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왜 점점 더 바빠질까? (2)
신기동 교수와 신경외과 과장, 그리고 신경과 과장에 내과 신장 파트 주임 교수가 환자 한 명을 보며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공정식과 함께 신장 파트 전공의들도 보였다.
“자발 호흡과 동공 반사가 없고 오늘 시행한 뇌파 검사에 반응이 전혀 없습니다. 대뇌 혈종으로 인해 발생한 뇌사가 확실합니다. 모두 동의하십니까?”
신경외과 과장의 말에 신경과 과장이 다시 한 번 환자 상태를 점검하고 뇌파 검사를 확인했다.
“동의합니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 모두 네 명의 의사가 환자가 뇌사 상태에 있음을 확인했다. 곧 보호자들이 들어와 설명을 들었다.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터졌다.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신경외과 과장이 보호자들에게 신기동 교수를 소개했다.
“일반 외과 신기동입니다. 먼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가족분들의 결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환자는 뇌사 상태로 내부 장기들의 기능은 온전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틀 후 다시 한 번 뇌사 상태를 확인하고 그때도 동의를 하신다면 다음 날 장기 이식을 시행하겠습니다.”
보호자들이 숨죽인 채 흐느꼈다.
“일단 내과와 함께 상의해 신장을 기증받을 환자 두 명에게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이식을 위해서는 사전 검사는 물론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니까 다른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예, 선생님. 우리 자식이 좋은 일을 하고 떠났으면 합니다. 필요한 준비를 모두 해 주세요.”
환자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눈가가 벌게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와 형제들의 울음소리가 다시 커졌다. 자식의 마지막 길을 지켜본다는 것만큼 괴롭고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신기동 교수가 내과 교수와 함께 스테이션에서 신장 이식에 관한 상의를 했다. 먼저 적합한 환자 후보군들에게 연락을 한 후 추가 검사를 통해 가장 이식 성공률이 높은 환자를 선택한다고 했다.
예정대로라면 수술까지 불과 3일밖에 안 남았다. 하지만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은 필요한 모든 검사를 미리 해 놓기 때문에 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모든 상의를 마친 신기동 교수가 최철한을 보며 말했다.
“내과 선생들과 이식받을 환자들 입원하면 바로 파악하고 세 방에서 동시에 수술할 수 있도록 전공의들 대기시켜. 보조 인력까지 전공의만 최소 열한 명이 필요해.”
“예, 알겠습니다. 치프들에게 미리 말해 놓겠습니다.”
“좋아. 교수님들께는 내가 말하면 되고 마취과도 내가 연락을 할 테니까 넌 두 가지만 확실히 해. 알았어?”
“예, 선생님.”
미국에서 돌아와 근무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신장 이식 수술이 잡혔다. 신기동 교수의 눈에 은근한 흥분이 서려 있었다. 최철한이나 유석재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훈이 입을 모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뇌사 환자의 신장을 이식한다고? 야! 정말 대단한 수술을 볼 수 있겠네.’
멍청히 감탄만 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김지훈은 재빨리 뇌사 환자의 차트를 펼쳤다.
이제 스물네 살밖에 안 된 젊은 남자 환자였다. 교통사고로 뇌를 크게 다쳐 수술까지 받았지만 끝내 의식과 호흡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 유지 장치들이 아니면 불과 5분을 버티지 못할 상태였다.
신기동 교수가 나가자 최철한이 김지훈을 툭툭 밀어내며 차트를 가리켰다. 전공의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뇌사 환자의 기록을 확인했다. 환자 상태와 각종 검사 기록을 점검한 후 내과 전공의들에게 이식받을 환자들이 입원하면 알려 달라고 했다.
중환자실을 나오던 김지훈이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보호자들이 차마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인의 울음이 너무도 애달프기 짝이 없었다. 뇌사 환자의 장기 이식 수술이라는 사실에 정신이 팔려 그 속에 숨은 아픔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하는 사람!
그리운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김지훈이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죄송하네요.’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빨리 오라는 유석재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병동으로 향하던 유석재가 김지훈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휘파람을 불었다.
