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천안에서 서울로 (2)
마지막 봉합사가 잘리는 순간 산모가 몸을 비틀었다. 노련한 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가 만들어 낸 완벽한 진행이었다. 불과 30분 남짓에 수술과 마취가 모두 끝났고 산모는 재빠르게 회복실로 옮겨졌다.
“으으응! 여보.”
아직은 몽롱한 상태인지 산모가 남편을 찾았다.
김지훈이 손을 잡아 주며 크게 소리쳤다.
“산모분, 눈 떠 보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던 산모가 힘겨워하면서도 김지훈을 보고는 웃었다.
“김지훈 선생님?”
“예. 접니다.”
“우리 애기는요? 괜찮은가요?”
자신이 아니라 배 속의 아이부터 찾았다. 한없는 엄마의 희생과 사랑이었다. 순간 무언가 울컥 치밀어 오른 김지훈이 콧등만 찡그리며 잠시 입을 열지 못했다.
“수술 잘 끝났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조금만 더 회복되시면 산부인과 초음파실로 가 아이가 건강한지 확인할게요.”
“지금 가면 안 될까요?”
“아직 마취가 덜 풀렸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전 괜찮아요. 아이부터 확인하게 해 주세요.”
김지훈이 마취과 교수를 찾았다. 사정을 들은 마취과 교수가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빨리 산부인과에 연락을 한 후 산모와 함께 수술 방을 나왔다.
초초하게 산모를 기다리던 보호자가 급히 달려왔다.
“여보, 괜찮아?”
“난 괜찮아, 여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이미 송재덕 과장에게 모든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김지훈이 보호자와 함께 급히 초음파실로 향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산부인과 교수가 곧바로 태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산모와 보호자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띠띠띠띠띠!
빠르고 규칙적인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렸다. 조그마한 팔다리가 가끔씩 무언가에 놀란 것처럼 팔딱팔딱 움직였다. 불안해하기만 했던 산모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
“심장도 잘 뛰고 아주 힘차게 잘 노네요. 내일 한 번 더 확인하고 괜찮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산부인과 교수의 말에 동시에 똑같은 말이 들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산모와 보호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김지훈을 보았다. 자신들보다 더 좋아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고 있었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눈길에 어색한 표정을 보이던 김지훈이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럼 병실로 가실까요?”
병실로 가는 내내 산모와 보호자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병실에 도착해 자신의 침대로 몸을 옮기던 산모가 그제야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수술 범위가 작은 아뻬 수술을 받았다지만 이제야 통증을 느끼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산모의 경우에는 절개 부위 자체가 훨씬 큰데 말이다.
김지훈이 웃고 말았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엄마라는 말만큼 정확하고 확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토요일 오후 1시.
김지훈이 아뻬 수술을 받은 산모를 마지막으로 치료하고는 약간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천안에서는 모든 일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근무지로 간다는 말을 들은 환자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그들의 말과 표정 속에 담긴 마음에 가슴이 시리면서도 행복했다. 병동으로 돌아가며 창밖을 보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라며 헐레벌떡 신현수를 찾았다.
“현수야, 빨리 인사하러 가자.”
“무슨 인사?”
“선생님들께 간다는 보고는 하고 가야지.”
“인사를 또 해? 아침 회진 때 했잖아.”
의아해하는 표정에 김지훈이 도리어 더 어리둥절한 눈으로 신현수를 보았다.
“현수야, 아침 먹었다고 점심 안 먹어? 서울로 떠나기 전에 당연히 인사해야 되는 거 아냐? 시간 없어. 빨리 가자.”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근무 지역이 바뀌어도 아침 회진 중에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냈다. 교수들 역시 이를 당연시했다.
다음 근무 지역으로 한시라도 빨리 가 환자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전공의들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신현수가 아무 말도 하질 않자 김지훈이 재촉을 했다.
“서둘러, 인마. 벌써 퇴근하셨을지도 몰라.”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외래로 향하는 김지훈을 본 신현수가 급히 뒤를 따랐다.
