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정갑수, 너 정말 힘든 놈이다 (2)
그러나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순간 수련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최철한, 정갑수가 나간 지 얼마나 됐지?”
“6일 됐습니다, 과장님.”
“연락 안 돼? 누구 받은 사람 없어?”
최철한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송재덕 과장이 얼굴을 굳혔다. 그간 단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불과 몇 시간 말도 없이 병원을 나갔던 일은 있었지만 교수들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돌아왔다.
당장 공식적인 조치를 취해 자르고 싶은 것이 송재덕 과장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못나도 일반 외과 전공의였다. 최소한 얼굴을 맞대고 사유라도 들어 보는 것이 순서였다.
송재덕 과장이 최소한 이유라도 말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루만 더 기다리자. 내일까지 복귀 안 하면 수련 취소야. 혹시 누구에게라도 연락이 오면 확실하게 전해.”
다른 사람들은 화가 나거나 마음이 급해지면 말을 더듬는데 송재덕 과장은 반대였다. 정말 보기 드물게 침착한 말투였다. 지금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는 말이었다. 이럴 때 누군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야야 소리가 터지고 말 것이다.
최철한이 저녁 회진이 끝나자마자 전공의들을 모두 모았다. 모두들 초긴장 상태였다. 그때 김지훈을 찾는 방송이 나왔다.
최철한이 얼굴을 구기며 전화기를 가리켰다.
“여보세요, 김지훈입니다.”
(나야, 새끼야.)
정갑수였다. 김지훈이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는 정갑수 전화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전공의들의 시선이 쏠렸다.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어디야?”
(지금도 반말을 해? 내가 너 끝까지 이럴 줄 알았다, 이 새끼야. 너 때문에 나간 거니까 그렇게 알아. 개새끼. 난 어차피 전문의 안 되도 상관없어. 하지만 너도 징계위원회에 넘어가게 될 거야. 나만 죽을 줄 알았어?)
“알았으니까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일단 들어와. 과장님이 하루 더 주신다고 하셨어.”
(고집? 이 새끼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네. 내가 그만두면 넌 X 되는 거야. 너 병원에 남고 싶다고 했다며? 이젠 다 끝났어. 선배한테 개겨서 징계 먹은 새끼를 뽑아 줄 것 같아? 악어 일까지 하면 송재덕 과장이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개뿔도 없는 새끼가 어디서.)
김지훈은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자신의 앞날은 생각도 안 하고 일반 외과를 그만둔다니 어이가 없었다. 걱정은커녕 김지훈에게도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에 좋아하는 것 같은 목소리에는 아예 할 말을 잃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초조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최철한이 전화기를 뺏었다.
“정갑수, 나야. 최철한이야.”
(어이구! 일반 외과 치프 선생님이셔. 너도 마찬가지야, 이 새끼야. 동기 좋다는 게 뭐냐? 동기가 후배한테 욕을 먹고 있는데 치프라고 목에 힘만 주고 개소리나 까. 씨발 놈아, 너 같은 새끼가 더 문제야. 내가 다시 들어가면 X나게 갈굴 거 아냐. 내가 미쳤냐? 너 같은 새끼한테 그런 꼴을 당하게.)
아예 작정을 했다. 그러니 일주일 동안 연락 한 번 안 하다 느닷없이 전화를 해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최철한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일단 들어와서 얘기해. 그만두든 말든 난 상관없으니까 최소한 과장님한테 정식으로 말씀드리고 그만둬.”
(그만두는데 인사를 하라고? 지랄하고 있네. 미친놈. 너 같으면 그러겠냐? 새끼야, 끊어. 이 개새끼야.)
최철한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기 밖으로 목소리가 다 새어 나온 까닭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한참 동안 이마를 만지며 한숨을 쉬던 최철한이 신현수를 보았다. 신현수가 개인적으로나 집안으로도 정갑수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전공의는 없었다.
“신현수, 너 지금 당장 서울로 출발해. 정갑수, 무조건 데려와. 수련을 하든 말든 과장님에게 정식으로 말씀드려야 한다고 전해. 알았어?”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날 밤 늦게 신현수가 정갑수의 집을 찾았다.
정갑수가 인상을 쓰며 문을 열었다.
“왔어? 들어와.”
