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평생 간직해야 할 마음 (1)
토요일 밤이 지나가고 일요일 아침이 성큼 다가왔다.
밀려드는 환자에 결국 정갑수 대신 응급실에 내려간 김지훈이 부지런히 환자를 보며 틈틈이 조각 잠을 잤다. 짜증이 솟구치기는 했지만 확실히 신현수와 함께 근무를 하면 편했다. 냉철하게 판단을 내리고 진단을 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도 감탄이 나왔다.
‘똑같은 환자를 봐도 나보다 최소한 두 배는 빠르네. 자식. 환자 하나는 잘 봐. 나도 저렇게 환자를 볼까?’
환자를 보고 있는 신현수를 보며 김지훈이 입맛만 다셨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배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정말 배워야 할 정도의 장점인지조차도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선 채로 깜빡 졸다 신현수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지훈아, 환자 떴다. 수술 준비하자.”
“뭔데?”
“궤양 터졌어. 프리에어 떴다.”
“오케이!”
김지훈이 관자놀이를 꽉꽉 누르며 수술 준비를 했다. 거의 날밤을 새운 탓에 스케줄을 작성하면서도 하품이 나왔다. 하지만 최소한 퍼스트를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슬슬 긴장이 다가오며 잠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또 왔구나. 또 왔어. 참! 사람들 술 많이 먹어. 그치? 지훈아. 그래서 속 쓰리면 빨리 약 먹어야 돼. 안 먹으니까 터지지. 그치. 내 말이 맞지?”
“예, 과장님. 수술은 어떻게 들어갈까요?”
“둘 다 들어와. 둘 다. 지훈이 현수 다 들어오자. 같이 수술하자. 너희들도 좋지?”
김지훈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거 또 선택하라고 하시면 이번에는 정말 곤란한데. 궤양이 터진 복막염은 정말 양보하기 어려워.’
고민스러운 눈으로 송재덕 과장을 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환자를 보는데 피로 따위는 모르는 것처럼 활기가 넘쳤다. 환자의 손까지 잡으며 온 정성을 다했다. 김지훈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피로 탓인지도 몰랐다.
젊은 사람보다 체력이 더 강한 것일까?
전공의의 눈에는 전공의의 생활만 보이기 마련이었다.
스태프들도 강한 체력을 가져야 하지만 그만큼 쉴 시간도 많았다. 물론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책임이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르치고자 하는 송재덕 과장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김지훈이 수술 방으로 올라가며 중얼거렸다.
“스승님도 그렇고 과장님들도 그렇고 다들 체력이 끝내주시네. 아이고! 나도 방법을 빨리 알아내야 하는데 죽겠네. 근데 수술을 주실 리는 없고 누가 세컨을 서는 거야? 미안하지만 이건 양보 못한다.”
김지훈이 환하게 밝아 오는 창문을 보며 수술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날벼락을 맞았다.
“현수가 퍼스트 서자. 지훈이는 세컨 서고. 지훈아, 얼굴이 왜 그래? 싫어? 지훈아, 아니지?”
“예, 과장님. 그럴 리가 있습니까?”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눈은 울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수술이 시작됐다.
세컨을 서며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손을 봐야지. 손을. 그럼 집도의 손을 봐야지. 그래야 수술이 잘돼. 현수야. 네가 퍼스트지. 맞다. 현수가 퍼스트야.”
다른 때 같았으면 한참 수술이 진행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예전보다 진행 정도가 다소 늦었다. 더욱이 송재덕 과장이 수술 중에 하는 말은 가르침이자 지적이었다.
신현수의 눈빛도 좋지 않았다.
툭! 툭! 툭!
여전히 빠르기는 했지만 전보다 한결 느려진 속도에도 불구하고 신현수가 손을 맞추지 못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별일 아니었지만 확실히 뭔가 어색했다. 김지훈과 더불어 1년차 중에서는 가장 수술을 잘한다는 신현수였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번뜩 잠에서 깬 김지훈이 수술에 집중했다.
눈가를 좁히며 수술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모았다. 아무리 보아도 신현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도의의 방식과 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퍼스트를 서면서도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고집하고 있었다. 송재덕 과장이 평소처럼 빠르고 정확하게만 수술을 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손에 완급을 주자 신현수의 규칙적이고도 기계적인 손놀림이 도리어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김지훈이 나직한 탄식을 터트렸다.
