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경쟁의 의미 Ⅱ (3)
수술을 준다는 소리에 김지훈이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마취과에서 연락이 오자마자 환자를 옮겼다. 공교롭게도 수술 방에 여유가 있어 환자 두 명이 동시에 내려갔다.
수술 방에 들어온 신현수의 눈이 빛났다.
‘우리 둘이 동시에 수술을 시작할 수밖에 없네. 김지훈, 네가 수술을 어떻게 하는 모르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보여 줄게. 솔직히 그 상황에서 날 쫓아오기는 어렵겠지만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술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재덕 과장이 오더를 내렸다.
“철한이는 지훈이하고 들어가고 석재가 현수랑 하자. 천천히 하자. 천천히.”
신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김지훈은 3년차와 함께 수술을 하는 반면 자신은 2년차와 들어가게 한다면 송재덕 과장도 자신의 실력을 이미 인정한 것이다.
자신만만한 신현수의 얼굴을 보던 김지훈이 내심 각오를 다졌다. 무조건 빠르게 한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 뒤지고 싶지도 않았다.
‘이준영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잊지 말자. 과장님들의 수술까지 봤는데 전보다 더 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 아냐?’
여러 가지 경우를 대비해 수술 과정을 상기한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힐끗 여유가 넘치는 신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수술실 두 곳에서 동시에 마취가 시작됐다.
덧 가운을 걸친 송재덕 과장이 흥미로운 눈으로 왔다 갔다 하며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신현수는 지난 3개월 동안 천안을 돌며 송재덕 과장에게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더구나 금경태 과장과 상당히 가까운 구영선 교수까지 여러 차례 수술을 주었다. 서울에서 받은 수술까지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런 덕에 1년차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수술을 잘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김지훈에 대해서는 퍼스트를 서는 모습을 보며 간접적으로 추측하는 수밖에 없었다. 구미에서 몇 번 수술을 받았고 꽤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공평한 경쟁은 아니었다. 그러나 송재덕 과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었다. 김지훈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이준영 과장에게 배웠다는 사실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김지훈은 천안에 온 이후 한 번도 수술을 해 보지 못했다. 경험이 적은 1년차들은 한두 번의 수술로도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준영 과장의 능력과 김지훈의 열정은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여겼다.
송재덕 과장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김지훈은 이준영이가 직접 가르쳤으니까 이 정도는 차이를 두어야 신현수에게 공평한 일이야. 1년차 중 가장 뛰어난 놈들을 붙여 놨으니 둘 다 최선을 다하겠지. 어디 수술을 어떻게 하는지 보자. 누가 내 기대에 더 부합할지 궁금하네.’
다분히 의도적인 일이었다. 같은 연차에 뛰어난 전공의가 둘이라면 상대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은연중 경쟁에 불을 지피면 더욱 노력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일반 외과의 장래를 위해서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었다.
“어디 누가 잘하나 보자. 지훈이가 잘할까, 아니면 현수가 잘할까? 어때? 철한아. 누가 잘할까?”
송재덕 과장의 말에 김지훈이 바짝 긴장을 했다.
어디든 인정을 받은 사람에게 뭐든 더 주는 법이었다.
더구나 신현수와 똑같은 수술을 동시에 한다. 송재덕 과장의 말을 들으니 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은 경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다.
‘환자가 먼저다. 배운 대로만 하자. 현수한테 이기고 싶다고 서두르다가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차라리 수술을 안 받는 것이 낫다.’
신현수 역시 절대 질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한 수술이 몇 갠데. 김지훈, 확실하게 보여 줄게. 음성과 구미를 돈 너와 경쟁하는 건 우습지만 그래도 네가 바짝 쫓아오면 좋겠다.’
“수술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실 두 곳에서 마취과 전공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스.”
사아악!
동시에 피부를 절개했다.
지지직!
살타는 냄새가 퍼지며 배가 열렸다.
신현수의 손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였다. 기계적일 정도로 정확하게 순서를 따랐다. 맹장을 찾아 끌어당기는 순간 아뻬의 시작 부분이 보였다.
