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희망이 없는 환자는 없다 (2)
윗년차들은 물론 이혁민 교수조차 보존 치료 이외에는 확실한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김지훈은 갑갑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의국으로 들어가 십이지장루의 치료법을 다시 확인했다.
장민수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환자였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고 7년이라는 세월이 아까웠다. 잠시 후 김지훈이 하영희와 의국에서 단둘이 마주 앉았다.
“어머니, 아드님이 원래 저렇게 말을 안 하고 눈도 잘 안 뜨나요?”
“저런 지 한 1년 된 것 같아요. 그전에는 그래도 가끔씩 웃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몇 마디 필요한 말 이외에는 하질 않네요.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이젠 혼자서는 앉지도 못할 정도예요.”
“차트에 보니까 식사는 죽으로 나가던데 영양제에 고농도 수액 치료까지 받고 있네요. 식사를 하긴 하나요?”
“죽은 제가 입이 꺼칠해서 먹는 거예요. 민수는 아무리 맛있는 걸 갖다 줘도 안 먹으려고 해요. 저렇게 누워만 있으니 입맛이 있을 리가 없겠죠.”
김지훈이 장민수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하영희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장민수는 숨만 쉰다 뿐이지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육신은 살아 있었지만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스스로 빨리 죽기를 바라지 않고서는 하영희의 말처럼 무력할 수는 없었다.
덤덤하게 대답을 하던 하영희가 결국 눈가를 붉히며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김지훈도 안타까운 한숨만 쉬었다.
그러나 김지훈은 일반 외과 의사이자 장민수의 주치의였다. 하영희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어머니, 잘 아시겠지만 십이지장루의 치료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결과가 어떨지 잘 아실 겁니다. 지난 7년이 아까워서라도 결코 포기하시면 안 됩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겠습니다.”
“흑! 우리 아이가 정말 건강해질 수 있을까요?”
“어머니까지 그러시면 환자는 더 힘들어진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시잖아요. 어머니께서 절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어머니의 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흑! 민수야.”
하영희가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렸다. 꺼져 가는 촛불처럼 약해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김지훈은 어깨를 들썩거리는 하영희를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희망이 있어야 장민수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서울은 천안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단 응급 수술이 하루에 한 개 정도뿐이었다. 대신 병동 일이 무지막지하게 많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암 등의 질환으로 입원을 한 데다 지방 병원에서는 수술하기 힘든 환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크게 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고령 환자도 적지 않아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론 교육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1년차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발표까지 있었다. 각 연차에 네 명씩 있는 이유가 단지 서울이 중심 병원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정규 일과가 없는 주말은 천국이었다. 특히 이번처럼 1년차들이 모두 있는 데다 각자 알아서 제 할 일을 딱딱 하는 경우에는 제법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다.
김지훈은 세 시간 간격으로 장민수를 치료했다. 그때마다 최소한 20분 이상을 투자해야 했다. 환자가 한두 명도 아닌데 김지훈 혼자서는 무리가 따를 것이 확실했다. 장민수의 반응이 거의 없어 맥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첫 주말이 그렇게 지나고 다음 날 정식으로 서울 근무가 시작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구미나 활기차고 다소는 자유스러운 천안과는 달리 서울의 분위기는 딱딱했다. 금경태 과장이 올라오는 순간 분주하던 스테이션이 조용해졌다.
나직한 대화들이 오가고 신현수도 바짝 긴장한 눈으로 옆에 서 있었다. 서울 의국장인 금경태 과장 파트 3년차가 환자 보고를 마치고 난 후 곧 회진이 시작됐다.
금경태 과장이 1년차들을 쓱 둘러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1년차들의 인사를 받았지만 김지훈이 눈에 보이자 눈가를 찌푸리며 혀를 찼다. 장례식장 문제부터 시작해 정갑수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번 눈 밖에 나면 큰 이득이 있기 전까지는 다신 안 보는 사람이었다.
회진을 기다리던 김지훈의 표정도 좋지 못했다. 금경태 과장의 눈빛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독 자신의 인사만 받지 않았다. 정갑수와의 일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 과장 정도 되는 사람이 아직까지 그 일을 끌고 오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곧 오상익 교수가 올라오고 뒤이어 이혁민 교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내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이제야 딱딱했던 분위기도 풀렸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응. 지훈이 왔나. 어째 니네들은 계속 붙어다는 것 같다.”
최철한과 유석재가 웃었다.