“됐어. 간단히 말할게. 일단 천안에 내려와서 과장님께 정식으로 말씀드려. 수련을 할 거면 무릎 꿇고 잘못을 빌고 아니면 사유를 확실하게 말하고 가운 벗어.”
“미쳤어? 내가 그 짓을 하게. 아버지한테 말해서 다 가만히 안 둘 거야. 우리 아버지 힘이면 니네 병원도 문제가 생긴다는 거 알지? 보사부 국장이 만만한 자리가 아니야, 인마.”
‘정갑수, 정말 너 인간 망종이었구나. 너 같은 놈은 아예 뽑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신현수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이를 악물었다.
악어도 정갑수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이런 인간들과 웃고 지냈다는 사실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자신이 택한 과에 조금도 애정이 없다는 사실에는 분노가 치밀 지경이었다.
신현수가 눈빛을 굳히며 뒤돌아섰다.
“알았어. 그만둔다고 전할 테니까 군대나 잘 갔다 와. 그리고 앞으로 우리 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
“네가 과장이라도 돼? 별 개소리를 다 하고 있네.”
코웃음을 치며 문을 닫던 정갑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있자. 군대라고 했나?”
정갑수의 눈이 왕방울 만해졌다. 지난 일주일 동안 분을 못 이겨 성질만 냈지 군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것이다. 헐레벌떡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 정갑수가 전화통을 붙들었다.
“에이 씨! 급해 죽겠는데 어디 있는 거야?”
여기저기 전화를 하던 정갑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나예요.”
“어! 우리 아들. 웬일이야? 잘 지내지?”
“아버지, 큰일 났어요. 나 군대 가게 생겼어요.”
“뭐? 군대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너 어디야?”
“집에 있어요. 빨리 좀 들어와요.”
정갑수의 아버지인 정한득이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집으로 향했다. 정갑수를 본 정한득의 얼굴에 걱정만 가득했다.
“갑수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너 왜 집에 있어?”
“아버지, 천안에서 일이 좀 있었어요. 김지훈이란 놈이 있는데 이게 환자를 보네 마네 하며 응급실에서 악어 멱살을 잡고 저한테는 욕까지 하더라구요. 환자는 별 탈 없이 다 처리가 됐는데 말이에요.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악어가 먼저 항의를 했는데 도리어 송재덕 과장이 우리보고 잘못했다는 거예요.”
“뭐? 그래서.”
정한득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거기까지는 참겠는데 의국 전체가 날 밀어붙이니 견딜 재간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참다 참다 못해서 일주일 전에 병원 나왔어요.”
“뭐? 이 자식아. 그럼 그 전에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 될 거 아냐? 아무 말도 없이 병원을 나오면 어떻게 해, 인마.”
정갑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어떻게 해요. 후배한테 당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지금도 다시 들어갈 생각은 없는데 생각을 해 보니까 군대를 가야 되더라구요. 면제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대위도 아니고 중위로 가면 고생 무지하게 한단 말이에요. 아버지, 어떻게 좀 해 줘요. 나 군대 가기 싫어요.”
정한득이 눈가를 찌푸리며 인상을 확 구겼다.
‘송재덕 과장? 이 사람이 정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것도 모자라 군대까지 가야 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일반 외과는 다른 어느 과보다도 위계질서가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의 멱살까지 잡은 놈을 옹호한다니 치미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쫓아가 항의하고 싶었지만 치미는 화를 꾹꾹 누르고 참아야 했다. 어떻게든 전문의를 만들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대로 그만둔다면 제대 후 다시 전공의로 뽑아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정한득이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후배란 놈이 그렇게 행동을 했는데 도리어 네가 잘못했다고 한단 말이지. 내 이것들을 당장! 일단 넌 병원으로 돌아가.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다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버지, 지금 들어가면 욕만 먹어요. 어차피 욕을 먹을 거면 확실하게 해결을 하고 들어가는 게 낫죠.”
“그래? 그럼 곧 들어간다고 전화라도 해. 금 과장하고 상의할 테니까 기죽지 말고. 그리고 내가 상황을 확실히 알아야 하니까 다시 똑바로 차근차근 얘기해 봐.”
정갑수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바이탈이 흔들린 환자는 물론 당직실에서 악어와 노닥거린 일은 쏙 빼놓았다. 굳이 제 입으로 말할 이유가 없는 데다 어차피 아버지와 금경태 과장의 힘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씨펄! 4년? 금방 간다. 아니지. 내년이면 니들하고 얼굴 맞대지 않아도 되지. 김지훈, 넌 죽었어.’
