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우리는 동기들이다 (2)
“지금은 안 하셔도 돼요.”
“왜요?”
“정말 고마워요, 선생님. 오늘 낮에만 다섯 번을 치료받았어요. 방금 전에는 신현수 선생님이 하고 가셨구요.”
순간 할 말을 잃은 김지훈이 멍하니 서 있다 활짝 웃었다. 비록 첫날이라고는 하지만 동기들의 정성과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그러나 고마움은 자신만으로 족했다. 하영희의 마음이 편하기만을 바랐다.
“에이! 그거야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뭐. 절대 고마운 일 아닙니다. 혹시 내일 아무도 안 오면 제게 꼭 말씀하세요.”
방금 전에 했다는 말에 드레싱 카를 끌고 다시 나가려는 간호사를 붙잡은 김지훈이 손뼉을 딱딱 쳤다.
“민수야, 치료해야지. 자세 잡자.”
자세를 잡을 것도 없었다. 그냥 누운 채로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드레싱을 하며 연거푸 탄성을 터트렸다. 크게 웃으며 호들갑까지 떨었다.
“야! 민수가 도와주니까 한결 편하네. 그래, 인마. 얼마나 좋아. 빨리 훌훌 털고 일어나서 공부도 하고 여자 친구도 만들어야지.”
의사의 기분이 나쁘거나 가라앉으면 금방 환자에게 전염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어느 정도는 비슷했지만 의사의 감정이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했다. 어쨌든 병원에서 약자는 환자이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어떻게든 장민수의 기분을 올려 주기 위해 별 방법을 다 썼다. 그래도 반응이 없자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나갔다. 인내와 끈기의 싸움이었다.
잠시 후 장민수가 눈을 떴다. 그러고는 하영희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최철한의 오더를 열심히 받아 적었다.
정신없이 부르는 오더에 집중하던 김지훈이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식사는 죽으로 주고 있지만 장민수는 입도 대지 않고 있었다. 간간이 식사를 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금식 상태에서 정맥을 통한 고영양 요법을 시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완전 비경구적 영양 요법.
고농도의 아미노산 제제와 필수 지방산을 일주일에 두 번씩 투여하고 포도당의 농도도 20퍼센트 이상이 되도록 만들어 투여하는 치료 방법이었다. 장기간의 금식 상태를 요하는 환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치료였다.
‘사람이 먹지도 않고 고영양 요법으로만 1년 이상을 버텼다면 이것도 큰 문제 아닌가?’
입으로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었다. 영양적으로는 물론 우리 몸은 소화 흡수 과정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 준다. 반면 정상 통로가 아닌 정맥 주사를 통해서만 영양을 공급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은 빤한 일이었다.
오더를 다 받은 김지훈이 급히 책을 뒤졌다. 몇 가지 합병증은 열거돼 있었지만 장민수가 보이는 문제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턴을 불렀다.
“인턴 선생, 미안한데 비경구 고영양 요법의 합병증에 대한 논문 좀 찾아봐 줄래? 있으면 세 부 정도 복사 좀 부탁해. 최대한 빨리.”
다음 날 오후가 될 때까지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장민수를 치료할 때마다 문제점이 무엇이 있는지 하나하나 철저하게 살폈다. 이혁민 교수의 수술을 보면서도 간간이 그런 논문이 있는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부종. 금식에 가까운 상태. 복부 팽만. 간 비대 의심.’
저녁 늦게야 인턴이 논문을 복사해 왔다. 김지훈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어쩌면 치명적인 합병증이 이미 진행됐는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부리나케 하영희를 찾았다.
“어머니, 잠시만 뵐까요?”
“왜 그러세요.”
“민수가 석 달 전에 복부 CT를 찍은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다시 한 번 찍었으면 좋겠습니다.”
“왜요? 검사를 하려면 돈이 만만치 않은데.”
입원비만 2억이 넘었다고 했다. 영양제는 보험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비용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다행히도 병원에서 채근을 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선뜻 고가의 검사를 하겠다고 하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김지훈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고영양 요법 때문에 간 비대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CT에서 확실히 확인이 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치료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치료 방법을 바꾸다니요?”
“민수를 살리기 위해 투여하는 고영양 제제들이 도리어 민수를 위험하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민수가 저렇게 무기력해지는 이유도 심리적인 문제와 함께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겨서 더욱 악화시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일명 푸아그라라 불리는 거위의 간과 똑같았다.
정상적인 식사를 하며 과영양 상태가 되면 비만으로 끝날 일이었다. 그래도 탄수화물, 즉 포도당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투여되면 간은 대사시키지 못한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변화시켜 저장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결국 간 비대를 유발하고 이어 간 부전까지 발생하면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장민수의 경우에는 모든 영양소를 정맥으로 투여한 탓에 소화 흡수 과정을 거치지 않아 이상 반응이 초래될 가능성이 더욱 높았다. 만일 간 비대가 발생했다면 초기에 잡아 주어야만 살 수 있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었다.
장민수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비용은 나중에 생각하시고 일단 동의만 해 주세요. 민수야, 너 CT 꼭 다시 찍어 봐야 하니까 다른 말 하지 마라.”
하영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하는 말이라면 믿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장민수에 대한 열정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김지훈이 최철한에게 논문을 보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유석재와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논문을 보던 최철한이 회진을 올라온 이혁민 교수에게 보고했다.
“이런 합병증이 있었나? 하도 오래 고영양 요법을 해서 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보호자가 동의를 할까? 요샌 피 검사도 제대로 못 하잖아.”
“지훈이가 이미 동의를 받았답니다.”
이혁민 교수가 슬며시 김지훈을 보며 웃었다.
