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01화 (201/1,329)

제3화 우리는 동기들이다 (1)

드레싱을 마치고 장갑을 벗은 김지훈이 하영희를 보았다.

입가에 미소를 잃지는 않았지만 눈빛만은 단호했다.

“어머니, 아드님 왜 안 앉히셨어요?”

“그게… 우리 아들이 너무 힘든가 봐요.”

“힘들다고 보고만 계실 겁니까? 안 되는 거 잘 아시잖아요. 이리 오세요. 저랑 같이 일으켜 세우죠.”

김지훈이 장민수의 어깨를 잡고 힘을 썼다. 하영희와 간호사까지 가세했지만 미역처럼 늘어진 채 장민수는 전혀 협조를 안 했다. 장민수 스스로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열 명이 와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한참 동안 힘을 쓰던 김지훈이 땀까지 흘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화를 내며 고함이라도 질러서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의사가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 봐야 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환자다. 소리를 지른다고 내 말을 들을 리가 없어. 7년이나 이런 고통을 안고 사는 환자 앞에서 겨우 일주일을 못 참는 게 말이 돼? 김지훈, 힘내자.’

오기일지도 몰랐다. 결국 얼굴이 시뻘게진 간호사가 무릎에 손을 얹고는 숨을 헐떡였다. 그래도 김지훈이 장민수를 잡은 손을 놓지 않자 하영희가 입술을 깨물며 힘을 썼다.

“장민수 씨,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말아요. 오직 장민수 씨 자신만을 생각하세요. 난 민수 씨가 노력만 하면 퇴원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7년을 싸운 사람 앞에서 포기란 말은 어울리지 않겠죠?”

진솔한 목소리였다. 하영희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끝까지 용을 쓰던 김지훈이 주먹을 쥐다 말고 웃었다. 순간 젊은 혈기 속에 짜증과 화가 치솟았지만 이제 일주일을 노력했을 뿐이었다.

김지훈이 호흡을 고르며 나직하게 말했다.

“어휴! 힘드네요. 지금은 일단 여기까지. 그럼 세 시간 후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는 우리 얼굴 좀 봅시다. 하하하! 어머니. 아드님 고집이 보통이 아니네요. 그래서 7년이나 포기하지 않고 싸워왔나 봅니다.”

김지훈이 하영희에게 눈짓을 했다. 병실 밖으로 나가자 손일석이 의아한 눈으로 의국에서 나오고 있었다. 드레싱을 한다고 간 김지훈이 30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침 응급실 콜까지 온 참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지훈아,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일석아, 잠깐만. 어머니, 민수 씨한테 말한 대로 저 절대 포기 안 합니다. 아드님은 결코 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하영희가 입술을 깨물며 김지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점점 눈가가 붉어졌다.

“정말 우리 아들을 포기하지 않으실 거예요?”

“예. 분명히 일어나 집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약속하실 수 있어요?”

“약속합니다. 지금까지는 전에 하던 대로 치료만 했지만 이런 경우가 있었는지 책이든 뭐든 다 찾을 겁니다. 전 제가 민수의 주치의라는 것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단호하기만 한 김지훈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갑자기 하영희가 목 놓아 울며 김지훈의 팔을 꼭 잡았다. 손일석이 눈만 껌벅거리며 시선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당황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크게 울 줄은 몰랐다.

***

주말 응급실은 지금도 항상 환자로 붐볐다. 콜을 받고 내려가자 심근경색 환자와 교통사고 환자가 동시에 들이닥쳐 난장판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를 악물고 심폐 소생술을 공정식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김지훈도 알지 못할 힘을 얻었다.

교통사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온몸이 피투성이에 바이탈까지 심하게 흔들렸다. 간신히 혈압을 잡고 복부 CT를 짝은 결과 혈복강이었다.

필요한 처치를 하고 수술 당직인 손일석이 급히 수술 방으로 들어갔다. 바삐 서두르는 모습 속에서 기대와 흥분이 느껴졌다. 손일석 역시 천생 일반 외과 의사였다.

환자를 수술 방으로 올리고 나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넘었다. 가운 여기저기에 피가 묻어 있었다. 가운을 갈아입고 장민수를 찾았다. 땀에 젖은 머리가 떡이 된 모습을 본 하영희가 물었다.

“응급실에 심한 환자가 왔나 봐요?”

7년이라는 세월은 무서웠다.

김지훈의 모습만 보고는 대뜸 짐작을 했다.