“선생님, 신장 이식 수술은 한 번도 못 봤는데 이번 수술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신기동 선생님이 오시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네요. 환자가 따르는 스타일이신가?”
“나도 신기동 선생님 미국 가시기 전에 딱 한 번 봤어. 워낙 드문 수술인데 한꺼번에 두 건을 하다니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고개를 끄덕거리던 최철한이 갑자기 미간을 주무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뇌사 환자는 보호자가 동의하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규 수술은 또 어떻게 하냐? 다른 선생님들은 몰라도 과장님이 흔쾌히 동의를 하실까?”
아무리 눈치가 빨라도 불과 하루 만에 금경태 과장과 신기동 교수 간의 묘한 관계를 알 수는 없었다. 다만 평소의 모습을 생각하면 금경태 과장은 결코 자신의 수술이나 전공의들을 양보할 사람이 아니었다. 설혹 양보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한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다.
유석재가 입맛을 다셨다.
“과장님 파트를 빼면 인원을 맞출 수가 없는데 정말 큰일이네요. 에이! 장기를 기증하는 환자가 있는데 그럴 리가 없겠죠. 그나저나 하루나 이틀은 전체가 풀 당직이네요.”
“그렇겠지? 어이쿠! 늦었다. 빨리 오더 내고 저녁 먹자. 김지훈 저 자식 밥 안 먹이면 도끼 들고 달려들지도 몰라. 웬만큼 먹어 대야지.”
엄한 핀잔에 김지훈이 목을 움츠렸다.
2~3년차야 오더와 저녁 식사로 끝이지만 김지훈에게는 초비상이었다. 벌써 9시가 다 됐는데 아직 드레싱도 못한 것이다. 첫날부터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힘든 상황을 맞고 있었다.
‘오늘은 뇌사 환자 문제가 있어서 늦은 거니까 다른 날은 괜찮겠지. 신장 이식 수술을 하게 되면 나만 수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애써 위안을 삼았지만 현실은 위안이 되질 않았다.
밤 10시 반이 넘어 장민수를 치료할 수 있었다.
“형, 나 이제 먹고 걷는다고 신경 안 쓰는 건 아니죠?”
장민수의 투정 섞인 말에 김지훈이 넋이 빠진 것처럼 실실 웃었다. 하영희가 시뻘게진 김지훈의 눈을 보며 슬며시 주스 캔 하나를 내밀었다. 입은 써도 주스는 참 달았다.
아직도 수십 명의 환자가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팅과 수술 기록지 작성은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 그나마 밤늦은 드레싱에도 평소 환자들과 웃고 지낸 덕에 불평은 면했다.
다음 날 새벽 간신히 눈을 뜬 김지훈이 세면대 위에 걸린 거울을 보며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앞으로 두 달 반은 똑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당당히 맞서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 합당했다.
선택과 집중!
1년차인 김지훈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드레싱, 회진, 수술, 환자 기록, 응급실.
핵심은 다섯 가지였다. 중환자실에 환자가 없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럼 잠시 버려도 되는 아니면 적어도 뒤로 미룰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길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없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단 한 가지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결론은 하나였다.
‘여기서 고민할 시간도 아깝다. 뛰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일과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여기에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할 환자들까지 내과에 입원했다.
핵심 다섯 가지에 항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했다.
환자 파악!
내과에 입원했다고 해도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들이었다. 더구나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목을 빼고 기다리는 신장 이식 수술이었다. 환자 파악은 1년차에게 주어진 절대적 의무였다. 간신히 시간을 뺀 김지훈이 내과 병동으로 달려갔다,
1인실인 별관 501호와 502호에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502호 환자는 50세 여자 환자로 이름은 양순례였다.
차트를 확인한 후 먼저 502호에 들어간 김지훈이 순간 멈칫했다. 전형적인 신부전 환자의 얼굴을 한 환자 때문이 아니었다. 남루한 옷차림의 보호자와 간병을 위해 가져온 물건들은 낡아 색이 바랬다. 한눈에도 형편이 좋지 않아 보였다.
