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198화 (198/1,329)

제2화 희망이 없는 환자는 없다 (1)

한참 웃고 떠드는 것을 보던 신현수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손일석에게 물었다.

“일석아, 선생님들은 어디 계셔?”

“다들 꿈나라 속에 계시겠지. 아이고! 우리도 후딱 2년차 돼서 잠 좀 마음 놓고 잤으면 좋겠다.”

“그럼 누가 어느 파트인지는 알아?”

“그럼. 나한테 다 알아서 하라고 하시더라. 허험! 자! 그럼 이제부터 슬슬 파트 배정을 해 볼까나.”

손일석이 요란스럽게 손을 흔들어 머리를 모았다. 신현수만이 팔짱을 끼며 눈가를 찌푸렸다. 뭘 해도 그냥 하는 법이 없는 손일석이었다.

“간담도인 과장님 파트는 신현수. 나랑 형은 대장 항문 파트인 오상익 선생님과 임동완 선생님 파트. 마지막으로 지훈이가 이혁민 선생님 파트. 누가 김지훈이 아니랄까 봐 일복이 터졌어요.”

“일복? 그렇게 일이 많아?”

“지훈아, 원래 위장관 파트가 수술이 좀 있잖니. 그런데 말이야, 작년에 시작하신 유방과 갑상선 수술이 최근에 점점 늘고 있거든. 너 웬만해선 수술 방 벗어나기 힘들 거다. 월수금은 위장관. 화목은 유방과 감상선. 어때. 생각만 해도 즐겁지?”

생각만 해도 진저리를 쳐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좋아 죽겠다는 듯 김지훈의 입이 찢어졌다.

“그럼 즐겁지, 인마. 그거 괜찮은데. 온갖 수술 다 보겠네.”

“역시 마이 프렌드 김지훈은 미친놈이 맞아. 이게 좋아할 일이냐? 이 자식아.”

“그럼 울어? 시간도 없는데 환자 파악부터 먼저 하자.”

김지훈의 말을 따라 다들 스테이션으로 나가 차트를 모았다. 금경태 과장 환자는 40명 선이었고 오상익 교수 파트는 50명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두 명이 각각 대장과 항문을 나눠 맡아 상대적으로 환자 수는 적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병동 의국에 들어온 김지훈이 낑낑댔다.

양팔에 50개가 넘는 차트가 들려 있었다.

이경석이 눈을 크게 뜨며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이혁민 선생님 파트 환자 무지하게 많아졌네.”

“형, 저게 좋다잖아요. 미친놈 확실하죠. 아! 크레이지.”

“일석아, 친구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 알지?”

“잘 알죠. 그나마 내가 없었으면 저 자식 지금쯤 정신과에 입원하고 있을 거예요. 벌써 8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내가 중심을 잡아 줘야 하니 저도 참 힘들게 삽니다.”

“에라! 이 자식아.”

손일석의 뒤통수를 툭 친 이경석이 차트를 잡았다.

환자가 많긴 했지만 다들 지옥이라는 천안을 거쳤고 1년차 마지막 텀이었다. 더구나 일 잘한다고 소문난 1년차는 다 모였다. 한동안 조용히 차트를 넘기며 환자 리스트에 각자 알아보기 쉽게 기록하는 소리만 들렸다.

빠르게 환자를 파악하던 김지훈이 다음 차트를 잡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난히도 두꺼운 차트가 보였다. 기록지가 하도 많아 서류철이 닫히지 않을 정도였다.

‘장민수? 무슨 환잔데 차트가 이렇게 두꺼워?’

차트를 읽어 내려가던 김지훈이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사연이 많은 환자였다.

이제 갓 스물이 된 장민수는 7년 전 십이지장 천공으로 지방 병원에서 수술을 한 후 얼마 안 있어 전원된 환자였다. 십이지장 수술의 가장 무서운 합병증인 십이지장루(duodeanl fistula)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십이지장루는 십이지장에 발생한 구멍이 막히지 않고 하나의 관을 만들며 피부까지 연결되는 질환을 말한다. 소화기관 수술 후 이런 누공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적절히 치료하면 통상 몇 주 내에 막히게 된다. 하지만 십이지장에서 발생한 누공의 경우는 달랐다.

상부에서는 침과 위액이 흘러들고 십이지장 중간에 췌장의 소화액과 담즙까지 나오는 통로가 있다. 우리 몸이 분비하는 소화액은 모두 십이지장을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피부와 연결되는 관이 형성되면 이들 소화액이 끊임없이 통로를 타고 흘러나와 피부와 근육 및 지방 조직을 녹이게 된다.

