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천안에서 서울로 (1)
밤늦게 갑자기 나타난 김지훈을 본 간호사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좀처럼 산부인과 병동에 갈 일이 없어 서로가 낯설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세요?”
“아까 응급실에서 올라온 환자 있죠? 아뻬 배제 못한다는 환자 말이에요.”
“네. 지금 입원해 있는데요. 왜 그러세요?”
“별건 아니고요. 다시 한 번 배 좀 보려고요.”
시간이 늦었고 산모들은 더욱 예민한 법이었다. 김지훈이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간호사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간이침대에 누워 있던 보호자가 김지훈을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선생님, 무슨 일이십니까?”
“밤늦게 죄송합니다. 산모분 상태 좀 확인하러 왔습니다.”
다행히 산모가 깨어 있었다. 김지훈이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손길로 몇 차례 진찰을 했다. 아뻬일 가능성이 더 농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지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공연히 산모만 불안하게 할 뿐이었다.
“지금도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내일 오전에 복부 초음파 검사를 하고 다시 진찰해 봐야 보다 확실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지금도 수술을 배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산모와 보호자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미처 묻지 못했던 것들을 물었다. 김지훈이 다른 산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병동으로 돌아오던 김지훈이 혀를 차며 눈가를 찌푸렸다.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 같은데 정말 맹장이면 어쩌지? 수술을 안 할 수도 없고 하면 이것저것 문제가 많을 텐데. 어쨌든 최대한 빠르게 진단을 내리는 게 산모와 아이를 위해서 제일 좋겠지.”
혼자 중얼중얼거리며 오늘의 일과를 마친 김지훈이 의국에서 의자를 펼쳐 놓고 잠을 청했다. 피곤해서 숙소까지 올라가기도 귀찮았다. 더구나 응급실 당직 때는 침대에서 자 봐야 일어나기만 힘든 경우가 더 많았다.
새벽까지 몇 명의 환자를 보고 나니 어느새 드레싱을 할 시간이 됐다. 눈이 절로 감길 정도였지만 최대한 웃으며 드레싱을 했다.
순조롭게 회복되는 환자를 보고 있노라면 힘이 났다. 때론 환자들의 불평과 신경질도 들어야 하지만 힘들다고 얼굴을 찌푸려 봤자 환자는 물론 자신만 힘들어질 뿐이었다. 마지막 환자 치료를 마치고 난 김지훈이 시계를 보며 잠깐 고민에 잠겼다.
‘산모는 괜찮을까? 신경이 너무 쓰이네.’
김지훈이 부리나케 산모를 찾았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산부인과 역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김지훈을 본 산부인과 1년차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훈아, 아침부터 여기 웬일이야?”
“어제 입원한 환자 보러 왔어.”
“아뻬일지 모른다는 그 산모?”
“응. 네 파트인 모양이구나. 아침에 봤어?”
“지금 이 시간에 환자 볼 여유가 어디 있어. 넌 어떻게 용케 시간을 냈다. 회진 안 돌아?”
김지훈이 씨익 웃고는 산모를 찾았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막 눈을 뜬 산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김지훈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배를 보자고 했다.
“선생님, 설마 저 때문에 아침부터 오신 거예요?”
“아니요. 배 속에 있는 애기 때문에 왔습니다. 저 애 무척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애기가 남자예요? 여자예요?”
실없는 농담에 여전히 통증을 느끼던 산모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었다.
“낙태 때문에 그런지 요샌 잘 안 알려 주세요.”
“그래요? 근데 배가 어제보다 더 아프신 것 같네요.”
“네. 조금 더 아픈 것 같아요.”
하룻밤이 지나서인지 아뻬라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산모와 보호자에게 신중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진단과 수술 결정은 자신이 아니라 스태프들이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1년차가 이런 환자에 대한 수술 여부를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파트에 컨설트를 냈는지 몰라 차트를 확인하니 송재덕 과장 앞으로 의뢰를 했다. 왠지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재수 없었으면 수술 후 정갑수가 환자를 맡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늘은 송재덕 과장이 수술을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수술 때문에 미처 컨설트를 볼 시간이 없었다. 점심때 잠깐 시간이 난 사이 김지훈이 또 산모를 찾았다. 점점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의사가 자주 찾아오면 환자나 보호자는 불안해지기 마련이었다. 산모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김지훈의 모습에서 도리어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넘어 수술이 모두 끝났다. 송재덕 과장은 회진을 끝내고 나서야 컨설트를 보러 갈 시간이 났다. 초음파에서는 약간의 염증 소견만 관찰되는 정도였다. 송재덕 과장이 진찰을 하는 동안 몹시 불안한지 산모의 입술이 바짝 말라들었다.