“그러게요, 선생님. 지훈이 이 자식 지겨워 죽겠습니다.”
“석재, 니도 그러나?”
“그럼요. 저도 마찬가집니다, 선생님.”
“지훈이, 니 일 잘해야겠다. 잘못하면 맞겠어.”
가벼운 농담으로 아침 일과를 시작한 이혁민 교수가 몇몇 환자들 상태를 물은 후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환자에게 굉장히 친절하고 세심했다. 반면 김지훈에게는 간간이 환자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병동 바로 옆인데도 불구하고 이혁민 교수가 마지막으로 장민수를 찾았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잠시 드레싱을 한 부위를 살핀 후 하영희에게 몇 마디 하는 것으로 끝났다. 7년 동안이나 자신의 환자로 있는 장민수를 볼 낯이 없는 모양이었다.
“김지훈, 장민수 잘 봐라. 요새 상태가 안 좋다.”
“예, 선생님.”
“최철한 선생, 유석재,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오래간만에 다시 봤는데 뭐 좋은 생각 없나? 장민수를 볼 때마다 미안하고 갑갑해서 죽겠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7년 동안이나 반복된 일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물끄러미 서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내게 처음 왔을 때 재수술을 하지 말아야 했나. 잘 회복될 거라고 확신했는데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참 많다. 먹고 걸으면 그래도 좀 나아질 텐데 그것도 힘들어 보이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회진이 끝났다. 하지만 장민수만이 환자가 아니었다. 수많은 환자들이 의료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고 대학 병원은 고유의 역할이 있었다.
회진을 마친 후 리포트 제출과 발표까지 빠르게 진행됐다.
천안보다 훨씬 엄격한 분위기에 김지훈은 살짝 긴장을 했다. 인턴 때 보았던 것과 지금은 느낌 자체가 달랐다. 아침 일과가 모두 끝나자마자 수술 방으로 향했다.
‘이혁민 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보일까? 인턴 때 느꼈던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수술에 관한 한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준영 과장과 송재덕 과장의 손을 보았으니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잔뜩 기대를 품은 김지훈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첫 수술을 받을 위암 환자가 내려왔다.
이동식 침대를 밀며 수술실로 향하던 김지훈이 슬며시 수술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어느 방에선가 고경아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 다른 수술실에 있던 고경아가 마침 복도로 나왔다.
눈이 딱 마주쳤다.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여기서 미적거리거나 당황한 표정이라도 지으면 낭패일 것이다. 정말 쓸데없는 기우였다. 살짝 눈길을 주며 태연하게 아는 척을 하려는 순간 고경아가 홱 지나갔다.
‘모르는 척하자더니 정말 확실하네. 경아 씨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여자는 양파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도 까도 새로운 것이 나오고 그때마다 눈과 코를 톡 쏘니 말이다. 입맛만 쩝쩝 다신 김지훈이 수술실로 들어갔다.
어디나 수술실 안의 모습은 똑같았다. 간호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수술과 마취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하고 전공의들은 환자 옆에 붙어 언제든 수술을 할 준비 태세를 갖췄다. 최철한이 김지훈과 함께 환자를 수술대 위로 옮기며 말했다.
“지훈아, 수술 3인방이 누군지는 들었지?”
전 병원을 통틀어 수술을 잘하는 스태프를 꼽으면 단연 셋이 거론됐다. 금경태 과장과 송재덕 과장, 그리고 이혁민 교수였다. 흔히 지나가는 말로 수술 3인방이라고도 했다.
이미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된 선배들까지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예, 선생님.”
“난 이혁민 선생님이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니까 잘 봐라.”
그때 막 이혁민 교수가 들어왔다.
이미 인턴 시절 이혁민 교수의 수술을 보았다. 그때는 그저 놀랍고 온통 환자에게만 시선이 쏠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최철한의 말이 아니더라도 전공의로서 이혁민 교수의 수술을 보고 배워야 할 때였다. 더구나 마음속의 멘토가 아닌가!
“마취과, 수술 시작합니다.”
경상도 억양이 살짝 섞인 이혁민 교수 특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서울에서의 첫 번째 수술이 시작됐다.
환자의 배 정중앙을 절개한 후 복벽을 여는 과정을 보던 김지훈이 내심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순간 교수치고는 무척 손이 느리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유는 뻔했다.
‘송재덕 과장님 때문이겠지.’