즉, 음식을 분해해야 할 소화액이 우리 몸을 녹이는 것이다. 십이지장루가 오래도록 막히지 않게 되면 종국에는 다른 장기에도 손상을 입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도대체 어떤 상탠데 7년이 지났는데도 안 막혔지? 지금까지 버틴 것도 희한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지훈이 손일석을 보았다.

“일석아, 장민수 환자에 대해 알아?”

“장민수? 에휴! 안됐어. 중학교 때 친구랑 싸우다가 배를 한 대 맞았는데 하필이면 십이지장이 터진 환자야.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 없을 수가 있냐. 지방 병원에서 바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부위가 막히질 않아서 전원됐고 지금까지 퇴원을 못하고 있어. 입원비만 2억이 넘는다더라.”

“2억?”

김지훈이 놀라 소리치자 손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7년인데 그 정도 안 나오겠어? 금식 기간이 길어서 보험도 안 되는 영양제까지 무지하게 맞았다. 지방 병원하고 가해자 쪽에서 어느 정도는 부담했다는데 나머지는 그냥 미수금으로 남아 있나 봐. 돈은 둘째 치고 이제 스무 살인데 퇴원할 상황도 아니고 문제다. 요샌 상태까지 좋지 않아 걱정인데 결정적으로 환자도 비협조적이야.”

지난 7년간 회복됐다 악화되기를 무수히 반복했다. 의사도 환자도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갑갑한 표정으로 남은 환자를 파악하고 바로 드레싱을 나갔다. 병동 의국 바로 옆 601호는 2인실로 병동 중환자실이라고도 불렸다. 중환자실로 가기에는 상태가 나쁘지 않지만 일반 병실에서 치료하기 힘든 환자들을 입원시키는 병실이었다.

601호에 장민수가 입원해 있었다.

2인실이었지만 환자는 한 명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선생님이신가요?”

피곤하고 지친 얼굴의 여인이 간이침대에 누워 있다 힘겹게 일어나며 김지훈을 맞이했다. 장민수의 어머니인 하영희였다. 7년이나 이어진 고통과 아픔이 얼굴과 온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수많은 전공의들을 봐 온 탓인지 김지훈을 처음 봤는데도 별다른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 김지훈입니다. 앞으로 제가 치료할 겁니다.”

“부탁드려요. 민수야, 새로 선생님이 오셨어. 눈 떠 봐.”

장민수가 잠깐 눈을 떴다. 초점을 잃은 것처럼 멍하기만 한 눈이 힘없이 김지훈을 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누운 채 움직이지 않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이불 밖으로 드러난 두 다리는 다소 가늘고 약해 걷기도 힘들 것 같았다. 김지훈이 슬며시 다리를 누르자 마치 진흙에 자국이 남는 것처럼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부종까지 상당히 심한 상태였다. 가늘어진 다리를 고려하면 근육 소실이 심각하다는 말이었다.

한눈에도 장민수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이불을 걷고 십이지장루가 발생한 우측 옆구리를 살폈다.

치료를 위한 가늘고 긴 고무관이 꽂혀 있었다. 그 관을 통해 생리 식염수를 넣었다 빼 내부 조직을 손상시키는 소화액을 자주 씻어 내는 것 이외에는 딱히 다른 치료가 없었다. 상태가 심각해지면 기약 없는 금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김지훈이 소독 장갑을 끼고 세척을 시작했다.

20㏄ 정도 밀어 넣자 저항이 느껴졌다. 무리한 압력을 가하면 약해진 십이지장에 손상을 입힐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기다린 후 빈 주사기를 당기자 10㏄ 정도가 다시 빨려 나왔다. 사라진 10㏄는 십이지장으로 들어갔거나 통로 주변에 생긴 공간에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큰 고통을 수반하지는 않는 치료였지만 환자의 느낌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장민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7년 동안 해 온 치료였기에 무감각해졌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이젠 스스로 체념했는지도 몰랐다.

“장민수 씨, 아무 느낌도 안 나요?”

장민수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김지훈이 두 번째 세척을 시행하며 물었다.

“아프지 않아요? 아프면 바로 말해야 됩니다.”

역시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름이라도 나온다면 깨끗해질 때까지 하면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색깔이나 냄새의 변화가 없어 언제까지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장민수를 잘 아는 손일석도 지금쯤 드레싱을 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조언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 보통 몇 번이나 세척을 했나요?”

“보통 하루에 두 번 정도 오셔서 그 주사기로 대여섯 번 정도 하고 가셨어요.”

