모두 열 명이잖아. 나머지 한 명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으면 되고.”
“두 명에게 동시에 이식 수술을 할 수는 없잖아?”
“신기동 선생님이 신장을 떼는 동안 이혁민 선생님이 첫 환자를 이식하기 직전까지 진행하시고 신기동 선생님이 신장을 이식하는 동안 이혁민 선생님이 다시 다음 환자 준비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
“그러면 연달아 할 수가 있겠네. 이거 은근히 긴장되는데.”
“나도 그래. 써드까지 모두 우리가 들어가는 이유는 단순히 신장 이식이기 때문만은 아니니까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실수하면 만회가 안 되는 수술이라는 거 명심해.”
최철한의 말에 1~2년차들이 바짝 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