‘이런 면 때문에 김지훈의 인간관계가 좋은 건가? 혼자 가면 교수님들 눈에 더 들 텐데 왜 함께 인사를 하자고 한 거지. 그간 말은 안 했지만 우리가 서로 라이벌이라는 것은 김지훈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자신의 경쟁자에게 유리한 일을 자청해 권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솔직히 3개월마다 전공의들이 바뀌는데 한 번 더 인사를 한다고 해서 교수들이 크게 좋아할지도 의문이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에 신현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외래에 들어서자 스태프들이 막 퇴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신현수의 생각대로 송재덕 과장마저도 의아한 눈으로 김지훈을 보며 말했다.
“지훈아, 현수야, 무슨 일이야. 왜 아직도 안 갔어? 빨리 가야지. 길 막힌다. 토요일에는 많이 막혀.”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과장님.”
“뭐? 인사? 어! 그래그래. 잘 가라. 일 열심히 하고 내년에 또 보자. 지훈아, 현수야, 잘 가라.”
송재덕 과장의 입이 찢어졌다. 뿐만 아니라 막 진료실을 나오던 백무용 교수까지 너무 좋아했다.
“그래. 다들 잘 가라.”
심지어 김지훈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구영선 교수마저 웃고 있었다. 문 앞까지 따라 나오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교수들의 손길에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왠지 가슴이 뜨거워진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송재덕 과장이 마지막까지 남아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짐을 싸기 위해 숙소로 향하던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김지훈의 손에 이끌려 윗년차들에게도 인사를 하기 위해 구내식당까지 찾은 것이다. 모두들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신현수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이 웬일이래?’
아무리 친해도 식당까지 찾아와 인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니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차가운 면이 많은 신현수의 모습을 보며 무척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항상 떠날 때마다 아쉽기도 하고 빨리 다음 근무지로 가고 싶기도 해서 참 기분이 묘해져. 현수야, 넌 안 그러냐?”
신현수도 기분이 묘하긴 했다. 교수들과 윗년차들의 반응도 의외였지만 김지훈의 태도가 더 이상했다.
‘김지훈, 너는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곰곰이 고민에 잠긴 채 숙소에 올라가 짐을 싸던 신현수가 눈가를 찌푸렸다. 김지훈이 낑낑대며 짐이 가득한 가방을 둘러메고 있었다. 서울까지 가는 길이 보통 고생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지훈아, 차 갖고 왔는데 같이 갈래?”
기대도 안 했던 말이었다. 신현수와 인간적으로 친해질 기회라는 생각에 김지훈이 반색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오! 신현수. 차 가지고 왔구나. 나야 좋지. 땡큐!”
김지훈과 신현수가 함께 차를 탔다. 병원 건물이 서서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천안 근무가 끝났다.
고경아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송재덕 과장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정갑수가 병원을 나갔다 일주일 만에 들어왔다.
동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마음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느끼고 깨달았다.
‘후우!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겠지. 그래도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나아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이네. 현수, 너도 날 참 고민스럽게 하지만 네가 있어서 항상 노력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경쟁은 경쟁이고 친구는 친구지. 너랑 내 경쟁자 중의 한 명인 일석이하고 다를 바가 없지. 물론 조금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니구나. 좀 많나? 하하하!’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을 보며 김지훈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신현수도 운전에 집중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생각이 없이 신현수를 보며 입을 열려던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가만, 내가 현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뭐가 있지?’
6년 동안 함께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과 전공의가 돼 함께 일하며 천안에서만 3개월 동안이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정작 아는 것이 없었다.
왜 일반 외과를 했는지는 물론 하다못해 취미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집안이 좋다는 것과 말과 겉모습에서 풍기는 이미지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김지훈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한참 동안 딴 짓을 하다 입을 열었다.
“차 좋다. 이게 무슨 차야?”
“아버지 거야. 내 거 아냐.”
“그래? 그렇구나. 그럼 새로 살 거야?”