‘아! 이런 게 있었네. 세컨을 서면서 이런 걸 봤어야지. 무조건 수술만 보려고 했다니 나도 바보다. 옆에서 보니까 훨씬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네.’
마치 바둑판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처럼 퍼스트를 설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들이 보였다. 그것도 세컨을 서면서 말이다. 덩달아 송재덕 과장의 손놀림도 새롭게 느껴졌다. 비할 수 없는 빠름에 분명 완급이 숨어 있었다.
이준영 과장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다만 이준영 과장은 빠름보다는 완급과 흐름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야! 세컨을 서는 것도 이렇게 보니까 나름 재밌네. 역시 쓸데없는 자리는 없었어.’
새로운 시각 때문이지 세컨을 서면서도 졸음이 몰려오지 않았다. 수술이 끝난 후 수술 방을 나오는 김지훈의 걸음이 왠지 힘차게 보였다. 반면 신현수의 안색은 더욱 무거워졌다.
연이어 퍼스트를 서면서 갑갑함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신현수에게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술 방을 나가던 송재덕 과장이 회복실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이마를 주무르고 있는 신현수를 보았다.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한 때였지만 잠시 머뭇거리던 송재덕 과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 방을 나갔다.
‘현수야, 수술은 말이야 집도의가 어떻게 수술하는지가 가장 중요해. 집도의의 손을 봐야지 얼굴을 보면 수술이 되겠니? 진정한 라이벌은 적이 아니라 친구란다.’
문득 자신이 트레이닝을 받던 시절이 생각난 송재덕 과장이 허허 웃었다. 면면이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불꽃 튀는 경쟁을 벌였던 이준영과 금경태.
나이는 많았지만 같은 연차로 근무하며 악착같이 둘을 따라잡기 위해 잠도 잊고 일했던 송재덕.
아래 연차였지만 겁이 날 정도로 치고 올라왔던 이혁민.
지금은 서울 병원에서 근무를 하다 잠시 미국에 연수를 가 있지만 이혁민만큼이나 뛰어났던 신기동.
서로가 최대의 라이벌이 되어 경쟁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그 결과 모두 대학 병원의 스태프로 남았다. 하지만 길을 잃은 경쟁은 라이벌의 실수와 좌절을 감싸 주지 못했다.
송재덕 과장은 김지훈과 신현수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젊었을 때의 이준영과 금경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술하는 스타일도 지훈이는 준영이를 닮았고 현수는 금경태와 비슷해서 그런가? 너희들은 절대 감정을 갖고서 싸우면 안 된다. 현수야, 앞으로 함께 수술을 할 기회가 또 오면 지훈이를 의식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항상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을 거야.’
세상이 돌고 돌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일요일 오전 응급실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 덕에 김지훈과 신현수가 모처럼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불과 서너 시간 후면 2~3년차들이 올 때가 됐다. 그때가 되면 환자 파악부터 시작해 할 일이 넘쳐 날 것이다.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자 두어야 했다.
끼니때가 되자 자동적으로 눈을 뜬 김지훈이 더듬더듬 시계를 찾았다. 12시가 조금 넘었다. 김지훈이 반쯤 감긴 눈으로 갈등에 빠졌다.
‘잠을 더 자야 하나, 아니면 밥을 먹어야 하나? 어휴! 안 되겠다. 지금은 잠이 더 급하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자자.’
1시에 알람을 맞추고 다시 눈을 감은 김지훈이 막 꿈속으로 빠져들 무렵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응급실이었다. 인턴이 다급한 목소리로 단체 교통사고 환자가 들어왔다고 노티를 했다. 전화기를 통해 난리가 난 응급실의 상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일이 환자를 노티하려는 인턴에게 내려간다는 말을 하고는 신현수를 깨웠다.
‘현수 혼자 내려가면 죽겠지? 그래. 이왕 같이 고생하는 건데 오늘도 함께 보자. 정갑수, 저 인간은 밤새 처질러 잤을 텐데 뭐가 저렇게 피곤해서 눈도 못 뜰까?’