수술과 1인실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다고 수술 전후 모두 감염에 관련된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다인실에는 입원할 수도 없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사소한 질환인 감기마저도 조심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외과에서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리 앉으시죠.”
남편으로 보이는 보호자가 급히 일어나며 자리를 권했다.
“괜찮습니다. 차트를 보니까 상당히 오래 기다리셨네요. 일부 검사는 다시 해야겠지만 수술에는 아주 적합하신 것으로 나와 다행입니다. 수술 전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양순례 환자가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인지 눈가가 벌게진 것이 무척 혼란스러워 보였다.
“여보, 저 수술 안 할래요.”
갑작스러운 말에 김지훈이 깜짝 놀라자 남편이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여기까지 와서 무슨 소리야. 당신은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수술이나 잘 받을 생각해.”
“아이 학비는 어떻게 하고 당신은 또 어떻게 살아요. 미안해요. 나만 아니었으면 당신이 이렇게 고생을 하지… 흑!”
보이는 것처럼 형편이 무척 어려운 것이 틀림없었다.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 남편이 김지훈에게 눈짓을 했다. 아직도 울고 있는 양순례를 두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집사람이 오랫동안 병을 앓아 지금은 많이 약해진 상탭니다. 수술하실 선생님들을 보니까 또 걱정이 되는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사정은 잘 모르지만 환자분이 불안해하시면 수술 결과도 좋지 않습니다. 그게 걱정이 되네요.”
남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남편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몇 년 전에 기회가 한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어요. 그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한동안 잠도 자질 못했습니다. 그동안 저 사람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집사람은 그게 마음에 걸리는지 한사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더군요. 큰소리까지 내 가며 억지로 데리고 왔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뭐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단 몇 마디의 말이었지만 가슴이 아픈 일이었다. 만성 신부전 환자가 있는 가족들이 흔히 겪는 아픔이자 고통이기도 했다.
잠시 남편의 얼굴을 보던 김지훈이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환자를 이런 상태로 둘 수는 없었다.
“환자분,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편히 가지셔야 합니다. 돈이 있어도 이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저보다 잘 아시지 않나요? 그분들을 생각하세요.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 환자분이 수술을 잘 받으셔서 건강을 되찾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선생님, 만일 거부반응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죠? 아이 아빠가 피땀을 흘려 가며 모은 돈이에요. 그 돈을 나한테 쓰는 것도 미안한데 그런 일이 생기면 정말…….”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김지훈이 앙상한 손을 잡으며 웃었다.
“실패할 리가 없습니다. 남편분의 정성과 사랑 때문이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수술하시는 선생님도 신장 이식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믿으세요. 환자분이 흔들리고 불안해하면 잘될 수술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신기동 교수가 신장 이식의 대가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미국 연수까지 다녀왔고 환자를 위해서 이 정도 거짓말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여겼다.
“부탁드려요, 선생님.”
양순례가 김지훈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질 않았다.
잠시 후 아직도 눈이 벌겐 남편이 들어오고 나서야 손을 놓았다. 김지훈이 입술을 꽉 깨물며 인사를 했다. 환자의 믿음에 답하는 길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501호실 앞에 선 김지훈의 안색이 다소 펴졌다. 즐겁고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최소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소리였다.
‘똑같은 수술을 받는데 누구는 울며 아파하고 누구는 즐겁게 웃다니 이놈의 돈이 뭐지? 이렇게 웃고 행복해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선 김지훈이 돌연 경직된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금경태 과장과 정형외과 교수인 진상철이 떡하니 의자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악어까지 보였다. 어째 둘이 닮은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금경태 과장이 눈썹을 치켜떴다.
“뭐야? 왜 왔어?”
“환자분을 만나기 위해 왔습니다. 말씀 중이시면 잠시 후 다시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공연히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이나 잘해.”
환자 파악은 반드시 해야 할 기본적인 업무였다. 힐끗 환자를 보니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김지훈이 머뭇거리자 악어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