환자 파악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 김지훈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손으로는 열심히 주사기를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하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하루에 두 번 와서 대여섯 번 세척을 하는 게 충분했다면 7년이나 입원해 있었을 리가 없잖아. 결국 부족하다는 말인데 얼마나 해야 하지? 책에도 소화관과 피부에 통로가 생기면 자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만 쓰여 있었던 것 같은데.’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일단 열 번 정도 세척을 하고 치료를 끝냈다. 장민수나 하영희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의사들도 방법이 없어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환자나 보호자에게 남은 희망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죽지 못해 입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장갑을 벗으며 장민수를 보던 김지훈이 이불을 덮어 주다 말고 배를 만졌다. 부종이 심하다고 하기에는 배가 너무 불러 있었다. 흔히 간이 커져 있거나 복수가 차 있는 경우에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흐물흐물한 밀가루 반죽처럼 탄력을 잃은 피부는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장민수 씨, 잠깐 몸 좀 봅시다.”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 간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눈과 피부에 황달기가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외견상으로는 간 이상이 의심되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빠진 환자를 앞에 두고 직접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최악인지 다시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심적 충격을 줄 수 있었다. 병실을 나오던 김지훈이 눈짓으로 하영희를 불렀다.

“어머니, 오늘 어디 안 가시죠?”

“네. 왜 그러시죠?”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동안 너무도 큰 아픔을 안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제는 고통이나 슬픔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다른 환자 치료를 끝내고 난 뒤 잠깐 얘기 좀 했으면 해서요. 장민수 씨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차트에 다 쓰여 있지 않나요?”

“예. 기록은 돼 있지만 어머니께 직접 들어야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따가 잠깐 시간 좀 내주세요.”

하영희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병실로 들어갔다.

드레싱을 시작한 지 30분이 넘어서야 다음 환자를 치료할 수 있었다. 환자가 많아 두 시간이나 걸려서 모든 치료를 마쳤다. 함께 다니며 드레싱을 보조한 간호사가 이마에 땀을 닦으며 말했다.

“김지훈 선생님, 소문대로시네요.”

“소문이라니, 뭐가요?”

“아니에요. 그냥 한 말이에요.”

간호사가 싱긋 웃으며 의자에 앉고는 한동안 다리를 주물렀다. 간호 기록을 작성하던 간호사가 김지훈이 의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드레싱을 이렇게 오래 했어?”

“오래 하긴 했죠? 그래도 꼼꼼하게 하시는 데다 환자들에게도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아 기분은 좋네요.”

함께 드레싱을 한 간호사가 밝게 웃었다.

김지훈은 심각한 눈으로 장민수의 차트를 다시 꼼꼼하게 읽었다. 그동안 해 온 수많은 치료와 검사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세 달 전 마지막으로 복부 CT를 찍었다. 김지훈이 스테이션으로 나가 뷰박스에 CT를 걸었다.

“후우! 이 정도 크기에 임상적인 상황까지 고려하면 지금은 간 비대까지 왔다고 봐야 하지 않나?”

마침 손일석이 보였다.

김지훈이 손짓을 하자 손일석이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왔다.

“왜? 뭐 모르는 거 있어? 친절하게 알려 줄 테니까 형한테 다 물어봐.”

“일석아, 이거 601호 장민수 환자 복부 CT인데 지금 상황까지 고려하면 간 비대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손일석이 턱을 문지르며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살짝 커져 있다고 할 수는 있었지만 방사선 소견으로는 간 비대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석 달 전 사진이니 지금은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힘들었다.

“글쎄다. 내가 막 이혁민 선생님 파트를 돌 때 찍었는데 그 당시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판정이 났는데 왜?”

“장민수 환자를 파악하기가 힘드네. 드레싱을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 한 번에 몇 씨씨나 해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네. 그래서 일단 환자 상태부터 최대한 확실하게 파악하려고. 네 말대로 상태가 정말 안 좋아 보여서 걱정이야.”

손일석이 입술을 깨물며 눈가를 좁혔다. 바로 전 텀으로 이혁민 교수 파트를 돌았다. 세 달 동안 장민수를 치료하며 안타깝기는 했지만 솔직히 큰 신경을 쓰진 못했다.

환자가 많다는 핑계를 댔지만 7년이란 기간은 환자에게는 물론 의사들까지도 무감각해지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손일석도 그런 관성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항상 찜찜했었다.

‘에휴! 오자마자 장민수 CT를 보며 고민하는 걸 보니 역시 김지훈이네. 이런 걸 배워야 하는데 참 쉽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든 손일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CT를 보며 고민에 잠기자 이경석과 신현수도 관심을 보였다. 1년차 네 명이 잠시 동안 장민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1년차 네 명을 다 합해도 1년차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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