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평생 간직해야 할 마음 (2)
송재덕 과장이 번개처럼 배를 열었다.
소장 중 중간 부위에 해당하는 공장에서 심한 손상이 발견됐다. 단 탭과 거즈로 내용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한 후 다른 장기들을 살폈다. 군데군데 피멍이 관찰됐지만 그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손상된 소장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 송재덕 과장은 물론 김지훈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생각보다 손상 부위가 광범위했다.
“많이 다쳤네. 자르자. 이만큼 자르면 될까? 지훈아, 어때? 현수야, 넌?”
송재덕 과장이 수술 중에 말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이준영 과장에게 들었던 말을 기억하며 신중하게 손상 부위를 살폈다.
‘혈류가 원활하게 유지되는 부분까지 살리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하셨지. 그럼 이 경우에는 최소 60센티 정도는 잘라야겠네.’
“지훈아, 얼마나 잘라? 응? 얼마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음! 그렇구나. 현수야, 맞지? 이만큼만 자르면 되지? 많이 다쳤네. 시작하자. 자르자.”
송재덕 과장의 말은 김지훈의 판단이 맞는다는 의미였다.
신현수가 눈가를 좁혔다. 소장은 여유가 많아 배 밖으로 꺼낼 수 있기에 세컨 자리에서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범위와는 다소 달랐다.
가슴이 답답한지 신현수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송재덕 과장이 장을 자르기 시작했다.
소장으로 연결되는 동맥은 나뭇가지처럼 펼쳐진다. 소장에 가까워질수록 가늘고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손상까지 받았다면 매우 신중하고 정확하게 접근해야 했다. 수술의 크기는 둘째 치고 외상을 입지 않은 경우와는 당연히 달랐다.
송재덕 과장의 손이 달라졌다.
그토록 거침없이 빠르게 움직였던 손이 때론 신중하고도 섬세하게 바뀌었다. 1년차들의 눈에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였다. 이렇게 수술 스타일이 갑자기 변하면 퍼스트를 서기가 쉽지 않았다. 김지훈은 최고의 집중력으로 수술에 임했다.
송재덕 과장의 손이 어떻게 움직일지 다음 과정은 어떻게 진행할지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 집도의의 손이 편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싹둑! 싹둑!
손상된 소장의 양끝이 잘렸다. 환히 드러난 소장 내부를 깨끗이 소독한 송재덕 과장이 잘린 소장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연속 봉합으로 1차 봉합을 끝내고 장벽을 2차로 봉합했다. 단순히 봉합만 하면 되는 술기였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주의를 요하는 과정이었다.
단 한 바늘이라도 소장의 동맥을 건드리면 출혈이 발생해 최악의 경우 다시 자르고 이어야 할 수도 있었다. 또한 장 점막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수술 후 누출이 발생할 확률이 100프로였다.
‘지금은 과감하게 진행하시지만 다음 과정은 신중하고도 정확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동맥과 점막이 가장 잘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김지훈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했다. 송재덕 과장의 손이 빨라지면 빠르게 반응하고 느려지면 그에 맞게 보조를 맞췄다.
그래도 워낙 빠른 손을 가진 송재덕 과장이었기에 수술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한 시간이 조금 지나 장을 연결하는 과정이 모두 끝났다.
배 속을 세척하고 드레인을 박은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으며 장갑을 벗었다.
“지훈아, 마무리하자. 마무리. 천천히 해. 천천히. 현수야, 수술은 둘이 하는 거야. 그래도 집도의가 더 중요하겠지? 그럼. 퍼스트가 수술을 하려고 하면 안 되지. 함께 해야지. 음! 그럼 마무리하자. 천천히 해. 천천히.”
김지훈이 송재덕 과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복벽을 닫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하면서도 거침이 없었다. 어시스트를 서던 신현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김지훈과 손을 맞추고 있었다.
복벽 봉합은 수술보다 훨씬 단순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신현수의 손이 전과는 무언가 달라진 것 같았다. 미묘했지만 송재덕 과장의 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니네 둘이 하니까 보기 좋네. 아주 좋아. 음! 잘한다. 잘한다. 현수야, 잘한다.”
