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왜 점점 더 바빠질까? (1)
오늘 예약된 신기동 교수의 수술은 환자들의 손목에 주행하는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수술이었다.
혈액 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겐 피를 뽑아 낸 후 기계를 거쳐 깨끗해진 혈액을 다시 넣어 줄 혈관이 필요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어떤 혈관도 그런 부담은 단 몇 번도 버티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부담을 이겨 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
AV shunt(arteriovenous shunt:동정맥 션트 혹은 지름술)와 AVF(arteriovenous fistula:동정맥루)가 대표적인 수술이었다.
팔에 주행하는 동맥과 정맥을 션트라고 불리는 ‘U’ 자형 인공 관으로 연결하는 것이 AV shunt다. 처음에는 이 방법을 시술하지만 션트가 혈전으로 막히거나 감염의 우려가 커지면 동맥과 정맥을 직접 연결하는 AVF를 만들어 준다.
수술 후 동맥 압에 크게 확장된 정맥은 투석에 사용되는 굵은 바늘을 찌르기에도 용이했고 충분한 혈류까지 유지할 수 있다. 신장 이식을 하기 전에는 만성 신부전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복막 투석을 하는 환자도 있었지만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지훈이 오늘 수술할 환자 두 명의 병력과 상태를 살폈다. 대부분의 만성 신부전 환자들처럼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잠시 후에 수술을 하겠습니다. 국소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소리까지 다 들려서 다소 긴장을 심하게 하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신마취를 하는 것보다는 한결 안전하니까 참으셔야 합니다.”
환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확실히 다른 환자들보다는 상당히 예민하게 느껴졌다. 차트를 보니 이미 신기동 교수가 오더를 낸 상태였다. 김지훈은 급히 오더를 베꼈다. 처음이기에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중얼중얼 수술 오더를 외우며 병동을 나가던 김지훈이 손을 흔들었다. 공정식을 만난 것이다.
“정식아, 오래간만이다. 너 어느 파트 돌아?”
“신장 파트잖아. 오늘 우리 환자 수술한다면서 주치의가 누군지도 모르냐?”
“어? 미안해. 이런 수술이 처음이라서 정신이 없네. 그건 그렇고 잘됐다. 이 환자들에 대해서 특별히 알아야 될 것이 있어?”
환자 이름을 본 공정식이 그중 한 명의 이름을 가리켰다.
“이 환자 주의해야 한다. 만성 신부전 환자들이 예민하긴 하지만 성격이 원래 예민했는지 극도로 민감해. 수술 중에 심하게 떨 수도 있어.”
“그래? 국소마취로 하는데 큰일이네. 어차피 투석을 하니까 만에 하나 진정제를 써도 문제는 없겠지?”
공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절반 정도만 써.”
“절반 오케이! 완전히 재우면 몰라도 어설프게 재우면 환자가 몸부림을 쳐서 도리어 수술에 방해가 되거든. 차라리 살짝 안정만 시켜 주는 게 우리한테도 좋아. 그럼 수고해.”
수술 방에 들러 수술실이 언제 나오는지 알아본 후 신기동 교수에게 노티를 했다. 6시까지 환자를 내리기로 하고 병동으로 향했다. 수술 시간이 최소한 두 시간은 걸릴 텐데 남은 시간이 정말 없었다.
부리나케 할 일을 하고 나니 6시가 다 됐다.
최철한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너 나오고 나면 오더 낼 거니까 끝나자마자 바로 올라와. 알았지? 에이! 저녁은 언제 먹냐.”
“예, 선생님.”
이래저래 최철한까지 힘들어지고 있었다.
신기동 교수와의 첫 수술이었다.
김지훈은 가벼운 흥분에 휩싸였다. 피곤한 데다 장민수의 일로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정말 소중한 기회였다. 일반 외과에서 혈관 수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세 수술이라는 점은 더욱 큰 흥미와 기대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 힘들고 졸립다. 하지만 신기동 선생님과는 첫 수술인 데다 국소마취라지만 퍼스트를 서는데 멍하게 있을 수는 없지.’