천안에서도 다른 교수의 응급 수술을 들어가면 똑같은 생각이 들곤 했었다. 김지훈이 손을 뻗어 절개 부위를 따라 흐르는 피를 닦으며 코에 잔뜩 힘을 주었다.
수술이 진행될수록 최철한의 말을 실감했다.
설익은 김지훈의 눈이었지만 섬세하고도 부드럽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확실히 이준영 과장이나 송재덕 과장보다는 수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대신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것 같았다.
‘와! 이렇게 수술을 하셨었구나.’
스으윽! 스으윽!
십이지장과 연결된 위 하부를 자르고 동맥을 포함해 주변 임파선 조직을 절제했다. 섬세한 손길이 이어지며 곧 3분의 2에 해당되는 위가 배 밖으로 나왔다.
절단면에 암세포가 존재하는지 알기 위해 조직 검사를 내보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위와 분리된 십이지장 상부를 봉합했다. 곧 임시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깨끗하답니다, 선생님.”
“인턴 선생, 수고했데이.”
상부에 남은 위와 소장의 중간 부분인 공장을 연결했다. 그리고 차근차근 꼼꼼하게 봉합을 했다. 새로운 길이 만들어진 수술 부위가 정말 깔끔하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다시 확인한 이혁민 교수가 마무리를 시작했다.
느린 것 같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손길은 또 다른 세계였다. 같은 수술을 두고 스태프들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했다.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이 모두 끝났다. 오후 2시가 넘어 점심은 물 건너갔다. 환자 상태를 살피며 수술 후 오더를 내는 사이 다음 환자가 내려왔다. 대개의 집도의들이 그렇듯 수술 중에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혁민 교수 역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만큼이나 이상스러울 정도로 수술실 분위기가 좋았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아! 그래서 그런지 졸립다.’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하품을 억지로 참던 김지훈의 눈에 최철한이 보였다. 약간의 긴장이 느껴졌지만 다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퍼스트를 서고 있었다.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했던 묘한 분위기에 김지훈은 눈만 껌벅거렸다. 이혁민 교수만이 갖는 특유의 장점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오후 6시가 넘어 마지막 수술이 끝났다. 부지런히 해야 할 일을 마친 김지훈이 병동으로 올라가다 말고 냅다 뛰었다.
‘장민수!’
병동에 도착하자마자 드레싱을 외치며 601호로 향했다. 시간이 간당간당했다. 부지런히 십이지장루를 씻어 내고는 오후 회진을 준비했다. 서둘러 나가는 김지훈을 보며 하영희가 의미 모를 한숨을 쉬었다.
‘모두들 저렇게 바쁘고 잠도 못 자는데 저 선생님이라고 별수 있을까? 며칠 못 가겠지. 불쌍한 내 새끼.’
이후의 일과는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천안과의 차이는 분명했다. 오늘 병동 일을 맡은 신현수와 이경석이 신경 쓸 구석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모든 일을 처리했다.
‘역시 경석이 형도 확실하게 일을 하시네.’
최철한에게 다음 날 오더를 받고 저녁을 먹은 후 드레싱을 했다. 장민수를 치료하는 데 시간이 걸려 병동 의국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모두들 파트 치프에게 받은 오더를 내고 있었다. 김지훈도 부랴부랴 오더를 적고 차팅을 했다.
손일석이 피곤한 눈으로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으아아! 힘들다. 마이 프렌드, 일 좀 빨리 해. 내일 리포트는 언제 쓰려고 그래? 그러다 밤 샌다.”
“그러게 말이다. 아 참! 내일 수술 스케줄 나왔어?”
“응. 이혁민 선생님 수술은 오후에 잡혔어. 유방 종물 세 개니까 한 네 시간이면 끝날 거다.”
“일석아, 뭐 특별하게 알아야 할 건 없어?”
“어차피 세컨인데 뭐가 있겠니. 흉터 크게 생기면 안 된다고 조그맣게 여셔서 보이지도 않아. 사실 종물 수술에서는 세컨은 필요도 없는 것 같더라. 하긴 내가 널 걱정할 때가 아니지. 이놈의 치질 수술도 못 보긴 마찬가지야.”
눈가를 찡그리며 입맛을 다시는 손일석을 보던 김지훈이 슬며시 의국을 나왔다.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수술 방에 들어갔을 때는 어쩔 수 없지만 나름 일과 중에는 세 시간 간격을 두고 장민수를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살며시 노크를 하자 하영희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