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200화 (200/1,329)

제2화 희망이 없는 환자는 없다 (3)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장민수가 얼굴을 찡그리는 것 같았다. 짜증을 내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김지훈이 본 최초의 반응이었다. 순간 안타까우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반응을 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장민수 씨, 치료합시다. 내가 시간을 못 내면 모르지만 앞으로 잘 때 빼고는 세 시간 간격으로 치료를 할 겁니다. 우리 서로 짜증 내지 말고 해 봅시다.”

20분이나 되는 금쪽같은 시간을 투자했다. 하영희는 간이침대에 앉아 물끄러미 치료하는 모습을 보았고 장민수는 끝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힘이 쪽 빠지는 상황이었지만 7년이라는 세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어머니, 몇 시에 주무세요?”

“대충 두세 시는 돼야 자는데 왜요?”

“아드님만 괜찮으면 이따가 한 번 하겠습니다.”

하영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또 하신다고요?”

“어차피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요, 뭐. 일단 한 번이라도 더 하면 효과가 더 나지 않겠습니까? 괜찮으시겠죠?”

“네. 우리는 별상관이 없어요.”

대답을 하면서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일반 외과 1년차들이 어떻게 사는지 웬만한 전공의들보다 더 잘 알기 때문이었다. 7년 동안 봐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병실을 나가려던 김지훈이 갑자기 장민수를 흔들었다.

“장민수 씨, 그리고 내일부터는 최소한 낮에는 앉아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문제가 생겨요. 알았죠?”

이제 이틀 지났을 뿐이었다. 대답을 기대하지도 않았고 역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병실을 나와 의국으로 들어가는 김지훈을 보던 간호사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석재 선생님도 채 2주를 못 갔는데 언제까지 저럴 수 있을까?”

어떻게든 장민수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전공의는 김지훈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장민수의 무반응은 전공의들의 열의를 쉽게 꺾었다.

약속대로 새벽 2시가 넘어 마지막 드레싱을 한 김지훈이 연거푸 하품을 해 대며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응급실 당직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이었다.

다음 날 오전 내내 김지훈은 손일석과 함께 수술 스케줄을 챙기느라 바삐 뛰어다녔다. 자칫 병동 일이 밀릴 수 있었지만 그런 문제를 용인할 1년차들이 아니었다. 1년차들이 일을 못하면 덩달아 힘들어지는 간호사들이 더 좋아했다.

“앞으로 세 달은 정말 편하겠죠?”

“나도 동감. 그런데 김지훈 선생님은 얼마나 가실까?”

“이번에는 끝까지 노력을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지만 장민수 환자가 생각만큼 만만치 않잖아. 솔직히 중간에 손을 놓으셨던 선생님들 탓을 할 수도 없고.”

“왠지 전 예감이 좋아요.”

항상 드레싱을 보조해야 하는 막내 간호사의 말에 다들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바쁜 와중에도 오후 수술을 들어가기 전에 장민수를 두 번 치료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던 김지훈이 간호사에게 먼저 가라는 눈짓을 하고는 장민수 앞에 앉았다.

“장민수 씨, 어떻게든 움직여야 합니다. 당장 걷기는 힘들 테니까 앉아 있기라도 하세요. 오후에 수술이 있어서 이따 저녁에나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미안하네요. 하지만 그때는 꼭 앉아 있어야 합니다.”

하소연처럼 간절하게 말을 했지만 장민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제 사흘 지났을 뿐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겠지.’

급해지는 마음을 지그시 누르며 오후 수술에 들어간 김지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일석의 말대로 수술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이혁민 교수와 최철한의 손만 보였다.

‘야! 이건 너무한다. 어떻게 볼 틈이 없냐.’

어떻게든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며 수술을 보려고 했지만 정말 틈이 없었다. 수술 중에 자꾸 다른 생각만 났다. 졸음을 쫓기는 더욱 어려웠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김지훈, 조나. 힘드나.”

“아닙니다, 선생님.”

스태프들의 내공은 강했다. 집도를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졸면 귀신처럼 알아챘다. 몰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어느새 수술이 끝났다. 수술이 끝난 후에는 정신을 더 바짝 차려야 했다. 유방 수술의 수술 후 오더는 처음 내보기 때문이었다. 최철한의 말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수술 방을 오가며 고경아와 여러 번 마주쳤지만 정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밤에 잠깐 시간을 내 통화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와! 경아 씨, 대단해요. 어떻게 본 척도 안 하지?”

“그럼 아는 척을 할까요? 수술 방에서는 그렇게 지내는 게 여러모로 지훈 씨에게도 좋아요.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똑 부러진 목소리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났다. 금경태 과장의 눈빛은 풀어질 줄 몰랐다. 같은 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발표 때를 제외하고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지?’

이럴 때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도리어 편했다. 다른 환자에게 미안할 정도로 장민수에게 신경을 썼다. 첫 번째 주 금요일, 아니 토요일 새벽 1시가 넘어 드레싱을 하고 나온 김지훈이 관자놀이를 강하게 눌렀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는 장민수를 보면 온몸의 힘이 쭉 빠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다들 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지만 기본적인 일이 많아 생각보다 훨씬 몸이 고됐다. 응급 수술이 적어 그나마 서너 시간이라도 잠을 잤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드레싱이고 뭐고 일단 누울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절대 포기 안 한다. 7년이면 너무하잖아. 엄마 속은 이미 썩어 문드러졌을지도 몰라.’

김지훈은 의국으로 들어가 이를 악물고 남은 일을 마쳤다.

조용한 복도를 따라 문 닫히는 소리가 울렸다.

하영희가 장민수의 다리를 주무르며 눈가를 붉혔다.