찬물에 머리를 담고는 졸음을 쫓은 김지훈이 수술 방에 감도는 찬 기운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곧 수술 방으로 내려온 환자를 수술실로 옮기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고경아가 수술실에 떡하니 서서 수술 보조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어쩌면 이것도 수술실에서의 첫 만남이라면 만남이었다. 은근슬쩍 눈길을 보냈지만 고경아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을 때는 아는 척을 해도 될 텐데 독하네.’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환자를 수술대 위에 눕히는 사이 신기동 교수가 들어왔다. 이마에 야간 투시경처럼 생긴 검은색의 루빼(수술용 돋보기)가 달린 머리띠를 쓰고 있어 마치 특수 부대원 같았다.
미세 수술을 하는 성형외과나 신경외과와는 달리 일반 외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희한하게도 겉모습에 감탄을 하고 말았다.
‘야! 은근히 멋있네. 여기에 총만 들면 딱 그 사람인데. 체격이 안 맞나?’
엉뚱한 상상을 하던 김지훈이 신기동 교수의 눈길에 급히 움직였다. 김지훈과 함께 환자의 앙상한 팔을 소독된 천으로 덮던 신기동 교수가 고경아를 보았다.
“간호사, 앞으로 내 수술 전담을 하나? 이름이 뭐지?”
“네, 선생님. 고경아라고 합니다.”
“눈이 참 예쁘네. 잘 부탁해요. 김지훈, 너도 열심히 하고.”
딱딱한 말투는 여전했다.
환자의 상반신 전체를 드랩한 후 손목만 노출시켰다. 체격에 비해서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동맥의 위치를 찾던 신기동의 교수가 힐끗 김지훈을 보며 물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목을 통해 환자의 긴장이 확연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 환자 특별하게 주의할 점은 없어?”
“환자가 무척 예민하다고 합니다. 내과에서도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데메롤(demerol:진정 작용을 가진 마약성 진통제) 반 앰플 정도 주시고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신기동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취과 간호사를 불러 데메롤 반을 주라고 했다.
‘환자 파악은 제대로 하고 왔네. 이 교수 말대로 제법 열심히 하는 놈이 맞는 것 같군. 이준영 선생님의 손과 비슷하다고 했나?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
잠시 후 환자가 진정되자 수술이 시작됐다.
국소마취제로 마취를 한 후 4센티 정도 피부를 절개했다.
“만성 신부전 환자를 수술할 때는 최대한 감염에 조심해야 하는 게 첫 번째 유의점이야.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혈관과 주변 조직에 손상을 최대한 피해야 해. 왜 그럴 것 같아?”
처음 보는 수술에 준비도 못했다.
김지훈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경아 씨가 어시스트를 하는데 모르는 걸 물어보시냐. 아! 창피해. 여기서 타면 정말 개쪽이다.’
가뜩이나 말투가 딱딱한 신기동 교수였다. 그런 말투로 타면 두 배는 더 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김지훈은 엉뚱한 문제를 걱정하며 처분만 기다렸다. 그런데 신기동 교수가 별 타박 없이 똑같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동정맥루 수술에서 사용된 동맥과 정맥은 한 번 쓰면 다신 사용을 못해. 기회가 단 한 번뿐이라는 거야. 그래서 수술이 잘못되면 반대편 손목이나 팔꿈치의 혈관으로 다시 수술해야 돼. 언제 신장 이식을 받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전에 혈관을 다 써 버리면 안 되겠지.”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무심코 손을 뻗다 멈칫거렸다. 만성 신부전 환자들의 조직은 상당히 약했다. 다른 수술처럼 어시스트를 서면 손상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절개 부위를 따라 흐르는 피를 닦았다. 신기동 교수가 또 한 번 김지훈을 보았다.
‘듣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다른데 제법이야.’
하얗고 가는 손가락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기동 교수의 손길은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이혁민 교수의 수술이 연상될 정도로 흡사했다.
곧 펄떡펄떡 뛰는 동맥과 그 옆으로 주행하는 정맥이 노출됐다. 신기동 교수가 고경아를 보며 눈을 가리켰다. 고경아가 소독된 기구로 조심스럽게 루빼(수술용 돋보기)를 신기동 교수의 눈에 맞춘 후 바닥에 기구를 던졌다.