까치집을 지은 머리만 대충 빗고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여기저기 깨져 피투성이가 된 환자들의 신음 소리와 의료진을 찾는 보호자들의 목소리가 응급실에 가득했다. 인턴들과 간호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전공의들은 자신의 환자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김지훈을 본 인턴이 달려와 확인해야 할 환자들을 노티했다. 신현수와 함께 진료를 시작했다. 대부분 사고로 인한 복부 둔상이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항상 재수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으으으! 으으으!”
얼마나 통증이 심한지 신음만 내는 환자의 배가 나무토막처럼 딱딱했다. 복부 사진상 프리에어(free air)는 보이지 않았고 복부 CT에서도 큰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상 소견은 복막염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현수야, 소장이 터졌겠지?”
“그게 타당한 진단이지. 일단 난 과장님께 노티할 테니까 넌 수술 오더 좀 내.”
“오케이! 에휴! 아무리 이 동네 길이 좁다고 해도 어떻게 매일 사고가 나냐. 조심들 좀 하지.”
보호자에게 의심되는 진단과 수술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걱정이 가득한 보호자들을 뒤로하고 수술에 필요한 오더를 냈다. 인턴들이 너무 바빠 준비를 시킬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간만에 직접 엘튜브(코 줄)와 폴리(소변 줄)를 끼웠다.
환자가 통증과 괴로움에 몸을 비틀었다.
“조금만 참으세요. 침 꿀꺽.”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갑자기 기계적으로 코 줄을 끼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언제부턴가 환자가 얼마나 힘들어할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눈가를 찌푸린 김지훈이 잔뜩 인상을 쓰며 눈가를 비볐다.
그동안 의사에게는 사소한 처치도 환자들에겐 고통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수술에 너무 몰두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정갑수에게 받은 스트레스와 신현수의 빠른 일처리 능력이 부러웠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새삼 처음 인턴이 됐을 때 가졌던 마음가짐을 떠올렸다.
‘그동안 너무 내 욕심만 앞세웠어. 이런 정도로도 힘들어하는데 수술 후에는 얼마나 아플까? 항상 환자부터 먼저 생각하자. 내가 의사가 된 이유를 잊지 말자.’
경험이 쌓일수록 의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무감각이었다. 사람들의 고통은 물론 죽음마저도 일상처럼 보게 되면 자칫 환자들에게 무관심해지고 자연스럽게 감정마저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지훈도 의사가 된 지 벌써 2년 가까이 흘렀다. 관성처럼 반복적으로 일을 하며 수많은 고통과 죽음을 보았다. 일반 외과의 특성상 내과와 더불어 가장 많은 죽음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자극하고 처음 의사가 됐을 때의 마음을 상기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기계처럼 환자를 대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운 이들이 어떻게 떠났는지 왜 의사가 됐는지는 평생 가슴에 담아야 할 마음이었다.
“휴우!”
무거운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코 줄과 소변 줄을 끼웠다. 그래도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 같았다.
송재덕 과장이 웃으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김지훈이 환자에게 안내하자 신중한 얼굴로 복부 진찰을 했다. 김지훈은 물론 신현수도 옆에 서서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검사 결과보다는 진찰 소견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였기 때문이었다. 송재덕 과장의 경험과 노련한 손은 100프로 확진에 가까운 진단을 내릴 것이다.
“빤뻬리네. 빤뻬리. 지훈아, 수술하자. 보호자분 어디 계시니? 걱정이 많겠다. 그럼. 가족 중 한 명이 아프면 덩달아 모두 마음이 아픈 거야. 그지? 지훈아.”
송재덕 과장이 보호자를 찾아 여러 가능성을 설명했다.
다시 보아도 환자를 대하는 정성과 열의가 젊은 의사들 못지않았다. 뭔가 답답한지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끙’ 소리를 냈다. 송재덕 과장이 마치 이유를 알기라도 한 것처럼 김지훈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지훈아, 수술하자. 둘이 다 들어와. 가자. 천천히 가자.”
30분 정도 지나 환자가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같은 사고를 당한 환자들은 아직도 응급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급하고 중한 환자일수록 가장 우선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었다.
마취가 끝나자마자 신속하게 수술 준비를 마쳤다.
“지훈이가 퍼스트 설까? 그래. 그게 좋겠다. 그치? 현수야. 넌 아까 섰잖아. 그럼 그래야지.”
김지훈이 내심 들뜬 마음으로 퍼스트 자리에 섰다. 지나친 감정적 동요는 금물이었기에 환자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수술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