“잘했다. 그럼 다시 CT 찍고 간 기능 확인해 보자. 뭐든 해 봐야지.”
마지막으로 장민수 방에 들어선 이혁민 교수가 다시 한 번 검사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하영희가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자 이혁민 교수가 도리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장민수에 관한 한 언제 들어 보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말이었다. 그만큼 별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이혁민 교수도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이는지 수술 방에서도 장민수 얘기를 했다. 의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너무 미안해하고 있었다.
“가끔은 말이다, 의사가 된 것이 후회되는 적이 있어. 한계를 느낄 때야. 그때마다 지식이든 노력이든 무엇이 부족했는지 고민하지만 딱히 답이 안 나오더라. 미안한 말이지만 장민수 문제는 내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었으면 좋겠다.”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며 이혁민 교수의 말을 깊이 새겼다.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일이라면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말이었다. 반면 의학의 한계 때문이라면 환자를 구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이혁민 교수도 장민수 문제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을지도 몰랐다.
의사라고 항상 최선을 다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인간인 이상 체력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더욱이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의무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상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도 많겠지. 응급 수술이 있을 때마다 불려 나오고 낮에는 거의 다른 일을 못하는데 가족들은 의사를 어떻게 생각할까? 마냥 좋기만 할까?’
당장 고경아와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조만간에 꼭 한 번 만나 확실한 생각을 전해야 하는 윤서연과는 서로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세상 살아가는 일은 누구에게나 정말 어려운 법인 모양이었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복부 CT를 보며 모두들 말을 잃었다. 불과 3개월 만에 간 비대가 상당히 진행돼 있었다. 게다가 간 기능 검사의 결과까지 좋지 않았다.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니가 이 상태를 예측했으니까 당연히 치료 방침도 알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지훈이, 니 말대로 해야 되겠다.”
최철한과 유석재까지도 빤히 바라보자 김지훈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혁민 교수는 물론 윗년차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오더를 내릴 결정권을 준 것이다.
“일단 포도당은 5퍼센트 이내로 제한합니다. 아미노산 제제와 필수 지방산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투여하겠습니다.”
“그럼 영양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반드시 입으로 먹고 움직이게 만들겠습니다.”
“의욕도 없고 컨디션까지 엉망인데 먹을 수 있겠나?”
“예전 기록을 다시 확인했는데 십이지장루가 좁아지면 식욕을 회복하는 경향이 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지금 다른 1년차들이 모두 도와주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년차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예. 현수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드레싱을 해 주고 있습니다.”
‘현수까지? 허허! 현수 그노마가 그렇게 많이 변했어.’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지훈이 너를 믿을 테니까 내 짐 좀 덜어 줘. 장민수 퇴원시켜 봐.”
“알겠습니다.”
정말 어려운 말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장민수를 맡겼다고 해서 1년차의 일을 줄여 줄 리는 없었다. 결국 휴식은 물론 잠까지 줄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날 하영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간 비대를 유발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즉각 중단시켰다. 남은 일은 장민수의 의지와 김지훈의 노력이었다. 여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동기들의 노력이 필요했다.
일종의 싸움이 시작됐다. 모든 1년차들이 시간만 나면 드레싱을 해 대고 장민수을 앉히려고 애를 썼다. 이경석은 말을 안 듣는다고 화까지 버럭버럭 냈다. 손일석도 신현수도 조금씩 지쳐 갔다. 자신의 환자도 아닌 김지훈의 환자를 보는 일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이제 곧 주말이었다. 황금 같은 오프를 가는 주였지만 김지훈은 갈등에 휩싸였다. 장민수에겐 정말 중요한 시기였다.
‘경아 씨에게 뭐라고 하지? 저번에는 과장님 때문이고 이번에는 환자 때문이라지만 경아 씨가 보기에는 결국 마찬가지잖아. 어떻게 하지. 데이트하면서 세 시간마다 들어와? 이거 참, 미쳤다는 소리 듣기 딱 좋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딱히 좋은 방법이 없었다. 결국 고경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처분만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명쾌한 답을 주었다.
(음! 그럼 세 시간마다 치료하고 오세요. 그 정도는 제가 봐드릴게요.)
“정말이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휴가도 반납하고 수술 배운다고 음성까지 가신 분 말을 제가 어떻게 거역하겠어요. 오프만 나와 줘도 감지덕지죠.)
은근히 삐치긴 한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대뜸 공약을 던졌다.
“그럼 이렇게 하죠. 커피 마시고 저녁 먹고 밤에 시간 되면 맥주 한잔까지 어때요?”
(맥주요? 술 마시고 치료하려구요?)
“밤에는 원래 자잖아요. 하지만 난 그 시간을 아껴서 경아 씨와 데이트. 정말 좋은데 경아 씨는 싫어요?”
고경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곧 알았다고 하며 일요일 점심은 정훈철 가족과 함께 먹어야 한다고 했다. 김지훈이 내심 웃고 말았다. 자신을 대신해 인연을 이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알았어요. 그럼 일요일 점심은 훈철이 형하고 먹죠. 정말 고마워요. 그동안 미안했었는데 오래간만에 승희도 보겠네요. 참! 이번에는 내가 산다고 꼭 전해 줘요.”
항상 시간이 애매모호해 정훈철에게 전화를 할 시간조차 맞출 수가 없었다. 별걸 다 고경아에게 부탁을 한다는 생각에 김지훈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전화를 끊은 김지훈은 장민수를 찾았다. 정말 지겹도록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수액이 제대로 달렸는지 밥은 먹었는지 물어보며 치료를 했다.
“민수야, 형 주말에 오프다.”
얼굴을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혹시나 반응을 보일까 해서 던진 말이었지만 역효과가 났는지 장민수가 도리어 눈을 꼭 감았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