송재덕 과장이 혀를 차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뻬네. 산모분, 맹장염이에요. 수술하셔야겠습니다.”
“정말 수술을 해야 하나요?”
“그럼요. 당연히 해야죠. 안 그러면 환자분은 물론 애기까지 위험합니다. 무슨 소린지 아시죠? 태아까지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결정해 주셔야 합니다.”
한참 동안 수술의 필요성과 위험성을 상세히 설명한 송재덕 과장이 스테이션으로 와 산부인과 전공의를 찾았다.
“수술해야 돼. 수술. 빨리 연락해. 늦으면 알지? 그러다 아뻬 터지면 애 유산할 수도 있어. 유산한다. 산모 아뻬가 제일 급한데 큰일 났네. 큰일 났어.”
모든 산모들은 임신 중의 수술을 당연히 꺼릴 수밖에 없었다. 전신마취가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오로지 배 속의 아이 때문이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수술을 지연시키는 경우가 흔했다. 때론 그 결과가 치명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송재덕 과장이 안절부절못했다.
“전에 말이야, 수술 늦게 했다가 애 유산했어. 유산. 그러면 안 되잖아. 지훈아, 8개월이지?”
“예. 임신 8개월째입니다.”
“그럼 그냥 하면 돼. 마취해도 되고 항생제 팍팍 써도 되거든. 애 팔다리 다 생겨서 크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문제야. 산모가 너무 겁을 내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연락을 받고 온 산부인과 교수가 산모를 찾은 지 10분이 넘었다.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송재덕 과장이 끌탕을 했다. 김지훈 역시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내일이나 수술하게 되겠다. 다 그랬어. 몇 안 되는 산모들이 다 그랬어. 큰일이다. 허어! 안 되겠다. 우리 여기서 지금 뭐 하니? 산모한테 가자. 빨리 가서 오늘 꼭 수술해야 된다고 하자.”
그때 산부인과 교수가 보호자와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기대하지 못한 말이 들렸다.
“과장님, 환자와 보호자분이 동의하셨습니다. 바로 수술 받겠다고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뭐? 지금 한다고? 야! 보호자분, 결정 잘하셨습니다. 내일 하면 문제가 커져요. 아주 잘하셨어. 거참, 어려운 결정 내리셨네. 우리 교수님께서 설명을 친절하게 잘하신 모양입니다.”
산부인과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보호자에게 물었다.
“보호자분이 말씀하는 선생이 이분인가요?”
“예. 하도 신경을 많이 써 주시고 궁금한 것까지 자세하게 말씀해 주셔서 지금은 도리어 걱정이 안 되네요. 김지훈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김지훈 선생이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럼요. 말도 마십시오. 어제 응급실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오셨습니다. 제 평생 이런 선생님은 처음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송재덕 과장이 김지훈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입술을 쭉 내밀며 잠시 눈길을 주다 말고 흐뭇하게 웃었다.
“지훈이구나. 네가 김지훈이지?”
또 이름을 물어봤다. 너무 흡족하다는 의미였다.
“예, 과장님.”
“그래그래. 이제 알았구나. 어쩐지 눈빛이 달라졌어. 잘했다. 잘했어. 아암! 네가 김지훈이지. 수술 준비하자. 빨리 하자. 가자.”
‘그래. 이 맛에 내가 새끼들 키운다. 김지훈, 앞으로는 절대 안 잊겠지? 환자는 말이야, 마음을 준 만큼 그대로 돌려주는 법이야. 그게 신뢰지. 환자가 나를 전적으로 믿어 주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은 없어. 김지훈, 너도 기분 좋지?’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송재덕 과장이 갑자기 홱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에도 역시 앞뒤 다 잘라 버린 말이었다.