“아버지, 다른 건 몰라도 김지훈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말해야 돼요. 그 새끼가 나하고 악어 멱살을 잡았다는 거 잊지 말고요. 그 자식이 지금처럼 계속 나를 무시하면 창피해서 어떻게 일을 해요. 간호사들까지 날 이상한 눈으로 본다니까요.”
“뭐야? 간호사까지 널 무시해? 알았어. 괘씸한 놈. 선배라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데 후배라는 놈이 감히 너한테 그런 짓을 해. 김지훈이라고 했지?”
“예, 아버지.”
그날 밤 밤새 정한득은 씩씩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갑수 역시 군대에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정한득이 금경태 과장과 통화를 한 후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
신현수가 새벽이 돼서야 내려왔다. 최철한이 의국에서 신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사이 응급실과 수술 방이 난장판으로 변했다. 신현수까지 자리를 비운 탓에 김지훈은 물론 유석재를 비롯한 2년차들까지 거의 날밤을 새우고 있었다.
“정갑수는?”
“그만두겠답니다. 선생님 말씀을 그대로 전했는데 내려올 생각은 없답니다.”
“왜 그만둔데?”
신현수가 말을 하지 못했다.
이유를 말했든 안 했든 빤한 일이었다. 아마도 온갖 불평은 다 늘어놓으면서 남 탓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까지 들먹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침이 되도록 정갑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안 왔어. 확실히 안 왔지. 그럼 이제부터 내 새끼 아니다.”
송재덕 과장이 금경태 과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예전부터 사이가 안 좋아 직접 통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서울 병원의 과장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합당한 절차였다.
금경태 과장이 수술에 들어간 탓에 직접 통화를 하진 못했지만 뒤로 미룰 일이 아니었다. 정갑수가 더 이상 일반 외과 전공의가 아니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천안 병원 수련 부장에게는 물론 전 병원의 수련을 총괄하는 서울 병원에도 연락을 했다.
그런데 점심 무렵 정갑수에게서 복귀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것도 최철한에게 전화로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철한아, 나 들어간다.)
“뭐? 다 끝났어, 이 자식아. 오늘 새벽에 내려왔어야지.”
(사정이 그렇게 됐어. 내일이면 갈 수 있으니까 과장님한테 말 좀 대신 해 줘.)
“네 마음대로 오고 가게 여기가 무슨 동네 술집이이야?”
정갑수가 이죽거렸다.
(아! 애 새끼. 상황 판단이 그렇게 안 되냐? 그냥 내가 말한 대로 알고 있어. 너도 이젠 그냥 안 넘어갈 거니까 내 얼굴 보고 또 지랄할 생각은 하지 마라. 끊는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최철한이 의자를 걷어찼다. 마침 환자를 노티하기 위해 옆에 서 있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설마 다시 들어오겠다고 한 거야? 아주 생쇼를 하는 하는구나. 미치겠네.’
정말 정갑수 하나 때문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어후! 이 새끼. 정말 뭐 하는 새끼야.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면 당장 내려와서 직접 과장님께 말씀을 드려야지. 나한테 달랑 전화로 말해?”
한숨을 푹푹 쉰 최철한이 고민을 거듭하다 외래로 달려갔다. 일단 말은 전하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의국장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었다.
“과장님, 정갑수가 다시 근무를 하겠다고…….”
“뭐? 최철한,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놈은 이미 끝났다고 했잖아. 오지 말라고 해. 올라가.”
송재덕 과장이 단칼에 말을 잘랐다. 최철한이 그래도 동기라고 한마디 더 했다가 도망치다시피 외래를 빠져나왔다. 소식을 전해 들은 김지훈이 고개를 저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나이를 거꾸로 먹었나. 애들도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겠다. 미친놈.”
욕이 절로 나왔다.
그 시간 정한득이 금경태 과장을 찾았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정갑수를 끔찍하게 여기는 정한득이었다. 아들의 수련이 걸린 일이니 다급할 수밖에 없을 텐데도 의외로 상당히 태연했다.
“금 과장, 우리 아들 놈 일 들었지?”
“나도 오늘 점심때가 돼서야 정식으로 들었어. 갑수가 병원을 나오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몹시도 좋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