“예, 어머니. 교통사고로 온 환잔데 지금 수술 들어갔어요. 별문제 없이 잘 회복됐으면 좋겠네요. 근데 아드님도 참 똥고집이네요. 장씨 고집이 원래 이렇게 센가요?”

하영희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20분간 드레싱을 한 김지훈이 장민수를 보다 말고 웃었다. 끽해야 일곱 살 많을 뿐이었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금방 형 동생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와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도 문제지만 장민수의 경우는 다르지 않을까? 어쩌면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몰라.’

옳은 판단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때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김지훈이 장민수의 귀에 대고 말했다.

“장민수 씨, 앞으로 내가 그냥 민수야라고 이름을 부를 겁니다. 그러니까 민수 씨도 나를 형이라고 부르면 돼요. 단, 난 지금부터지만 민수 씨는 일어나서 걸어야만 자격이 생깁니다. 자! 그럼. 민수야, 이따가 보자.”

슬며시 웃음을 보인 김지훈이 병실을 나가며 입을 꽉 다물었다. 간호사가 뭔가 어색한 표정이었지만 웃고 있었다. 물끄러미 문을 보던 하영희가 눈가를 찍으며 장민수를 보았다.

“민수야.”

할 말이 차고도 넘쳤지만 하영희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저 점점 야위어 가는 팔다리를 주무를 뿐이었다.

김지훈이 총무과에 연락을 해 논문이 저장된 컴퓨터실을 찾았다. 주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십이지장루의 합병증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셀 수도 없는 논문이 검색됐다. 일일이 읽어 본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세 시간이 넘도록 논문의 핵심이 적힌 요약 내용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으로 다시 병동에 올라가 장민수를 치료했다.

김지훈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민수, 눈떠 봐, 인마.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궁금하지 않아? 네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 제일 잘생겼을 거다.”

“그래, 민수야. 선생님 좀 봐.”

약한 숨소리만 들렸다. 김지훈이 혀를 차며 일어섰다. 정말 어려운 환자였다. 그러나 결국은 병원과 의사가 만들어 낸 환자였다. 절대 장민수를 탓할 수는 없었다.

김지훈이 문을 열며 말했다.

“민수야, 설마 형이 동생을 포기하겠어? 그러니까 너도 네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마. 믿는다.”

지금은 스무 살이지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막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그동안 친구도 없이 지냈을 것이다. 어쩌면 장민수는 아직 열네 살 어린아이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막 병실을 나가는 순간 장민수가 슬며시 눈을 뜨며 하영희를 불렀다.

“엄마.”

“왜 소변 보고 싶어?”

“아니. 그냥.”

지난 1년간 필요한 일이 없으면 엄마조차 먼저 찾은 적이 없었다. 장민수의 눈길이 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영희가 입을 막으며 장민수의 손을 꼭 잡았다.

단 한마디와 조그만 변화에 불과했지만 하영희에겐 희망이었다. 그녀는 철철 눈물만 쏟으며 가슴으로 아들을 꽉 안았다.

주말 내내 응급실과 수술 방, 그리고 병동을 오갔다. 틈이 날 때마다 논문실에 달려가 장민수와 연관이 될 만한 것은 모두 검색을 했다. 모니터를 하도 봐서 그런지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일요일 오후 오프을 갔던 신현수와 이경석이 돌아왔다.

병동 의국에 앉아 차팅을 하는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책상을 딱딱 두드리며 고민에 잠겼다.

‘주말에는 시간이 있어 가능하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또 어떻게 하지? 더구나 매일 수술을 들어가야 하니까 낮에는 시간을 뺄 수가 없잖아. 다른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죽겠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사실 지금 필요한 것은 장민수를 치료할 시간과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각자 나름의 일이 있는 2년차들에게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 1년차가 그만한 모습을 보이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손일석, 이경석, 신현수.

아무리 찾아보아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동기들뿐이었다. 모두 서로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환자에 대한 열의가 강했다. 문제는 어느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석아, 바쁘냐?”

“너 눈은 왜 달고 다녀? 겨우 수술 두 방에 일이 이렇게 밀리냐. 매번 느끼는 건데 참 희한해.”

“잠깐 얘기 좀 하자. 부탁할 게 있어.”

“귀는 열고 있으니까 말해. 뭔데?”

손일석이 차팅을 하느라 고개도 들지 않았다.