송재덕 과장이 기분 좋게 웃었다.
모든 과정이 무난하게 진행됐고 만족한다는 웃음이었다.
수술이 끝난 후 홀로 남은 신현수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드시 이겨야 할 김지훈을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는다는 것이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입장이 바뀌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렇게 수술을 했는데도 아직 퍼스트조차 제대로 서지 못했다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 일이네. 그럼 나보다 케이스가 적을 수밖에 없는 김지훈은 뭐지? 수술을 하는 동안 지적은 거의 다 내가 받았잖아.’
가슴이 답답해진 신현수가 머리를 감싸 쥔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인턴 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한 발 앞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김지훈은 이미 한 발 앞에 있었다.
그때는 사소한 술기뿐이었지만 지금은 수술이었다.
이제는 절대 질 수 없었다.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확실히 알고 싶었다.
송재덕 과장을 찾아가 직접 들어야 할까?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신현수가 좀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그 시간 수술 후 오더를 내던 김지훈이 볼펜을 든 채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마취가 완전히 깨어나지 않아 비몽사몽간이었지만 상당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수술 직후였기 때문에 진통제를 투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통증을 경감시킬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환자가 잘 이겨 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 쨌는데 안 아프면 사람이 아니겠지. 지금은 방법이 없으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평소 수술 후 환자들에게 항상 했던 말이었다.
어쩐지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처럼 들렸다.
잠시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남은 오더를 마저 냈다.
그렇게 일요일 오전에 두 개의 수술이 끝났다.
***
송재덕 과장이 싱글싱글 웃으며 병원을 나오다 말고 수술 방 쪽을 바라보았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김지훈과 신현수에게 두 개의 과제를 던졌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노련한 감각은 김지훈이 중대한 고비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처음 천안에서 봤을 때보다 무뎌지기는 했지만 아직 환자에 대한 열정과 정성은 살아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지 못하면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을 해도 뒤돌아서면 잊을 것이다.
‘스스로 찾아. 그리고 느껴. 그래야 우리가 꿈꾸는 의사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다. 네가 수술을 잘하고 못하고는 다음 문제일 수도 있어.’
피식 웃으며 뒤돌아선 송재덕 과장이 신현수를 떠올렸다.
1년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정확하고 기계적인 손놀림.
결코 예사로운 재능이 아니었다. 하지만 수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손을 맞추고 세컨과 써드의 보조까지 받아야 하는 것이 수술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노련하고 확실한 실력을 쌓으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만 신현수에게 거는 기대 역시 컸다. 수술을 하며 간접적으로 언급한 문제를 알아내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기를 바랐다.
‘신현수, 지난 여섯 달 동안 많이 변했지. 하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수술은 물론이고 환자를 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야. 김지훈과의 경쟁을 통해 스스로 깨우치고 배우길 바란다. 우리 천성이 원래 그렇다는 말은 믿지 말자. 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김지훈과 신현수가 훨씬 더 크게 될 놈들이라고 확신한다.’
집으로 향하는 송재덕 과장의 발걸음이 왠지 가벼웠다.
응급실에 눈이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에잉! 못된 놈. 버르장머리 없는 놈. 정신 차려.”
열 손가락 중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지금 정갑수의 모습은 손톱만큼도 인정할 수 없었다. 금경태 과장이라도 최소한의 자세는 가르쳐 주길 바랐다. 제 품에 품었으면 그 정도는 당연히 짊어지어야 할 의무였다.
***
김지훈이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11월 달 막바지에 이르자 날씨가 꽤 선선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건물을 따라 걷던 김지훈이 물끄러미 어딘가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아이고! 불쌍한 우리 엄마. 어쩌나. 엄마!”
누군가 또 오늘 세상을 떠난 모양이었다. 중한 환자들이 많은 천안 병원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병실에서 중환자실에서, 그리고 응급실에서 삶을 마치는 환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 주에도 서너 차례는 곡소리가 들리곤 했다.