재빨리 아뻬를 잡아당기자 잘 익은 아뻬가 술술 끌려 나왔다. 익숙한 손길로 동맥과 주변 조직을 잡고 절제했다. 깨끗하게 남은 아뻬를 손쉽게 자르고 묶었다.
슥슥슥!
신현수가 빠른 손놀림으로 배를 닫기 시작했다.
시계를 보니 시작한 지 25분 정도 지났다. 신현수와 처음 손을 맞춘 유석재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케이스가 좋았다지만 이 자식도 수술을 엄청 잘하네. 얘도 몇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야. 도대체 어떻게 된 게 올해 들어온 1년차 놈들이 벌써 우릴 넘볼 수 있지?’
양쪽 방을 왔다 갔다 하던 송재덕 과장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허허 웃으며 잘했다는 소리가 나와야 할 때였다. 신현수의 소리 없는 웃음을 따라 마스크가 구겨졌다.
‘과장님이 말씀도 안 하시고 조용한 걸 봐서는 지훈이 수술이 지연되는 게 확실해. 조금은 찜찜하지만 그동안 내가 한 노력이 얼만데 당연한 결과야.’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그래그래. 김지훈. 음! 잘한다.”
옆방에서 송재덕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수술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목소리였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을 더디게 하면 참질 못하는 송재덕 과장도 연차에 따라 다르게 대했다. 수술 경험이 많지 않은 1년차라면 아뻬를 제거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려도 화를 내지 않았다.
쓱쓱쓱! 툭툭툭!
신현수가 빠르게 배를 닫고 마지막 봉합 사를 잘랐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소 멍한 것 같은 유석재의 표정과 당연하게 여기는 마취과 전공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일종의 즐거움이었다. 조금만 더 경험을 쌓고 큰 수술까지 하게 되면 전공의 중에는 누구도 자신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다.
상대가 4년차라고 해도 말이다.
환자를 옮긴 신현수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김지훈이 수술을 하는 방으로 향했다. 슬며시 고개를 들이민 신현수가 실망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김지훈은 아직도 아뻬를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몇 번은 해 봤을 텐데 이젠 끝나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되면 너무 싱거운데.’
피식 웃으며 돌아서려던 신현수가 무엇을 보았는지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허허! 그래그래. 잘했다, 김지훈. 그거야, 그거. 수술은 이렇게 해야지. 응! 네가 김지훈이구나.”
김지훈의 손을 따라 환자의 배 속에서 주먹만 한 덩어리 하나가 나왔다. 고약하고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신현수와 거의 동시에 배를 연 김지훈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농양이 맞네.’
수술 전 환자의 배를 진찰하며 아뻬가 터지면서 주변에 농양을 형성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복통과 누구라도 아뻬를 진단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하면서도 심한 증상을 보인 것이다.
음성에서 이준영 과장에게 배운 수술 과정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충분히 대비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를 열자마자 아뻬를 포함한 덩어리가 만져졌다.
최철한이 당황스러운지 순간 손을 움직이지 못했고 송재덕 과장도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1년차에게 맞지 않는 케이스를 준 것이다.
그때 김지훈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농양이 형성된 부분과 함께 아뻬를 제거하겠습니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김지훈이 배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최철한이 깜짝 놀랐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방법은 피부를 더 절개해 충분한 수술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좁은 시야에서는 실수를 하기 십상이었고 주변 조직에 대한 감염 우려도 컸다. 그런데 김지훈은 손가락을 사용했고 송재덕 과장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으로 계속하라고 재촉했다.
조심스럽게 농양 부분을 박리한 김지훈이 주변 조직과 단단히 붙은 아뻬를 분리해 냈다. 배를 열 때와는 달리 신중의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다소 시간이 지나 아뻬의 초입 부분과 동맥을 확실하게 찾아낸 김지훈이 정확한 위치에 기구를 걸었다.
“컷.”
절단된 동맥을 묶고 아뻬까지 자른 후 주변에 위치한 대장과 붙은 부분을 슬슬 손으로 밀어 분리해 냈다. 염증이 심한 탓에 김지훈은 최대한 세심하고도 신중하게 손을 놀렸다.