“민수야, 엄마 좀 봐. 이젠 김지훈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눈도 마주치고 말도 좀 해. 저렇게 열심히 널 치료해 주시는 선생님도 없으셨잖니.”

엄마의 슬픔이 전해진 것일까?

장민수가 슬며시 눈을 떴다. 생기 하나 없는 멍한 눈이었다. 스무 살짜리가 보일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장민수가 하영희에게 눈길도 안 주고 천장만 보며 중얼거렸다.

“엄마.”

“그래, 내 아들. 이렇게 말을 하면 얼마나 좋아.”

“나 정말 힘들어서 이젠 기대하기도 싫어. 저 선생님은 언제까지 내게 신경을 쓸까? 내일? 길어야 다음 주일 거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 또 기다려?”

“민수야, 그러지 말고 이번 한 번만 더 믿어 보자. 엄만 말이야, 이번 선생님까지 우릴 포기하면 다신 기회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하영희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설움이 복받치는지 입술을 꼭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엄마, 난 7년이나 기다렸어. 내겐 단 한 번도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

“민수야, 약해지면 안 돼. 그럼 엄마는 어떻게 살아. 제발. 민수야.”

하영희가 입을 막고는 숨죽여 흐느꼈다. 장민수가 슬며시 고개를 돌리다 말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엄마의 울음도 7년이나 보아 왔다.

토요일 아침, 김지훈이 601호를 들어가기 전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의사는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느껴야 하지만 휩쓸려서는 안 된다. 김지훈이 문을 열며 밝게 웃었다.

“어머니, 잘 주무셨어요? 아드님은 아직도 아는 척을 안 하네요. 고집 무지하게 세네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드레싱을 하던 김지훈이 슬쩍 장민수의 다리를 만졌다. 부종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드레싱과 보존 요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온몸에 덕지덕지 묻은 피로가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오전 회진을 돌며 이혁민 교수에게 장민수의 상태를 보고했다. 모두들 안색이 어두워졌다.

“예전에도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그래도 전에는 먹고 움직이면 좋아지곤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걱정이네. 나는 물론이고 잘났다는 철한이나 석재도 퇴원을 못 시켰는데 김지훈 네가 한번 해 볼래?”

의사로서는 참 하기 힘든 말이었다. 더구나 7년이나 자신의 환자로 있는 장민수였다. 답답한 마음에 넋두리처럼 한 말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김지훈이 눈빛을 굳히며 말했다.

“선생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잠시 김지훈을 보던 이혁민 교수가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그래. 믿어 보마.”

저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 말없이 회의실로 내려갔다.

주중 발표와는 달리 주말 발표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살벌했다. 김지훈이 낸 리포트와 발표를 듣던 이혁민 교수의 눈이 번쩍번쩍 빛날 정도였다.

결국 이준영 과장에게 탄 것은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탔다. 발표 후 김지훈 못지않게 탄 손일석이 식은땀을 닦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지훈아, 너 이혁민 선생님한테 잘못한 거 있어?”

“그러게 말이다. 왜 우리만 신나게 태우시냐? 현수나 경석이 형은 그냥 넘어가면서 말이야.”

“너에 비하면 난 양반이더라. 그리고 현수야 완벽하다지만 경석이 형도 오상익 선생님에게 무지 탄 거야. 점잖으셔서 그렇지, 이 정도면 경석이 형도 똥줄 좀 탔을걸.”

아닌 게 아니라 이경석도 똥 씹은 얼굴이었다.

“형, 얼굴이 많이 안 좋네요.”

“그럼 좋겠냐, 인마. 오상익 선생님이 날 찍었나. 오늘 정말 심하시네.”

새카맣게 탄 세 명이 졸래졸래 신현수의 뒤를 따랐다. 어째 신현수의 어깨가 딱 벌어진 것 같았다. 병동 의국에 들어가던 손일석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과장님이 지훈이한테만 질문을 하지 않으셨잖아? 지훈이를 보는 눈빛도 항상 좋지 않고 이상해.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예전에 들은 말을 생각하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닐 수도 있어. 근데 저 자식은 과장님 태도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거야?’

김지훈은 스테이션에 앉아 차트를 보고 있었다.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어 손일석도 먼저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행여나 없는 일을 만들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김지훈 역시 답답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을 뿐이었다.

‘날 대하는 태도나 눈빛이 확실히 달라. 도대체 이유가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거야?’

이마를 주무르며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기분이 좋든 나쁘든 언제나 일은 산더미처럼 놓여 있었다. 그렇게 한숨 속에서 토요일 일과를 마쳤다.

첫 주말 오프인 신현수와 이경석은 4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손일석은 부러운 표정으로 천장만 보았다. 한참 차팅을 하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며 의국을 나왔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김지훈을 보는 하영희의 눈빛은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민수는 단 한 번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눈가를 찡그리는 정도가 다였다. 특단의 대책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팔짱을 낀 채 601이라는 숫자를 노려보던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이 상태로 가다가는 장민수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었다.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야 했다.

‘강하게 나가자. 7년이라는 시간 때문에 장민수를 조심스럽게 대했지만 이건 아니야. 강제로라도 일단 앉히는 것이 좋겠어.’

굳게 마음을 먹고 병실로 들어간 김지훈은 아무 말도 없이 치료를 했다. 하영희가 다소 초조한 표정으로 김지훈의 눈치를 보았다. 이런 관심을 보였던 전공의는 작년에 1년차였던 유석재와 올해 1년차인 손일석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점점 말이 없어지더니 채 2주일도 되지 않아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갔었다. 만일 김지훈마저 포기한다면 다신 장민수에게 신경을 쓸 전공의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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