수술이 완전히 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는 실.
그에 맞춰 제작된 미니어처처럼 작고 섬세한 기구들.
루빼를 낀 신기동 교수만이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김지훈이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신기동 교수는 혈관 접합에만 집중해야 했지만 김지훈은 수술 부위 전체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맥과 정맥의 양끝을 겸자로 잡아 혈류를 차단한 후 주행 방향을 따라 혈관 벽을 절개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자 딱딱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뭐 해?”
고경아가 주사기를 가리키며 누르는 동작을 했다.
그동안 고경아도 경험이 상당히 쌓인 모양이었다.
‘아! 헤파린(혈전 용해제)이 섞인 식염수로 혈전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지? 탱규!’
김지훈이 고경아에게 눈짓을 한 후 재빨리 식염수로 절개된 동맥과 정맥을 씻어 냈다.
“10분이다. 그 시간이 넘어가면 혈관이 손상될 수 있고 수술을 실패할 확률도 아주 높아져.”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신기동 교수의 손도 달라졌다. 송재덕 과장이 연상될 정도로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처럼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혈관을 연결했다. 루빼를 이용하면 확대해 볼 수 있다지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양끝을 막았던 겸자를 풀자 동맥을 따라 힘차게 피가 흘러들어 왔다. 순간 정맥이 빵빵하게 부풀었다. 한동안 혈류가 원활한지 지켜보던 신기동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술 부위를 닫기 시작했다. 다시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이 보였다.
‘역시 수술을 할 때는 부위나 위험도에 따라 방법을 달리해야 해. 이런 게 마치 습관처럼 나오려면 도대체 얼마나 경험이 많아야 할까?’
새로운 수술과 새로운 집도의들의 손을 볼 때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모든 수술을 관통하는 기본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몸은 힘들지 몰라도 신기동 교수님의 수술을 보는 것은 분명 행운이야.’
김지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
두 번째 수술이 시작됐다. 동일한 수술이었기에 김지훈은 최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어시스트를 섰다. 고경아도 적절한 때에 필요한 기구를 건넸다.
수술을 진행하던 신기동 교수가 힐끗 김지훈과 고경아를 보았다. 혈관 수술이 손에 익을 때까지 한동안은 꽤 고생을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조로웠다.
‘금 과장 때문에 망친 기분이 수술실에서 사네.’
최대한 집중을 하며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도 신기동 과장을 의아한 눈으로 보았다. 딱딱한 말투에 예리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수술 중에도 꽤 많은 말을 했다.
혈관을 접합할 때만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며 조용할 뿐이었다. 어쨌든 신장 질환과 혈관 수술에 관한 지식을 끊임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 또한 큰 행운이었다.
두 번째 수술도 만족스럽게 끝났는지 신기동 교수가 별말 없이 수술실에서 나갔다. 김지훈도 정리를 하는 고경아를 힐끗 보며 씨익 웃고는 급히 신기동 교수의 뒤를 따랐다.
“선생님, 수술 후 오더는 어떻게 내야 합니까?”
신기동 교수가 아차 했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톡톡 쳤다.
휴게실에 함께 앉아 수술 전후의 오더와 환자 관리에 관한 내용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겉보기나 말투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이 거의 다 끝났을 무렵 신경외과 1년차가 허겁지겁 휴게실로 들어왔다. 신기동 교수를 보자마자 인사를 하며 급한 소식을 전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신경외과 1년찹니다. 과장님께서 지금 급히 중환자실로 와 달라고 하십니다.”
“중환자실? 왜?”
“뇌사 환자 문제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뇌사 환자?
신기동 교수가 벌떡 일어나 곧장 중환자실로 향했다.
“김지훈, 우리 파트 전공의들 전부 중환자실로 오라고 해.”
김지훈이 급히 병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제나저제나 김지훈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최철한이 이유를 물었다.
“뇌사 환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중환자실로 가시면서 선생님을 찾으셨습니다. 저도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얼마 후 모두들 의아한 표정으로 중환자실로 들어왔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