“장민수 말이야. 이러다가 곧 문제 생기겠어. 근데 뾰족한 방법이 없잖아. 열심히 십이지장루 세척해 주고 컨디션을 살려서 어떻게든 먹게 해야 좋아지지 않을까?”

“지훈아, 빙빙 돌리지 말고 요점만 말해. 정신 사납다.”

“알았어. 내일부터 시간 나면 치료 좀 해 줘.”

그제야 손일석이 고개를 들었다.

“뭐? 지금 네가 하는 것도 모자라 더 하자고?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이나 할 생각인데.”

“책에도 자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나오잖아. 논문을 뒤져도 마찬가지고. 무식하더라도 일단 횟수 제한 없이 그냥 몸으로 밀어붙여 보려고.”

이경석과 신현수도 관심이 생겼는지 차팅을 멈추고 김지훈을 보았다. 눈이 있다면 지난 일주일 동안 김지훈이 장민수에게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좋아지겠어?”

“그걸 누가 알겠어. 하지만 이대로 보기에는 너무 마음이 안 좋아. 꼭 건강하게 만들고 싶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봤으면 좋겠어.”

손일석이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을 하더니 피식 웃었다.

‘자식. 일복이 넘친다고 했더니 나한테까지 일을 주네. 야, 인마, 안 그래도 너 때문에 미안해서 장민수 얼굴을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마이 프렌드, 오케이! 안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 그래. 네 말이 맞다. 나도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게.”

“고맙다, 일석아.”

“친구끼리는 고맙다는 말 하는 거 아니다. 너하고 나 사이에 이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이지, 인마.”

김지훈이 슬며시 이경석과 신현수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했다.

이경석이 턱을 괸 채 김지훈을 보며 웃고 말았다.

“지훈아, 나한테는 왜 부탁 안 해. 설마 말 안 해도 당연히 해 줄 거라고 생각한 거야?”

“형도 도와주실래요?”

“그럼, 인마. 천하의 김지훈이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주면 마음 편히 잘 수나 있겠어? 나도 시간 나는 대로 치료할게. 현수야, 너도 같이 할 거지?”

김지훈이 신현수를 보며 말했다.

“부탁한다. 도와줘. 우리 넷이 힘을 합쳐 장민수 살려 보자. 이대로는…….”

신현수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없이 차트를 펼치며 기록을 시작했다. 다들 눈가를 찡그리며 신현수에게 눈길을 주는 순간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 치료 간격은 무시하는 거지?”

“고맙다, 현수야.”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전공의들 중 가장 힘들다고 해도 무방한 일반 외과 1년차들이었다. 모두들 동기란 존재가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경석이 나직한 숨을 내쉬다 말고 손일석을 보았다.

“일석아, 너 근데 왜 갑자기 툭하면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쓰고 있냐? 회화 공부해? 아니지. 그럼 그따위로 할 리는 없는데.”

“오! 마이 브라더, 그따위라니요. 이태원에서 받은 쇼크가 아직도 마이 브레인에 해머질을 하고 있어서 그래요.”

“이태원? 아! 그 탱크들?”

“빙고! 역시 마이 브라더는 스마트해.”

손일석이 손가락을 탁 튕기며 말을 하자 웃음이 터졌다. 신현수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경석이 이태원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있었던 일을 말해 주자 신현수도 피식 웃고 말았다.

“현수, 무슨 프라블럼(problem)이라도 있어?”

끝까지 콩글리시를 하는 손일석을 보며 모처럼 큰 웃음이 터졌다. 손일석은 역시 분위기 메이커였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 속에서 얻는 작은 웃음도 생각 밖으로 큰 즐거움이었다.

함께 웃던 신현수가 콧잔등을 꾹 눌렀다.

‘후우! 내가 왜 이러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일석이나 이경석과 함께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김지훈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왠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즐거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맞는다면 술 한잔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

다소 여유가 있던 주말이 지나고 두 반째 월요일을 맞이했다. 언뜻 생각해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이었지만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수술이든 응급실이든 병동이든 최선을 다해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마지막 수술을 마치고 곤죽이 된 김지훈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장민수를 찾았다. 드레싱 카를 끌고 들어오자 하영희가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놀라세요? 뭐 좋은 일 있었어요? 혹시 민수가 일어나 앉았나요?”

김지훈이 내심 장민수에게 변화가 있는 줄 알고 반색을 했다. 그런데 눈가가 벌게진 하영희가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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