마침내 아뻬를 포함한 덩어리를 한꺼번에 제거했다.
배 속에 고였던 고름들이 완전히 노출되며 고약한 냄새가 확 퍼졌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송재덕 과장이 잘한다며 활짝 웃었다.
“허허! 그래그래. 잘했다, 김지훈. 그거야, 그거. 수술은 이렇게 해야지. 응! 네가 김지훈이구나.”
수술 중에 집도의는 다른 곳에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
김지훈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물.”
생리 식염수를 이용해 고름을 세척해 낸 후 배 속에 드레인을 넣었다. 역순으로 복벽을 닫고 마지막으로 피부를 봉합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름이 복벽을 타고 흘렀을 가능성이 있었다.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 피부 밑에 작고 가느다란 드레인을 하나 넣었다.
“컷!”
마지막 봉합 사를 잘랐다.
딱 한 시간이 걸렸다.
“철한아, 천천히 끝내고 회진 돌자. 허허! 김지훈, 잘했다.”
‘아뻬가 터져서 주변이 떡이 됐는데 1년차가 당황하지도 않고 수술을 진행해? 이준영이에게 제대로 배웠구나. 아니, 예전의 준영이 손을 보는 것 같았어. 잘했다. 아주 잘했어. 김지훈, 이준영, 너희들 둘 다 아주 잘했다.’
송재덕 과장이 웃으며 수술실을 나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어쩐지 예전의 웃음소리와는 다르게 들렸다.
최철한이 고개를 흔들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훈아, 농양이 잡힌 아뻬 수술은 처음이지?”
“예, 선생님.”
할 말을 잃었는지 환자를 옮기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환자와 함께 회복실에 들어온 김지훈이 어깨를 부르르 떨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야! 어떻게 정말 농양이 걸리냐. 죽인다. 한 번이라도 더 해 보면 정말 좋겠다.’
경우에 따라서는 3~4년차들도 고전을 하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깔끔하게 끝낸 것이다. 1년차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송재덕 과장의 말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오더를 낸 김지훈이 수술 방을 나가며 불끈 주먹을 쥐었다. 그동안의 노력은 절대 헛수고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욱 각오를 다져야 했다.
‘마취과 기록을 보니까 현수는 30분도 안 걸렸네. 이준영 선생님에게 그렇게 트레이닝을 받지 않았으면 완전히 뒤처질 뻔했잖아. 확실히 대단한 놈이야. 좋아. 한번 멋지게 붙어 보자. 너처럼 뛰어난 놈이 라이벌이라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막강한 경쟁자가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었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자신을 더욱 담금질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도 있었다. 김지훈에게 신현수는 투지를 불태우게 하는 확실한 동력이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었다.
꼭 해 보고 싶었던 수술을 잘 해냈다. 게다가 운이 따라 주면 주말 오프도 갈 수 있었다.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 김복남 환자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중환자실에 딸린 당직실은 인턴들의 공간이었다. 며칠이나 신세를 진 탓에 눈치를 보아야 했다.
‘미안하다, 인턴 선생들. 나중에 잘해 줄게. 내일 환자만 일반 병동으로 올라가면 최상인데. 제발!’
어느새 김지훈은 나직하게 코를 골았다.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지 잠든 김지훈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시간 신현수가 불 꺼진 병동 의국에 홀로 남아 있었다.
김지훈이 수술하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동기들 중에는 누구도 자신보다 수술 경험이 많을 수 없었다. 어쩌면 2년차들보다도 횟수는 많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음성과 구미를 거쳐 온 김지훈이 훨씬 어려운 수술을 무난하게 해낸 것이다.
‘내가 수술을 했다면 한 시간 내에 무난하게 할 수 있었을까? 난 분명 할 수 있어. 하지만 김지훈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도대체 어떤 노력을 한 거지?’
간신히 잠재웠던 자존심과 시샘일지도 모를 감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자신이 아무것도 없는 김지훈에게 밀릴 수는 없었다.