전공의와 인턴 숙소가 장례식장에 아주 가깝게 붙어 있어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했다. 지난 세 달 동안 듣다 보니 이젠 고인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울음소리조차 으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인턴이나 전공의들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사람 죽었네. 에휴!”
김지훈이 살짝 인상을 쓰며 커피를 마셨다.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죽은 이들과 슬픔에 찬 가족들을 보는 것은 쉽게 적응될 일이 아니었다.
비통하고 안타까움에 젖은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죽은 이의 뒤를 따라가던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 병원 입구로 향하던 김지훈이 쓰레기통에 커피 잔을 던졌다.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종이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데굴데굴 제자리를 돌았다.
무심코 컵을 집어 들던 김지훈이 갑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에서 죽은 사람의 뒤를 따르며 애통해하는 가족을 보았다. 그런데 가슴이 답답하고 기분만 우울할 뿐 어떤 슬픔이나 아픔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치 커피를 마시고 남은 종이 컵 하나를 버리는 일처럼 죽음까지도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무감각하고 무덤덤한 감정.
죽음을 보고도 특별한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마음.
텅 빈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머리.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죽어 가는 환자를 앞에 두고 노닥거린 것과 그냥 습관적으로 환자를 치료한 일의 차이는 무엇일까?
만일 정갑수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랬다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신현수가 옆에 있었다면 김지훈 자신 역시 환자를 맡기고 쉬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문득 그렇게 욕을 하며 싫어했던 정갑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의사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을 잃었던 것이다.
‘내가 정말 그동안 그렇게 환자를 봤나? 죽음마저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지나쳤었나?’
응급실에서 본 송재덕 과장의 태도와 말이 생각났다.
힘들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환자에 대한 열의와 정성은 누구보다도 깊고 강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단지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는지만 궁금했다.
송재덕 과장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환자의 아픔에 무감각해지고 죽음마저 무덤덤하게 넘겨 버리는 김지훈 자신의 변화를 본 것이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리운 이들을 찾을 자격도 없었다.
마음이 없는 의사가 과연 정말 진정한 의사일까?
‘어머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김지훈은 한동안 석상처럼 굳은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치명적인 칼날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
시간이 되자 2~3년차들이 속속 천안 병원에 도착했다.
병동 의국으로 올라간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오셨습니까? 선생님, 죄송한데 방금 전에 수술 끝난 환자가 있어서 잠시만 보고 오겠습니다.”
“응. 그래. 빨리 보고 와. 환자 파악 좀 하자.”
의국을 나오자 이제 막 수술 방에서 올라온 환자가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바이탈에 문제가 있는 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는 부지런히 뒤를 따랐다.
“으으으!”
환자는 간이침대에서 입원실 침대로 옮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김지훈이 입술을 꾹 다물고는 환자가 최대한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가습기를 틀고 마스크에 산소 줄을 연결했다. 코 줄이 잘 고정됐는지, 소변이 잘 나오는지 살폈다. 간호사들이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하고 싶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으으으! 예.”
고통스러워하면서 눈을 뜨는 환자가 힘겹게 손을 뻗어 김지훈의 손을 잡았다. 고맙다는 말이자 자신이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진 김지훈이 환자의 손을 꼭 잡으며 환자에게 말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동안 난 도대체 무엇을 보며 환자를 치료한 거지?’
“환자분, 수술 잘 끝났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선생님.”
자신을 바라보는 환자의 눈빛에 김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왠지 미안하기만 했다.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자 보호자들이 초조한 기색으로 김지훈에게 물었다.
“선생님, 수술은 잘 끝났나요?”
방금 전에 한 말을 들었으면서도 묻고 있었다.
이것이 보호자의 마음이자 아픔이었다.
외면했던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예. 소장 쪽에 손상이 커서 약 60센티 정도 절제했습니다만 회복에는 지장이 없으실 겁니다. 오늘은 많이 아파하실 텐데 환자분이 너무 힘들어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보호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