“아니. 안 사.”
가뜩이나 차가운 말투에 너무 딱 잘라 대답을 하자 일순 말문이 막혔다.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 새끼 정말 딱딱하네. 네가 그렇게 대답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잖아, 인마.’
한번 분위기가 묘해지자 김지훈도 더 이상 뭘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다 못해 서먹해졌다. 신현수와 단둘이 웃고 떠들기에는 아직 일렀던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차로 가득한 고속도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휴!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버스 타고 갈걸. 그랬으면 잠이나 편하게 잤지.’
운전하는 사람도 있는데 조수석에 앉아 잘 수는 없었다. 김지훈은 마치 수술실에 있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밀려오는 졸음을 쫓았다. 네 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한 김지훈의 눈이 토끼 눈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그동안 한 말이라고는 채 열 마디도 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신현수도 많이 어색했던지 표정이 묘했다.
어색! 민망! 후회!
서울 병원 일반 외과 병동은 6층이었고 여느 병원처럼 스테이션 옆에 병동 의국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일석이 의자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손일석, 지금 졸고 있는 거야?”
“아닙니다, 선생님. 잠시 생각 좀…….”
기가 바짝 든 손일석이 잠결에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김지훈이 크게 웃자 신현수도 입가가 살짝 말렸다.
“김지훈, 너 감히 이 형님을 우롱해. 죽었어.”
눈을 비비며 고개를 흔든 손일석이 눈을 부라렸다. 그러고는 냅다 달려와 김지훈을 꽉 안으며 웃었다.
“지훈아, 드디어 우리가 만났구나. 얼마 만이냐.”
“자식. 잘 지냈지. 별일 없었어?”
“그럼, 인마. 나한테 별일이 있으면 병원이 온전하겠냐? 벌써 난리가 나도 몇 번은 났지.”
마치 몇 년 만에 본 것처럼 난리를 치던 김지훈과 손일석이 자리에 앉았다. 의아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신현수가 고개를 흔들며 옆에 앉았다.
“현수야, 잘 지냈지?”
“응. 잘 지냈어.”
역시 신현수였다. 간단명료한 대답에 손일석이 입을 삐죽 내밀며 콧소리를 냈다. 손일석을 보자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 김지훈이 웃으며 물었다.
“경석이 형은 아직 안 왔어?”
“응. 구미에서 오니까 좀 늦게 오겠지? 그나저나 이번 서울 텀 끝내주네. 우리 1년차 중에 제일 잘난 두 놈이 다 있잖아. 물론 나보다 조금 처지긴 하지만 말이야. 선생님들은 그걸 왜 모를까?”
“그러게 말이다. 천하의 손일석을 몰라보다니 내가 다 안타까워요.”
“우하하하! 그렇지? 역시 마이 프렌드는 날 확실히 아네. 자식, 기특해. 1년차 되더니 생각이 아주 깊어졌어.”
손일석이 김지훈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마구 흔들었다. 신현수가 마치 잘들 논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노닥거릴 시간이 있으면 환자 파악부터 하는 게 나았다.
그때 의국 문이 벌컥 열렸다.
구미에서 출발한 이경석이 의외로 빨리 도착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벌떡 일어나 동시에 외쳤다.
“형님, 오셨습니까?”
입이 착착 맞았다.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8년을 단짝으로 만난 친구들다웠다. 이경석이 활짝 웃으며 다가와 어깨를 치며 좋아했다.
“잘 지냈냐? 자식들. 얼굴이 갔네. 고생 좀 한 모양이다. 현수, 너도 잘 지냈지?”
“형 얼굴도 만만치 않은데요.”
“야, 지훈아, 우린 고생이고 형은 늙어서 그런 거야, 인마.”
“뭐? 일석이 너 죽고 싶어? 이리 와. 이걸 그냥 콱!”
다들 언제 이렇게 친해졌을까?
신현수가 자리에 앉을 생각도 못하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약간은 부러운 생각이 들면서도 굳이 저렇게까지 표현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