“지훈아, 기분 좋지? 좋지?”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과장님.”
“좋잖아. 응? 좋으면서 왜 그래.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라? 난 좋은데. 이게 환자 보는 기쁨이야. 허허!”
수술 방으로 향하는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닌 게 아니라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이것이 바로 환자 보는 기쁨이라는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산모가 수술 방에 도착했다. 허용된 곳까지 따라온 보호자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산모와 함께 웃었다.
“선생님, 언제쯤 끝날까요?”
“한 시간 정도면 다 끝납니다만 산모분이 완전히 회복되셔야 하니까 조금 더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병실로 올라가나요?”
“바로는 못 올라갑니다. 일단 산부인과에서 태아 상태 확인하고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면 올라가실 겁니다. 수술은 우리 과에서 하지만 입원은 지금처럼 산부인과에서 하시게 되고요. 치료는 제가 아침저녁으로 가서 하겠습니다.”
보호자가 콧소리를 내며 김지훈을 보았다.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선생님 같았으면 좋겠네요.”
“아닙니다. 저보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으신데요.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럼 산모분,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마음 푹 놓으시고 편안하게 생각하세요.”
산모가 무척 불안한지 좀처럼 보호자의 손을 놓지 못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이렇게 신경을 쓰며 설명을 해도 불안하고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환자였다. 환자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수술대 위에 누운 산모가 김지훈의 손을 꼭 쥐고는 놓질 못했다. 가장 먼저 손을 닦고 수술 준비를 해야 하는데 난감한 일이었다. 마음이 급한지 다른 때보다 일찍 수술실에 들어온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었다.
“가서 빨리 손 닦고 수술하자. 지훈아, 잘한다. 잘한다.”
그 소리에 김지훈이 움찔거리다 말고 산모의 손을 더욱 꼭 잡아 주었다. 송재덕 과장이 김지훈을 슬쩍 보고는 3년차와 인턴을 동시에 붙잡고 나간 것이다. 산모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 그대로 있으라는 말이었다.
마취과에서도 평소와는 달리 당직 교수가 직접 마취를 주관했다. 빠르게 마취가 진행되고 어느새 수술 팀들은 모두 준비를 마쳤다. 환자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는 후다닥 손을 닦으러 나갔다.
마취가 됨과 동시에 수술이 시작됐다.
손을 닦고 들어왔을 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후였다. 막 메스를 잡는 송재덕 과장을 보며 김지훈이 급히 세컨 자리에 섰다.
산모의 수술은 속도가 관건이었다.
수술이 길어진다는 것은 곧 마취 시간이 길어진다는 소리였고 이는 태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집도의가 송재덕 과장이라는 사실이 산모에게는 일종의 행운이었다. 산모를 수술하는 경우는 거의 볼 수 없기에 김지훈에게도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수술 전 미리 표시해 둔 통증 점을 중심으로 길게 피부를 절개했다. 빠르게 지혈을 하며 복막까지 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리트랙터(retractor:걸개 혹은 끌개)를 당겨 수술 시야를 확보했다.
자궁의 우측 벽과 함께 바깥쪽으로 밀려난 소장과 대장이 보였다. 랜드 마크를 확인한 송재덕 과장이 빠르게 아뻬를 찾았다. 진단은 정확했다. 아뻬가 전제적으로 심하게 부어 있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잘했네. 지훈이도 보호자도 다 잘했네.”
아뻬가 터져 복막염까지 유발됐다면 자궁에 심한 자극을 주어 태아가 위험할 수 있었다. 수술 후에도 치료 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항생제의 사용이나 드레인이 주는 자극 등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발생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김지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환자를 한 번 더 본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만한 수고는 언제든 해도 좋았다.
잠시 묘한 흥분에 휩싸였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며 눈을 크게 떴다. 산모 아뻬가 어떻게 보이는지 수술은 또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겼다.
아뻬가 제거됐다. 송재덕 과장이 자궁을 포함해 주변 구조물에 또 다른 이상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슬쩍 시계를 보았다.
“마취한 지 25분 지났구나. 빨리 닫자.”
복벽을 닫는 과정에 위험할 일은 없었다. 송재덕 과장이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도를 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봉합이 진행되는 동시에 마취과에서도 산모를 깨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